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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 문화, '선언'이 아니라, '설계'하는 것이다

12. 문화를 조직에 심는 대화법: 문화, 대화로 숨 쉬게 하라

by jaha Kim


창업가의 대화설계 (Founder's Talk Design)

Part III. 성장 엔진 구축하기 - 스케일업의 대화(성장기, '10 to N'으로 전환)


12. 문화를 조직에 심는 대화법: 문화, 대화로 숨 쉬게 하라



"문화는 벽에 걸린 가치가 아니라, 회사 일상 대화의 총합이다"


이전 챕터에서 우리는 '정답을 아는 사람(Know-it-all)'이 아닌 '빠르게 배우는 사람(Learn-it-all)'을 버스에 태우는 법을 배웠다. 하지만 '성장 엔진'은 뛰어난 개인 몇 명이 만드는 것이 아니다. 성장 마인드셋을 가진 최고의 인재들을 모아놓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그 인재들이 서로의 학습을 가속하고 시너지를 내도록 만드는 '운영체제(Operating System)'가 필요하다. 그것이 바로 '문화'이다. 11장이 인재라는 '엔진 부품'을 모으는 과정이었다면, 12장은 그 부품들이 유기적으로 맞물려 돌아가게 하는 '시스템'을 대화를 통해 설계하고 조직에 심는 과정이다.




1. 이 대화, 왜 피하고 싶고, 왜 피할 수 없는가? (The Inescapable Conversation)


빈 슬라이드 앞에서 멈춰버린 손

밤 11시, 당신은 '전사 문화 공유' 자료를 만들기 위해 빈 슬라이드를 열었다. 넷플릭스의 멋진 컬처덱, 구글의 '10가지 진실' 같은 것을 떠올린다. 당신도 슬라이드에 적어본다. "열정", "도전", "고객 중심", "투명성"... 하지만 이 뻔하고 공허한 단어들을 마주하는 순간, 깊은 현타가 밀려온다. '지금 할 일이 태산인데, 이런 단어 놀음이 대체 무슨 의미가 있지?' 당신은 조용히 파워포인트 창을 닫는다.


문화를 무시하는 게 아니다, 단지 '보이지 않는 것'을 미룰 뿐

그런 마음이 드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당신이 의도적인 문화 설계를 뒤로 미루는 것은, 그것이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해서가 아니다. 오히려 당신은 '지금 당장 눈에 보이는 제품 개발, 고객 확보, 투자 유치 같은 생존 과제'에 모든 에너지를 쏟아붓는 것이 리더로서 팀을 위한 최선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초기 스타트업 리더에게 '문화'는 코드 한 줄, 계약서 한 장처럼 명확한 결과물이 아니기에 손에 잡히지 않고, 당장의 성과와 직결되지 않는 것처럼 느껴질 수 있다. "일단 좋은 사람들을 뽑았으니, 문화는 그들이 알아서 잘 만들겠지"라며, 보이지 않는 것을 설계하는 일보다 보이는 불을 끄는 데 집중하는 것은 지극히 합리적인 판단처럼 보인다.


설계하지 않은 문화는 방치된 정원이다

하지만 문화는 당신이 설계하든 방치하든, 조직이 10명을 넘어 30명, 50명이 되는 순간 저절로 생겨난다. 문제는 당신이 의도하지 않은 방향으로 자라난다는 것이다. 10명일 때는 눈빛만 봐도 통했지만, 50명이 되면 각자 다른 방식으로 일하고, 다른 것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이 대화는 '좋은 문화'를 만들 것인가 '없는 문화'로 버틸 것인가의 선택이 아니다. 이것은 당신이 '의도한 문화'를 대화로 설계하고 심을 것인가, 아니면 '의도하지 않은 나쁜 문화'가 조직을 장악하도록 방치할 것인가에 대한 생존의 문제다.




2. 오해와 착각: ‘좋은 게 좋은 거’라는 함정 (The Founder's Fallacy)


"드디어 우리만의 멋진 가치를 만들었습니다"

몇 주간의 워크숍, 밤샘 토론 끝에 드디어 우리 회사만의 핵심 가치가 탄생했다. "고객 집착", "데이터 기반 의사결정", "급진적 솔직함". 디자인팀은 이 가치를 멋진 포스터로 만들어 사무실 벽에 걸었고, 당신은 전사 회의에서 뿌듯한 마음으로 이를 선포했다. 당신은 이제 우리 회사의 문화적 기틀이 마련되었다고 생각하며 만족한다. 리더로서 중요한 역할을 해냈다고 믿는 것이다.


