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시 안에서
드라마에는 흔하게 나오는 장면이 있다. 어딘가로 향해 달리는 버스나 택시 안에서 서글픈 눈물을 쏟아내는 주인공. 그런 장면을 볼 때마다 안쓰러운 감정보다도 더 먼저 드는 생각이 있었다.
‘사람도 있는데, 창피하진 않을까?’
사람들의 시선에 심히 신경을 곤두세우곤 했던 나로서는 모르는 사람들이 있는 공간에서 온전히 감정을 분출해내는 일이 좀, 많이, 부끄러웠다.
그랬던 내가 대낮부터 택시에 올라타 울음을 터뜨렸다. 그것도 엉엉. 부끄러운 감정은커녕 나도 모르게 툭 튀어나온 눈물은 붙잡을 수가 없었다. 그동안 택시에 올라타 우는 손님이 많았던 걸까. 아니면 살아온 날들에 대한 연륜이었을까. 택시 기사님은 울고 있는 나를 보며 당황스러워하지 않으셨다. 뒷좌석에서 우는 나를 잠시 내버려 둔 채 한참을 묵묵히 계셨다. 좁은 차 안은 고요하고 축축했다. 조금씩 집에 다다르기 시작하고 수도꼭지가 서서히 잠길 때쯤 기사님은 적막을 깨고 허허 너털웃음을 지으셨다.
“학생, 하늘 좀 봐요. 이렇게 날이 좋은데 왜 울어요?”
곧 차창이 스르륵 내려가고 선선한 바람이 들어와 나를 쓰다듬었다. 뜨거워진 두 눈에 닿는 시원한 공기는 제법 괜찮았다. 하지만 난 기사님의 물음에 대답하지 못했다. 그럴 수가 없었다. 나도 내가 왜 우는지 몰랐으니까. 마음 안에서 무언가가 잔뜩 얼기설기 엉켜 드는 기분이었다. 잔뜩 헝클어져 풀기 힘든 실타래들이 뒤죽박죽. 풀 수 있는 첫머리가 보이지 않았다.
얼마 안 가 집 앞에 택시가 멈춰 서고 온갖 짐들과 축축해진 몸을 길바닥에 내려놓았다. 차문을 닫고 바닥에 놓인 짐을 주섬거리며 챙기는데 기사님이 창문 너머로 내게 마지막 말을 건네셨다. 그러고는 감사 인사도 전하기 전에 쌩하니 가버리셨다.
“울지 마요, 학생.”
택시가 저만치 사라질 때까지 어정쩡하게 서 있던 나는 무심코 하늘을 올려다봤다. 나와 달리 몹시도 푸르고 해맑은 얼굴에 문득 내 얼굴에 나있는 눈물 자국이 낯설게 느껴졌다.
그날의 난 열아홉이었고, 1년 좀 넘게 다닌 미술학원을 그만두는 날이었다. 마지막 상담을 하는 중에 친구들이 대신 짐을 싸줬다. 알 수 없는 감정으로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와 건물 앞에서 친구들과 웃으며 사진을 찍었다. 택시에 올라탈 때까지 친구들에게 손을 흔들었다. 눈물이 터진 건 문이 닫히고 단 몇 초 만의 일이었다. 표정이 순식간에 일그러졌다. 위태롭게 넘실거리던 감정이 커다란 파도가 되어 범람하고 나를 집어삼켰다.
여전히 눈물의 정확한 원인은 잘 모르겠다. 아쉬움인지, 슬픔인지, 미련인지, 두려움인지, 섭섭함인지. 아니면 이 모든 것의 종합인지. 이제 끝이구나 싶으면서도 새로운 시작 같기도 했다. 하지만 어디로 가야 하는지는 몰랐다. 믿고 걸어왔던 길에 접근 금지 팻말을 걸어두고 돌아보니 다른 길은 보이지 않았다. 막막했다. 그런 내가 한심했던 것도 같다. 게다가 미술을 그만둔 게 ‘선택’이라기보다는 ‘포기’ 같았다. 여러 감정의 혼합. 순서도 없이 서로 마구 뒤엉키다 보니 스스로 확실하게 정리하기 어려웠다.
몇 개월 전 길 한구석에 쭈그려 앉아 서럽게 우는 여자를 보았다. 나와 몇 살 차이 안 날 것 같은 젊은 사람이었다. 여러 시선은 아랑곳하지 않은 채 헐떡이며 울어댔다. 그 서러움이 콕하고 찔러올 만큼. 보기만 해도 가슴 한편이 찌르르했다. 사람들은 힐끔힐끔 쳐다보며 갈 길을 갔고, 나 또한 그랬다. 무작정 말을 걸기엔 난 많이 소심했다. 하지만 온종일 그 장면이 머릿속을 떠다녔다.
길에서 구슬피 우는 사람을 본 그날에도 하늘은 너무도 새파랗고, 예뻤다. 문득 그때 탔던 택시에서의 기억이 떠올랐다. 하늘 좀 봐요. 이렇게 날이 좋은데 왜 울어요? 어딘가 투박하지만 다정한 말과 붉어진 두 눈을 식혀줬던 바람, 무심결에 올려다봤던 하늘, 낯설게 느껴졌던 눈물자국. 만약 기사님의 한마디가 없었더라면 그저 괴로운 날 중 하나로 남았을 터였다. 어쩌면 그 물음은 울고 있는 어린 손님을 위한 택시 기사님만의 작은 위로가 아니었을까.
오늘도 날이 참 좋다. 나도 그날 길에서 서럽게 울고 있던 그녀에게 가닿지 못할 말을 건네본다.
하늘을 봐요-.
이렇게 날이 좋은데 왜 울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