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정 속에 즐거움과 강제적인 시스템 그리고 찬스
"진정한 열정은 마음속에서 우러나오는 즐거움이어야 한다." — 도스토옙스키
삶에서 무언가를 이루기 위해 수많은 시도를 했으나, 끝내 완주한 경험은 손에 꼽는다. 기타 연주, 근력 운동, 주 1권의 독서 등 흥미를 느꼈던 일들이 대부분 그러했다. 일상에서 기타를 치며 노래 부르는 즐거움은 있었지만 지속적인 연습으로 이어지지 못했고, 책 읽기를 좋아했지만 꾸준함이 없었다. 그 원인은 명확했다. 열정과 즐거움은 있었으되, 나를 붙잡아줄 '강제적인 시스템'이 부재했기 때문이다. 안 한다고 해서 누가 질책할 사람도 없었고, 반드시 해야만 하는 절박한 상황도 아니었다. 결국 중도 포기를 하거나 '찔끔찔끔' 흉내만 내는 수준에 머물렀다.
이번에 실천 중인 '백일백장 프로젝트'는 현재 92일째 꾸준히 이어지고 있는 나의 기적이다. 이 프로젝트는 출판 기획사에서 작가(작가라 불리면 진짜 작가가 될 수 있다는 믿음으로)가 백일 동안 매일 한 건의 글을 쓸 수 있도록 기획한 일종의 글쓰기 마라톤이다. 새로운 글을 블로그에 쓰고, 그 링크를 카페에 올린 뒤 다시 단체 대화방에 인증하는 시스템이다. 내가 글을 쓰지 못했을 때도 쉼 없이 올라오는 다른 작가들의 글을 보며 '나도 올려야 한다'는 강력한 동기 부여를 받았다. 기획사는 홍보와 카페 활성화 효과를 얻고, 작가는 꾸준히 글을 쓰는 힘을 얻는, 서로 '윈-윈'하는 시스템이었다.
참여자 모집 공고를 보자마자 가슴이 뛰었다. 꾸준히 글쓰기를 해야 한다는 오랜 숙제를 안고 있었던 나에게는 이 강제적인 시스템이 1순위로 필요한 프로젝트였다. 시작할 때부터 매일 새로운 글을 쓰는 일이 힘들 수도 있음을 염두에 두고, 예전에 써두었던 글들을 '찬스'로 활용할 수 있도록 미리 여건을 마련해두었다.
90여 일간 마라톤처럼 달려왔다. 글쓰기는 주로 아침에 했지만, 여의치 않은 날은 오후에, 오후에도 못 한 날은 자정을 앞두고 노트북 앞에 앉았다. 글을 쓰다가도 자주 꾸벅꾸벅 졸기 일쑤였다. 어느 날은 졸다가 손가락이 자판에 놓인 채 잠들어 모음 'ㅏ'나 'ㅣ'가 몇 페이지에 걸쳐 화면을 채운 적도 있었다. 그렇게 졸다 깨어나 다시 글을 마무리했다.
설날에는 시댁이나 친정에서 홀로 작은방에 틀어박혀 글을 썼고, 딸이 수술받던 날에는 수술이 끝나고 병실로 돌아와 잠든 밤 10시 30분, 병동 휴게실에서 노트북을 펼쳤다. 여행지에서도 예외는 없었다. 평일 별일이 없는데도 밤 10시가 넘도록 쓰지 못한 날에는 심한 압박감을 느끼면서도 의지를 다지며 글을 완성했다.
이 브런치스토리를 시작하게 된 것도 백일백장 프로젝트를 통해서였다. 프로젝트 참여자의 글을 보고 다시 브런치 작가에 지원했고, 마침내 승인을 받았다. 자기 계발서를 출판한 작가들 중에는 독서와 글쓰기와는 거리가 멀었음에도 책을 내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는 모습을 보며, 나는 수십 년간 글을 찔끔찔끔 써오고도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한 채 문학계를 서성거리는 내 모습을 마주했다. 막연히 책을 내고 싶다는 꿈만 꾸다가도, 막상 글을 쓰면서 나의 빈약한 콘텐츠와 부족한 독서량을 대면하는 순간이 많았다.
설날, 여행, 딸의 수술 등 상황에 굴하지 않고 글쓰기가 가능했던 것은 내가 쓰고자 하는 '열정'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 열정은 내가 좋아하는 일, 즐겁게 할 수 있는 일이었기에 식지 않았다. 내가 좋아하는 일이 아니었다면 아마도 중도에 하차했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강제적인 시스템'이 나를 100일을 향해 꾸준히 달려갈 수 있는 동력이 되었다. 중도에 포기한다고 해서 외부에 피해를 주거나 개인적으로 문제 될 상황은 없었음에도, 스스로에 대한 약속을 지키고 싶은 강한 열망이 시스템 안에 갇히자 장거리 마라톤이 가능해졌다.
거기에다 주저앉을 법한 상황에서 기존에 썼던 글이 '찬스'로 작용했다. 내용의 완성도를 제쳐둔다면 매일 새로운 글을 쓸 수는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도저히 글쓰기에 집중이 안 되거나 자정으로 향해가는 시간이 촉박할 때는 예전에 쓴 글을 찬스처럼 활용했다. 인생에서도 부모 찬스나 주변의 도움을 얻는 것처럼, 글쓰기에서도 이러한 안전장치가 있어야 펑크가 나지 않는다.
이번 글쓰기가 곧 100일을 향해 가고 있다. 중도 하차하지 않고 여기까지 꾸준히 올 수 있었던 것은 네 가지 조건이 결합되었기 때문이다.
어떤 일을 꾸준히 하기 위해서는 열정이 있어야 하지만, 그것을 즐겁게 할 수 있어야 열정이 식지 않는다. 즐겁지 않다면 힘들어서 포기할 확률이 높다. 내가 즐겁다면 누가 시키지 않아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열정에는 즐거움이 뒤따라야 꾸준함이 가능하다. 거기에다 반드시 할 수밖에 없는 시스템이 마련되어야 한다. 강제성이 없다면 아무리 즐거워도 안 한다고 문제 될 것이 없기에 미루게 된다. 마지막으로, 강제적인 시스템과 꾸준함이 있어도, 비상 상황을 대비한 자기만의 찬스를 마련해야 완주할 수 있다.
작심삼일이 아니라 작심백일이 되려면 이 네 가지 요소가 결합되어야 한다. 백일의 성공 경험을 먼저 쌓은 후에 1000일에 도전한다면 무엇이든 이룰 수 있을 것이다. 서당개도 3년이면 풍월을 읊는다고 했다. 3년이면 1,095일이다. 결국 지금의 내 시간을 흘려보내느냐, 의미 있게 축적하느냐는 이 네 가지 성공 요건을 갖추었을 때 지속성으로 성공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