벽에 걸린 걸작, 사무실의 현실

하지만 그 뿌듯함이 비극의 시작이다. '데이터 기반 의사결정'이라는 포스터 아래에서, 여전히 가장 목소리 큰 사람의 의견이나 창업가의 '직감'으로 중요한 결정이 내려진다. '급진적 솔직함'을 외쳤지만, 정작 리더에게 건설적인 비판을 하는 직원은 '팀워크를 해치는 사람'으로 낙인찍힌다. '고객 집착'을 말하지만, 개발 일정에 쫓겨 고객의 피드백은 다음 분기로 미뤄진다. 직원들은 이 간극을 매일 목격한다. 벽에 걸린 가치는 그저 이상적인 선언일뿐, 실제 일하는 방식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는 것을 깨닫는다.


'최고 인재'가 가장 먼저 떠나는 이유

이것이 바로 당신이 치르는 가장 값비싼 '보이지 않는 비용'이다. 진짜 비용은 직원들의 냉소주의 그 자체가 아니다. 이 위선과 불일치를 가장 먼저 알아차리고 조용히 떠나는 사람들이 바로 당신이 11장에서 애써 뽑은 '최고의 학습자(Learn-it-all)'들이라는 사실이다. 그들은 공허한 구호가 아닌, 실제로 작동하는 건강한 시스템 안에서 성장하고 기여하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당신은 최고의 인재를 담을 그릇(실행되는 문화)을 만들지 못해, 그들을 잃는 비용을 치르게 된다.




3. 대화의 재설계: 핵심 원칙과 프레임워크 (The Core Principle & Framework)


핵심 원칙 제시

문화는 선언하는 것(Declare)이 아니라, 대화로 설계하는 것(Design)이다. "문화는 가치의 목록이 아니라, 그 가치를 지키기 위한 '일상의 행동과 시스템'이며, 이것은 리더의 의도적인 '대화'를 통해 조직에 심어진다." "우리는 '소통'을 중시한다"라고 말하는 대신, "우리는 모든 회의록을 1시간 안에 전사 공개한다"는 '규칙'을 만들고, 그 규칙이 지켜지는지 '대화'로 확인하는 것이 진짜 문화를 만드는 길이다. 포스터가 아닌 시스템을 설계하고, 그 시스템을 대화로 작동시켜야 한다.


프레임워크 제시: 문화를 시스템으로 만드는 3가지 대화

추상적인 가치를 살아있는 행동으로 바꾸기 위해, 리더는 이 세 가지 유형의 '대화'를 의도적으로 설계하고 실행해야 한다.


1. 의식적인 대화 설계:

그 가치를 일상에서 반복적으로 실천하고 상기시키는 '약속된 행동'을 만들고 전파하는 대화. (예: 가치가 '투명성'이라면)

"이번 주 금요일 전사 공유 회의에서는 우리가 왜 이 회의를 매주 하는지, '투명성'이라는 가치와 연결해서 다시 한번 이야기합시다."


2. 인정하는 대화 설계:

그 가치에 맞는 행동을 한 구성원을 '즉각적이고 공개적으로' 칭찬하고 보상하며, 그 의미를 설명하는 대화. (예: 가치가 '고객 중심'이라면)

"A님이 고객의 작은 목소리도 놓치지 않고 제품에 반영한 행동은, 우리가 왜 존재하는지를 보여주는 완벽한 사례입니다. 모두 A님께 박수 부탁드립니다."


3. 교정 (Feedback) 설계 대화:

그 가치에 어긋나는 행동을 목격했을 때, 그것이 사소할지라도 즉시 바로잡고 기대 행동을 명확히 하는 '피드백' 대화. (예: 가치가 '빠른 실행'이라면)

"B님, 좋은 의견이지만 그 논의는 이미 3일 전에 끝났습니다. 지금은 이 결정이 왜 내려졌는지 다시 설명하기보다, 함께 실행에 집중해야 합니다."




