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론부터 : 역시 안하는 것 보단 1000배 나으므로.
1시간 30분 수업의 비밀.
1시간 30분 수업의 비밀. 요즘 새로 생기는 아동 미술학원들은 대부분 주 1회 1시간 30분 수업을 운영합니다. 그런데 이 1시간 30분이라는 시간은 누가 만들어낸 것일까요? 대부분이 학부모님의 편의에 맞춰 선생님들이 설정한 시간입니다. 확실히, 어린이를 위한 시간은 아닙니다. 그렇다면 왜 이런 시간이 만들어졌을까요? 힌트는 ‘최근 더 많아지고 있는 현상’에 있습니다.
정답 : 힘들게 20분씩 라이딩해서 미술학원에 보내놨더니, 뒤 돌아서면 아이가 끝날 시간인 경험 다들 있으시죠? 그래서 자연스럽게 “아이에게 한 번에 길게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생기게 되는 것이지요. 게다가 예전에는 태권도 도장 옆에 붙어 있는 미술 교실이라면 무조건 그곳에 보냈지만, 요즘은 좀 떨어져있어도 좋다고 소문난 미술을 골라 일부러 찾아 보내는 경우가 많습니다. 부모님이 직접 차에 태워 라이딩을 하거나, 두세 건물씩 떨어진 학원을 아이 손을 잡고 이동하기도 합니다. 특히 미술학원은 대부분 차량 운행을 하지 않기 때문에, 한 번 보내면 수업 시간이 길었으면 좋겠다는 요구가 많아지고 있습니다. 그런 이유로 1시간 30분 수업에 대한 선호도는 자연스럽게 높아지고 있으며, 이는 미술뿐만 아니라 다른 과목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유치부부터 초등부까지 1시간 30분 수업이 점점 일반화되고 있는 추세입니다.
초등학생의 경우 가까운 거리라면 혼자 이동할 수도 있지만, 유치원생은 픽업 없이는 이동이 어렵습니다. 수업 시간뿐 아니라 이동 시간까지 모두 보호자가 함께해야 하므로, 부모님 입장에서는 일주일에 두 번 미술 수업을 보내는 것도 부담이 될 수 있습니다. 결국, “기왕 보내는 거 한 번 갈 때 1시간 30분 정도는 수업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는 것입니다. 그 시간 동안 부모님께서는 장을 보러 가거나 다른 중요한 일을 처리하실 수 있기 때문에, 시간 활용 면에서도 이점이 큽니다.
하지만 1시간 30분 수업은 아이들의 집중력으로는 꽤 긴 시간입니다. 쉽고 재미있는 활동을 진행한다면 그 시간이 순간처럼 짧게 느껴질 수 있지만, 사고력을 요하는 난이도 있는 수업을 할 경우, 아이들은 금세 지치게 되고 결국 1시간 30분을 버텨내기 어렵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런 이야기를 장담할 수 있느냐고요? 제가 개인적으로 장담하는 것이 아니라, 오랜 시간의 교육 데이터로부터 유추해볼 수 있습니다. 바로 학교 수업 시간이 그 근거입니다. 초등학교의 1교시 수업 시간은 약 40분 정도로 설정되어 있습니다. 이는 아이들이 약 40분간 집중했을 때 가장 높은 학습 효율이 나온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즉, 어려운 수업을 버텨낼 수 있는 평균적인 집중 시간이 40분이라는 뜻입니다.
저는 이 마법 같은 시간에 대해 확신을 가지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저희 학원 역시 1시간 수업을 운영하고 있지만, 조금만 어려운 주제를 다루면 아이들은 정확히 40분쯤부터 집중력이 바닥나기 시작합니다. 힘들어하는 모습이 뚜렷하게 나타나며, 7년 동안 매일같이 그 장면을 직접 목격해 왔습니다. 제가 수업 준비를 철저히 하면 할수록, 아이는 그만큼 더 많은 에너지를 집중력에 쏟아내게 되고, 몰입하면 몰입할수록 약 40분이 지나면서부터는 기력이 소진된 듯 힘이 빠지고 집중이 급격히 떨어지는 모습을 보이게 됩니다.
이러한 현상은 보통 초등학교 2~3학년까지는 거의 예외 없이 나타납니다. 우리 아이는 얌전하고 집중을 잘하는 편이라고요? 그런 아이일수록 더욱 그렇습니다. 오히려 40분이면 진이 빠져 손을 놓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것은 오히려 아이가 수업 시간 동안 진정으로 집중했음을 반증하는 장면이기도 합니다. 40분이 지나 좀 쉬고싶다고 한다면, 기꺼이 칭찬과 함께 쉬게 해 주어야지요. "그럴만 하다! 대단하다 너 열심히 했구나!" 하고요.
