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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저 Mar 12. 2019

열일곱 살의 기-스

남들은 신경도 안 쓰지만 자기 얼굴을 거울로 볼 때 한 번 더 눈길이 가는 곳들이 있다. 나의 경우는 아랫입술 밑 움푹 파인 곳에 가로로 난 흉이 그렇다. 단번에 눈에 띄진 않아도 열몇 바늘 꿰맨 것이니 아주 작은 상처는 아니다. 그래서 화장을 하고 나면 마지막으로 이 흉터를 손가락 끝으로 꾹꾹 누르게 된다. 들어가라, 들어가라. 그렇다고 대단히 보기 싫은 건 또 아니어서 흉터 제거 수술을 생각해본 적은 없다. 꽤 죽이 잘 맞아 취재원에서 친구가 된 한 지인은 “학교에서 껌 좀 씹으셨나 봐.”라고 놀렸다. 물론 내가 먼저 말하지 않는 한 사람들은 이 흉을 발견하지 못한다(보고도 말 안 하는 건가? 그럴 가능성도 있다).   

    

교복 입고 면도날까지 씹지는 않았지만 흉터가 학창 시절에 생긴 건 맞다.

내가 다니던 고등학교는 경사진 곳에 있어서 학교 이름 대신 ‘언덕 위의 하얀 집’으로 불렸다. 집에서 차로 20분 거리. 나는 매일 엄마가 싸준 썰지 않은 김밥 한 줄을 쥐고 아빠 차에 올라탔다. 김밥에는 달래 간장, 볶은 김치, 멸치조림 같은 것들이 그날의 냉장고 사정에 따라 융통성 있게 들어갔다. 교문 앞에 도착할 때까지 운전석 옆자리에 앉아 김밥을 우걱우걱 다 먹는 것이 그 시절 나의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이었다.

그날은 간밤에 눈이 제법 많이 왔었다. 마지막 김밥 꽁지를 입 안 가득 욱여넣고 가방에서 실내화를 꺼내 신었다. 날이 추우니까 차 안에서 이렇게 미리 갈아 신으면 교실에 1초라도 빨리 들어갈 수 있다.

아, 춥다. 몸을 잔뜩 웅크리고 무념무상으로 전진, 또 전진…. 조금만 더 가면 교실이다, 싶을 때였다. 실내화가 빙판에 미끄러지면서 주머니에 넣은 손을 미처 빼지도 못한 채 그대로 앞으로 고꾸라졌다. 이른 아침부터 지구에 원치 않은 키스를 한 것이다. 꽈당, 하며 앞이 까매졌고 넘어진 걸 자각하자마자 바로 일어났다. 남녀공학이었고, 아픔보다 창피함이 훨씬 더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 열일곱 살이었다. 벗겨진 슬리퍼를 다시 신고 허둥지둥 교실로 들어서서 내 자리에 앉았다. 짝꿍이 흘깃 보더니, 깜짝 놀라 소리쳤다.


“야! 너 입에서 피 나!”

넘어지면서 입술 아래가 터졌던 것이다. 이 사이사이 검붉은 피가 고이고 아랫입술이 붓기 시작했다. 양호 선생님이 거즈로 입술과 턱의 피를 닦아주고 얼른 병원에 가라고 했다. 1교시는 지구과학 시간. 선생님은 덩치가 큰 거구로, 유독 흰색 바지에 멜빵을 자주 메는 40대 남자여서 우리는 그를 홍금보라고 불렀다. 교실에 들어온 홍금보는 아랫입술 아래로 피떡이 져서 팅팅 부은 날 보더니 대뜸 진품명품 감정 위원단 풍의 엄숙하며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여자는 얼굴에 기-스 나면 안 돼!”

순간, 가격이 수직 추락한 기분이었다. 나는 하나의 가구였다. 어떤 부주의한 손님이 지나가면서 핸드백으로 찍- 흠집을 내버렸고, 그걸 알게 된 주인이 주저 없이 70퍼센트 가격 인하 딱지를 붙여 할인매장으로 보내버린, 억울한 기분이 든 3단 서랍장이었다. 나는 왠지 모를 불쾌함에 입을 삐죽 댔지만 그 순간에는 대들지 못했다. 그 기분 나쁨을 뭐라 정확히 설명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잘 가꾼 외모가 사회의 필수 덕목이 되는 건 한 사람의 인생에서 대단히 억울한 일이다. 나중에 알았지만 이 사회가 나에게 들이대는 외모의 잣대는 대단히 엄격했다. 너무나 진지하게 엄격해서 황당할 정도였다. 이 일은 그 황당함의 서막이었을 뿐이다.    


