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나의 결핍을 깨닫다. 1

이혼 가정에서 자란 내가 이혼하지 않고 행복하게 사는 법

by 꽃구름

결핍. 나는 요 몇 주간 결핍에 대한 주제를 가지고 내내 생각했다. 글쓰기 모임의 공통주제를 정할 때 누군가가 제안한 결핍이라는 단어를 듣자마자 왠지 끌리는 주제였다. 항상 아이를 보며 사랑에 대한 결핍이 있을까? 저런 행동을 하는 이유가 어떤 결핍에 의한 것은 아닐까? 늘 노심초사했지만, 정작 나에 대한 결핍은 고민해본 적이 없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이 단어를 딱 듣는 순간, 아 이거다. 하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고, 적극적으로 그 주제를 하고 싶다 생각했다. 여러 가지 사정상 이번 글쓰기는 시간이 다른 때보다 더 많이 주어졌고, 결핍을 찾기 위한 욕심도 있으니 술술 잘 써질 거라 생각했던 내 예상 시나리오는 내가 내 안의 결핍을 깨달으면서 도리어 진도가 나가지 않았다.




내 안의 결핍이 뭘까? 나는 오랜만에 나간 아침 운동을 하며 생각했다. 새벽 찬 공기에 머리가 맑아지고, 몸을 약간 숨 가쁘게 움직이면 온갖 상념을 지우고 집중할 수 있는 힘을 주었기에 나는 이 주제에 대해 생각해보기로 했다. 큰 공원을 한 바퀴 다 돌아갈 때쯤 나는 내가 기억나는 과거의 조각들을 맞추었고, 그때의 내 감정들을 조명했고, 그 기억들이 내게 어떤 영향을 주었을까에 대해 고민했다.


기억 저편에 잊고 있었던 일을 끄집어 내니 거기엔 나와 엄마가 있었다. 두 가지 기억이었는데, 첫 번째는 내가 초등학교 저학년쯤 되었었고 우리 집에 친구가 놀러 왔다. 엄마는 잠시 집을 비운 상태였고 친구와 나는 놀다가 목이 말라 마실 것이 없을까 싶어 냉장고를 뒤지기 시작했다. 냉장고 벽에 먹다 남은 콜라가 있었다. 엄마도 없었고, 컵을 가져오는 게 귀찮았던 나머지 나는 친구와 1.5리터 콜라를 입을 대고 벌컥벌컥 마셔댔다. 그 순간, 엄마가 집에 들어왔다. 그걸 본 엄마는 질색을 했고, 즉각적으로 친구를 향해 무섭게 다음에 놀러 와.라고 말하곤 쫓아내듯 내보냈던 것 같다. 그 후 나는 빗이었던가, 빗자루였던가 그런 걸로 호되게, 무섭게 맞았었다.


두 번째는 초등학교 때 전학 와서 시집오기 전까지 살았던 집에서의 일이었다. 내가 거기 이사 간 게 초등학교 4학년이었으니, 잘 기억은 나지 않지만 어쨌거나 초등학교 고학년이었던 건 분명하다. 나는 집 앞 슈퍼를 다녀오라는 엄마의 심부름을 했고, 거스름돈을 잘못 받아왔다. 그래서 엄마는 나를 끌고 집 앞 슈퍼에 쳐들어갔다. 분명 거스름돈이 얼마여야 하는데, 왜 이것밖에 없냐고 따져 물었던 것 같다. 슈퍼 아저씨와 실랑이하던 엄마는 어쨌거나 자신이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했고, 올라오는 길에 단둘이 탄 엘리베이터에서 나는 엄마의 곱지 않은 시선과 그것도 하나 못하냐는 타박을 들으며 숨 막히는 분위기에 압도되었던 기억이 있다. 그 후로 나는 슈퍼 앞을 지날 때마다 슈퍼 아저씨의 눈치를 보며 눈에 띄지 않으려 노력했었다.


사실 기억이란 게 참 희한해서 내 안에 이미지처럼 저장되어 있다. 첫 번째 일화에서는 콜라를 입대고 마시다 엄마가 들어왔던 기억, 두 번째 일화에서는 도망갈 곳 없는 엘리베이터에서 엄마의 화를 그대로 받으며 잠식당했던 기억. 이 두 가지만이 이미지 형태로 저장되어 있을 뿐 다른 부수적인 기억들은 내 편의에 의해 조작되었을 수도 있다.


