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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2.宝くじに当たったら

- 타카라쿠지니 아탓따라, 복권에 당첨된다면-

지금 일하고 있는 학교는 러시아쪽 학생들이 꽤나 있어서 학교에도 이들의 수업을 돕기위한

러시아어 선생님이 계신다.

내가 맡고 있는 돌봄교실에도 KHODARINA(혼다리나)라는 1학년 아이가 들어올 뻔 했으나

워낙 한국말이 안되는 이유로 외국인 지원센터에 다니기로 했다며, 돌봄교실 입반을 취소했다.


혼다리나가 들어오면 열심히 한글도 가르치고 나도 번역기 돌려가면서 서툴지만 러시아어로

샤발라스키 새발라스키 해가면서 혼다리나에게 러시아어를 배워볼까 했는데

혼자서 헛물을 500리터는 들이켰다.


학생수 1000명이 넘는 거대 학교에 다문화 학생들은 러시아쪽 학생들이 대부분이라서

아이들의 이름도 미라나,막심,마크,소피아,기릴,마리나,이고르,빅토리아,크리스티나등

이름만 들어도 빼박 외국인인 아이들이지만 실상 얼굴을 보면

일제시대때 어쩔수 없이 연해주 근처나 사할린등에 가서 살았던 우리 조상들의 손자 손녀들이

틀림없는 얼굴을 하고 있다.


처음에는 조선사람이었으나 이제는 러시아어를 쓰는 외국인이 되어서 향남에 일자리를 찾은

아빠 엄마를 따라 와서 한국의 초등학생이 된 것이다.


아빠 엄마의 얼굴도 한국사람 딱 표준의 얼굴을 하고 있지만 언어가 되지 않는다.

며칠 전에도 새로 들어온 부모님이 아이의 입학을 위해서 다문화 교실에 오셨다.


내가 일하고 있는 돌봄교실은 다문화 교실과 함께 쓰는 공용교실이기 때문에

다문화 가정의 부모님이 오셔서 아이의 입학을 상담받는데

오전까지만 일하시는 러시아어 선생님이 퇴근을 하셔서 어쩔수 없이 한국인 남자 선생님이

아동의 부모님과 상담을 하게 되었는데 한 교실을 쓰기 때문에 상담 내용이 들렸다.


한국말이 거의 되지 않는 아버지와 어머니였기 때문에 한국 선생님께서 곤란해하시며

내일 오전에 러시아어 선생님이 계시는 시간에 다시 오시라고 했지만

그 두분의 사정이 내일 오전에도 있을 거라는 것은 우리쪽의 바람일뿐이고

그 두분은 오셨을 때 모든 일을 해결하고 가고 싶어하실거라는 것은

말하지 않아도 알아요. 그냥 바라보면, 마음속에 있다는 걸

초코파이 CM송이 아니라도 알아야만 된다.

그래야 눈치있는 대한민국사람이다.

그리고 관공서에 갈 일이 있을 때는 외국이든, 자국이든 그게 무슨 일이든 그 날 하루에

모든 일을 마치고 싶은것이 사람 마음이다.

외국인에게 내일 오라고 하는 건 멱살각이 된다.

러시아어 선생님이 계실 때 오시라고 권하는 한국 선생님을 보면서 "그냥 상담해주지" 소리가 저절로 나왔다.

내가 보낸 멱살 텔레파시가 전달됐는지 상담은 개발세발 진행되었고 나한테까지 내용이 들려왔다.


그래서 듣게 된 "바람"과 "발안 파출소"


아이가 아프면 어느 병원으로 데리고 가야 되는지?

스쿨뱅킹신청을 위한 농협 계좌는 갖고 있는지?

대부분 아이의 학교 생활에 필요한 것들에 대한 질문이 끝난 다음, 한국인 선생님이 마지막으로 물으셨다.


한국 선생님 "그럼 이 다음에 소피아(가명)가 어떤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그런 바람이 있으세요?

소피아 父 (알아듣는 말이 나와서 목소리가 갑자기 신나서 살짝 들뜨는게 느껴짐)

"아, 네 바람알아요. 발안파출소 알아요"

한국 선생님 "아니, 발안 파출소 말고, 바람요, 바람. 부는 바람말고, 희망같은거요"

소피아 父,母 (바람이 발안파출소를 말하는게 아니라는 것을 알고 급실망) "-.- 없어, 없어요. 잘 몰라요"


다문화 가정 아동의 입반을 위한 질문 목록에 아동이 커서 어떤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는지, 부모에게

희망사항을 묻는 질문이 있는 모양이고, 희망이라는 다른 표현인 바람이 외국인의 귀에는

근처에 있는 발안이라는 지명으로 들려서 발안 파출소에까지 연결이 된 거였다.





2018년 교토 국제 복지 전문학교의 일본어 수업 시간에 있었던 일이 생각났다.

자유 회화 수업 주제가 宝くじに当たったら(타카라쿠지니 아탓따라) , 복권에 당첨된다면? 이라는 주제였다.

모국어로 하는 말이라면 복권에 당첨된다면 100가지 쯤은 하고 싶은 일들을 밑도 끝도 없이 열거할 수 있지만

외국어로 대답할 때는 과묵한 사람이 될 수 밖에 없다.


중국인 카루이끼는 은행에 가고 싶다고 대답했다.

銀行に行きたいです(긴코우니이키따이데스) , 라고 대답했는데 카루이끼의 발음은 중국스러운

일본어발음이라고 생각은 했지만, 그래도 일본 선생님의 귀에 銀行(긴꼬우)가 リンゴ (링고), 사과로

들리는 줄은 몰랐다.


또 다른 중국 여학생은 마카오에 가서 기분을 팍팍 내고 싶다고 대답했는데

얘도 마카오까지 가지도 못하고 선생님 귀에 마카오가 漫画まんが (망가)로 들리는 굴욕을 맛봤다.


복권에 당첨된다고 해도 은행 가는 대신 사과 사먹고, 마카오 비행기도 못 타고 만화사서

방구석 1열 할 판이다.



바람은 발안 파출소 (희망은 발안 파출소)

긴코우는 링고우 (은행은 사과)

마카오는 망가 (마카오는 만화)

외국인이 아무리 혀에 힘을 주고 발음을 해도 모국어를 쓰는 사람들의 발음에는 2%가 부족한 것이

모국어와 외국어의 차이다.


자음의 받침이 우리말과 비교해서 엄청나게 부족한 일본어조차 외국인이 말하는 것은 그렇게

이상하게 들리는데 외국인이 우리말을 제대로 알아듣는것은 너무나 어려운 일이다.


바람은 발안파출소가 될수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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