10. 언론 인터뷰 : 당신의 서사를 통제하는 대화법
유명 IT 매체의 기자에게서 한 통의 메일이 온다. "귀사의 서비스에 대해 흥미롭게 보고 있습니다. 30분 정도 인터뷰 가능하실까요?" 심장이 뛴다. 드디어 우리 회사를 세상에 알릴 기회가 왔다. 하지만 그 기쁨도 잠시, 곧바로 차가운 공포가 밀려온다. '무슨 질문을 할까?', '내가 말실수라도 하면 어떡하지?', '기자가 내 의도를 왜곡해서 기사를 쓰면?' 말 한마디 잘못했다가 회사의 이미지가 나락으로 떨어지는 상상이 머릿속을 스친다.
그런 마음이 드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창업가는 자신의 제품과 팀은 통제할 수 있다고 믿지만, 언론은 통제 불가능한 영역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기자는 내 편이 아니다. 그들은 독자의 흥미를 끌 '이야기'를 찾고 있을 뿐, 당신의 회사를 홍보해 줄 의무는 없다. 당신의 서사가 내 손을 떠나 타인의 손에 의해 재단될 수 있다는 두려움은 지극히 합리적인 감정이다.
하지만 '0 to 10' 단계에서 회사의 스토리는 그 자체로 가장 중요한 자산이다. 이 대화를 피하는 것은 당신의 자산을 공중에 방치하는 것과 같다. 이 대화는 단순히 기사 한 줄을 내는 것이 아니다. 성공적인 인터뷰는 투자자들에게 당신의 비전을 재확인시키고, 잠재 고객에게는 신뢰를 심어주며, 최고의 인재들이 당신의 회사에 합류해야 할 이유를 제공한다. 당신이 이 대화를 통제하는 법을 배우는 것은, 곧 당신 회사의 가치를 당신 스스로 지키고 정의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내 제품이 이렇게 혁신적인데, 당연히 기자가 핵심을 알아볼 거야". "그냥 솔직하게 인간적으로 다가가면 진심이 통할 거야", "이건 좀 민감한 부분이니까 '오프더레코드(비보도 전제)'로 말하면 되겠지." 이런 생각들은 창업가가 인터뷰에서 저지르는 가장 순진하고 위험한 착각이다.
그 착각의 결과는 처참하다. 당신은 99%의 긍정적인 비전과 1%의 사소한 우려를 솔직하게 말했다. 하지만 기사 헤드라인은 바로 그 1%의 우려로 뽑힌다. ("... 업계 경쟁 과열 우려돼"). 당신이 '인간적인' 농담으로 꺼낸 경쟁사 이야기는 "경쟁사 A를 정면으로 비판"이라는 자극적인 기사로 둔갑한다. '오프 더레코드'로 말한 내부 사정은 기자의 머릿속에 남아, 다음 기사의 '취재원' 발언으로 교묘하게 인용된다.
최악의 비용은 단지 잘못된 기사 하나가 아니다. 진짜 비용은 당신이 세상에 알릴 수 있었던 그 위대한 스토리를 전달할 '단 한 번의 기회'를 날려버렸다는 사실이다. 또한 그 기사를 해명하기 위해 투자자에게, 팀원들에게, 고객들에게 쏟아야 하는 수십, 수백 시간의 감정 노동이 바로 당신이 지불해야 할 '보이지 않는 부채'다.
인터뷰는 단순한 '대화'가 아니다. 그것은 고도로 계산된 '메시지 전달 퍼포먼스'다. 당신의 목표는 기자의 모든 질문에 답하는 것이 아니라, "기자의 어떤 질문을 받더라도 결국 당신이 준비한 핵심 메시지를 전달하고 나오는 것"이다. 기자의 질문은 당신의 무대로 올라오는 '징검다리'일뿐, 그 무대의 주인공은 당신의 메시지여야 한다.
인터뷰에서 당신이 전달할 메시지는 단 세 개여야 한다. 이 세 개의 메시지가 어떤 질문에도 서로를 지지하며 당신의 서사를 완성하는 '철옹성'이 된다.
예를 들어, 당신의 스타트업이 기술 사용에 어려움을 겪는 동네의 작은 가게 사장님들을 위한 '초간편 웹사이트 제작 및 마케팅 자동화 툴'을 만든다고 가정해 보자.
이것은 단순한 '우리의 미션'이 아니다. 이것은 대중이 이미 느끼고 있거나 공감할 수 있는 '사회적 문제' 또는 '보편적 갈증'과 우리의 미션을 연결하는 핵심 고리다. 언론은 대중을 대변한다. 그들이 반응하는 것은 당신의 비전이 아니라, 당신의 비전이 해결하려는 '우리 모두의 문제'다. 이 지점에서 공감대를 형성하지 못하면, 당신의 인터뷰는 '홍보 자료'로 전락하고 만다.
