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에서 나는 온몸을 덮은 손바닥 크기만 한 물집에 놀라 벌떡 이불을 박차고 일어났는데, 내 옆에 있던 첫째 딸아이의 옷을 확 들춰보니 똑같은 모양의 물집이 온몸을 뒤덮고 있었다. 나는 당장 병원에 가야겠다며 조급한 마음으로 일어났고 그때 꿈에서 깨어났다.
일어나서 나는 너무 찝찝한 기분에 내 몸과 자고 있는 첫째 아이의 몸을 살폈다. 깨끗했다.
너무 생생한 그 꿈을 꾸곤 나는 말없이 앉아 생각에 잠겼다.
나는 사실 알고 있었다.
내가 엄마에게 받았던 것처럼 딸아이에게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내 안의 결핍을 깨달았던 것도 벅차서 내 딸아이에게도 내가 그렇게 대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모른 척했다. 생각하기에 버거워서, 너무 버거워서 말이다. 그런 무의식이 꿈으로 튀어나왔다. 아이와 나는 똑 닮은 흉측한 물집을 가진 채였다.
첫째 아이를 낳았을 때 나는 몹시 힘들어했었다.
돌도 안된 아기에게 밥을 잘 먹지 않는다며 화내고, 놀이터에서 더 놀고 싶다며 떼쓰는 아이를 복도에 세워둔 채 울게 놔두고, 공갈 젖꼭지를 떼고 힘들어하는 아이에게 밤마다 왜 안 자냐고 소리 지르고.
나는 아이를 키우며 나라는 사람에 대한 밑바닥을 보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는 온전히 나를 의지할 수밖에 없는 연약한 존재였고, 내가 없이는 살 수 없는 존재였다. 그게 버거우면서도 가슴 아파서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 나는 독서모임을 시작했고, 글쓰기를 시작했고, 나의 꿈을 찾기 시작했고, 어떤 사람이 될까, 내 존재가치는 무엇일까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다.
아이를 낳고서야 비로소 나는 나라는 존재에 대해 깊이 인식하기 시작했다. 아이를 지키려는 몸부림이 나를 깨닫게 했다.
그때는 화내고 돌아서서 후회하고 자괴감에 빠지는 것이 너무나 고통스러워서 벼랑 끝에 몰린 심정으로 활동을 하며 나를 바꾸려 노력했었다. 바꾸지 않으면 나는 괴물이 되고, 불쌍한 아이를 만들게 되고, 이혼가정에서 자란 내가 겪은 그 모든 서글펐던 경험들을 그대로 유산처럼 물려주게 되게 생겼기에 나는 절박한 심정으로 노력했다.
지금도 난 여전히 많이 부족한 엄마고 종종 화나는 엄마지만 그래도 처음 그때에 비해 많이 달라졌다는 걸 스스로 안다. 아이를 좀 더 이해해보려 노력하고, 아이들에게 더 멋지고 좋은 엄마가 되기 위해 나 자신을 올바로 일으켜 세우려 노력하고 있다. 그렇게 몇 년 노력했고 지금 나는 꽤나 주도적으로 바뀌어 가고 있으며, 행복하고 당당한 삶의 궤도에 이제 막 안착한 느낌이다.
하지만 내가 성장할 동안 아이가 성장을 멈추고 기다려줄 수 있는 건 아니었다. 그때와는 많이 달라졌지만 아이가 어릴 때 나는 내 감정을 컨트롤하지 못해 아이에게 그대로 쏟아냈고, 요즘도 노력하지만 한계를 느낄 때 불쑥불쑥 나오곤 한다. 나는 아직도 여전히 부족하고 감정적인 엄마다.
연약하기만 하던 아이는 이제 7살이 되었고, 내가 하는 것처럼 짜증을 내고 종종 불안해하는 아이를 보면서 어린 시절의 나와 아이를 동일시하게 되었다. 내가 엄마의 감정 쓰레기통이 되어 불안감을 느낀 것처럼 내 아이도 내가 화낼까 봐 조바심 내고 있고, 사랑을 확인하기 위해 떼를 쓴다는 생각에 다다르자 나는 그런 꿈을 꾼 것이었다.회피하려 해도 그 생각은 내 무의식을 잠식했다.