그래서 저희는 1시간씩 주 2회 수업합니다.
그래서 저희 학원에서는 보통 하루의 수업 시간을 1시간으로 설정하고 있습니다. 그중 5분은 준비 시간, 40분은 집중 수업 시간으로 사용하며, 나머지 10~15분은 크로키나 만들기 시간 등으로 유동적으로 운영하고 있습니다. 이 마지막 10~15분 동안에는 아이들이 다시 한 번 몰입할 수 있도록 '크로키'수업이나, 새롭고 비교적 쉬운 주제를 던져주며 분위기를 환기시키는 전략을 사용합니다. 그렇게 수업을 구성하면, 아이들은 비교적 난이도 있는 미술 수업도 끝까지 알차게 소화해내고 만족스럽게 수업을 마무리할 수 있습니다.
이전에는 1시간 30분 수업을 운영하는 학원에서 근무했던 경험도 있습니다. 그 학원의 원장 선생님께서는 항상 고민하셨습니다. 어떻게 해야 아이들이 이 긴 시간을 지루하지 않게, 힘들이지 않고 보낼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이었습니다. 특히, 그 활동이 손이 많이 가거나 지나치게 어렵지 않아야 했습니다. 쉬우면서도 일정 정도는 반복 가능해야 하고, 결과물은 풍성하게 나와야 만족도가 높았습니다. 실제로는 1시간 동안 진도 그리기를 하고, 남은 30분은 자유 그리기를 하는 방식이 운영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런 수업도 3개월쯤 지나면 아이들의 자유 그리기 주제가 바닥나기 시작했고, 결국 남은 시간을 지루하지 않게 보내기 위해 디폼 블럭 같은 반제품 만들기를 꺼내주곤 했습니다. 아이들도 그런 활동을 즐거워했고, 저 또한 당시에는 그것이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제가 직접 학원을 운영하는 원장이 되고 보니, 그 원장 선생님의 고충이 깊이 이해되었습니다. 아, 1시간 30분 동안 아이를 붙잡아 두기 위해 나름 많은 고민을 하셨겠구나, 그래서 그런 수업들을 운영하셨던 것이구나, 하고요. 그러나 그 수업이 과연 아이를 위한 수업이었는가에 대해서는 확신이 들지 않았습니다. 그저 아이들이 잘 놀다 가는구나, 라는 생각이 더 강하게 남았습니다. 마치 슬라임 카페나 폰케이스 꾸미기 같은 체험이 있는 키즈카페처럼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그러다 보니 어떤 프랜차이즈 미술학원에서는 1시간 30분을 아이들이 온전히 ‘그리기’에만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패드를 활용하여 사전 지식을 얻거나 참고 자료를 보는 데 일부 시간을 할애하고 있었습니다. 아이들의 흥미를 유도하기 위해 다양한 방식으로 1시간 30분을 구성한 신선한 프로그램이었고, 겉보기에는 꽤 참신하고 흥미로운 접근으로 보였습니다. 하지만 『불안세대』를 읽고, ‘다크 넛지’에 대한 경각심을 갖게 된 제 시각에서 본다면, 그와 같은 교육 방식은 다소 피하고 싶은 방향이기도 합니다.
물론 긍정적으로 바라보자면, 아무런 융합적 배경지식 없이, 자신이 무엇을 그리고 있는지도 모른 채 그리는 것보다는, 사전에 학습을 병행하는 것이 더 나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이면을 들여다보면, 이는 어른들의 편의를 위해 고안된 일종의 ‘꼼수’와도 맞아떨어지는 방식이라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수업 방식의 가장 치명적인 단점은, 정작 아이들이 실제로 그리기를 하는 시간은 1시간 30분 중 약 1시간 정도에 불과하다는 점입니다. 그마저도 흥미 위주의 수업이 되다보니 초등도 도화지에 그리기 보단 조형활동에 치중된 수업이 더 많습니다. 그런데 가르치는 선생님으로선 정말 이해가 갑니다. 1시간 30분동안 아이들을 붙들어 놓으려면 어쩔수가 없습니다. 놀이식 미술을 지향해야죠.
아이가 자유롭게 그림 그리며 놀다 오면 좋은 것 아니냐구요?