*(예: "골목의 작은 가게 사장님들이 복잡한 기술 때문에 대기업과 공정하게 경쟁할 기회조차 얻지 못하는 것은 '불공정한 출발선'*입니다. 저희는 그 문제를 해결합니다.")
그 '대중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당신이 제시하는 유일무이한 강점이다. 이것은 당신의 기술, 비즈니스 모델, 혹은 남다른 접근 방식이 될 수 있다.
(예: "그래서 저희는 사장님들이 3분 만에 멋진 웹사이트를 만들 수 있는 '원클릭' 기술을 개발했습니다.")
그 해결책이 현실에서 작동하고 있다는 '증거'다. 숫자, 데이터, 혹은 감동적인 고객 성공 사례(첫 번째 고객의 이야기 등)를 제시하여 메시지에 신뢰를 더한다.
(예: "그 결과, 저희 서비스를 이용한 가게들의 월평균 매출이 30% 증가했습니다.")
이것은 인터뷰의 '운전대'를 쥐는 것이다. 인터뷰는 대화가 아니라, 당신의 핵심 서사를 대중에게 전달하기 위한 '퍼포먼스'이다. 기자가 대화의 방향을 엉뚱한 곳이나 당신에게 불리한 쪽으로 끌고 가려할 때, 다시 당신이 정한 '핵심 메시지 트라이앵글(공감대, 해결책, 증거)'로 돌아오는 모든 행동을 의미한다. 이것은 방어적인 기술이 아니라, 대화의 주도권을 쥐는 가장 공격적이고 핵심적인 전략이다. 인터뷰의 목적은 기자의 모든 호기심을 채워주는 것이 아니라, 당신의 스토리를 헤드라인으로 만드는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플래깅은 기자의 노트북에 '형광펜'을 그어주는 기술이다. 기자는 하루에도 수많은 정보를 처리한다. 당신이 전달한 수십 분의 대화 속에서 당신이 의도한 핵심을 놓칠 수도 있다. 플래깅은 바로 그 순간, "이것이 핵심입니다"라고 의식적으로 '깃발'을 꽂아 강력한 신호를 주는 것이다. "제가 오늘 꼭 드리고 싶은 가장 중요한 말씀은...", "이것 하나만은 독자분들이 꼭 기억해주셨으면 합니다"와 같이 강력한 서두를 사용 하라. 이는 기자에게 '이것이 바로 당신이 찾던 헤드라인입니다'라고 친절하게 알려주는 것과 같다.
브리징은 인터뷰에서 가장 정교한 '방패이자 창'이다. 예상치 못한 공격적인 질문, 민감한 주제, 혹은 경쟁사에 대한 질문을 받았을 때, 당황하며 그 함정에 빠지는 대신 그 질문을 '다리' 삼아 당신의 핵심 메시지로 자연스럽게 건너오는 기술이다. "그것도 물론 중요한 지적입니다만(질문 인정), 사실 저희가 더 근본적으로 집중하고 있는 문제는...(대화 연결) 바로 '불공정한 출발선'에서 고통받는 사장님들의 문제입니다(핵심 메시지 1번)."처럼, 상대의 질문을 살짝 밟고 우아하게 당신의 무대로 돌아오는 고도의 대화 설계이다.
✓ 피해야 할 표현:
- "그건 대답하기 곤란합니다." (방어적으로 보이며, 기자의 호기심을 더 자극한다.)
- "이건 오프 더레코드인데요..." (세상에 '오프 더레코드'는 없다. 말하지 않을 거면 입 밖에 내지 마라.)
- "경쟁사 A는..." (경쟁사에게 공짜로 지면을 내주지 마라. 당신 이야기만 하기도 바쁘다.)
✓ 무엇을, 어떻게 말할 것인가:
- (플래깅) "제가 오늘 인터뷰에서 꼭 드리고 싶은 가장 중요한 말씀은..."
- (플래깅) "이것 하나만은 독자분들이 꼭 기억해주셨으면 합니다. 바로 저희는..."
