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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저 Mar 05. 2019

친절이 주업무는 아니잖아요

“얻다 대고 서비스래!”

의학 드라마 〈라이프〉에서 인상 깊었던 장면이 있다. 새로 부임한 대학병원 사장 조승우가 응급의학과나 산부인과 같은 적자 진료과목 의사들을 지방으로 보내는 고강도 구조조정 계획을 세운다. 여기에 보험이나 건강식품 판매에 의사들도 동참하라고까지 하자 모두들 집단 반발한다. 새 사장의 공지는 선전포고다. ‘의료서비스 질을 개선하기 위해 모든 것을 바꾸겠다.’

공지를 읽은 신경외과 센터장 문소리는 한쪽 눈썹을 위로 치켜올리며 더러운 오물에 침을 카악 퉤 뱉듯이 말한다. ‘얻다 대고 서비스래.’ 정확히는 ‘어.따.대.고.’라고 한 글자 한 글자 힘주어 말한다.

자신의 직업에 서비스의 굴레가 씌워지면 노동은 대단히 가혹해진다. 목표가 고객 만족이 아니라 맡은 업무의 성과라면 업무 관계가 명확해진다. 반면 서비스직은 업무 범위가 안개처럼 모호하다. ‘고객님 마음을 감동시킬 때까지…’ 라는 게 얼마나 불가능한 미션인가.

     

방송사에 다닐 때 유명 프로그램 제작 피디 출신 사장이 있었다. 간부로 있다 처음 사장이 된 그는 매우 의욕이 넘쳤다. 지역 방송사에 처음 와서 보니 모든 게 고인 물 같았을 것이다. 그렇다고 ‘우리는 1 급수처럼 아주 잘 흘러가고 있다고요!’라고 강력하게 힘줘 말할 자신은 또 없는 난처한 상황이었다.     

새 사장은 모든 걸 바꾸기 시작했다. 방송사가 갑자기 지역사회나 지역대학에 기부를 하자며 직원들을 모아놓고 열변을 토했다. 광고며 협찬이며 돈을 받을 줄만 알았지, 우리가 돈을 낸다고? 재정이 좋은 편도 아닌데 왜? 사장은 검은색 세단이었던 사장 관용차를 소형차로 바꾸겠다고 선언했다. 권위주의를 벗어나야 한다고 기어코 차를 바꿔 타고 다녔다. 직원들은 또 당황했다. 기자들에게도 직격탄이 떨어졌다. 보도국 명칭을 바꾸겠다는 선언이었다. 뭐로?    

‘보도서비스국’  

새 사장은 말했다.

“시청자들에게 다가가려는 의지를 보여주는 차원입니다. 방송은 기본적으로 서비스입니다. 그 사실을 강조하기 위해 보도서비스국으로 다시 태어납시다.”

조승우와 전혀 비슷한 구석이 없었던 새 사장의 선언에 동조하는 기자는 단 한 명도 없었다. 물론 문소리와 닮지 않은 우리도 반발했다. 가전제품 AS센터도 아니고 보도국을 서비스국으로 바꾼다니. 결국 소속을 보도서비스국으로 바뀐 명함이 전 기자들에게 다시 새로 지급됐다. 몇 년의 시간이 흘러… 사장의 임기가 끝나고 새 사장으로 바뀌자마자 보도서비스국은 도로아미타불 보도국이 됐다.

서비스직으로 부서 간판을 갈아치운 사장의 마음을 영 이해 못하는 건 아니다. 일방적으로 뉴스를 만드는 공급자적 시각을 바꾸어보고 싶었을 것이다.   

‘얻다 대고 서비스래’ 소리 질렀을 때 문소리의 마음속에는 의사의 자존심과 특권의식이 담겨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내게는 서비스를 강조하는 사측의 태도가 결국 더 중요한 업무의 본질을 훼손할 수 있다는 걸 알고 경계하는 조직 구성원의 일성으로 들렸다.

    

서비스를 생각하다 보면 생각나는 일화가 있다.  