4. 실전 플레이북: 당신의 대화를 디자인하라 (Design Your Talk)


대화의 핵심 키워드 뽑아내기


# 핵심가치 (CV: Core Values):

이는 단순히 벽에 걸어둘 좋은 단어 목록이 아니다. 이것은 우리가 어떤 어려움 속에서도 절대 타협하지 않을 3~5가지의 근본적인 행동 원칙이다. 중요한 것은 이 추상적인 가치를 "우리는 '솔직함'을 중시한다"가 아니라, "우리는 동료에게 어려운 피드백이라도 24시간 안에 직접 전달한다"와 같이, 누구나 관찰하고 측정할 수 있는 구체적인 기대 행동으로 번역하는 것이다. 이 기대 행동들이 바로 앞으로 우리가 나눌 모든 문화 관련 대화의 기준점이 된다.


# 행동강령 (BP: Behavioral Principles):

핵심 가치가 '무엇(What)'을 중시하는지에 대한 선언이라면, 행동 강령은 '어떻게(How)' 그 가치를 일상에서 실천할지에 대한 구체적인 사용자 매뉴얼이다. 예를 들어 핵심 가치가 '고객 집착'이라면, 행동 강령은 "모든 제품 기획 회의는 반드시 고객 인터뷰 요약으로 시작한다" 또는 "모든 직원은 한 달에 한 번 이상 고객 지원 요청에 직접 답한다" 등이 될 수 있다. 이것들은 문화를 만들기 위한 대화의 구체적인 '어젠다'이자 평가 기준이 된다.


#가치실현대화 (LVC: Living The Values Conversation):

이것은 설계된 가치와 행동 강령이 단순한 문서를 넘어 조직의 실제 '숨 쉬는 방식'이 되도록 만드는 지속적인 대화 루프이다. 회의실에서, 슬랙에서, 1on1 미팅에서 "우리의 지금 행동/결정이 핵심 가치 X와 어떻게 연결되는가?", "행동 강령 Y를 더 잘 실천하려면 무엇이 필요한가?"를 끊임없이 묻고 답하는 과정이다. 이 대화가 활발할수록 '문화적 부채'가 쌓일 틈이 없다. 즉, 가치와 현실의 불일치를 대화를 통해 즉시 감지하고 교정함으로써, 문화가 구호가 아닌 실제 행동으로 이어지도록 만드는 핵심 엔진이다.



핵심 질문 & 표현 가이드 (Talk Script & Tactics)


✓피해야 할 표현 (가치를 묻는 말) :

- "우리 회사의 핵심 가치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세요?" (뜬구름 잡는 질문이다.)

- "우리는 '고객 중심'을 실천해야 합니다." (추상적인 선언일뿐, 대화가 아니다.)


✓ 무엇을, 어떻게 말할 것인가 (행동을 묻는 대화) :

+ (가치가 '데이터 중심'일 때) → "그 결정을 내릴 때, 어떤 데이터를 확인했는지 이야기해 주시겠어요?"

+ (가치가 '투명한 소통'일 때) → "그 정보는 왜 아직 관련 팀에게 공유되지 않았는지 설명해 주실 수 있나요?"

+ (가치가 '빠른 실행'일 때) → "그 일을 완수하는 데 가장 큰 걸림돌은 무엇이며, 어떻게 제거할 수 있을지 함께 이야기해 봅시다."

코멘트: 리더의 일상적인 질문과 피드백 대화가 바로 문화를 조직에 심는 가장 강력한 도구다. 가치를 선언하지 말고, 가치에 기반한 행동에 대해 대화하라.




5. 거인들의 대화: 그들은 어떻게 말했는가? (Case Studies)


사례 분석: 넷플릭스(Netflix)의 '자유와 책임'이라는 시스템 대화


넷플릭스의 문화는 그저 멋진 '컬처덱' 때문에 유명해진 것이 아니다. 그들은 그 가치를 뒷받침하는 냉혹할 정도의 '시스템'을 설계했고, 그 시스템은 끊임없는 '대화'를 통해 작동한다. 그들의 핵심 가치는 '자유와 책임(Freedom & Responsibility)'이다.