나는 내가 회피했던 생각을 다시금 마주하곤 내 아이가 컸을 때를 상상했다. 지금의 나처럼 엄마를 불편해하고 어려워해서 만나는 걸 꺼려한다면? 만나도 마지못해 만날 뿐 마음에서 진정으로 엄마와 감정 교류하는 걸 두려워한다면?
지금 내 옆에서 쌕쌕 거리며 자고, 힘들 땐 꼭 엄마를 찾는 아이와 대비되는 그때의 모습을 상상하자 너무 끔찍했다. 내가 아이를 사랑하는 만큼 아이가 알지 못한다면? 이렇게 열과 성을 다해 키운다는 걸 티끌만큼도 모르고 아픈 기억만 가지고 살아간다면? 나는 얼마나 허무하고 속상할지 상상하기조차 싫었다.
나의 엄마도 나를 분명 사랑했을 것이다. 감정적으로 토해내고, 자식을 보듬어주지 못하는 엄마였지만 엄마는 나를 진정 사랑했을 거다. 아니 지금도 많이 사랑한다는 걸 안다. 그러니 내 두 딸들을 그렇게 예뻐하며 보고 싶어 하는 것일 거다. 당신의 딸이 낳은 딸들을 보며 그때를 추억하고 그리워하는 것이겠지. 나는 안다.
시대적 상황도 한몫을 했을 테지.
학교도 많이 다니지 못해 맞벌이를 해도 생활은 어려웠고, 고지식한 경상도 남자였던 남편과는 대화도 거의 하지 않았고, 아이들은 크는데 제대로 해주는 게 없어 괴로워도 했을 테지. 그 속에서 엄마 나름의 방법으로 나를 키워냈을 거라는 걸 모르지 않는다.
최근 미스 트롯 2에 빠진 남편과 첫째 아이 때문에 나도 거기 나오는 노래를 종종 듣게 되는데, [살다 보면 ]이라는 노래에 이런 가사가 나온다.
눈을 감고 바람을 느껴봐. 엄마가 쓰다듬던 손길이야.
복잡한 심경인 채 나는 이 노래를 듣다 눈물을 쏟았다.
그래. 엄마도 어린 나를 따뜻하게 쓰다듬으며 행복의 미소를 지은 적이 있었을 것이다. 삶의 팍팍함에, 혼자 할 수 있는 게 많아지는 아이의 손을 더 이상 붙잡아주지 않아도 되었을 때조차 엄마는 여유 있게 자신을 돌아보지 못한 것은 아니었을까. 그런 생각을 했다.
나는 이제 엄마가 되었다.
이젠 과거 보단 현재를 살아내는 것이 더 중요한 위치다.
내 아이는 이렇게 돌아오는 길 말고, 지름길을. 터덜터덜 힘 빠진 발걸음으로 깨닫는 것보다, 온전하고 건강한 걸음으로 올 수 있길 바라는 건 모든 엄마의 맘일 것이다.
물론 나는 이것들을 깨달으며 새로운 인생을 살고 있다 할 정도로 힘 있게 나아가고 있다. 삶이 그 어느 때보다 만족스럽고, 미래를 꿈꾸며, 꿈은 원대하다. 인생이란 게 원래 이렇게 결핍된 채로 깨닫고 깨지고, 또 일어서고 그런 것이란 생각이 들지만, 내 아이는 자신 스스로를 의심하지 않고 애정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당당히 세상을 살길 바라는 마음. 엄마는 그런 것인가 보다.
나는 내 아이를 위해 더 노력할 것이다. 불안한 엄마를 닮지 않도록. 내 아이가 나에게 힘든 것조차 이야기하지 못하고, 혼자 끙끙대며 울지 않도록, 나를 더할 나위 없는 온전한 자신의 편으로 느끼도록 하기 위해.
함께 물집 상처에 연고를 바르고, 붕대를 감아 치료해서 깨끗하고 뽀얗게만들 것이다. 마치 아팠던 적이 없던 것처럼 서로를 치유하는 게 내 가장 큰 목표가 되었다.
내 결핍을 마주하며 나는 이제야 내 상처를 마주 보았다. 그것만으로도 나는 한 발짝 나아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