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현재(3), 개와 늑대의 시간 속에서.

꿈 곁에 붙어 만 있고 싶어도 이제 그럴 수 없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by 표수

8. 바야흐로, “개와 늑대의 시간”에 접어들어...

교육 100년지대계(百年之大計) 불가?

아직 다 펼쳐지지 않은, 반쯤 미래에 걸쳐진 정보에 대해 이야기 하는 것은 많은 부담이 따르기도 합니다. 이 부담감을 내려놓고자 더 엄살스러운 이야기들을 좀 하자면, 이 책이 현재 공개 되어있는 모든 정보를 다 대신할 순 없을 것입니다. 저는 개인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개인적으로 수집한 정보의 양에 따라 일부분은 다소 두루뭉술해지고, 또 어느 부분은 그에 비해 상세히 서술하게 되어 있기도 합니다. 하지만, 구색을 맞추기 위해 부러 부족한 부분을 무리하게 채워 넣거나,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정보들을 삭제하지는 않았습니다. 대신 꼭 필요하다고 생각하지만 제가 잘 몰랐던 부분에 대해서는 여러 매체들을 통해 찾아보고 내용을 보충하려는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정보에 대한 팩트 체크는 가능한 최선으로 하였고, 제 개인적인 조언에 대해서는 다소 부정확할 수 있더라도 근거가 합리적이라고 판단되면 소신을 가지고 적어보았습니다.


또한 상황이 급변하여 갑자기 제 이야기와 다른 미래가 전개될 수도 있습니다. 예컨대 교육은 100년지대계(百年之大計)라는 말이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동안 수 없이 교육 정책이 변화하는 모습을 목격했지요. 아마 세상이 빠르게 변화하는 만큼, 교육도 빠르게 변화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때문에 저 뿐 아니라 그 누구도 100년의 교육 계획으로서 현재 교육계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을 확신하지는 못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지금으로서 드릴 수 있는 정보와 조언의 가장 명확한 지점 까지를 서술해 보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앞서 말씀 드렸던 것 처럼 최대한 멀리 보고, 발끝만 보지 않으려 노력하면서요. 100년 까지는 어림없다 하더라도, 우리 아이들이 커가는 동안에라도 가장 올바른 교육관을 가지고 가장 필요한 교육을 전개해 나갈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또한 교육에는 절대 불변으로 필요한 것들도 있습니다. 예컨대 아동의 발달과 관련된 교육 같은 것이요. 그런 것들까지 종합해 아울러 서술하려 합니다. 엇나갈 수도 있지만 용기를 낸 것이죠. 만약 제자들이 앞으로 어떻게 미래를 준비해 나가면 좋을지 고민하며 저를 찾아온다면, 선생님으로서 조언할 제 모습을 생각해 보았을 때, 세상의 이목과 비판이 무서워 이견이 없게 될 최소한의 내용만을 서술하기 보다는, 제 학생에게 할 수 있는 한 최대한의 조언을 해주기 위해 노력할 것 같기 때문입니다.


이 책을 펼쳐 든 대부분의 독자들은 학령기 자녀를 둔 학부모님들이겠지만, 혹시나 호기심에 책을 집게 된 중학생, 고등학생도 소수 존재하길 바래봅니다. 그리고 아직 많은 수는 아니지만 이미 어른이 된 저의 사랑하는 제자들을 생각하며 그들에게도 작은 조언이 될 수있도록, 지금부터 최대한 명확하고 쉽게 현 상황을 서술해 보려고 합니다.



읽다 지치지 않도록, 결론부터 먼저.


현재(1) 에서 처음 던졌던 질문은 이랬습니다. ‘AI의 시대, 미래에도 미술은 여전히 유망할까?’ 그리고 제 대답은 확신에 찬 “Yes!” 입니다. 하지만, 그 ‘예스’는 무조건적인 긍정을 의미하진 않습니다. AI가 아무리 발전해도, 미술 계열 직업군이 완전히 사라지진 않을 것입니다. 다만 지금보다 그 수는 줄어들 것이고, 업무의 성격도 달라질 것이며, 관점에 따라선 ‘소수’만 살아남는 분야가 될 수도 있습니다. 어느 정도의 소수가 남게 될지는 각 분야와 기술의 발전 방향에 따라 달라지겠지요.


