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의 주인이 돼라
"마음이 가는 대로 따라가서는 안 된다. 항상 마음을 잘 다스려서 부드럽고 순하게 가져라. 마음이 하늘도 만들고 사람도 만들고 지옥도 만들고 극락도 만든다. 그러니 마음을 쫓아가지 말고 마음의 주인이 돼라." — 장아람, 《반니원경》 중에서
나는 약물 알레르기가 있어 아무 약이나 복용할 수 없다. 과거 정형외과에서 처방받은 프로펜 제제를 먹고 전신에 두드러기와 함께 온몸이 가려웠고, 얼굴은 풍선처럼 부어올라 응급실 신세를 진 적이 있다. 호흡곤란을 동반한 아나필락시스 증세까지 와서 자칫 위험할 뻔했던 아찔한 순간이었다. 그 후로도 내과에서 처방받은 약에 또다시 알레르기가 발생하면서, 나는 내게 알레르기를 유발하는 약물 리스트를 담은 카드를 만들어 지니고 다녔다.
이 목록을 본 의사들은 종종 "처방해 드릴 수 있는 약이 없네요"라며 난감해했다. 다행히 경증일 때 이비인후과, 내과, 안과, 정형외과 등에서 들은 말이다.
결국 큰마음을 먹고 대학병원에 약물 검사를 받기로 했다. 날짜를 잡아 놓고도 몇 번이나 일정을 뒤로 미루었다. 검사는 반드시 해야 했지만, 혹시나 약물 검사 중에 부작용이 일어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나를 병원으로 이끌지 못했다. 과거 아나필락시스의 경험이 짙은 트라우마로 남아 나를 짓눌렀기 때문이다. 의사 역시 약물 검사 시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고, 반드시 보호자를 동행해야 한다고 강조했는데, 이 말조차 내게는 커다란 공포였다. 심지어 인터넷에서는 나와 같은 체질인 사람이 해당 검사 중 생사를 오갔다는 내용을 읽고 더욱 겁을 먹기도 했다.
그럼에도 검사를 하겠다고 결심한 것은 중증으로 위급한 상황일 때 아무 약이나 복용할 수 없다는 현실 때문이었다. 만일 진통제나 항생제를 먹고 심한 부작용이 나타났을 때의 위험보다, 차라리 아프지 않을 때 응급상황에 대처할 수 있는 여건에서 미리 내게 맞는 약을 찾는 것이 낫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검사 당일, 나는 호흡곤란이나 사망에 대한 위험도 있다는 약물 검사 동의서에 서명했다. 간호사실에 앉아 링거를 맞고 있는데, 간호사는 긴장한 내게 너무 불안해하지 않아도 된다며 안심시켜 주었다. 혹시라도 부작용이 일어나면 즉시 주사를 투여할 수 있도록 링거를 연결했고, 산소 호흡기까지 모두 갖추고 있다고 했다.
검사가 시작되었지만, 그럼에도 긴장과 불안은 떨쳐버릴 수 없었다. 원래 내게 내재되어 있던 불안감이 그런 상황을 마주하니 더욱 날뛰었다.
약물 검사 내내 묵주 기도를 드리며 위험한 상황이 와도 잘 대처할 수 있게 도와달라고 간구했다. 묵주 기도 책을 읽으며 한 문장에서 가만히 묵상을 하기도 했다. 그때 아침에 레지오 단장님이 보내준 성경 구절이 떠올랐다.
"아무것도 걱정하지 마십시오. 어떠한 경우에도 '감사하는 마음으로 기도하고' 간구하며 여러분의 소원을 하느님께 아뢰십시오." — 《필리피서》
걱정하며 기도를 드리기보다, 내 생각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나는 아파서 약물 부작용으로 병원에 온 것이 아니라, 미리 내게 맞는 약을 찾기 위해 왔다는 것이 감사하다. 만일 부작용이 생겨도 응급 조치를 취할 수 있는 환경이 감사하다. 무엇보다 죽고 사는 문제는 우리가 걱정할 일이 아니라 하느님의 섭리, 하느님의 영역이다.' 이 생각을 하자 내가 걱정할 일이 아니었다. 보호자가 절실할 때 기꺼이 회사에 휴가를 내고 함께 와준 남편도 고마웠다. 그때부터 푹신한 소파에서 내 마음도 편안해지면서 약 용량을 늘려가도 전혀 불안하지 않았다. 결과는 부작용 없이 내게 맞는 진통제와 항생제를 찾을 수 있었다.
똑같은 상황에서 내가 마음의 주인이 되어 그 핸들을 잡고 운전하자, 비로소 마음을 다스릴 수 있었다. 물론 실제로 부작용이 일어났다면 극심한 불안함에 휩쓸렸을 것이다. 그러나 이미 내 마음의 핸들을 잡고 있었으니, 다시 의연하게 의사와 하느님께 나를 맡겼을 것이다. 만약 내가 불안하고 걱정되는 마음에 휩쓸렸다면, 멀쩡하던 몸에서 오히려 부작용이 일어났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어떤 부정적인 상황에서 내 마음이 가는 대로 내버려 두면 그 마음에 자신이 휩쓸려버린다. 그렇게 되면 의도하지 않았지만 상황은 더욱 안 좋게 흘러갈 수 있다. 원효대사는 하룻밤 동굴에서 해골물을 마시고 큰 깨달음을 얻었다. 만일 전날 밤에 마셨던 물이 해골바가지에 있던 물이라는 것을 알았더라면 결코 그 물을 마시지 못했을 것이다. 마음 한 자락이 천국도 만들고 지옥도 만든다는 것을 우리는 성현들의 가르침에서 알고 있지만, 현실에서는 잘 안 되는 경우가 많다.
그럼에도 우리는 마음이 가는 대로 쫓아가지 않고, 내 마음의 주인이 되어 스스로 마음을 운전한다면 어떤 상황에서도 긍정으로 가는 길로 접어들 수 있다. 그 길로 가다 보면 차선책의 해법이라도 찾을 수 있다. 인생에서 꼭 최선책만 선택할 수는 없다. 그러나 차선책도 내 마음의 선택에 따라서 최선책이 될 수도 있다.
몸이 아플 때 병원에서 적절한 약 처방을 받을 수 있는 이들은 행복하다. 아픔을 견뎌낼 수 있는 힘이 있는 이들도 행복하다. 지금 아프지 않고 일상생활을 하는 이들도 행복하다. 할 수 있는 일이 있는 이들도 행복하다. 가족들과 서로 사랑하고 자주 만나며, 맛있는 음식을 먹고, 아름다운 곳으로 여행을 할 수 있는 이들은 더욱 행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