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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구름 Jun 17. 2022

둥지를 떠나 날아오르다.
-내 아이의 첫 공개수업.


올해 첫째 아이가 학교에 입학했고, 지난주에 아이의 첫 공개 수업이 있는 날이었다.


작년까지만 해도 코로나가 심하고 온라인, 오프라ㅁ인 수업이 병행되는 혼란스러운 상황 때문에 공개수업이 진행되지 않았다고 들었는데, 다행히 올해는 코로나로 인한 방역수칙이 많이 완화되었고 집합 금지가 다 해지됨에 따라 공개수업을 진행할 수 있었다.


학교 가기 전날 괜히 떨렸다.

이럴 줄 알았으면 살 좀 열심히 뺄걸. 아이 둘을 낳고 퍼질 데로 퍼진 몸매가 혹여나 아이들에게 놀림이 되지 않을까 괜한 걱정이 되었다.

“엄마가 내일 너희 학교 가면 좋을 것 같아?”

나는 아이를 붙잡고 물었다. 아이는 당연하다는 듯이.

“응. 완전 좋을 것 같아.”

계산 하나 없이 투명한 마음에 나는 미소 지었다. 그래 그게 중요한 게 아닌 건 너도 알고, 나도 아니까. 그런 생각 하지 말자.

나는 다짐했고, 괜한 걱정들을 털어버렸다.


드디어 공개수업 당일 날.

아이는 학교에 가고 둘째를 등원시킨 후 집에 있는데 전화가 왔다. 아이와 친하게 지내는 친구의 엄마였다. 남자아이지만 우리 딸과 가장 친한 친구고 어린이집도 같이 다니고, 같은 반에 방과 후도 함께 다니는 아이의 엄마였고, 엄마들끼리도 낮에 자주 밥을 먹는 사이였다.

“같이 점심 먹고 학교 올라가자. 우리 집 온나.”

언니의 초대에 나는 씻고 준비하고 가겠다고 했다. 둘째 아이 등원은 대충 입고 나갔지만 학교에 그 꼴로 갈 순 없었으니까.

나는 부랴부랴 씻고, 원피스를 꺼내 입었다. 파우치를 꺼내 몇 달 전 결혼식 다녀온 후에 한 번도 그리지 않은 눈썹까지, 그리고 팩트를 대충 찍어 발랐다. 어차피 마스크 밑은 안 보일 테니 대충 바르고 눈 쪽만 신경 써서 후다닥 바르고는 그 언니의 집으로 갔다. 도착하니 2학년 아이를 둔 친한 다른 언니는 먼저 와 있었다.


우리는 밥을 주문해 놓고 괜히 긴장된다는 똑같은 심정을 공유하며 이야기 꽃을 피웠다.

내가 가져간 파우치를 보고 언니들은 “그래도 파우치가 있긴 하네.” 하며 감탄했다.

다들 아이 키우느라 치장을 할 필요도 할 시간도 없으니까. 이 날이 특별한 날이란 건 우리 상태만 봐도 알 수 있었다.

밥을 먹으면서 공개 수업은 어떨까 궁금해했다. 그도 그럴 것이 다 처음 참석해보는 것이었으니까. 2학년 딸을 둔 언니 역시 작년에 안 해봐서 올해 처음 가는 것이라고 했다. 어떤 식으로 진행될지, 끝나면 바로 집에 가는 건지 궁금증은 많아도 답해줄 수 있는 사람이 없었다.


엄마 된 지 벌써 8년, 9년인데 늘 처음 해보는 것 투성이라니.

4대 보험 되는 사업장에서 일하면 경력이라도 쌓이니 처음 접하는 생소한 것들은 극히 드물 텐데, 육아는 이래서 참 어렵다. 경력이 쌓여도 늘 처음인 순간들이 많다.

아이에게도 부모에게도. 부모도 처음이고 낯설고 혼란스러운데 부모로서, 인생의 선배로서 아이의 감정을 보듬으며 감싸주기까지 해야 하니 어렵다. 그렇다고 아이한테 엄마도 처음 하는 거라 모르거든! 하면서 나 몰라라 할 수도 없고.