- (브리징) (까다로운 질문에) "그것도 중요한 지적입니다만, 저희가 더 근본적으로 집중하는 문제는..." [핵심 메시지 1(공감대)로 연결]
- (브리징) (경쟁사 질문에) "시장이 이 문제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있다는 좋은 신호라고 봅니다. 하지만 저희의 진짜 차별점은..." [핵심 메시지 2(해결책)로 연결]
데이팅 앱 '범블'의 창업자 휘트니 울프 허드는, 창업 자체가 거대한 위기였다. 그녀는 경쟁사 '틴더'의 공동창업자였고, 그곳을 '성희롱 소송'이라는 매우 부정적인 이슈와 함께 떠났기 때문이다. 그녀가 새로운 데이팅 앱을 출시했을 때, 언론의 모든 질문은 그녀의 신제품이 아닌, 과거의 개인적인 스캔들과 소송에 집중되었다.
만약 그녀가 이 질문에 방어적으로 "대답할 수 없습니다"라고 하거나, 감정적으로 "저는 억울합니다"라고 했다면, 그녀는 평생 '틴더 소송녀'라는 꼬리표를 떼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이 모든 공격적인 질문을 자신의 핵심 메시지로 연결하는 '브리징(Bridging)' 기술을 완벽하게 구사했다.
기자들이 그녀의 고통스러운 과거 경험에 대해 물을 때마다, 그녀는 이렇게 대답했다.
"네, 저는 그런 불쾌한 경험을 했습니다. 하지만 제가 겪은 그 문제는 저 개인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그것은 오늘날 수백만 명의 여성들이 온라인 데이트에서 매일 겪고 있는 '모두의 문제'입니다. (-> 1. 대중적 공감대)"
그녀는 기자의 질문을 '개인의 상처'라는 프레임에서 '여성이 겪는 보편적 문제'라는 '대중적 공감대' 프레임으로 즉시 전환시켰다.
"바로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범블이 탄생했습니다. 저희는 여성이 먼저 대화를 시작할 수 있는 유일한 앱입니다. (-> 2. 독보적 해결책)"
"그 결과, 여성들은 더 이상 원치 않는 메시지에 시달리지 않게 되었고, 남성들 역시 거절의 두려움에서 벗어나 존중받는 대화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 3. 구체적 증거)"
그녀는 인터뷰 내내 단 한 번도 자신을 '피해자'로 규정하지 않았다. 대신, 자신의 가장 큰 약점이었던 '개인적인 상처'를, 자신이 이 '사회적 문제'를 해결해야만 하는 가장 강력한 '사명'과 '진정성'의 증거로 바꿔버렸다. 그녀는 기자가 던진 '과거의 스캔들'이라는 돌을 우아하게 다리(Bridge) 삼아, '미래의 미션'이라는 자신의 무대로 건너왔다. 이것이 바로 자신의 서사를 완벽하게 통제한 대화의 힘이다.
인터뷰에 들어가기 전, 당신이 전달할 단 세 개의 메시지를 3x5 카드 한 장에 적어라. 인터뷰의 유일한 목표는 기자가 어떤 질문을 하든, 그 카드에 적힌 말을 모두 하고 나오는 것이다.
[ ] 내가 전달할 3가지 핵심 메시지가 명확한가? (공감대, 해결책, 증거)
[ ] 각각의 메시지를 뒷받침할 한두 문장짜리 매력적인 스토리나 데이터가 준비되었는가?
[ ] 예상되는 가장 까다로운 질문 3가지는 무엇인가?
[ ] 그 질문을 나의 핵심 메시지로 연결할 '브릿지' 표현을 연습했는가?
[ ] "이것만은 절대 말하지 않겠다"는 원칙을 정했는가? (특히 경쟁사, 미검증된 미래 예측)
✓ (해외 도서) 『미디어 트레이닝 바이블 (The Media Training Bible)』: 언론 대응의 A to Z를 다루는 최고의 교과서.
✓ (국내 도서) 『PR의 정석』: 국내 언론 환경에 맞는 실전적인 PR 전략과 위기관리 노하우를 배울 수 있다.
✓ (영상 자료) 스티브 잡스, 일론 머스크의 과거 주요 인터뷰 영상: 그들이 어떻게 기자의 질문을 '브리징'하여 자신의 핵심 메시지를 반복적으로 전달하는지 분석하라.
축하한다. Part 2의 모든 대화를 통과하며 당신은 진실을 찾고, 내부와 외부의 신념을 성공적으로 확보했다. 이제 회사는 '10'에서 'N'으로 폭발적으로 성장하는 스케일업 단계로 진입한다. 하지만 성장은 고통을 동반한다. 다음 Part 3, "성장 엔진 구축하기: 스케일업의 대화"에서는 사람이 늘어나고 조직이 복잡해질 때 발생하는 새로운 종류의 대화 설계법을 알아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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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https://brunch.co.kr/brunchbook/leader-tal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