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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JIN Mar 13. 2022

둘만 아는 낙서

단편소설 : 비밀 전언


  도시 문명이라곤 찾아볼 수 없던 시골 동네에 생긴 호텔 덕분에 일자리가 많이 생긴다고 했다. 이제 우리 마을에도 도시 사람들이 찾아오고 경기가 좀 돌거라 어른들은 말했다. 얼마간은 소유권 다툼인지 뭔지 때문에 정장 입은 사람들도 왔다 갔다 하고 그러더니 기어이 첨단의 호텔은 문을 열었다. 일들이 많았다. 갈 곳 없던 시골 동네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너나들이하는 사람들이 잔치란 잔치는 다 여기서 모였다. 옆 동네 사람들도 많이 찾아오곤 했다. 동네 어른은 이제 우리 마을도 도시가 되었다며 좋아했다. 

시골에서 나고 자라 도시에 대해서는 알 길이 없던 여자는, 대학을 졸업하고 당연하듯 호텔에 취직했다. 대리석과 카펫트, 멋진 가구들과 깨끗한 침구는 지금까지 한 번도 경험해 본 적 없는 것들이었다. 이제 막 사회로 던져진 이십 대 초반의 여자는 모든 것들이 신기했다. 교복을 벗은 지 얼마 안 되었지만 다시 제복을 입게 되어 옷 걱정은 덜었다고 했다. 부모님이 좋아하시는 모습을 보니 사회인으로 한 걸음 나아간 것 같아 좋았다.


둘은 그곳에서 만났다. 남자는 서울에서 나고 자라 정장 입고 다니는 그런 사람이었다. 이번에 지방 확장 건으로 몇 달을 내려와 머무를 심산이었다. 이 호텔은 사람들이 자동차 경주를 하러 놀러 오는 그런 곳이었는데 남자는 그쪽 안전관리 팀장으로 꽤 높은 본사의 사람이었다. 시골에 내려와 보니 경치는 좋다만 영 심심했다. 어릴 때부터 대학가를 돌며 유흥을 즐기던 버릇은 둘 곳이 없었다. 여자도 없고 반짝이는 눈으로 도시 사람을 궁금해하는 부하직원들 앞에서 남자는 담배나 뻑뻑 피워댔다. 남자는 서울 사람이어도 담배는 국산만 피운다는 특이한 점이 있었는데 시골에도 편의점이 다 들어와 있는 요즘 세상에 제 딴엔 그게 멋있는 점이라고 생각했다.
여자는 처음 해보는 비밀 사내연애가 두렵기는 했어도 새 직장, 새 사람을 만난 것이 행복하단 생각이 들었다. 쉬는 날이면 휴일을 맞춰 주변 도시로 나가기도 하고 호텔 주변 남자의 빌라에서 같이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여자는 특히 멋들어진 레스토랑에 가는 걸 좋아했는데 시골스러운 반찬만 줄곧 먹던 자신이, 영어나 이태리어로 된 새로운 걸 먹으면 새로운 도시 사람처럼 되는 거라 생각했다.

남자는 서울로 돌아간다고 했다. 그동안 서울에 갈 때면 같이 올라가 부모님께 인사드리자는 약속은 어디 가고 언제까지 여기에 이렇게 있을 수는 없다고 했다. 남자는 서울로 돌아가면 변변찮게 사는 모습을 들키고 싶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여자는 마음을 독하게 먹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어릴 때부터 익히 들어온 도시 놈들을 조심했어야 했다고 자책도 했다. 그래 나는 어리고 시간도 많은데 네가 어디 돌아간다고 잘 사나 보자 하는 마음이었다. 겨우 세 시간 거리를 떨어지는 둘은 이제 완전히 돌아서 더는 안 볼 사이가 되었다.


그 해 겨울이 지나고 시골의 호텔에는 변한 것이 없었다. 여자는 열병처럼 앓았던 첫사랑의 기억은 묻어두고 그저 자기 삶을 충실히 살아갈 뿐이었다. 점심시간이 되면 동료들과 구내식당으로 향하는 길에 있는 흡연구역에는, 본인이 남자에게 써 두었던 비밀 메세지가 여전히 남았는지도 알지 못하고 발걸음을 옮길 뿐이었다. 그날 호텔로 향하는 언덕길에는 그 해 첫 꽃이 피었다. 굉음을 내는 자동차 소리도 광광 울렸다.
















고작 개인적인 에세이나 몇 개 쓰는 게 다인데, 꼭 소설 같은 장르를 저도 써보고 싶다고 생각한 적이 있습니다. 지난겨울 지인의 결혼식에 갔다가 호텔 흡연구역에서 우연히 본 메세지를 사진으로 남겨두었는데 이를 한 번 생애 첫 소설로 만들어보았습니다. 완전히 제 상상으로 쓰인 글입니다. 시대상이나 비유 같은 것들이 모두 지금과 맞지 않습니다. 많이 부족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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