예전에는 할머니, 할아버지, 이웃들과 함께 그 역할들을 조금이나마 나눌 수 있었지만 지금은 워낙 가족 수가 적어서 아빠 엄마가 모두 해주어야 하다 보니 육아는 더욱 힘들고 버겁게 느껴지는 게 아닐까 싶다.


어쨌든 우리는 식사 후 늦지 않게 학교를 향해 걸어갔다. 학교를 향해 가는 엄마들은 늦지나 않을까 싶어 종종걸음으로 걸어갔고, 간혹 아빠들의 모습도 보였다. 우리는 앞에 세련되고 화려한 꽃무늬 원피스에 비싸 보이는 가방을 든 엄마를 보며 살짝 기가 죽었다. 나는 언니들을 향해 말했다.

“나도 명품 가방 가져오려다가 말았는데, 가져올걸.”

나는 괜스레 사족을 덧붙였다.


1학년 2반.

우리 아이의 반을 처음으로 확인했고, 그 반의 복도에 우리보다 일찍 온 몇몇 부모들이 서서 교실 안을 쳐다보고 있는 게 보였다.

나는 교실 창문이 열린 곳을 두리번거리다가 첫째가 보이지 않자 뒷문으로 갔다. 뒷문에서도 아이는 잘 보이지 않다가 젤 앞자리 구석, 앞문 바로 앞에 아이가 있는 것을 발견했다.

나는 앞문으로 이동했고, 닫힌 앞문 바로 앞에 우리 아이가 있었다. 문에 나 있는 네모 창이 마치 영화 프레임처럼. 뒷모습이 눈에 확 들어왔다.


아직 엄마가 온 걸 눈치 못 챈 아이의 모습이 귀여우면서도 빨리 알려주고 싶어서 문에 찰싹 붙었지만 완전히 등을 돌리고 있어서인지, 수업에 집중하고 있어서인지 쉽게 알아채지 못했다.

꼿꼿하게 등을 세워 앉아 선생님 이야길 듣는 모습이 어찌나 대견하던지. 배시시 웃음이 났다.

몇 분이 지난 후 아이는 시선을 느껴서인지 뭘 꺼내느라 그랬는지 돌아보다 나를 발견했다. 아이는 마스크 쓴 모습이었지만 함박웃음을 띄며 웃었다. 그 뒤로 아이는 수시로 돌아보았고, 안 돌아보더라도 등에 온 신경을 곤두세우고 좋아서 근질근질한 모습이었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우리 사이에 가로막힌 벽, 아니 문이 갑자기 답답하게 느껴졌다. 안에도 잘 보이고 손 뻗으면 닿을 수 있는 거리지만 그래도 직접, 같은 공기를 마시고 싶어 졌다랄까.


그때 마침, 같이 온 언니가 교실 안으로 들어가자고 제안했고, 우리는 뒷자리 제일 안쪽 구석이 비어있어 들어가 자리를 잡고 앉았다.

아이는 이제 거리는 멀지만 대각선에서 단 번에 시선이 보이는 곳에 있었다. 그리고 같은 공간, 같은 공기 아래 있다는 생각이 들자 더 좋았다. 매일 보는 얼굴인데도 이렇게 반갑다니 내 새끼가 맞긴 맞나 보다. 하하.

아이는 수업을 들으면서도 힐끗힐끗 날 쳐다보았고, 나는 눈이 마주칠 때마다 웃어주었다. 아이는 부끄러워서 몸을 베베 꼬았다.


선생님은 한글에 대한 수업을 진행하시고 계셨는데, (는, 공)처럼 뒤집어도 글자가 되는 한글에 대해 알아보는 수업이었다. 그때 선생님의 실물을 처음 뵈었는데, 마른 체형에 키가 크신, 내 상상과는 좀 달랐지만 말투가 부드럽고 아이들을 대하는 게 따뜻해 보이는 선생님이라 참 마음에 들었다.


나는 우선 학교 뒤편에 전시된 많은 그림 중 우리 아이 것을 찾아보았고, 학교 구조나 분위기도 보았다. 우리 땐 분필 가루 날리는 초록색 칠판에 나무 책, 걸상이었는데 많이 달라진 학교 모습을 보고 세월을 실감할 수 있었다.