결국 아빠는 둘째 딸을 등교시킨 지 한 시간 만에 다시 교문 앞으로 불려 나와야 했다. 얼굴 기스 발언을 듣고 분이 나서 병원에 가기 싫었지만 그보다는 오전 수업에 당당히 빠져도 된다는 ‘합법적 땡땡이’에 대한 설렘이 압도적으로 강력했던 때였다.    

아빠는 입술 아래에 구멍이 난 딸을 성형외과가 아닌 학교 근처 재래시장 초입 한 동네 의원에 데려갔다. 아빠는 분명 홍금보 같은 외모지상주의자는 아니었다. 없는 살림에 치료비로 예상 못한 지출을 해야 하는 게 미안해서 딸은 웃었고, 아빠는 딸의 찢어진 상처 사이로 치아가 보인다며 어이없어했다.   

의원은 썰렁했다. 백발이 성성한 의사와 중년의 간호사가 있었다. 의사는 날 치료대에 눕히더니 별거 아니라는 듯 돋보기를 쓰고 턱에 마취 주사를 놓은 다음 의료용 실과 바늘로 상처를 꿰매기 시작했다. 3단 서랍장이다가 이번엔 한 장의 천 쪼가리가 된 기분이었다.


몇 주 뒤 거즈를 뗀 의사가 상처 부위를 살펴보더니 조금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상처가 붙은 것으로만 점수를 매긴다면 백 점이었다. 문제는, 상처 자리에 실지렁이 같은 흉이 생겨버린 것이었다. 내 얼굴에 호쾌하게 바느질을 하며 별거 아니라던 태도로 일관했던 백발의 의사가 당황하며 후다닥 내린 결론은 이거였다.  


“흠… 켈로이드 체질이구만, 켈로이드!”  


켈로이드 체질은 쉽게 말해 원래 상처보다 흉터가 크게 남는 체질이다. 다른 사람들은 금방 사라지는 흉터가 시간이 지나도 잘 안 없어진다. 피부 조직들이 상처에 과민 반응을 일으켜 생긴다고 한다. 백발 의사의 바느질이 영 서툴러 흉이 크게 진 걸지도 모른다는 의구심을 완전히 지우진 못했지만, 다행히 그 이후로는 몸에 칼 댈 일이 없어 내가 정말 켈로이드 체질이 맞는지 확인하지는 못했다.   

     

흉터는 기억을 잊지 않도록 몸에 새겨준다. 이 흉터도 마찬가지였다. 어떤 사람이 기필코 되겠다는 것까지는 아니어도, 어떤 사람이 되지는 말아야지 하는 것은 확실히 각인시켜주었다. 그것은 누가 뭐라고 하든지 바깥의 시선에 휩쓸리지 말자, 얼굴 기스로 나의 가치가 결정되어버리는 삶을 살지 말자는 것. 한 가지 더. 홍금보처럼 편견에 사로잡힌 말을 스스럼없이 내뱉는 사람은 되지 말자.

     

세월이 흘러 막 서른 살이 됐을 때 업무상 두 살 연상의 남자를 만났는데 그가 던지는 밑도 끝도 유머에 끌려 사귀게 됐다. 만난 지 한참이 지나 그는 말했다.    


“처음에 얼굴 딱 보자마자 그 흉터부터 보이던데.”

“그래? 이게 그렇게 눈에 띄나?”   

“응. 그러던데.”

“어땠어?”

“어땠긴. 한 번 더 얼굴을 보게 됐지.”


내 얼굴에서 흉터를 가장 먼저 본 남자.

그 남자가 지금의 남편이다.       




《이 매거진은 연재가 끝났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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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 글이 포함된 에세이는 《오늘도 울컥하고 말았습니다》 란 제목으로 출간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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