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바닥을 바삐 돌아다니는 병아리처럼.
약 8개월이 지난 후, 어김없이 그의 신발에 구멍이 생긴다. 구멍은 항상 같은 자리를 고수한다. 그의 오른쪽 엄지발가락 바로 위, 그곳에 두더지 굴처럼 검은 입구가 모습을 보인다. 입구의 색은 그날그날 달라지는데 그의 양말 색에 따라 마치 변태를 하듯 변하기 때문이다. 하루는 빨간 구멍, 다른 날은 흰 구멍, 어떤 날은 회색 구멍.
그녀는 그의 구멍을 싫어한다. 사실 좋아할 이유는 전혀 없다. 바지나 셔츠에 난 구멍, 혹은 해진 흔적은 패션이라며, 그의 스타일이라며 대충 뭉개버릴 수 있지만, 신발에 난 구멍은 그렇게 보기엔 너무나 아방가르드기 때문이다. 설사 그래 그렇다고 쳐도 오른쪽 엄지발가락에만 생기는 구멍은 너무나 볼품없다. "난 나야'라며 본인의 패션감각을 밀어붙이다가는 "난 거지야"를 인정하는 것과 다름없였다.
더군다나 그 구멍은 그의 패션과는 하나도 관계가 없었다. 그저 그의 걸음걸이 자세에서 비롯된 시간의 생채기에 불과하다. 이유는 그도 모른다고 하는데 그가 걸을 때마다 그의 오른쪽 엄지발가락은 하늘로 치솟는다. 새신을 신은 걸을 때 그의 오른발은 이제 막 부화를 시작한 달걀을 보는 것 같다. 신발이라는 질긴 알맹이를 뚫고 나오려고 부리를 쪼아대는 병아리, 그의 엄지발가락이 딱 그 모양새다. 발톱이 부리가 되고 엄지발가락이 병아리가 된다. 삐약삐약.
그녀에게 더 큰 문제는 그 스스로 이 문제에 대해서 큰 신경을 안 쓴다는 거였다. 물론 그도 주변의 시선을 신경 쓰는 사람인지라, 발가락이 다 튀어나올 정도로 구멍이 커지면 새 신발을 산다. 하지만 바늘구멍 크기 정도, 이제 막 병아리의 부리가 나올 정도의 구멍에는 큰 관심을 두지 않는다. 어차피 새 신을 사도 금방 구멍이 날 텐데 왜 벌써부터 사냐는 게 그의 논리. 그리고 그녀의 논리는 애초에 그런 구멍이 생기지 않게 걸음 자세를 바꾸거나 아예 더 질긴 가죽 구두를 신으라는 것.
그때 그의 반론은 걸음걸이는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는 무의식 같은 거라 잠깐 고칠 순 있어도 평생을 걸음걸이에 신경을 쓰며 살 수는 없다는 것, 그리고 가죽구두는 너무나 불편할뿐더러 차라리 그때그때 계절에 맞는 저렴한 신발을 사는 게 더 낫다는 거였다. 그리고 그는 스스로 굉장히 합리적인 사람이라며 만족해한다.
다시 7개월 후, 그는 어김없이 새로운 구멍을 냈다. 이날의 입구 색은 파란색이었다. 계절마다 털갈이를 하는 동물도 아니고 그의 엄지발가락은 너무나 규칙적으로 색을 바꾸며 얼굴을 들이민다. 차라리 진짜 병아리여서 살아 움직인다면 더 나을지도 모른다. 아니, 오늘은 파란색이니 파랑새 일려나? 그러면 차라리 날아가버린다.
"아예 날아가 버렸으면 좋겠어."
그녀도 모르게 속마음을 밖으로 내비치고 말았다. 그는 아무 반응이 없다. 아무래도 듣지 못한 거 같다. 아니면 둘이서 같이 동네 대형마트에서 장을 보던 와중에 나온 말이라 그가 듣고도 기색을 안 한 건지도 모르겠다. 전혀 맥락 없는 혼잣말이었으니까. 그녀는 파랑새를 품은 그가 찌개용 두부와 구이용 두부 사이에서 고민하는 모습을 보며 약간의 안도감을 느꼈다.
"신발에 또 구멍이 났네. 다시 하나 사야겠다."
이어서 조심스럽지만 다분히 의도적이게
"그냥 날아가 버렸으면 좋겠어."
이번에도 그는 듣지 못한 듯하다. 사실 그녀는 이번에는 그가 듣고 어떤 반응을 보이길 바랐다. 하지만 그는 깐 마늘과 까지 않은 마늘 사이에서 길을 잃고 헤매고 있었다. 그는 날아가기에는 너무나도 지상의 사람이었다. 그래, 그에게는 파랑새보다 땅바닥을 바삐 돌아다니는 병아리가 더 어울린다.
5개월 뒤, 평소보다 조금 더 빨리 그의 구멍이 돌아왔다. 위치는 어김없이 그의 오른쪽 엄지발가락 위였다. 이날은 노란색. 다시 그는 병아리가 됐다. 그런데 갑자기 "푸득"하고 어딘가 찢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어쩐 일인지 그의 왼쪽 엄지발가락 위에도 구멍이 생겼다. 왼쪽은 처음이었을뿐더러 두 군데가 동시에 구멍이 생기는 것은 처음이었다. 그녀는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이 상황이 어이가 없는 데다가 마음속 한 구석에서는 "이제야 패션이 완성됐군!"이라는 안도감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본인이 그런 감정을 느낀다는 것 자체가 우스웠다. 잘하면 날아갈 수도 있는 거 아닐까? 원래 날개도 양쪽에 다 있는 거잖아? 또 그래야 날 수 있을 테고. 이건 어쩌면 계기인지도 모른다. 그녀의 생각은 거기에까지 이르렀다.
"한 번 날아봐! 아니지 이제 막 부화했으니 날개를 펴려면 좀 더 시간이 있어야 할까? 그래도 혹시 모르잖아. 한 번 날아봐!"
그녀는 그의 두 구멍을 바라봤다. 구멍들은 양 날개이며 입구이자 출구였다. 어디든 날아갈 수 있으며 나갓다가 다시 돌아올 수도 있다. 잠시 구멍 속에 숨었다가 밖의 동태를 보고 다시 날아가면 그만이다. 모든 새들이 그러는 것처럼. 지상에 더 어울리는 그는 병아리처럼 날지 못할 수도 있고, 합리적인 그는 도시의 비둘기처럼 스스로 날기를 주저할 수도 있다. 그럴수록 옆에서 더욱 당금질을 하고 채찍질을 해야 하지 않을까?
"날아 보라니까!"
그의 두 병아리가 변태를 시작했다. 빨간 닭이 되었다. 푸드덕 거리지만 역시 날지 못한다. 잠시 후 두 닭은 회색 비둘기가 되었다. 잠깐 날아볼까 싶다가 이내 날개를 접는다. 두 비둘기는 땅바닥을 선택했다. 그러던 찰나, 그의 두 발은 파랑새가 되었다. 푸른빛 윤기가 흐르는 두 날개는 허공을 향해 푸득였다. 그는 정말 파랑새가 되었고 하늘을 날기 시작했다. 점점 더 높이 나는 그는 어느새 하늘의 파란빛과 합쳐지며 그녀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그녀는 활짝 웃으며 경쾌하게 말했다.
"거 봐! 날 수 있다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