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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정철 Oct 12. 2023

제33화 가을 단풍의 애틋한 아름다움

오 세브레이로(O Cebreiro)~트리아카스텔라

#철이의_산티아고_순례길

 - 1차 순례: 2022.7.25~8.14, 493km, Saint-Jean~Léon

 - 2차 순례: 2023.10.3.~10.25, 329.5km, Léon~Santiago de Compostela)

#걷기 7일 차(27일 차)

#오 세브레이로(O Cebreiro)~트리아카스텔라(Triacastela)

#22.2km / 7시간 17분

- 누적 : 681.9km / 799km

#숙소 : Albergue Atrio 4인실 11유로

- 시설이 깨끗하고 침대도 튼튼. 와이파이도 잘 되고, 음식을 해 먹을 수 있음


오 세브레이로의 일출

아침 7:50, 기온은 14도. 고도가 높은 곳인데도 기온은 그리 낮지 않은데 바람이 많다. 오랜만에 제대로 된 침대에서 늦게까지 푹 잤다. 어제저녁 식사를 한 카페에서 모닝커피도 한 잔 하고, 일출을 보러 마을 입구로 가 본다.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서 해가 떠 오르기를 기다리고 있다. 저 멀리 산 머리 부분이 붉게 물들어 그것만으로도 장관이다. 새해 아침에 이곳에서 해돋이를 하는 사람이 많을 것 같다.


오 세브레이로(OCebreiro)는 해발 1296m에 갈리시아 지방의 신화적인 산인  오스 앙카레스(Os Ancares)와 오 코우렐(O Courel) 사이에 위치하고 있다. 위치, 역사, 전설 및 건축물 가치로써도 의미 있는 마을이며, 이 건축 단지에서는 "파요사(palloza)"라는 독특한 건축물이 4채가 보존되어 있다.

파요사는 사람이나 짐승이 살 수 있게 지은 집으로 돌로 만든 벽채 위에 초가를 얹은 형태이다. 로마시대 이전부터 살던 원주민의 전통적인 초가집을 말하는데, 지붕에 얹은 재료인 ‘밀짚’에서 그 이름이 유래한다.  


파요사는 우리나라의 초가집과도 비슷한 점이 있기는 하나 외형적으로 초가지붕이 우리나라 초가집보다도 훨씬 높고 부피가 크다. 지붕 아래 부분이 돌담으로 되어 있어서 무거운 지붕을 떠받칠 수 있는 구조다. 거센 비바람과 눈보라, 강한 햇볕 등 고산 지대의 험한 자연환경 속에서 인간이 살아가기 위한 진화적 산물이 아닐까. 내부 구조는 어떻게 되어 있는지 궁금하나 들어가 볼 수가 없다.


햇살의 눈부심과 단풍의 애틋함

일출을 기다리고 있다가 요 며칠 계속 보던 분을 만난다. 오 세브레이로 아래쪽 두 번째 마을인 라 화바에서 06시에 출발해서 올라왔다고 한다. 이번에는 부부가 같이 있다. 남편 분은 걸음이 빨라 먼저 가고, 아내 분은 한참 뒤에서 따로 가는 부부다. 따로 가는 이유도 제각각이다. 아내 분 말에 의하면, 두 분 모두 영어가 안되어서 전화로 숙소 예약이 어려워 걸음 빠른 남편이 먼저 가서 숙소 예약을 해서란다. 남편 분 말에 의하면, 아내는 사진작가도 아니면서 온갖 사진을 다 찍고 다녀서 같이 다닐 수 없어서란다. 그래도 이곳까지는 밤 산행이라 같이 올라오신 모양이다.


그러고 보니 이번 가을 순례는 여름의 분위기와 사뭇 다르다. 여름 순례에는 젊은이들이 많다. 방학을 이용한 대학생, 대학 진학을 하기 전의 고등학교 졸업생, 긴 여름휴가를 낸 직장인이 많고, 어린 자녀나 반려견과 함께 단기간에 일부 구간만을 순례하는 이들도 더러 있다. 기타를 메고 다니는 낭만파 과객도 있어 길가의 카페나 알베르게에서도 기타 치고 노래를 하기도 한다.


