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심택근 Sep 11. 2021

Life in Scotland Episode 4

적응하는 중

2021. 9. 9.(목) -> 격리 생활 6일 차다.

비 오는 아침

오늘 스코틀랜드에는 비가 왔다. 이게 바로 영국 비구나 싶었다. 갑자기 뜬금없이 어느샌가 비가 내리고 있다.

오후에는 낮잠을 잤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어느 순간 침대 위에 누워있었다. 낮잠을 조금 자뒀으니 이따가 밤 11~12시 즘에 잠들 수 있겠지. 시차 적응이 돼가나 보다.


별로 하는 건 없다. 매일 일어나서 QT 하고 스트레칭도 하고 씻은 다음에 맥북을 열어 악보 정리를 한다. 아, 영국은 코코넛에 흠뻑 빠져있는 나라 같다. 모든 게 다 코코넛이다. 코코넛 초콜릿도 있고 코코넛 샴푸에 바디워시도 있다. 샤워하다가 달달한 냄새에 정말 기분이 좋아지기도 한다. 한국에서는 왜 한 번도 못써봤을까 싶다. 너무 좋다.

학교 들어가면 악보를 많이 만들게 될 거라고 한다. 요즘에는 악보를 디지털로 다 만든다고 한다. 그래서 학교에서 영국 올 때 준비할 게 있다면, 아이패드를 사 갖고 오면 좋다고 했다. 한국에서는 '피날레'라는 악보 제작 프로그램을 사용했지만 왠지 '시벨리우스'라는 프로그램을 더 많이 사용하게 될 것 같아서 계속 이 프로그램 가지고 악보 만드는 연습을 하고 있다. 맥북으로 작업을 하고 아이패드와도 연동이 돼서 아이패드로도 같은 작업 세션 불러와서 작업할 수 있다. 세상 편해졌다 정말. 그동안 공연하거나 편곡, 예배 찬양 준비할 때에도 '악보는 직접 손으로 그려야지!'라며 손 사보를 했었는데 아이패드와 애플 펜슬 하나면 너무나도 쉽게 악보를 만들고 또한 수정을 할 수가 있다. 종이 뭉텅이를 안 들고 다녀도 되고 손에 잉크 묻힐 일도 없으니 참 좋다. 그동안 그린 악보들 뒤처리가 참 애매했는데 작은 칩 하나에 모든 데이터가 들어간다니, 이사 다닐 때 참 편하겠다 싶었다. 개강하기 전까지 얼른 더 이 악보 제작 프로그램에 더 익숙해져야겠다.(하지만 펜과 자, 그리고 오선지 가지고 사각사각 아날로그 감성으로 악보를 적는 게 아직까지는 내 스타일인 것 같다. 디지털로는 깔끔하게 뭔가를 정리할 수 있지만 악보에 따듯하고 어찌 보면 지저분하기도 한, 인간적인 감성이 없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나중에 할아버지 되면 아들이나 손자들에게 '나 때에는 이 악보들 다 손으로 그렸어~! 세상 편해진 줄 알아야지.'라며 꼰대가 될 것 같다.)

피아노를 못 친 지 오래됐다. 피아노를 못 치는 스트레스가 점점 쌓이는 것도 같다. 손톱도 안 잘라 타이핑할 때마다 걸리적거린다. 얼마 만에 길러본 손톱인가 싶다. 내일 즘 잘라야겠다.




2021. 9.10.(금) -> 격리 생활 7일 차다. 내일이면 코로나 검사(8일 차) 한 번 더 하고 우체통 잠깐 만나러 나갔다 올 수 있다.


오늘은 점심에 한성교회 찬양팀 형 누나들과 줌 미팅을 했다. 한국 시간으로는 저녁 8시. 여기 스코틀랜드는 점심 12시. 생각해보면 지금 한국에 계신 분들은 나보다 미래에 살고 계시는 거 아닌가? 신기하다.

오랜만에 형 누나들 얼굴 보고 목소리 들으니 참 좋다.


집주인 Gavin은 오늘 하루 종일 옆 방 페인트칠을 했다. 다음 주, 스코틀랜드 오페라 극장의 어느 싱어가 일주일 정도 머문단다. 친해져야겠다.


영어로 대화를 하는 게 생각보다 어렵다. 하긴, 한국말도 제대로 말로 표현 못하는데 영어로 가능하겠나 싶다. 글 쓰는 연습, 읽는 연습, 연주하는 연습 등을 하듯이 말하는 연습도 해야겠다.


Gavin이 본인이 만든 영화를 몇 개 보여줬다. 작은 소품들과 인형들로 단편 영화를 만들었는데 아직 다 보진 못했지만 Gavin의 조용하고 인자하기도 한 모습과는 반대로 굉장히 어두운 영화였다. 한국의 어두운 영화, 특히 박찬욱 감독의 영화를 좋아한단다. Gavin의 영상들은 약간 내가 개인적으로 느끼는 팀 버튼의 영화와 비슷하다. (나중에 내 음악에 뮤직비디오 만들어달라고 해볼까...)

여기저기 해외 돌아다니시며 세미나도 하시는 분인데 너무 편하게 Gavin 이름 부르면서 반말 같은 존댓말을 하는 건 아닌가 싶다. 확실히 코로나 때문에 많은 이들의 생활 방식이 변한 것 같다고 한다. 요즘에 서서히 일이 다행히 생기고 있지만 예전처럼 활발하게 돌아다닐 수는 없다고 한다. 그래서 Gavin은 주로 평일에 이렇게 숙소 관리를 하면서 방에서 작업 잠깐 하는 그런 생활을 반복하나 보다. (생각해보면 예전 전쟁 때 미국에서 음주 금지령(?) 때문에 술집을 운영하던 많은 사장님들과 그곳에서 연주하던 뮤지션들이 다른 직업을 찾아 돈벌이를 하던 시절도 있었으니, 지금의 상황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항상 그래 왔듯이 이 상황을 잘 버텨내어 조금씩 서서히 예전의 평범했던 생활을 다시 찾으리라 믿는다.)  

