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은 더 나은 사람이 되기-다시 시작.

이혼가정에서 자란 내가 이혼하지 않고 행복하게 사는 법.

by 꽃구름

지난 2주 정도, 나는 괴로움에 몸부림치며 지냈다.

아이와의 마찰은 지난주 최고 정점을 찍고서야 하락세로 접어들었다. 끝도 없이 이어질 것 같은 아이와의 대립, 마찰의 답은 결국 사랑이었고, 애정을 갈구하는 한 아이와 어른 인척 하며 아이 같았던 엄마인 내가 있었다.

아이는 확인받고 싶어 했고, 나는 내어줄 수 없었던 애정. 그 사이에 나는 지난번에도 말했다시피 몇 년을 노력한 게 모두 물거품이 된 듯한 자괴감에 괴로워했고, 한 발짝도 나아지지 않았음에 힘겨워했고, 그건 내 존재론적 질문까지 하게 만들었다. 나라는 인간은 왜 살아야 하나?라는 질문까지 말이다.


그런 자괴감은 나를 무기력하게 만들기도 했다. 어차피 안되면 왜 노력해야 할까? 육아에서 나는 무기력해졌고, 포기하고 싶어 지기도 했고, 그저 내가 하고 싶은 것만 하고 살면 좋겠다 싶은 순간도 많았다. 왜 나는 여기서 이렇게 괴로워하며 살고 있는가? 홀연히 떠나버리고 싶은 충동마저 일었다.


하지만 당연하게도 그럴 수 없었다. 나는 아이를 사랑한다. 목숨 바쳐 사랑하고 있다. 그게 도망갈 수 없는 이유다.


그래서 고민하다 마침 내가 존경하고 좋아하는 오은영 선생님이 나오는 프로그램인 금쪽같은 내 새끼를 보았다. 내 아이와 엇비슷한 아이의 이야기가 나왔고, 무기력함에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마음에 주말에 식탁에 앉아 그걸 보기 시작했다. 아이도, 엄마의 상황도 꼭 같다고 할 수 없지만 어쨌거나 비슷한 부분이 많았다.


어린이집에서는 에이스인 아이가 왜 집에서는 떼쟁이일까? 떼를 써서 다 된다고 생각하는 아이라면 제약이 훨씬 많은 어린이집에서 더 떼를 써야 정상인 것이 아닐까?

역시 오은영 선생님은 나를 깨우쳐주신다.


그 방송을 참고하며 나는 아이에게 필요한 것이 인정이고 사랑이라는 것을 알았고, 나를 시험하는 듯한 떼쓰기의 끝에 늘 눈을 부라리며 화나는 엄마의 눈빛이 아닌 그래도 참고 너를 사랑한다 말해주는 엄마를 바라 왔던 것이란 걸 알았다.


그걸 깨달으니 아이가 원하는 게 뭔지 알 것 같았다. 그래서 며칠간 아이의 도발에도 참고 견디며 애정을 주도록 노력했고, 도저히 안 되겠을 때에는 아이에게 내가 느끼는 감정에 대해 설명했다. 솔직하게. 엄마로의 권위 따위 개나 줘버리고, 그저 내가 느끼는 대로 이러이러해서 엄마 감정이 이래. 그래서 너한테 그렇게 말하는 거지 널 안 사랑해서가 절대 아니야. 나는 솔직하게 터놓고 말해주었다.

그러기를 며칠. 그래도 많이 좋아지고 있는 중이다. 아직 모든 걸 다 극복하고 잘 지내요. 하고 말할 수는 없지만 어쨌거나 폭풍우는 조금 비껴가고 있다고 생각해도 좋을 것 같다.


이번 일을 겪으며 나는 많은 생각을 했다.

아이에게 나는 어떤 엄마로 비칠까? 그런 생각을 하면 무서웠다.

한창 부딪힐 때를 생각하면 아이는 나를 자기 마음도 몰라주고 화내고 분노하는 엄마라고 기억하겠지. 사실 난 이곳에도 솔직히 적지 못한다. 내가 얼마나 아이에게 모질게 대했는지, 다른 사람들에게 욕먹을까 봐 대놓고 솔직하게 말하지도 못할 만큼 나는 아이에게 감정조절을 못했었다.

그래 놓고선 아이에게 어떤 엄마로 보일까 걱정이라니 참으로 뻔뻔하기 그지없다 스스로도 생각한다. 그러면서 이제 기억할 거 다 할 나이인 7살인 아이가 지금의 기억으로 성인 되어서도 나를 원망하면 어쩌나 , 많은 책에서 어릴 때 인성이 다 발달한다는 데 되돌리기엔 너무 늦은 것이 아닐까 생각하며 포기해버리고 싶은 마음이 들었지만 그 조차도 열심히 다잡아야 한다는 걸 안다. 이렇게 포기하기엔 함께 살아나가야할 날이 훨씬 많으니 말이다.


어쨌거나 지금 필요한 건 나 자신을 좀 더 잘 탐색해야 한다는 걸 알았다. 이걸 극복하기 위해서는


나는 어떤 사람인가? 나는 아이의 어떤 면에 분노하는가?


에 대해 상세하게 알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나는 아이에게 어떻게 기억되길 원하는가? 아이에게 나는 너를 충분히 사랑한다고 남길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고민해 보고 있다.


그리고 몇 년간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제자리걸음인 느낌이라면 어쩌면 방법이 잘못된 것이 아니겠는가? 좀 더 효율적이고 확실한 방법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내 아이와 나의 인생을 바꿀 수 있는 획기적인 방법이 뭐가 있을까?


찾아보고 있다.


내가 아이를 키우며 불완전한 나를 처음 발견했을 때 나는 좌우명을 만들었었다.


[ 오늘보다 내일 더 나은 사람이 되기. ]


나의 불행을 대물림하지 않기 위해 나는 그래야만 했다. 다시 또 큰 폭풍을 견디고 있는 나의 결론은 그때와 같다.

내가 변해야 나의 아이에게도 이런 상처, 빙 돌아 멀 리오는 길 말고 지름길을 아니 지름길이 아니라도 스스로가 단단한 뿌리가 되는 방법을 알려줄 수 있다는 걸 안다. 나는 그 좌우명을 지키기 위해 새로운 방법으로 다시 일어서려 한다.


이번 주,

내 메모장에 적힌 순간적으로 떠오르는 글감들은 참 많았다. 요즘 관심을 많이 가지고 있는 환경 문제라던가, 배달앱 갑질 의혹에 대한 생각, 책 코스모스를 보고 인간 본연의 존재 이유에 대한 철학적 고찰 등 쓰고 싶은 소재는 많았으나 사실 내 반성이자 성찰, 목표점에 대해 쓰지 않고는 그것들을 쓸 수가 없었다.


일단 나 자신,

나를 먼저 돌아봐야 한다는 걸 알았기에 이걸 쓰기 전까진 한 자도 써지지가 않았다.


다시 시작.

나는 이번엔 확실하게 좋은 방법을 가지고 변화할 것이다.

더 나은 사람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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