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완전한 인간

이혼가정에서 자란 내가 이혼하지 않고 행복하게 사는 법.

by 꽃구름

아이가 요즘 새로운 유치원에 적응하느라 힘든지, 거기서는 걱정과 달리 그렇게도 잘한다는 데 엄마 앞에서는 어릴 때나 하던 버릇이 나온다.


몇 시간이고 울며 떼쓰기.

엄마한테는 잘도 악을 쓰며 버티면서 아빠는 무서운지 꼬리 내리는 첫째 딸. 그걸 보고 관찰하니 나에게는 별별 트집을 다 잡아 자신의 의견을 피력한다. 화장실 가고 싶은 것, 씻는 것, 평소에 잘하던 것들을 일부러 못하겠다며 떼를 쓰고 나의 '허용'을 기다린다.

이제 내년에 학교도 가야 하는데, 언제까지고 이럴지 나는 며칠 전부터 받아주지 않기로 했다.


아래께도 약속한 시간 내 끝내기로 한 게임 때문에 한바탕 난리를 치다 아빠의 호통에 꼬리 내리더니, 오늘 제대로 터져버렸다.


새로 만든 남편의 체크카드를 생활비 사용 때문에 받았는데, 어제 정신없이 장보고 돌아온 뒤에 영수증은 얼핏 휴지통에 버린 기억이 있는데, 카드는 챙겨놨다 생각했던 장소에 없자 갑자기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카드가 어디 갔더라. 결국 못 찾고 둘째를 데리고 태권도 다녀온 첫째 마중을 가느라 마음 한 편 걱정과 불안한 마음으로 나왔다.


아이를 받고 어제도 마트 갔다 놀이터 가자 떼쓰는 아이 때문에 시간을 꽤나 잡아먹은걸 생각하며 빨리 아이를 보채 집으로 와서 카드를 찾기 시작했다. 나는 카드와 함께 있던 가장 큰 단서인 영수증을 찾기 위해 쓰레기통을 뒤졌다.


그게 화근이었다.

투명 비닐에 들어있던 쓰레기를 뒤 적하는 나를 따라 보다 첫째는 자기가 어린이집 다닐 때 만들어온 만들기 한 것이 쓰레기통에 박혀있는 것을 보았다.


"엄마, 이거 뭐야?"


낌새가 좋지 않아 얼버무렸지만 아이는 집요했다. 결국 그게 어린이집 제주도 여행 콘셉트 할 때의 자기가 만든 여권이란 걸 알았다. 쓰레기통 안 지저분한 국물이 묻어 A4에 뽑은 여권 모양의 잉크가 다 번져있었다. 아이는 그걸 빌미로 떼를 쓰기 시작했다. 그걸 집요하게 물을 때부터 이럴 거라 예상은 했다. 그런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으므로. 그래서 나는 아이와 분리수거를 함께 하지 않는다.


하지만 나도 억울한 것이 그 여권은 식탁에 무려 2주 넘게 방치 중이었다. 뭐든 잘 못 버리고 정리가 안 되는 나였는데 어제 문득 식탁을 정리하자 싶어 깨끗이 정리하고 치우느라 버렸다. 그것도 남편, 아이 다 자고 귀중하고 소중한 나만의 시간에! 내 시간을 버려가며 그걸 몰래 치운 건데, 마치 나쁜 짓을 해 어른에게 들킨 아이처럼 아이 눈치가 보여 긴장이 됐다. 그런 기분이 싫었다. 아이이면서, 내 인생 많은 부분 포기해가며 돌보고 나는 너를 위하고 있는데, 너를 위해 하고 싶은 많은 것 들을 잃어가고 있는데 그게 그 순간, 좀 많이 억울했다.


"엄마가 이거 2주 넘게 널브러져 있어서 버린 거거든. 그렇게 그게 소중하면 잘 챙겨놨어야지."


아이는 이 말에 방아쇠를 당긴 듯 폭발하기 시작했다. 방바닥을 구르고 소리를 질러댔고 나는 무시했다. 그걸 듣는 둘째 아이도 울음을 터트리기 시작했고 나는 아무렇지 않은 척했지만 부글부글 냄비처럼 서서히 속이 끓어갔다.