(* https://linktr.ee/potatoroom Gavin의 인스타그램, 영상들 등등 링크이다. 나중에 생각날 때마다 여기 찾아와서 봐야겠다.)


예술가들은 사람들에게 마법의 약 한 방울과 같은 존재이다. 본인들의 창작 '과정' 혹은 '결과물'들을 통해 사람들에게 질문들을 끊임없이 던져주는 게 예술가들의 의무이다. 또한 그들의 삶을 편하게는 만들어주기는 힘들지라도 조금 더 풍성한 삶을 살도록 이끌어주고, 우리가 인간이기에, 인간일 뿐이기에 얼마나 연약하고 악한지 그리고 또한 동시에 얼마나 아름답고 사랑스러울 수가 있는지 일깨워주며 더 나아가 우리 인류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는 것이 예술가들의 숙명인 것 같다. 어느 한 사람의 인생에 마법의 약 한 방울 톡 떨어트려 그의 인생을 변화시킬 수 있다면 그것으로 예술가로서의 목적은 완성이라 생각한다. 



(왼쪽) 코리안 비건 치킨 버거에 김치가 들어간다고...? 한국에서도 김치 들어간 버거는 못먹어봤다!! (오른쪽) 우버이츠 카테고리에 한식이 있다. 참 친절하기도 하다.



10파운드 할인받아서 한국 돈으로 14,000원 정도. 버거랑 감자튀김이 이 정도면 한국이랑 비슷하지 않은가..? 아 할인받아서...


갈릭 소스로 부먹인 감자튀김(아.. 이 감자튀김은 찍먹이었어야 해...)
장조림 맛 치즈버거
보기만 해도 느글느글

우버 이츠로 버거를 시켜보았다. 일주일 동안 스파게티와 라면만 먹은 탓에 속이 느글느글하다. 고기 패티 들어간 버거 먹으면서 느끼한걸 싹 내려보내야겠다. 역시 배달의 민족답게 어딜 가도 배달 어플은 쉽게 사용하는 것 같다.


버거는 너무너무너무너무 느끼했다. 아삭아삭 샐러드가 있었다면 괜찮았을지도 모른다. 한국의 장조림 고기 맛 나는 고기에 소고기 패티까지. 너무너무너무너무너무너무 짰다. 그러나 쌀밥이 있었다면 분명 밥도둑이었을 거다. 햇반을 구해봐야겠다.


감자튀김은 실망. 눅눅하고 식어서 왔다. 배달음식이어서 그렇겠거니 싶지만 그리고 맛있게 먹긴 했지만.... 이 감자튀김은 부먹이 아닌 찍먹으로 왔어야 했다. 다음엔 미리 물어보고 찍먹으로 달라고 해야겠다.


하지만 오랜만에 고기 먹으니 좋았다. 다음 주에 밖에 나갈 수 있게 되면 이것저것 사 먹어봐야겠다. 계속 환율 시세를 보고 원화로는 얼마일까 계산하게 되는데, 영국에 왔으니 영국 시세에 익숙해져야겠다.




2021. 9.11.(토) -> 격리 8일 차. 현재 기준으로 한국에서 영국 오면 2일 차 그리고 8일 차에 코로나 검사를 해야 한다. 오늘이 8일 차니 코로나 검사를 하고 잠깐 외출을 했다.


어느 성당인지 교회인지 모를 건물
8일 차 코로나 검사 완료

아침에 검사를 하고 나갔더니 주말 아침이어서 그런지 조용했다. 밤 사이에 비가 왔었나 보다. 축축하고 서늘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굉장히 기분 좋은 냄새였다. 오랜만에 맡은 밖 냄새.


조금 걷고 싶어서 우체통 갔다가 오는 길에 조금 돌아오는 길을 택해서 걸었는데 이발소도 있고 여러 음식점들이 진짜 많았다. 몇몇 카페들은 열려있었는데 들어가서 얼른 아아를 시키고 싶었지만 아직 격리기간이다 보니 그냥 지나쳤다. 다음 주에 격리 해제되면 아침 일찍 일어나 씻고 밖에 나와서 카페 들러서 아침 먹고 하루 종일 걷는 게 루틴이 될 것 같다.


나는 걷는 걸 좋아한다. 한국에서는 뚜벅이다 보니 어쩔 수 없이 하루에 10,000보~20,000보를 걸었었는데 그 생활이 익숙해지니 자연스레 걷는 게 좋아졌다. 걷는 걸 어느 정도로 좋아하냐면, 발바닥에 멍이 자주 들 정도다. 아무리 좋은 운동화를 신어도 몇 개월 못 가서 밑창이 다 부드럽게 갈린다. 비 오는 날에는 엄청 미끄러워서 펭귄 걸음을 해야 하는 정도다. 그래서 4~5만 원 대의 운동화를 자주 사서 싣는 편인데 좋은 깔창을 깔아도 발바닥에 멍이 생긴다. 그 정도로 걷는 걸 좋아하나 보다. (군대에서 행군할 때 엄청 힘들 줄 알았는데 '응? 끝이라고?' 느꼈을 정도니 말이다.)


어제는 밤 10시 조금 넘어 잠들어서 오늘 아침 7시 30분에 정확히 깼다. 시차적응이 이제 어느 정도 다 됐나 보다. 이렇게 영국 스코틀랜드에서의 1주일이 마무리가 된다.



영상 : https://youtu.be/ssMLXZkJbg8

매거진의 이전글 Life in Scotland Episode 3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