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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저 Mar 26. 2022

달콤한 당근의 유혹에 대한 경고

글쓰기 모임 하는 법 14

[글쓰기 모임 하는 법]

14. 출간을 미끼로 난립하는 글쓰기 수업과 컨설팅


(앞의 글에 이어...) 


그 멋진 일, 책을 내고 싶어하는 꿈을 노린 상술도 있습니다.     

 

한 번은 주말에 우연히 서점에 갔다가 마침 어떤 작가의 북 토크가 곧 열린다고 해서 들어가 봤습니다. 금방 나오려고 했는데 참석자가 한자릿수여서 중간에 자리를 뜨기가 애매했습니다. 그런데 저를 제외한 참석자들은 대부분 어떤 글쓰기학교 수료자들이어서, 서로 잘 아는 사이였습니다. 강단에 선 출간작가는 글을 쓰면서 치유를 받은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했습니다. 분위기는 흡사 부흥회처럼 후끈 달아올랐습니다. 그 강의를 다 듣고 나니, 미안한 일이지만……자기 자신이 드디어 저자가 됐다는 ‘자기만족’에 한껏 취해 있다는 게 느껴졌습니다.   

 

맞아요. 지금은 콘텐츠가 자산이 되는 시대입니다. "누구나 할 수 있다"라는 것은 "진입장벽이 매우 낮다"의 다른 표현일 뿐입니다. 대표적으로 출판 시장은 장벽이 높지 않은 편입니다. 누구든 돈만 있으면 책 한 권 낼 수 있습니다. 에세이 장르는 더더욱 그렇습니다. 


수요가 있는 곳에 공급이 따르듯이 세상에는 자기 글을 쓰고 싶어 하는 사람, 내 이름으로 된 책 한 권 내보고 싶은 사람들을 겨냥한 글/책 쓰기 수업이 정말 많습니다. 글쓰기 강좌는 여기저기서 열리고 있습니다. 회사에서도 전문강사들을 초청해 글쓰기 강의를 열죠. 한 달이면 책 한 권 뚝딱 나오게 해 준다는 SNS 광고 게시글을 클릭해 들어가면 출간의 A부터 Z까지 다 도와준다고 합니다. 베스트셀러 작가가 직접 첨삭도 해 주고, 출판사 연계까지 해 준다는데, 제가 봐도 정말 혹합니다. 


그런데요. 그 길은 지름길입니다. 지름길은 가장 쉽고 빠른 길입니다. 종착지는 여러분이 생각하는 그곳과 다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그런 속성 과정을 통해 일정 분량의 글을 쓰거나 나아가 한 권 분량의 책을 출간한다고 해도 그것이 여러분의 ‘최선’이었는지는 돌아봐야 할 것입니다. 자기 PR이나 주변 친지/지인들에게 배포할 용도가 아니라고 한다면요. 시간을 들여 글을 깎고 다듬고 고치고, 어쩌면 통째로 삭제하는 과정을 거쳐 나온 글과는 질적으로 다릅니다. 글뿐만이 아니라, 모든 좋은 것들은 다 힘들게 얻어지는 것 같습니다. 출간을 미끼로 모든 것이 '아주 쉽게' 이뤄질 것처럼 말하는 글쓰기 수업은 따져봐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일부 책 쓰기 컨설팅은 돈만 주면 출판해주는 출판사들과 연계해 퀄리티를 떨어뜨리고 있습니다. 전체적으로 출판시장에서 독자들이 떠나가게 하는 질적 하락 요인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책이라는 매체에  대한 최소한의 존중이 사라지고 있어서 안타깝게 생각합니다. 


