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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ingmong Jul 08. 2019

꼭 결혼을 해야 하냐고 묻는 당신

마흔이 서른에게



“나이도 찼고 결혼할 사람도 있으니 집에서는 얼른 서두르라고 하는데 꼭 결혼을 해야 하는 건지 모르겠어요. 정말 꼭 결혼을 해야 해요?”


이건 정말 어려운 문제다. 결혼도 하고 아이도 있으니 정답을 알지 않냐는 듯 당신은 내게 그 어려운 질문을 던졌다. 이 문제는 아마도 인류가 시작된 이래로 가장 풀기 어려운 난제가 아니었을까. 딱히 정해진 정답이 없으니. 


“어떤 대답을 듣기 원해요? ‘결혼하면 좋아요’라는 전제조건으로 이야기 해 줄까요, 아님 ‘결혼하면 안좋아요’라는 전제조건으로 이야기 해줄까요?”


성의 없어 보이는 말 같지만 별달리 해 줄 말이 없었다. 당신은 골똘히 생각했다. 그러더니  결혼하니 어떤 것 같으냐, 결혼을 후회하지 않느냐, 다시 태어나도 지금의 남편과 결혼할 것이냐 등 내 경험에 빗대어 대답해 달라고 졸랐다. 


해보지 않은 사람에게 결혼은 미지의 세계다. 결혼을 하기 전까지 기대감, 설렘, 두려움, 공포, 호기심 등이 당신의 영혼을 잠식할 것이다. 설령 어렵사리 결혼을 결정했다 하더라도 식장에 들어서는 순간까지 도망치고 싶은 충동에 휩싸일 것이다. 그러니 결혼식을 무사히 마친 친구들을 볼 때면 ‘대단한 용기’라는 생각이 절로 들 것이다.

실은 내가 그랬다. 


아무리 사랑하는 사람이 있고, 그 사람이 당신 인생에 없어서는 안 될 존재라고 못 박는다 하더라도 결혼은 어떤 식으로든 무모한 선택일 수밖에 없다. 결혼 후 어떤 일이 일어날 지 아무도 예측할 수 없기 때문이다. 지금 당신 앞에 있는 사람이 어떻게 변할 지 그 누가 알겠는가. 당신이라고 예외일까. 당신도 얼마든지 변할 수 있다. 



영원한 사랑을 약속한다’는 것은 다른 말로 ‘약속이라도 해야 사랑을 겨우 지켜낼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 약속이란 것이 얼마나 허무하고 허약한가! 고작 작은 반지에 약속을 하고 맹세를 한다는 게 가당키나 한 일인가. 


결혼을 고민하는 당신은 누가 들어도 낭만적인 러브 스토리를 가지고 있다. 지금의 남자 친구를 만나기까지 우여곡절을 겪었다. ‘폭탄 취급도 받아 봤고 폭탄도 만나본 다음’ 만난 사람이 지금의 남자 친구다. 


연애를 시작하고 처음 몇 달간은 구름 위에 뜬 기분이었다. 문자 한 통에 많은 의미를 부여하기도 했고, 밤새 핸드폰이 뜨거워지도록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이 사람이라면 당신 본연의 모습을 사랑해 줄 유일한 사람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만난 지 5년이 지난 지금, 연애는 현실이 되어 가고 있다. 헤어지려고도 해봤지만 그동안 든 정이 만만치 않다. 남자 친구는 마치 ‘공기’처럼 당신의 일상에 당연하게 존재하는 사람이 되었다. 아마 남자 친구에게 당신도 그와 비슷한 존재일 것이다. 


“남자 친구가 이제는 가족 같아서 헤어질 수도 없을 것 같아요. 그만한 사람을 다시 만나서 처음부터 다시 시작할 자신도 없고요. 나이도 있으니 귀찮기도 하고.... 결국 이렇게 지내다 결혼까지 가게 될 것 같은데, 결혼은 자신 없고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나는 당신의 이야기를 담담히 들었다. 실은 나도 그래서 결혼했다. 또 다시 누군가를 만나서 사랑한다는 게 세상에서 가장 귀찮은 일처럼 느껴졌다. 마치 다 푼 문제집을 처음부터 다시 푸는 것 같았달까. 

결혼을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를 고민할 때 나의 숙부는 이렇게 말했다. 


“혼기가 찼을 때 누군가 옆에 있으면 그것 또한 인연이다.”


나는 그 인연대로 결혼을 했고, 결과는……. 행복하기도 했고 불행하기도 했고, 평범하기도 했고 특별하기도 했고, 재밌기도 했고 지루하기도 했던 게 나의 결혼 생활이다. 

그러니 나는 당신에게 결혼을 추천하지도 비추하지도 못하겠다. 단지 이 점은 말해주고 싶다. 당신이 알고 있는 러브스토리는 진짜가 아니라고. 


백설공주도 신데렐라도 러브스토리를 가지고 있지만 그건 엄연히 결혼 전까지의 이야기다. 서로가 서로에게 ‘연인’이라는 낭만적인 이름으로 불리던 시절에는 무엇을 하든 로맨틱 한 이야기로 귀결된다. 하지만 그건 가짜다. 진짜 러브스토리는 ‘연인’이라는 이름이 아닌 ‘아내와 남편’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면서 시작된다.


함께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먹은 다음 처리해야 할 ‘음식물 쓰레기’가 우리가 겪을 러브스토리의 진짜 핵심 주제다. 그래서 나는 당신에게 알렝 드 보통이 그의 소설 ‘The Course of love’에서 전한 이 말을 들려주고 싶다. 


우리는 사랑이 어떻게 시작하는지에 대해서는 과하게 많이 알고, 사랑이 어떻게 계속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무모하리만치 아는 게 없는 듯하다.
그는 아직 첫걸음을 떼지 못했다. 그와 커스틴은 결혼을 하고, 난관을 겪고, 돈 때문에 자주 걱정하고, 딸과 아들을 차례로 낳고, 한 사람이 바람을 피우고, 권태로운 시간을 보내고, 가끔은 서로를 죽이고 싶은 마음이 들고, 몇 번은 자기 자신을 죽이고 싶은 마음이 들 것이다. 바로 이것이 진짜 러브스토리다.



만약 당신이 음식물 쓰레기와 같은 진짜 러브스토리를 담담히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다면 결혼을 하라. 물론 당신은 겁을 먹을 것이다. 내가 한 말 때문에 결혼에 환멸을 느낄 지도 모르겠다. 음식물 쓰레기를 좋아할 사람은 없으니까. 하지만 음식물 쓰레기를 같이 버릴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결혼도 해볼 만하지 않을까. 


이야기가 여기까지 오자 더 혼란에 빠진 당신은 나에게 다시 태어나도 결혼을 할 것인지 묻는다. 나는 당신에게 끝까지 알쏭달쏭한 말을 남길 수밖에 없었다. 


“다시 태어나도 결혼 할 수밖에 없겠죠. 나는 여전히 어리숙하고 미숙하고 인생을 잘 모를테니까요. 결혼을 후회 하냐고요? 아니요. 설령 결혼이 실패로 끝나더라도 후회는 없을 것 같아요. 순간순간 내가 할 수 있는 선에서 최선을 다했으니까. 아쉬움은 남겠지만 후회는 하지 않아요. 할까 말까 할 땐 하고, 갈까 말까 할 땐 가는 게 내가 선택한 인생의 답이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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