어쨌든 내 마음 한 구석에 저장되어 있던 그 이미지들이 수면 위로 떠오르며 나는 마치 깨달음을 얻은 도인이 된 것처럼 무릎을 탁 쳤다.


10대, 20대 시절 내 안을 괴롭히던 낮은 자존감에 대한 고민, 다른 사람에게 쉽게 상처 받는 약한 마음, 친해질수록 별로인 사람이 아닐까 하는 내 존재에 대한 회의감까지. 나를 괴롭혔던 그 수많은 번민들의 원인은 그게 아니었을까 생각했다.


엄마에게 나는 감정의 쓰레기통 같은 느낌이었다. 엄마의 화는 일관성이 없었고, 몹시 감정적이라 얼마나 화를 낼지 알 수 없었다. 엄마 자신의 그때그때 감정 따라 나에게 표출하다 보니 나는 언제 어느 때 엄마가 화내는지 알 수 없었고, 불안했다.


그 불안은 나를 자신감 없는 사람으로 만들었고, 또래 관계가 중요했던 청소년기에 나는 관계에서의 죄책감을 느꼈다. 푸근한 인상 덕에 처음에는 털털하고 성격 좋아 보여서 잘 지내다가 친해지면 이기적이고 싸우게 되는 나를 보며 나는 이중적인 사람인 걸까 하는 죄책감 때문에 힘들어했다. 가장 가까운 엄마라는 존재에게 인정받지 못했기에 나는 늘 나쁜 아이가 아닐까? 별로인 아이가 아닐까? 하는 꼬리표를 스스로 채우고 다녔는지도 모른다.


지금 생각하면 표면적인 관계에서 벗어나 진심을 나눠야 하는 관계가 되면 으레 감정싸움이나 의견 다툼이 일어날 수밖에 없는 법인데, 그때의 나는 내가 성격이 이상해서 그런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꽤 자주, 오래 했었던 것 같다.




그래서 나는 일종의 애정결핍처럼, 성인이 되어서도 애정을 확인하게 되는 버릇이 있었는데, 분명 나를 좋아해서 나와 만나고 친하게 지내는 친구, 후배, 남자 친구에게 나 안 좋아하는 거 아니야? 이런 의심을 하며 노심초사하는 날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다 조금이라도 삐끗하면 그들과 싸우고 서운함을 표현하고, 너무 여럿을 피곤하게 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그때 나는 나 자신에 대한 문제에서 조차 해답을 찾지 못하고 있었다. 마치 정답지가 없고 문제만 있는 것처럼 풀어도 풀어도 찜찜함이 남아 있는, 그런 갑갑함을 늘 지니고 살았던 것 같다.


대학교에 가서도 나는 딱히 꿈이 없었고, 눈앞에 일을 제쳐두고 놀기 바빴고, 공부도 왜 해야 하는지 모르고 그저 등록금을 내니까, 쪽팔리기 싫으니까 라고만 생각하며 하루하루를 그저 목적 없이 살았다.



결핍이란 걸 깨달은 이날, 나는 비로소 왜 그런 행동들을 했는지 깨달았다. 자기감정 따라 화를 내는 엄마에게 나는 어떤 소리를 들을지 알 수 없어서 내 속마음을 솔직하게 말할 수가 없었고, 고등학교 친구들을 만나기 전까지 나는 꽤나 외로웠다고 생각했다. 가장 가까운 엄마에게서 인정받지 못한 나는 목적도 없이 그저 하루하루를 살아내기 바빴고, 내가 누구인지, 무얼 하고 싶은지, 그런 걸 고민할 수 조차 없었다. 하위의 목적이 채워지지 않으면 상위의 목적은 생각조차 할 수 없다.


내 마음 안 깊은 곳이 채워지지 않으니 계속 겉돌고, 내 존재가치에 대한 고민을 깊게 할 수 없었다. 마음 텅 빈 곳이 너무 허전해서, 너무 공허해서. 그걸 채우기에만 급급했다.


그래서 나는 10대에는 친구에게, 20대에는 연인에게, 30대 초반 아이를 낳기 전까진 남편을 의지하며 살았다. 다분히 의존적인 삶을 살았던 것이다. 왜 내가 그렇게 살 수밖에 없었는지 나는 내 안의 결핍을 생각하며 비로소 깨닫게 된 것이었다. 첫 아이를 낳고 죽을 만큼 힘들 때 나는 왜 엄마를 그렇게나 원망했었는지, 지금도 왜 나는 엄마가 불편하고 힘든지 그 모든 이유가 설명되었다.


