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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윤영 Oct 02. 2023

7. 아카데미(4)

“다시 한번 묻지.”


위로 갈수록 좁아지는 삼각형 구조의 작은 방, 마야는 거대한 덩치의 심문관과 마주 앉은 채로 질문을 받고 있었다. 심문관은 마야가 본 거신 중에서 가장 거대한 축에 들었는데, 마야는 그 덩치에 압도당하는 것만 같아 속이 울렁거렸다.


“그런 위험한 별을 숨기려고 했던 목적이 무엇이지?”


심문관이 낮고 위협적인 목소리로 물었다. 마야는 입을 달싹거리다 다시 다물었다. 그러자 심문관이 책상을 쾅 내리쳤고, 마야의 몸이 반동으로 살짝 들렸다 떨어졌다. 마야는 놀란 얼굴로 고개를 들어 심문관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어떤 말도 할 수 없었다. 반은 심문관이 무서웠기 때문이었고, 다른 반은 실수 하지 않기 위해서였다.


‘적어도 베베가 우주를 멸망시킬 거라는 얘기는 하지 말자.’


이것은 심문실에 들어왔을 때 마야 스스로 세운 가장 첫 번째 원칙이었다. 마야는 자신이 이런 위기 속에서도 계속 생각할 수 있다는 점이 놀라웠다. 마야가 멸망에 대해 아는 것은 여전히 모호했지만, 그걸 내뱉는 순간 돌이킬 수 없는 일이 일어날것임을 마야는 예상할 수 있었다. 마야는 탈라리움을 떠올렸다.


어쩌면 어른 거신들은 베베가 미치광이 별이 되어가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을지도 몰라. 건물 하나를 통째로 먹는 별이니까.


마야는 차라리 그렇게 생각하게 내버려 두는 편이 나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마야가 읽은 바로는, 미치광이별은 대부분 파괴되지만, 미치광이 별이 되는 과정에 놓인 별들은 진행 과정을 지켜보았다. 특히 출신이 분명한, 그러니까 요람의 자산이 분명한 별을 바로 파괴해 버리는 경우는 흔치 않은 모양이었다. 별은 요람의 소중한 재산이었고, 갓 태어난 별을 죽이기엔 잃게 되는 루카를 신경 쓰지 않을 수 없었다. 야카가 나타나 베베의 운명을 밝히지 않는 이상 아주 당장 베베가 죽을 일은 없었다. 아니, 없을 것이라고 믿으려 마야는 노력했다.


“아무 말도 하지 않을 텐가?”


심문관이 다시 입을 열 무렵, 마야는 마침내 적당한 대답을 찾아냈다.


“저 별이 저렇게 위험한 줄은 몰랐어요.”


마야는 두려운 마음을 최대한 활용했다. 눈썹을 축 내리고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하는 어린 거신을 보면 어떤 심문관도 그 거신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을 테니까.


야카님께서 제 별에게 식탐이 많을 것이라는 예언을 하시긴 했어요. 대신 그만큼 많은 루카를 만들 운명이라고 덧붙이셨고요. 그건 요람에 좋은 일이잖아요. 그래서 저는 그저 그 예언을 믿었을 뿐이에요…….”


마야의 대답에 심문관은 눈썹을 들썩였다. 그리고 잠시 생각에 빠진 듯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야카께서 그리 말씀하셨단 말이지?”


“네.”


“그럼, 전령을 보내 그 내용을 확인토록 하지. 네 별의 운명은 네가 입 밖으로 냈으니, 야카께서는 그게 맞는지 아닌지 정도는 확인해 주실 수 있을 터. 네 별이 기숙사 한 동을 통째로 먹었다는 걸 야카께서 아신다면 예언에 대해서도 실마리는 주시겠지.”


심문관이 교활한 미소를 지으며 마야에게 말했다. 마야는 당황했지만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옴말라쉬’


운명을 거역하지 않는다. 받아들인다. 그걸 가장 이해하고 따르는 건 다름 아닌 야카였다. 심문관은 베베를 위험하다고 생각하고 있고, 그건 사실이기도 했다. 그렇다면 야카가 마야의 거짓말을 굳이 정정할 이유는 없었다. 야카는 운명이 어떤 과정을 통해 이루어지는지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운명과 연관된 일에는 손을 뗀다. 별의 운명을 주인만이 아는 이유도 이와 같았다. 야카는 운명의 과정이 복잡해지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았다. 물론 이 모든 것은 어디까지나 마야의 추측일 뿐이었지만, 마야는 이 추측이 크게 틀리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네 말이 진실이라 해도, 네게는 네 별의 위험성을 판단하지 못한 죄가 있다. 아카데미에 입학한 이상 그 책임을 지는 것이 당연한 일이라는 건 너도 잘 알겠지.”


“그럼…….”


“마망 이데아께서는 너의 퇴학을 명하셨다. 다만 마망께서는 네가 새로운 일을 할 수 있도록 자비를 베푸셨지.”


요람이 건강한 워커를 내버려 둘 이유는 없다는 걸 마야는 잘 알고 있었다. 마야는 유모들을 떠올렸다. 어쩌면 마야도 하우스로 돌아가 유모 일을 하게 될지도 모를 일이었다.


“뭐, 그건 차후의 문제고…….”


심문관이 갑자기 허리를 푹 숙여 마야와 얼굴을 맞댔다.


“당분간 네 놈을 어디에 가두어야 좋을까.”


그는 히죽거리며 미소를 지었다.





‘결국 또 여기네.’


마야는 입학한 첫날 베베와 함께 격리된 교실에 갇혀 있었다. 확실히 ‘평범한’ 아카데미 학생이라면 겪지 않을 일이었다.