반면에 가을에는 전체적으로 나이가 많은 분들이 많다. 한국인 여행사 단체로 오신 분들도 대부분 60~70대의 은퇴자들이라고 그제 만난 조대표님이 전해 주셨다. 한국분들만이 아니라 외국인들도 그렇다. 독일커플(별명 파스타, 10명이 먹을 정도의 파스타를 둘이서 요리해서 해 치움), 각각 와서 커플처럼 손잡고 다니는 한국인 두 청춘, 긴 머리카락을 휘날리는 프랑스 청년들 등 젊은이들도 있긴 하지만 50대 중반인 나보다도 확실히 나이가 많아 보이는 이들이 다수다.


한여름에 팜플로나, 로그로뇨, 부르고스, 사하군을 지나 레온까지 이어지는 해발고도 600m 이상의 메세타 평원의 뜨거운 밀밭 사이를 걷는 건 젊은이들에게도 힘든 일이다. 아직 여름의 열기가 다 가신 것은 아니지만 아침저녁으로 시원한 바람이 불고, 태양의 열기도 참을만한 가을 순례가 나이 든 이들에게 더 현명한 선택이지 싶다.


그래서 일까, 한여름의 분위기는 밝은 햇살의 눈부심이라면 이 가을의 분위기는 가을 단풍의 애틋한 아름다움이다. 순환의 역사를 아는 자들, 삶의 순리를 받아 들이는 자들의 아름다움이 있다.


포이오 고개를 넘어

오 세브레이로에서 길이 두 갈래다. 메인(Main way)과 서버길이 있는데 메인 길이 추천길이라 이 코스를 걷는다. 사흘 만에 다시 내 배낭을 메어서인지 배낭의 무게가 어깨를 거쳐 허리와 다리로 뻗쳐오는 느낌이다. 그래도 아침 공기가 상쾌하고 숲으로 난 길이 좋아 걸음이 가볍다. 리안레스(Lianres)는 오 세브레이로에서 LU-633 도로를 따라 걷다가 처음으로 만나는 아주 작은 마을이다. 마을을 지나도 숲길이 계속된다.

숲길 끝 도로를 만나는 곳이 산 로케 고개다. 산 로케는 프랑스 출신으로 부친이 자기 고장의 장관일 정도로  부유하게 살았으나, 20세에 부모를 모두 잃고 성지순례를 떠나 병든 순례자를 치료하고 도와주며 공경받는 성인이 되었다고 전해진다. 이 고개에 건센 바람을 이겨내며 고개를 넘은 커다란 순례자 동상이 있다. 고개 너머로는 경사가 급하지는 않으나 오르내림이 반복되는 산길이 이어진다.


8.5km를 지나, 포이오 고개를 오르기 전, 오래된 예배당 옆에서 잠시 쉬어간다. 포이오 고개(Alto de Poio 1335m)까지 오르막이 힘들다. 경사가 매우 가팔라 자전거 라이더들도 모두 내려서 끌고 올라가며 힘겨워한다. 다행히 고개는 500m 정도라 길지 않다. 1335m 고지에서 내다보는 경치가 장관이다. 저 아래 낮은 구릉들 뒤로 높고 낮은 산들이 겹겹이 늘어서 있다. 갈리시아 주로 넘어온 이후로는 단풍도 더 짙어졌다. 11월쯤에 이곳을 찾는 순례객들은 더 다양하고 아름다운 색으로 수놓은 산을 감상할 수 있겠다. 고개 정상에 있는 바에서 잠시 쉬고 내리막길을 걷는다.   

포이오 고개를 지나오니 길이 다시 두 갈래다. 오 세브레이로에서도 길이 두 갈래인데 두 길의 길이는 거의 같다. 중간에 합쳐졌다가 다시 갈라지는 지점이다. 여기서도 Main Way를 따라 걷는다. 완만한 내리막길, 햇살은 뜨겁지 않고 길은 순하다.

폰프리아(Fonfria 11.8km)와 비두에도(O Biduedo 14.3km), 필로발(Fillobal 17.3km)과 파산테스(Pasantes 18.9km)는 소가 차지하는 땅이 사람이 사는 땅보다 넓은 소들의 마을이다. 길을 걸으면서 소똥을 잘 피해 다녀야 한다. 길가에 떨어진 밤을 한 줌 줍고, 오늘의 휴식처 트리아카스텔라(Triacastela)에 도착한다.




#산티아고_길_위에_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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