운동을 하다 말고 나는 멈춰 서서 한참을 서 있었다. 이 불편한 깨달음이 달갑지 않기도 했고, 무섭기도 했으며, 개운하기도 했다. 복잡한 심경으로 한동안 나는 움직이지 못했다.


무거운 몸과 마음을 이끌고 집에 들어와 씻었다. 운동하고 난 후 샤워는 세상 부러울 것 없이 개운한 법인데 그날은 그렇지 못했다. 나는 식탁에 앉아 주말이라 TV를 보고 있던 남편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자기는 어릴 때 어머님한테 혼난 기억 있어?"


남편도 나처럼 불행한 가정에서 성장했지만 마음이 단단하고 한결같으며 자신의 단점도 쉽게 인정하는 게 부럽고 좋은 점이라 생각했다. 부모님이 자주 다투고, 불안한 가정에서 성장했는데 나와는 왜 차이점이 있는 것일까 그게 문득 궁금해졌다.


"뭐 잘못했으면 혼났겠지. 당연히"

"그런 거 말고, 자기가 지금도 기억하는 심하게 혼난 기억 말이야."

"글쎄. 난 어릴 때 속 안 썩이고 착했어서 그런 적은 없는 거 같은데."


나는 사실 남편이 내 질문에 대해 심드렁하게 첫 번째로 답했을 때부터 없을 거라 생각을 했다. 그런 기억이 있다면 분명 잊었을 리 없었을 테니 말이다.


내가 남편에게 이런 걸 물은 이유는 또 있었다. 내가 시집와서 지켜본 어머님은 지낼수록 훌륭하시구나 하는 생각이 드는 분이시다. 나의 시어머님은 헌신적인 사랑 + 생각이 깨어있는 분이시라 자식들에게도 존경을 받고 칠순이 훌쩍 넘은 나이에도 아직 일을 놓지 않고 있으신다.


속 썩이는 남편 대신 세 아이를 다 빚 한번 지지 않고 대학 졸업까지 키워냈고, 막 살갑고 다정스럽진 않아도 늘 정도를 지키며 따뜻하게 품어주실 분이었을 거란 예상했으므로 답을 알면서도 남편에게 물었던 것이다.


애정에 대한 결핍, 애정 한 대한 불확신 감이 나를 불안하게 만들었고, 같은 불행한 가정에서 태어났지만 불안한 나와 안정된 남편의 차이는 거기서 오는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달칵.

그런 생각에 빠져 있을 때 첫째 아이가 막 잠에서 깨서 방 문을 열고 나왔다.


7살이 된 아이는 요새 부쩍 나의 애정을 시험하고 있다. 동생이 커가면서 자기의 자리를 위협해서인지, 애교 많은 둘째가 주목받는 일이 많아져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쨌거나 일부러 나를 시험하는 행동을 할 때가 많다. 떼를 쓰고 일부러 느리게 하고, 일부러 다른 말을 한다.


7년을 키워도 늘 어렵고, 힘든 첫째 아이.

아이도 혹시 옛날의 나처럼 애정에 대한 불확신 감에 휘둘려 그 결핍을 채우기에 급급한 상태가 아닐까? 나는 생각이 거기에 미치자 내 결핍을 깨달았을 때보다 더 괴로운 마음이 들며 사고 회로가 정지되었다. 아니, 나 스스로 정지했다고 보는 것이 맞을 듯하다. 그런 두려운 마음이 내 한편에 피어나자 나는 결핍에 대한 주제를 생각하기를 포기해버렸다. 나는 바로 일어나 설거지를 시작했고, 바쁘게 몸을 움직이며 그 주제를 떨쳐버렸다.


그렇게 명절이 지나고 평일이 시작될 때까지도 나는 그 주제를 한없이 회피해버렸다.


그렇게 속절없이 시간이 지나던 어느 날 밤,

나는 꿈을 꾸었다.


거꾸로인 듯 거꾸로가 아닌, 반영. 나무와 그 나무를 그대로 투영하여 담고 있는 물은 닮은 듯 닮지 않았다.


- 결핍 2로 넘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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