‘내가 비정상이라는 걸 적어도 이런 식으로는 증명하고 싶지 않았는데…….’


애초에 평범한 거신이었다면, 자신의 별이 어떤 운명을 타고났는지 알게 된 순간 바로 보고했을 것이다. 그럼 아카데미에 입학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했을 테고. 그러나 마야는 그런 가정보다는 현실이 더 신경 쓰였다.


‘베베는 어떻게 되었을까. 붙잡힌 것 같은데…….’


이런 상황에서도 베베에 대한 걱정이 솟구치는 것이 마야는 퍽 우스웠다. 하지만 감정은 마야가 통제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어쩌면 도망쳤을지도 몰라. 걘 이상한 별이잖아. 평범하진 않으니까 분명…….’


거기까지 생각한 마야는 고개를 저었다. 생각해 보면 추측이란 건 무의미했다. 더군다나 돌이켜보면 마야는 계속 희망적인 추측만 하고 있었다. 물론 몇 가지는 합리적인 이유에서 나온 것들이었다. 그러나 그 모든 건 그저 말 그대로 ‘추측’일 뿐이었다.


‘이대로 시간이 지나면 어떻게 될까?’


반면 이건 뻔했다. 자신은 아카데미에서 퇴출 되었으니 다른 일을 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베베는 아마 죽고 말 것이다.


베베가 죽는다.


그 생각을 하자 구역감이 몰려왔다. 하지만 이것은 진실이었다. 마야의 거짓말이 베베가 생존할 시간을 벌어 줬을지는 몰라도 그 이상은 아니었다. 시간이 지나면 베베의 행동은 더 악화될 지도 모른다. 심장에 문제가 있다면 고치면 그만이지만, 그게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닐 게 분명했다. 애초에 심장에 문제가 있는 걸 다른 거신들이 모른다면? 베베는 운명을 바꿀 기회도 잃고 생을 다할 것이 분명했다.


‘아니, 그런데 정말로 운명을 바꿀 수 있을까?’


처음부터 그런 건 불가능한 일이었을 지도 모른다. 다른 거신이라면 불가능한 일이라고 확신했을 것일 테지만, 마야는 여전히 일말의 가능성을 남겨두고 싶었다. 그런데 왜? 문득 마야는 자신이 왜 이렇게까지 베베의 운명을 바꾸려는지 의문이 들었다. 냉정하게 생각하면, 마야는 이제 베베를 신경 쓸 필요가 없었다. 아카데미를 무사히 졸업한 뒤, 맡게 된 별이 자리할 곳을 찾아 우주로 나아가겠다는 마야의 꿈은 베베가 기숙사를 먹어 삼키는 동안 산산조각 나버렸으니까. 이제 되돌릴 방법은 없었다.


“그런데도 나는, 베베가 걱정 돼.”


이 진심을 입 밖으로 내뱉자, 마야는 너무나 슬퍼졌다. 이번에는 온갖 부정적인 추측이 마야의 몸을 덮쳐왔다.


“베베가 죽으면 어떻게 하지.”


지금 이 순간 마야가 할 수 있는 것은 무릎을 껴안고 몸을 웅크리는 것뿐이었다. 그런다고 상황이 나아지지는 않겠지만, 그러지 않으면 더는 견딜 수 없을 것 같았다. 주변은 고요했고, 마야가 들을 수 있는 소리는 자신의 심장소리 뿐이었다. 마야는 그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자신을 둘러싼 적막에서 그렇게라도 벗어나고 싶었다.  


-똑똑


그 순간 마야의 머리 위로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마야가 깜짝 놀라 고개를 들었다. 교실 문에서 난 소리는 아닌 것 같았다.


-똑똑똑


그때, 다시 한번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마야는 그 소리가 칠판 쪽에서 들려왔다는 것을 깨달았다. 고개를 갸웃거리며 칠판에 다가가자, 갑자기 칠판 옆에 있던 벽이 쑥 열렸다. 그 바람에 마야는 꽥하고 비명을 지를 뻔했지만, 불쑥 나타난 손이 마야의 입을 막았다.


“조용히 해.”


마야는 고개를 끄덕이고 벽 안쪽을 살폈다. 그러나 안은 너무나 어두워, 목소리의 주인이 누구인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어딘가 익숙한 목소리였다. 마야는 천천히 벽 안쪽 가까이 얼굴을 옮겼다. 그러자 갑자기 벽 안쪽이 밝게 빛났다. 푸른 빛이었다.


‘푸른 빛?’


마야는 이 빛의 주인을 알고 있었다. 이런 푸르고 찬란한 빛을 내뿜는 별은 마야가 직접 눈으로 본 별 중에서는 단 하나뿐이었다.


“랑?”


손이 떨어지자마자 마야는 작게 소리쳤다.


“조용히 하라니까 말 정말 안 듣는구나.”


그렇게 말하며 어둠속에서 오피디아가 나타났다. 오피디아는 랑의 푸른 빛을 받아 창백한 얼굴을 하고 있었지만, 차갑던 평소와 달리 어딘가 부드러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마야는 상황을 이해하지 못한 나머지 입을 벌리고 오피디아와 랑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그러자 오피디아가 어깨를 으쓱였다.


“네 별을 구하고 싶어?”


“어?”


“네 별 말이야. 구하고 싶냐고.”


오피디아가 특유의 거만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마야는 그 표정이 그의 진심과는 거리가 멀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러자 오피디아가 어떤 대답을 원하고 있는지 알 것 같았다.


“응.”


마야가 나지막이 대답했다. 그러자 오피디아의 표정이 약간 더 부드러워졌다. 마야가 느끼기에 오피디아는 안도하는 것 같았다. 오피디아가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럼 그런 멍청한 표정은 그만 짓고 날 따라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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