내 남편이 다니는 회사는 야근이 일상이라 매일 오후 5시만 되면 날마다 빵과 우유가 간식으로 나온다. 삼립 보름달부터 파리바게트 초코 소라빵까지 종류도 매일 다르다. 직원 대부분은 배가 고파도 집에 가서 밥을 먹거나 밖에서 사 먹기 때문에 부서 공용 책상에는 다음 날 오전까지 빵과 우유가 많이 남아 있다. 결혼하고 첫 보금자리인 아파트로 이사 온 지 얼마 안 돼 남편은 퇴근길에 이 간식을 하나씩 챙겨 와서 경비실에 갖다 주기 시작했다. 첫 신혼집이어서 애정이 가는 모양이었다. 가방 없이 출근해도 되는데 간식을 담아 와야 한다며 꼭 가방을 챙겨가는 걸 보면 그것을 나름의 루틴으로 생각하는 것도 같았다.

우리 아파트 경비실은 두 명의 경비원이 24시간씩 돌아가면서 근무를 서는 체제다. 가수 조영남과 비슷하게 생긴 A 경비원과 탤런트 우현처럼 생긴 B 경비원이 있다. 남편의 말에 따르면 A 경비원은 빵 우유를 건네받을 때마다 황송하다는 듯한 표정과 몸짓으로 “친절!”이라고 거수를 올리며 “잘 먹을게요. 아이고 매번 주시네.”라고 한단다. 남편은 인사를 받을 때마다 손사래를 치면서도 은근히 뿌듯해했다.    

반면 B 경비원은 퉁명스럽게 “어어.” 하면서 그저 받기만 한다는 것이다. 어떨 땐 녹즙이나 야쿠르트 배달원 대하듯 당연하게 받는다는 거다. 나 역시 가끔 B 경비원이 경비실 앞 의자에 앉아 지나가는 사람들을 빤히 쳐다보는 것이 영 께름칙했다. 멋대로 올려붙인 바짓단 아래로는 허연 살비듬이 껴 있었다. 기분이 별로라는 남편에게 “뭐, 우리가 인사받으려고 하는 건가, 회사에서 버려지는 게 아깝기도 하고 그러니까 기왕이면 간식으로 드시라고 드리는 거지.”라며 달랬지만 나 역시 속으로는 영 맘에 들지 않았다.

그렇게 ‘자발적 빵셔틀’이 3년이 다 되어가는 차에 어느 날 반전이 등장했다.

우리 집 아래층에 이삿짐센터 차가 사다리를 올리고 있는 걸 본 남편이 A 경비원에게 “14층 이사가나 보죠?”라고 물었다. 그랬더니 A 경비원이 “부분 이사를 한다네요. 근데 몇 호세요?”라고 말했다. 그렇게 상냥하게 늘 고맙다고 하던 그가 여태껏 남편이 몇 호 사는지도 모르고 있었다는 것이다. B 경비원은 퉁명스러웠지만 우리 부부가 지나갈 때 택배가 있으면 손짓으로 “어-이.” 하고 불러다가 택배 챙겨가라고 했던 걸 보면 분명히 호수를 알고 있는데 말이다.

남편은 어떻게 그럴 수 있냐고 말하면서 황당해했다. 주민들이 몇 동 몇 호에 사는지 전부 알아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3년간 간식을 건네준 주민이 여태 몇 호인 지도 모르고 있었다는 건 좀 그렇긴 하다.

울상인 남편 표정이 우스워서 웃다가 순간 깨달았다. 일을 더 잘하는 사람은 어느 쪽일까?

내가 보기엔 B 경비원이다.      

B 경비원은 본연의 임무에 충실했다. 주민들에게 친절하게 인사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이 뭔지를 알고 있었다. A 경비원은 친절하긴 했지만 그저 그뿐이었다.    


우리가 서비스를 받다 보면 친절함만이 유일한 기준이 될 때가 종종 있다. 항공 승무원의 최우선 업무는 안전 활동인데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들의 과잉 미소에 무척 익숙해 있는 것처럼 말이다. 서비스를 받을 때 중요한 건 뭘까. 고객인 나를 애지중지만 해달라는 건 분명 아닐 것이다. 우리가 필요 이상의 친절한 서비스를 일상적으로 받으며 길이 들여져 버린 걸까. 이름을 몰라 알파벳으로 서술할 수밖에 없는 B 경비원의 얼굴을 떠올리며 내내 죄송한 마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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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 글이 포함된 에세이는 《오늘도 울컥하고 말았습니다》 란 제목으로 출간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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