그런 것들을 대략 파악하며 다시 수업을 듣고 있는 아이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나는 엄마가 와서 신난 마음을 좀 가라앉히고 수업에 집중해서 듣고 있는 아이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많은 아이들 틈에서 앉아 수업을 듣는 내 아이를 바라보면서 나는 갑자기 코끝이 시큰해졌다.

아, 우리 아이가 벌써 학교 수업을 들을 만큼 컸구나. 이런 마음은 아니었다. 사실 난 아이가 유치원 졸업할 때도, 입학했을 때도 미리 생각한 바로는 감동해서 울 것 같았는데 실제로 참여하니 눈물 한 방울 나오지 않았었다. 그런 거엔 참 무감하구나 싶어 또 몰랐던 나를 발견했다 싶었는데 웬걸. 뜬금없이 공개 수업 중에 눈물이 터지다니.


물론 아이가 잘 자란 게 대견하긴 했지만

그런 마음보다는 무수히 많은 아이들 틈에 있는 내 아이를 보면서 나는 생각했다.

‘저 속에서 얼마나 많이 상처받고, 힘들어하고, 속상해할 일들이 생길까?’

물론 나 역시 학창 시절에 그랬던 것처럼 좋은 추억을 쌓고, 행복하게 웃고, 떠들고, 놀겠지만 분명 그 안에서 내 맘대로 되지 않고, 억울하고, 화가 나는 일이 생길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인생이란 것이 내가 예상한 대로, 내가 기대하는 대로 흘러가는 것이 아니란 걸 알게 된 어른이 된 나는 그런 아이를 보며 애틋하고 안쓰러운 감정이 솟아올랐다.


물론 그 모든 과정이 아이에게는 살아갈 힘이 될 것이란 걸 안다. 하지만 엄마이기에, 성장과정을 오롯이 지켜본 나는 아이의 엄마이기에 본격적인 사회생활을 시작하며 얼마나 부딪히고 힘들어할까를 먼저 생각하며 안쓰러워졌다.


그리고 동시에 이제는 아이가 둥지를 떠나 비상하려 한다는 것. 그 첫 비행이 시작되는 걸 오롯이 지켜볼 때의 그 감격스러움과 울컥함이란.

엄마도 엄마가 처음이라 내가 만든 둥지가 너무나 허접하고 제대로 비바람을 견뎌내기에 견고하지 못했던 것은 아닐지, 둥지를 떠난 아이를 보고서야 걱정이 되었다.


나는 가슴이 찡해서 올라온 눈물을 애써 삼켰다. 이 복잡한 마음을 어찌 설명할 수 있으랴.

엄마가 왔다고 더 눈을 반짝이며 선생님 말씀을 듣는 아이를 위해서 나는 이 악물고 눈물을 삼켰다.


수업이 거의 끝나갈 때쯤, 선생님은 아이들 이름 리스트를 나누어주고 친구 이름 중에서 뒤집어도 글씨가 되는 한글이 있는지 찾는 시간을 가졌다.

“찾은 사람?”

선생님의 질문에 아이들은 대부분 손을 들었고, 내 아이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구석자리라 보이지 않았는지, 호명받지 못했다.

수업 시간이 거의 끝나갈 다시 무렵 선생님이 말했다.

“자, 마지막으로 하나 찾은 사람?”

우리 첫째는 이번에도 손을 들었다. 우물쭈물 자신 없는 듯한 손으로.

“다현이 얘기해볼까?”

아이는 드디어 호명을 받았고 일어나서 대답을 했다.

“맞았어!”

선생님의 말에 아이는 신이 났고, 그 후로부터 아이의 목소리는 커져 있었다.


물론 수업이 이제 거의 끝이 났지만.

어릴 때부터도 워낙 늦게 발동이 걸리는 아이.

그래도 늘 만족스러워하며 후회하지 않는 아이.

그게 우리 아이였다.

나는 내가 잘 아는 아이의 특성을 보자 다시 한번 피식 웃었다.


모든 수업이 끝나고 나는 책가방을 매고 나온 아이를 격하게 안아주었다.

“발표하는 거, 너무 멋있었어!”

아이는 뿌듯해하며 활짝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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