아이는 그렇게 내 인내심을 시험했고, 나는 아이를 내쫓아내려 완력을 사용했다. 그러자 놀란 둘째 아이는 내 다리를 잡으며 마치 언니 내보내지 마 라고 말하는 듯 엉겨 붙었다. 아니, 엄마의 화난 모습을 보고 소스라치게 놀랐는지도 모른다.


나는 네가 안 나가면 내가 나가겠다며 나섰다가 1분 만에 돌아왔다. 아이들에게 특히 영문을 모르는 둘째 아이에게 버려진다는 느낌이 들게 해선 안된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나는 진이 다 빠져 앉았고, 아이는 힘 빠진 내 모습을 보고 쏘아붙이는 내 말에도 그게 허용이라 느꼈는지 혼자 기분을 회복했다.


하지만, 난 아니었다.

내 기분은 한없이 나락으로 떨어졌다. 몇 년 전 첫 아이를 키우며 느꼈던 좌절감들이 밀려왔고, 나는 하나도 나아진 것이 없는 것이 아닌가? 삶의 회의감마저 몰려왔다.

이렇게 힘든데 왜 나는 아이를 낳아 키우려고 했던 걸까?

몇 년을 노력해도 결국 제자리인데 나는 왜 그렇게 나아지자며 버둥거렸던 걸까?

내 존재의 이유라 믿었던 아이와의 마찰은 내 인생에 자조 섞인 공허함을 주었다.

나는 왜 살고 있나? 대체 왜 이렇게 힘들게 살아야 하는 걸까?


오늘 독서모임 책인 코스모스 2주 차를 하며 칼 세이건이 우리에게 방대한 우주의 지식을 알려주며 우리는 광활한 우주의 티끌 같은 존재이니 너무 아등바등 살지 않아도 된다는 위로를 주는 것 같다는 말을 했었는데, 나는 이 얼마나 티끌만 한 존재로 여기서 괴로워하고 있는 것일까?

살아야 할 이유란 뭘까?

갑자기 그런 고민에 빠졌다.

급한 불길이 진화되고 이미 몇 차례 전화로 사태를 파악한 남편이 오자마자 나는 바깥공기를 쐬러 나왔다. 지금 현재 여기. 나는 날것의 기억들을 기록하며 방향을 찾아보려 애쓰고 있다.


그래. 익히 알고 있듯 나는 완벽하지 못한 인간이다. 아니, 결코 완벽할 수 없는 인간인 것 같다. 제대로 품어주지 못한 아이에게, 시끄러운 가정을 만드는 날 바라볼 남편에게도 미안해졌다. 나는 완벽까지는 꿈도 안 꿔도 그저 다른 사람들처럼 평범하게 평온하게 살면 좋겠다.

나 외에는 다 분쟁 없이, 화합하며 잘 사는 것 같은 기분은 마냥 기분만 그런 건 아닌 것 같다.


나라는 인간. 나는 이제 어떻게 살아야 하는 걸까?

발버둥 쳐도 계속 빠지는 늪에서는 가만히 있는 게 덜 가라앉는 방법이라 들은 적 있다.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저 시간을 흘러 보내는 것만이 답인 것인가?

또 피곤하게도 그리는 살기 싫은 인간이 나란 인간이다.

참.. 답이 없다.


나는 좀 더 고심해봐야겠다.

나라는 사람에 대해 더 몰두해봐야겠다.

선천적인 불행을 이겨내고 매 순간 내가 만족하고 행복할 수 있는 건가에 대해 연구해봐야겠다.

칼 세이건처럼 위대한 연구자는 아니라도 적어도 나 스스로에 있어서는 그처럼 방대한 사전 지식을 가지고 따끈한 위로 한마디를 건네야 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나는 좀 더 방법을 강구해볼 생각이다.


일단 오늘의 힘들었던 나는 다 털어내고 들어가야겠다.

자격증 공부에 운동하느라 시간이 부족한데도 저녁 운동도 미루고 달려와준 남편을 위해서라도.

나는 정신 차리고 들어가야겠다.


불완전한 인간이 불완전한 행복을 어찌 극복할지

좀 더 지켜봐 주길.

바랄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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