반면, 새로운 기술과 프로그램을 다루는 직종은 오히려 ‘다수’의 각광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결국, 현재의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며 ‘미술인’, ‘예술가’라고 불릴 사람은 극히 일부에 불과할 것입니다. 지금의 미술 학도들 역시, 대부분은 이전과는 전혀 다른 형태의 ‘미술인’으로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그러니 미술을 사랑하고, 이 분야를 자신의 길로 확고히 정하고자 하는 학생이 있다면, 미래에는 어떤 ‘소수’가 이 길에 남게 될 수 있는지를 먼저 인지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에 맞춘 방향으로 공부해 나가야 하겠지요. 또한 그동안 쌓아온 여러 데이터를 종합해 봤을 때, 자신이 그 좁은 문을 통과하는 데 주저하거나 후회하게 될 것 같다면, 일찌감치 미술을 취미의 영역으로 두고, 미래의 직업에서는 다른 방향으로 분화시켜두는 것이 현명할 수 있습니다. 설령 재능이 있더라도 말입니다. 다소 냉정하고 쓴소리처럼 들릴 수 있겠지만요.


하지만 이제는 이렇게 각오하는 것이 오히려 현실적인 선택입니다. 과거의 형태를 유지하며 남게 되는 일부 미술 분야들 (예를 들어 디자이너, 일러스트레이터, 혹은 장인이라 불리는 직군들)에서는 이미 오래전부터 활동해 온 미술인들과의 치열한 경쟁이 불가피할 것입니다. 반면, 새롭게 등장하는 미술 분야들은 분명 여러분에게 예술적 자유와 해방감을 안겨줄 수 있지만, 동시에 ‘새롭다’는 그 자체가 주는 두려움도 함께 따라올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그 모든 새로운 분야들 속에는 이미 과거부터 그 가능성을 내다보고 철저히 준비해온 똑똑한 예술가들이 자리 잡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는 사실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아래는 제가 중고등학생 자녀를 둔 학부모님들께 종종 드리는 예시 중 하나입니다. 평소에는 아이가 꿈꾸는 진로에 따라 다양한 직업군을 들어 설명해드리곤 하지만, 오늘은 이중 ‘애니메이션계’를 중심으로 말씀드려 보겠습니다.


애니메이터를 꿈꾸는 학생들은 예전에도 정말 많았습니다. 많은 아이들이 자신의 상상과 이야기를 만화로 표현하고 싶어했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해 유학을 가거나 애니메이션 관련 학과에 진학하거나, 심지어는 애니고등학교에 진학하기도 했습니다. 대부분이 “내 생각이 만화에 담기길” 바랐지만, 정작 그 꿈을 현실로 이룬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합니다. 실제로는 애니메이션 제작 과정에서 아주 작은 파트를 맡게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고, 그 일마저도 경쟁이 치열했습니다.


특히 애니메이션은 타 미술 분야로의 전환이 쉽지 않아, 꿈에 다가가기 위해 현실과 타협하고 하청의 하청부터 시작하는 것이 일반적이었죠. 심지어 그 하청 일을 위해 해외로 유학을 떠나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인가, AI가 조용히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습니다. 예를 들어, ‘학생이 선생님께 고개 숙여 인사하는 장면’을 표현하고 싶다고 가정해 보겠습니다. 과거에는 그 동작을 자연스럽게 보여주기 위해 중간 연결 동작만 해도 20컷 정도를 그려야 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고개를 숙이기 전’ 장면 하나, ‘숙인 후’ 장면 하나, 이 두 장면만 있으면 충분합니다. 나머지 18개의 중간 동작은 AI가 자동으로 분석하고 유추해서 만들어내기 때문입니다. 즉, 그 많은 장면을 손으로 그릴 인력이 더 이상 필요 없어졌다는 뜻이죠.

