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남편을 제외한 세 여자들이 모두 노로바이러스에 걸려 고생을 했다. 김장하고 생굴과 소주를 신나게 들이켠 내가 거의 죽다 살아났고, 나와 붙어있던 아이들도 걸리고 말았다. 그 우리 집을 습격한 바이러스 이야긴 후에 다시 언급하기로 하겠다. 치열한 바이러스와의 싸움의 일대기를 말이다.
어쨌거나 첫째 아이는 등원을 하지 못했고, 우리 셋이 집에서 하루 종일 뒹굴뒹굴할 때였다.
큰 아이는 블록을 가지고 놀겠다며 거실에 큰 블록 통 두 개를 모조리 쏟아냈다. 작은 아이도 언니 따라 옆에 붙어서는 블록을 이리 만지고 저리 만지며 놀고 있었다. 나는 어제 미뤄둔 설거지를 하고, 식탁을 치우고, 이불을 갠 뒤 아이들에게 가려다가 식탁에서 무언가를 발견했다.
바둑알 5개와 장기 하나, 작은 블록 하나가 가지런히 놓여있었다. 분명 아까 식탁을 치울 땐 없던 거였다. 이게 뭐지? 하며 가만히 생각하는데, 분명 블록 박스 안에 바둑알이 놓여있던 생각이 났다. 그 전날에도 그 블록 박스에서 바둑알을 기어이 찾아낸 구강기인 작은아이가 바둑알 두 개를 입에 물고 오물거려 빼느라 진땀 뺐던 기억이 있었다. 그때 내가 보이는 건 모두 찾아 바둑알 통에 넣어두었었는데, 다른 블록 박스에 또 바둑알이 있었던 모양이다. 불현듯 그 바둑알이 식탁 위에 가지런히 놓여있는 이유를 유추해냈다.
"다현아, 네가 이거 지민이 먹지 말라고 여기 모아서 올려둔 거야?"
"응. 바둑알 먹을까 봐 내가 거기 올려둔 건데? 왜?"
나는 설마 하며 물었는데 진짜라니 참 놀라우면서도 감동적이었다.
"우와, 엄마가 시킨 것도 아닌데, 동생 생각해서 여기 놔둔 거야? 다현아, 진짜 고마워. 정말 대단하다."
아이는 그렇게 큰 칭찬을 받을만한 일인 줄 몰랐던 듯 어리둥절하다가 이내 기분 좋은 부끄러움으로 몸을 베베 꼬았다. 솔직히 속으로 정말 감동했다. 구강기인 작은 아이가 작고 동그란 걸 먹고 삼키지나 않을까 늘 노심초사하는 엄마 아빠를 보면서 6살 아이는 스스로 바둑알을 작은 손으로 꽁기꽁기 챙겨 동생 손이 닿지 않는 식탁 위에 올려두다니! 그 마음이 너무 예쁘고, 대견했다.
작년 이맘때 작은 아이가 태어났다. 12월 25일 크리스마스가 예정일이었던 아이는 5일 일찍 세상에 나왔고, 오늘처럼 추운 겨울 새벽에 진통을 느껴 병원에 갔던 기억이 새록새록 난다. 나는 둘째 아이가 태어나기 전부터 첫째 아이가 어떻게 하면 동생을 가족의 일원으로 잘 받아들일 수 있을까? 참 많은 고민을 했다. 관련 책도 사서 보고 유튜브에 영상도 찾아보고 주변 사람들에게 조언도 구하면서 동생이 태어나기도 전에 많은 고민을 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주위에 동생이 생긴 아이들을 보니 갑자기 등장한 동생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아 퇴행이 온 아이들이 많았다. 퇴행까지 오지 않더라도 떼가 늘고, 동생을 질투하는 아이들이 대부분이었다. 한 집안에서 아이도 힘들어하고 엄마도 힘들어하는 걸 보면서 육아로 인한 몸의 피로함보다는 그게 더 두려웠다. 특히나 예민하고 받아들이는 데 시간이 걸리는 첫째 아이가 과연 동생을 잘 받아들일 수 있을까? 출산일이 다가오면서 더 걱정이 많아졌었다.
그래서 나는 올해 초 조리원을 나올 때 어디서 검색해 본 방법대로 첫째 아이가 좋아할 만한 장난감 선물을 샀고, 둘째 아이 이름으로 편지를 썼다.
[ 언니 만나서 반가워. 사랑해. ]
뭐 대충 이런 내용의 편지였던 걸로 기억한다. 누가 봐도 엄마가 쓴 편지라 통할까 걱정되었지만, 선물과 함께 건넨 편지의 효과는 실로 엄청났다. 아이는 동생이 온 것에 대해 기뻐하고 동생으로 인해 좋은 일이 생긴다는 인식을 확실히 심어줄 수 있었다.
그 뒤에도 나는 둘 사이가 좋게 유지되기 위한 나만의 룰을 세웠다.