그렇지만 반대로 생각해 보면, 어쩌면 미술을 하는 듯한 '시간'만 채우고 있는 것 일수도 있습니다. 진짜 미술을 제대로 경험하는 것이 아니라요.
반 고흐의 <영혼의 편지> 중에는 이런 내용의 편지가 있습니다.
열심히 노력하다가 갑자기 나태해지고, 잘 참다가 조급해지고, 희망에 부풀었다가 절망에 빠지는 일을 또다시 반복하고 있다. 그래도 계속 노력하면 수채화를 더 잘 이해할 수 있겠지. 그게 쉬운 일이었다면, 그 속에서 아무런 즐거움도 얻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니 계속해서 그림을 그려야겠다.
이 문장에서 알 수 있듯, 쉬운 일에서는 진정한 즐거움이 생겨나기 어렵습니다. 특히 그 대상이 ‘수채화’라면 더욱 그렇습니다. 수채화를 누구보다 사랑하고, 아이들에게도 수채화의 깊이를 전하고자 노력하는 제 입장에서는 더욱 공감되는 말입니다. 반 고흐는 비교적 늦은 나이에 미술을 시작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없이 이해하고 배우려 했던 화가였습니다. 그런 화가들에게 있어서, 배움이 없는 그림은 그저 한 순간의 오락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우리 아이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리틀 반 고흐’, ‘리틀 피카소’라 불리곤 하는 이 시기의 아이들에게야말로, 진짜 미술을 경험할 기회를 제공해야 합니다. 잠깐 즐기고 끝나는 수업이 아닌, 표현력과 관찰력, 창의력을 키울 수 있는 ‘진짜 미술’을 만날 수 있도록 도와주셔야 합니다.
배움이 있다면 미술도 힘들고 어렵기 마련이며, 때로는 쉬는 시간이 꼭 필요합니다. 새로 배운 내용을 곱씹어 생각해야 하고, 그것을 자기 것으로 소화해내는 시간도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유초등 아이들에게 1시간 30분 내내 어려운 수업을 듣는 것은 매우 힘든 일입니다. 그렇다고 그 긴 시간 동안 미술 놀이만 하다 가는 것 역시, 유초등 아이들에게 크게 도움이 된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 1시간 30분이라는 시간이, 딱히 긍정적으로 느껴지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미술을 일주일에 단 1시간만 하는건 어떤가요?
예를 들어 30분은 패드를 보며 사전 지식을 습득하고, 남은 1시간을 그림 그리기로 채우는 구성으로 일주일의 미술 활동을 마치는 경우가 있습니다. 또는, 일주일에 1시간 동안 그림만 그리는 학원에 다니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 두 경우 모두에서 핵심적으로 부족한 것은 바로 실질적인 그리기 시간입니다.
요즘 수험생들 사이에서 ‘순공(純工) 시간’이 중요하다는 말이 자주 언급됩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아이들의 발달에 있어서는 ‘순미(純美) 시간’, 즉 순수하게 미술 활동에 몰입하는 시간이 매우 중요합니다. 그러나 실제로 많은 아이들이 일주일에 고작 1시간 정도만 순수한 미술 시간을 보내고 있으며, 이마저도 단편적이거나 수동적인 활동으로 채워지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부모님들은 아이가 학원에 다니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미술 교육이 충분히 이루어지고 있다고 안심하게 됩니다. 그 1시간은 실제로는 ‘순미 시간’이 부족한데도, 부모에게는 단지 마음의 안식처가 되어주고 있을 뿐입니다. 표현력의 성장은 매우 서서히, 그리고 점진적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그 차이를 처음부터 바로 체감하기는 어렵습니다. 미술학원에 다니는 우리 아이보다, 오히려 미술학원에 다니지 않고 집에서 혼자 그리고 만들기를 자유롭게 탐색하는 아이가 시간이 지날수록 훨씬 더 풍부한 표현력을 갖추게 되는 경우도적지 않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그 차이를 ‘재능의 문제’로만 치부하며 지나치게 됩니다. “원래 표현력이 뛰어난 아이였나 보다”, “우리 아이는 미술적 감각이 조금 덜한 편인가 보다”라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죠. 그러나 사실은 미술 교육의 ‘질’과 ‘몰입 시간’, 즉 순미 시간의 축적이 그 차이를 만들어낸 것입니다.