최근에 이런 일이 있습니다. 아는 벤처기업 CEO가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이 있어서 자기 돈을 주고 책을 내고 싶다고 해서 알아봐 준 적이 있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건 자비로 책을 내주는 출판사의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괜찮은 표지를 만들고 감각있는 제목으로 출판을 하는 곳을 골라 그에게 알려주는 일이었습니다. 그 과정을 옆에서 지켜보다가 크게 당황했습니다. 그 출판사는 CEO가 쓴 초고의 오타 수정 말고는 단 한 글자도 본문의 글에 관여하지 않았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편집자의 역할이 완전히 생략돼 있었던 거죠. 글쓰기 모임에서 피드백을 받아 한 번씩 글을 고쳐보는 과정이, 이런 책 쓰기 과정에 전혀 들어있지 않다는 걸 알고는 깜짝 놀랐습니다. 

초고 자체를 고스란히 책으로 인쇄하는 과정은, 자칫하면 자신의 부끄러운 실수를 공개하는 꼴이 됩니다. 《오만과 편견》을 제인 오스틴이 아니라 제인 에어가 썼다고 글에 잘못 인용해도, 그걸 아무도 안 고쳐주다니요. 최소한의 팩트 체크 과정도 여러분의 기대보다 부실합니다. 그래서 책을 내기로 결정하고 나서 결과물에 대한 과정도 조심해야 합니다. 활자매체가 가진 엄격함이 있습니다. 한번 잉크로 찍어낸 것은 연필로 쓴 것처럼 쉽게 지울 수가 없습니다.       


우리 주변에는 정말 많은 글쓰기 수업이 있습니다.  

저는 글쓰기에 대해 ‘단언’ 하는 사람은 의심합니다. 전문가일수록 단언하는 데에 신중합니다. 대학을 갓 졸업한 학사는 이제 자기 분야에 대해선 모르는 게 없다고 생각하고, 대학원 석사, 박사 과정을 거칠수록 자기는 아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것, 즉 '무지'를 깨닫는다고 합니다. 글쓰기도 처음에는 무슨 법칙이라도 있는 줄 착각하지만, 죽을 때까지 모르는 게 글쓰기입니다. 저도 글쓰기에 대해서는 늘 확언을 하지 않으려고 경계하고 있습니다. 베스트셀러 작가라서 다 안다고요? 진짜 베스트셀러 작가는 자신을 베스트셀러 작가라고 스스로 소개하지 않더라고요.  


그렇다면 어떤 글쓰기 수업/모임을 찾아야 할까요. 기준을 세워야 합니다.  


첫 번째, 나는 마감을 잘 지킬 수 있나, 입니다. 

마감 그 자체가 필요한 것이라면 주 5일, 혹은 매주 글쓰기를 하는 모임/수업에 들어가면 됩니다. 다만 내가 실천할 수 있는 현실을 냉정하게 생각해 봐야 합니다. 초기단계 의욕만으로 ‘날마다 글쓰기 모임’에 들어가면 형식적인 몇 줄 일기에서 내내 제자리걸음 하게 됩니다. 


두 번째, 나는 지금 당장 책을 내고 싶은가, 입니다. 

글쓰기기 아니라 출판 자체가 당시일내의 목적이라면 일대일로 수정해주고, 출판사까지 연계해 줄 수 있는 곳을 찾으세요. 아마 일대일 지도 수업 대부분은 소규모 출판사를 직접 운영하고 있거나 그런 곳과 밀접하게 연결돼 있습니다. 수업료/출간비용도 적지 않습니다. 그 출판사가 그들의 이익만을 꾀하는 것인지는 기존에 출간한 글들의 만듦새를 미리 보고 꼼꼼하게 판단해야 합니다. 물론, 작지만 기획력 좋고, 잘 만드는 1인출판사도 많습니다. 


세 번째, 글쓰기에 어떤 법칙이 있어서 단시일에 배울 수 있다고 자신이 너무 조급하거나, 착각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봐야 합니다. 


저는 그래서 이렇게 곧장 책쓰기로 나아가는 방식을 추천하지 않습니다. 그 고리에서 가장 중요한 하나가 빠졌으니까요. 글쓰기 수업이나 에세이 출간 붐 이전에 생략된 중요한 단계, 서로 쓰는, 읽고, 고쳐주는 ‘글쓰기 모임’이 우리 주변에 더 많아져야 한다고 믿는 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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