AI의 등장은 일을 훨씬 더 빠르고, 간편하고, 적은 인원으로 처리할 수 있도록 만들었습니다.


그렇다면, 이 AI는 과연 인간의 일을 돕는 ‘파트너’일까요? 아니면 인간의 일자리를 서서히 빼앗아가는 존재일까요?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 아이들에게는 어떤 영향을 더 강하게 미치게 될까요?

바야흐로, 우리는 “개와 늑대의 시간”에 접어들었습니다.


이러한 변화의 예시는 애니메이션 분야를 진로로 희망하는 자녀를 둔 부모님들께는 다소 우려스럽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전체 취업 시장의 ‘파이’ 자체가 줄어드는 상황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아이들의 생각은 조금 다릅니다.


같은 이야기를 아이들에게 전하면, 아이들은 내내 오히려 이 변화에 흥분하고, 설렘을 느끼는 모습을 보입니다. 심지어 이 이야기를 들은 후, 자신의 꿈을 더 확고하게 굳히는 친구들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들은 제 설명을 ‘기존보다 더 적은 수고로 나만의 작품을 만들 수 있다!’는 뜻으로 이해했기 때문입니다. 어른들의 걱정과는 다르게, 아이들은 가능성에 더 집중하는 것이지요.


그런데 사실, 이런 아이들의 반응도 어느 정도는 옳은 방향입니다. 부모님들께서 오늘날 이렇게 아이의 진로에 관심을 가지시고, 진심으로 지지해주시며, 입시미술교습소와 보습학원에까지 보내시는 이유는 분명합니다. 그것은 우리 아이를 단지 하청의 하청 업체에서 일하게 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하청 구조가 줄어드는 일이 과연 우리 아이의 진로 선택에 ‘위협’만 되는 걸까요? 어쩌면 이는 반대로, 더 창의적이고 주체적인 예술 활동을 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저는 아이들에게 꼭 경고를 덧붙입니다. “이제는 호랑이를 잡으려다 고양이라도 잡고 살 수 있는 그런 시대는 아니야. 꿈 곁에 적당히 붙어 만 있고 싶어도 그럴수 없는 세상이 온 거야.” 결국엔 늘 그렇듯 “그러니 더 열심히 공부하고, 더 열정적으로 배워야 한다”는, 다소 고루한 결론으로 대화가 마무리 됩니다. 하지만 지금 이 시대야말로, 그런 ‘고루한 진심’이 더욱 절실히 요구되는 시간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미술인은 사라지지 않는다.

결론을 한번 더 강조하고 싶습니다. 지나치게 실망하거나 지레 겁을 먹을 필요는 없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미술인은 사라지지 않는다’는 말만 믿고 과거와 같은 방식으로 안심하며 미술에 접근하는 것도 결코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미술계를 둘러싼 변화와 발전의 방향을 이해하고, 그에 맞춘 공부와 준비를 해나가는 것. 바로 그것이 지금의 아이들이 ‘미래의 미술인’으로 살아남는 해법입니다. 미래를 최대한 예측하고, 그에 대비하며, 주체적으로 준비해 나간다면 아이들 앞에는 분명히 흥미롭고 다양한 길이 무한하게 펼쳐질 수 있습니다. “정말 무한 가지의 길이 가능하냐”고 물으신다면, 조금 무책임하게 들릴 수도 있겠지만 이렇게 답해보고 싶습니다. 지금은 융합의 시대입니다. 이 시대에 걸맞게, 다양한 영역을 연결하고 자신만의 방향으로 개척해 나가는 일은 분명 쉽지 않은 도전이지만, 우리 아이들이 감당하고 탐구해 나가야 할 새로운 ‘몫’이기도 합니다.




<AI시대, 미술 좋아하는 아이 어떻게 키워야 할까?>

*급변하는 AI시대, 미술 전공자의 현직 전문가 다운 시각으로.

keyword
이전 07화현재(2), 특히 아이들의 미래에 대한 공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