이러한 격차는 대체로 초등학교 3~4학년에 접어들면서 서서히 더 윤곽을 드러나기 시작합니다. 학교 수업에서 본격적으로 수채화, 소묘, 구도와 명암 등의 요소를 다루기 시작하면, 부모님들은 문득 이렇게 질문하게 됩니다. “아이가 미술학원에 다닌 지 몇 년이 되었는데, 도대체 무엇을 배운 걸까?”라는 의문입니다. 단지 만들기 결과물이 예쁘거나, 칭찬 스티커가 많이 붙은 것만으로는 그 질문에 답하기 어렵습니다.
직설적으로 결론을 내리자면, 손끝이 자라고 표현력이 영글기 위해서는 단 1시간의 미술 활동으로는 턱없이 부족합니다. 게다가 그 1시간이 뻔한 결과물로 끝나는 쉬운 조형 활동이라면 더욱 그렇습니다. 그런 수업은 사실상 방과후 미술이나 늘봄·돌봄 프로그램에서도 충분히 경험할 수 있습니다. 물론 다소 예술성이 떨어질 수도 있고, 정교함이나 깊이는 부족할 수 있지만, 단순한 즐거움이나 결과물 중심의 활동이라면 굳이 사교육을 통해 이루어야 할 이유는 없습니다.
늘봄, 돌봄, 방과후 현명하게 이용하세요!
저는 미술학원에 다니는 아이들과 그 부모님들께, 학교 방과후 조형활동 프로그램들을 아주 적극적으로 권장하고있는 자칭 '학교 밖 방과후 학교 홍보대사'입니다. 저희 학원의 커리큘럼은 기본적으로 아이 한 명이 일주일에 60분씩 두 타임, 총 120분의 수업을 받도록 구성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제 개인적인 판단으로는, 이 시간조차도 초등 저학년 아이들에게는 충분하지 않다고 느끼는 경우가 많습니다. 앞서 말씀드렸듯, 요즘 아이들은 예전 세대에 비해 미술을 놀이처럼 즐기는 경험이 현저히 줄어들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저는 미술학원에서 아이들에게 꼭 필요한 수준의 그리기 활동과 기초 조형 수업을 충실히 제공할 테니, 만약 아이가 만들기 활동을 정말 좋아한다면 학교 방과후의 토탈 공예 수업을, 요리를 좋아한다면 요리 교실을, 기계를 좋아한다면 로봇 과학 수업을 병행해서 시켜주시라고 부모님들께 자주 말씀드리고 있습니다. 아이를 무조건 저희 학원의 울타리 안에만 가두려는 마음은 제 욕심일 뿐입니다. 아이가 성장하고 발달할 수 있는 기회가 있다면, 그것이 학교든, 체험 활동이든, 부모님의 입장에서는 가능한 최선을 다해 가성비 있게 다양한 경험을 시켜주는 것이 가장 좋은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늘봄, 돌봄은 학교마다 프로그램 질의 편차가 크다는 소리를 종종 듣지만, 방과후 프로그램은 이들에 비해 비교적 오래 되었고, 안정적이라 종류도 매우 다양하고, 아이들이 가볍게 즐길 수 있는 조형 활동이 많이 개설되어 있는 모습을 자주 봅니다. 가격 또한 미술 전문 학원에 비해 훨씬 저렴한 경우가 대다수입니다. 저는 미술 전문 학원과 방과후 미술 활동 교실은 서로를 경쟁하거나 배척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한 아이를 함께 키워내는 ‘한 마을’처럼, 각자의 자리에서 역할을 충실히 해내야 하는 존재들이라고 믿습니다.
도서관 행사도 마찬가지입니다. 도서관에서 하는 미술 수업 내용이 기술적인 면을 가르쳐주지는 않더라도, 아이들이 미적인 사고를 다방면으로 확장해 나가는데에는 꽤 도움이 될것이란 생각이 든 적이 종종 있습니다. 그렇게 응용력을 한스푼 더 얻는 것이죠. 저는 아이들에게, 도서관 행사에도 적극 참여해서 너희들의 실력을 마음껏 뽐내고 오라고, 배운것 좀 써먹으라고 열심히 권유하느라 바쁘답니다. 그리고 저에게 주어진 역할은, ‘제대로 가르치는 기관’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여, 우리 아이들이 자신의 의지를 가지고, 나름대로 멋진 작품을 만들기 위해 배우고 익히며 노력하는 시간을 가지기를 바랍니다. 미술을 단순한 활동이 아닌, 자기 것으로 향유할 수 있는 아이로 성장하길 바라는 마음에서입니다.
*급변하는 AI시대, 미술 전공자의 현직 전문가 다운 시각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