'그들은 어떻게 말했는가?' (가 아닌 '어떤 대화를 설계했는가?')

넷플릭스는 "우리는 자유를 줍니다"라고 말로만 하지 않았다. 그들은 '자유'와 '책임'이 공존하는 시스템을 만들고, 그 안에서 솔직한 피드백 대화가 끊임없이 일어나도록 설계했다.


+ '자유'라는 시스템: 휴가 규정, 법인카드 사용 지침 등을 없애고 "회사의 이익에 맞게 행동하라"는 원칙만 주었다.


+ '책임'이라는 시스템 대화: 대신 업계 최고 수준의 연봉을 주고, 그에 걸맞은 성과를 내지 못하면(동료들이 당신과 계속 일하고 싶은지 묻는 '키퍼 테스트(Keeper Test)'를 통해) 막대한 퇴직금과 함께 즉시 회사를 떠나야 함을 명확하고 의식적으로 '대화'한다. 또한, 구성원끼리 서로에게 급진적으로 솔직한 피드백(Radical Candor)을 주고받는 것을 의무화하는 대화 문화를 만들었다.


그들은 '자유'라는 가치에 대한 '책임'을 시스템과 대화로 설계함으로써, 공허한 구호가 아닌 실제로 작동하는 문화를 만들었다. 즉, '자유'에 대한 비용(높은 연봉, 솔직한 피드백)을 지불하고, '책임'지지 않는 행동을 즉각적인 '교정 대화'로 관리한 것이다.




6. 즉시 실행 가능한 체크리스트와 다음 단계 소개 (Checklist & Next Steps)


Takeaway & 행동 강령

지금 당장 '컬처덱' 만들기를 멈추고, 당신의 핵심 가치 하나를 고르라. 그리고 그 가치를 실천하기 위해 내일부터 당장 시작할 '일상적인 대화(의식, 인정, 교정 중 하나)' 하나를 설계하고 공표하라.


체크리스트

[ ] 나의 핵심 가치는 3~5개의 명확한 '행동'으로 번역되었는가?

[ ] 그 행동을 장려하는 구체적인 '의식(Ritual) 대화'가 설계되었는가? (예: 주간 회의 어젠다)

[ ] 그 행동을 했을 때 즉시 '인정(Recognition)하는 대화' 시스템이 있는가? (예: 슬랙 채널)

[ ] 그 행동에 어긋났을 때 즉시 '교정(Feedback)하는 대화'가 이루어지고 있는가? (예: 1on1 미팅)

[ ] 나(창업가)부터 그 행동을 매일 실천하며, 관련 대화를 주도하고 있는가?


지식의 무기고 확장하기


✓ (해외 도서) 벤 호로위츠, 『최강의 조직 (What You Do Is Who You Are)』: 문화는 벽에 걸린 가치가 아니라 리더의 '행동'과 '대화' 그 자체임을 알려주는 최고의 책.

✓ (해외 도서) 패티 맥코드, 『파워풀 (Powerful)』: 넷플릭스의 실제 문화를 설계한 당사자가 쓴, '자유와 책임' 시스템과 솔직한 대화 문화의 모든 것.

✓ (국내 도서) 이승건 저, 『유난한 도전』: 토스(Toss)가 어떻게 그들만의 독특한 문화적 '의식'과 '시스템', 그리고 '피드백 대화'를 만들어 스케일업에 성공했는지 보여주는 강력한 국내 사례.


다음 챕터로의 연결

최고의 인재를 뽑고(11장), 그들이 함께 일할 문화 시스템을 대화로 심었다(12장). 하지만 스케일업 단계의 갈등은 결국 매우 현실적인 문제, '돈'으로 귀결된다. "왜 저 사람은 나보다 연봉이 높죠?", "우리 회사의 보상 기준은 무엇인가요?" 다음 챕터에서는 가장 민감하지만 피할 수 없는 대화, "보상 철학 공개: 급여 명세서 이면의 '왜'를 설명하는 법"에 대해 알아볼 것이다.



#조직문화 #핵심가치 #스케일업 #스타트업 #리더십 #팀빌딩 #보상시스템 #성장엔진 #행동강령 #창업가 #컬처덱 #창업자의대화설계

참고: https://brunch.co.kr/brunchbook/leader-tal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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