첫 번째는 나는 절대 "네가 언니니까 동생한테 양보해줘." 란 말을 하지 않는다. 이 말은 동생이 태어나기 전부터 절대 하지 말아야지 생각하며 의식적으로라도 하지 않는 말이다. 언니인 6살도 아직 어린아이이다. 양보하기 싫은 어린아이. 그런 아이에게 동생이니까 무조건 양보해줘.라는 말은 절대 하지 말자 맹세했었다. 다만 더불어 살아가는 법도 알아야 하니까 적당히 타협할 수 있도록 해결책을 제시해줄 때는 있다. 예를 들어 동생이 자기가 애써 만든 블록을 부수려고 하면 높은데 갖다 놔 라거나 동생에게 다른 장난감을 쥐어주거나 이렇게 말이다. 사실 이 룰을 세우게 된 데에는 나의 어릴 적 경험도 작용이 되었다. 나에겐 6살 차이 나는 언니가 있었는데, 엄마가 언니에게 동생이니까 양보해야지 하는 말에 초등학생, 중학생이던 시절 나는 조금 죄책감을 느낀 적이 있었다. 내가 봐도 부당한 것 같은데 언니에게 양보하라고 하니 그 양보를 받는 내 심정에도 언니에게 좀 미안하고 괜히 언니보다 내가 더 사랑받아 그런 게 아닐까 하는 죄책감이 들었었다. 그런 불편한 양보는 언니도 동생인 나 역시도 바라는 진짜 양보는 아니었다. 자매 사이엔 두터운 관계를 통한 진심 어린 양보가 필요하다고 본다.
두 번째는 "착하다" 대신 "고마워"를 쓴다.
내가 존경하는 멘토이자 육아 전문가인 오은영 선생님의 책에서 그런 말을 읽은 적이 있었다. "착하다."라는 표현을 하면 아이들은 자기 안에 피어나는 부정적 감정들, 즉 그러니까 자기만 가지고 싶은 욕심이나 동생이 밉다거나 그런 인간이 충분히 느낄 수 있는 감정들에 대한 죄책감을 느끼게 된다고 한다. "응? 엄마는 나를 착하다고 하는데 나는 동생이 밉다고 생각할때가 있어.난 안 착한 것 같은데?"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는 거다. 나는 그 글을 보고 평소에 '착하다.'라는 말은 조심하긴 했지만 동생이 태어나고는 더 조심하는 편이다. 동생은 약하고 어리고 지켜줘야 하는 존재긴 하지만 사사건건 자신을 방해하고 힘들게 할 때가 분명히 있다. 그럴 때 아이가 당연히 느끼는 감정들에 대해 죄책감 들게 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동생이나 엄마 아빠를 도와주더라도 착하다 라는 표현보다는 고맙다는 표현을 쓴다.
이제 곧 둘째 아이의 돌이 다가온다.
이런 나만의 룰을 토대로 첫째 아이와 둘째 아이의 관계에 대해 난 1년 내내 신경을 썼다. 첫째 아이가 서운하지 않고 동생이란 존재를 잘 받아들이도록, 둘째 아이가 언니를 잘 따르고 좋아하도록 그렇게 말이다. 무엇보다 둘의 관계가 돈독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그것에 초점을 맞춰 아이들을 키우고 있다. 앞으로 둘째 아이가 걷고 말하고 그러면 더욱 노력을 많이 해야겠지만, 어쨌든 지금은 동네 엄마들이나, 친정, 시댁 식구들 에게 가면 첫째 아이는 많은 칭찬을 받는다.
한 달 전쯤 시댁에 가서 밥을 먹을 때 그런 일이 있었다. 식탁이 작고 가족은 많아 큰 상 하나를 펴놓고 밥을 먹으려고 하는데 식탁에 잡고 서서 잘도 기어 올라가는 둘째 아이 때문에 다들 불안해서 코로 들어가는지, 입으로 들어가는지 모를 정도로 정신이 없었다. 그래서 난 어쩔 수 없이 맛있는 고기 밥상을 앞에 두고 둘째 아이와 함께 다른 방에서 문을 닫고 식사가 끝날 때까지 기다리고 있었다. 반쯤 밥을 먹기도 했고, 누군가 다 먹으면 교대해주겠지 싶어 서럽진 않았고, 둘째 아이랑 놀아주는 중이었다. 몇 분쯤 지나자 시누이의 중학생인 아들, 즉 시조카가 다 먹고 일어나는 소리가 들렸다. 그러자 옆에 있던 첫째 아이 다현이가 물었다.
"오빠, 다 먹었어?"
"응"
"그럼 엄마 밥 먹게 지민이 좀 봐주면 안 돼?"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그런 말을 내뱉은 아이를 보며 우리 시어머니와 시누, 남편까지 다 감탄하며 칭찬을 했다. 이 일화를 동네 엄마들에게 이야기하니 진짜 대단하다며 그건 동생과 엄마 둘 다 배려한 것 아니냐고 감탄을 했다. 생각해보니 그 말이 맞는 것 같았다. 지민이는 혼자 있으면 안 되는 어린 아가고, 엄마는 밥을 못 먹고 있으니 다 먹은 오빠에게 부탁을 한 것이었다. 엄마도 동생도 배려한 기특한 발언이었다. 이 일화는 우리 시댁에 가면 아직까지도 두고두고 회자되고 있다.
어쩌면 첫째 아이는 유달리 남의 감정에 예민하고, 신중한 성격이라 내 노력이 아니었어도 아마 동생을 잘 돌봤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연말인 지금 한 해를 정리하며 올해 가장 잘한 일을 떠올리라고 했을 때 나는 첫째 아이, 둘째 아이 관계를 위해 부단히 노력한 게 가장 잘한 일이라고 말하고 싶다. 처음에는 낯설게만 느껴졌던 동생을 가족으로 받아들이고, 모든 게 낯선 갓난아이가 언니라는 존재를 인식하고 따르기까지 1년. 서로의 첫인상을 그래도 좋게 만들어주고자 노력한 게 올해 내가 가장 잘한 일이라고 말하고 싶다.
훗날, 첫째 아이, 둘째 아이 둘이 세상 둘도 없는 좋은 친구이자 좋은 자매 사이가 되길 진심으로 엄마는 바란다. 서로가 서로에게 엄마 아빠가 남겨준 위대한 유산이 되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