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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광섭 Feb 29. 2024

좋은 현장조사란 무엇일까?

고객과 시장을 만날 때 기억하면 좋은 4가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드라마 작가분들께 “이렇게 대단한 대본은 어떻게 쓰세요?”라고 물으면 미리 짠 것처럼 똑같은 답변이 나옵니다.


대본은 머리보다 발로 뛰며 쓴다 - 김은희 작가

캐릭터는 절대 책상에서 만들 수 없다. - 노희경 작가


종합하자면 '현장을 찾아가 최대한 많이 만난다'는 것입니다.



갑자기 드라마 작가분들을 찾은 이유는 이들과 PM의 업무가 굉장히 비슷하기 때문입니다.

1. 현장을 완벽하게 꿰뚫어서,
2. 입체성 있는 구조물을 만들고,
3. 각 분야의 전문가들과 협업하여,
4. 회차를 반복하며 발전해 나간다는점

에서 데칼코마니 같은 면이 있습니다. 이웃 분야의 대가들이 한 목소리로 ‘현장을 나가야 좋은 글을 쓴다’ 주창하는 현상은 분명 IT분야 PM에게도 좋은 시사점입니다.


IT 프로덕트를 성공시킨 모든 조직은 현장 조사를 잘했습니다. 좋은 PM이라면 새로운 제품을 만들 때 고객과 시장을 샅샅이 살펴봐야 한다는 점을 본능적으로 압니다. 다만 현장이라는 곳은 워닉 거칠고 불투명하기 때문에 원칙과 요령 없이 덤벼 들면 소득 없이 돌아오거나, 좌초되는 일도 부지기수입니다.


이번 챕터에서는 현장을 조사하는 원칙과 각종 노하우에 대해 이야기하겠습니다. 필드에서 길을 잃지 않도록 돕는 4가지 원칙을 살펴봅니다.






1. 답이 아닌 질문을 찾으세요.


현장 조사는 답이 아니라 질문을 찾는 시간입니다.


'현장에 답이있다'는 흔한 격언이지만 논리적 비약이 숨어 있는 말입니다. 엄밀히 말하면 현장에는 답이 없습니다. 그저 정확한 문제를 지적하는 좋은 질문이 있을 뿐입니다. PM이 현장에서 답을 찾기 시작하면 시장 조사가 망가지는 일이 빈번합니다. 


현장의 사람들이 답을 잘 모릅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관심이 없어서’ 모릅니다. PM은 대개 문제 하나를 붙들고 하루종일 고민합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현장 사람에게 그 문제는 일상의 사소한 불편 중 하나일 뿐입니다. 각자의 생업으로 바빠, 답까지 생각하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과거 너무나 귀찮았던 ‘송금’의 사례를 한번 생각해 볼까요? 당시 은행 계좌가 있는 고객을 인터뷰하면 100이면 100 ‘공인인증서 때문에 불편하다’고 말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어떻게 해야 공인인증서 없이 송금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정답 단계까지 파고든 사람은 토스 PM들 뿐이었습니다.


질문에 대한 답은 직접 만들어야 합니다. (출처 : 비바리퍼블리카)


현장의 사람들은 답을 알려주지 않습니다. 시장은 커다란 피자와 같아서 이미 여러 사람들이 규칙에 따라 나눠먹고 있습니다. 파괴적인 답변을 알려준다는 것은 필연적으로 누군가의 피자 조각을 빼앗아 다른 사람에게 줘야 한다는 것과 같습니다. 앞서 송금 이슈에 대해서도 금융업계 관계자라면 공인인증서 문제를 해결할 대략적인 로드맵은 알수 있습니다. 하지만 굳이 시장을 뒤흔드는 본질적인 답을 나서서 말해주지는 않습니다. 이해관계자들이 일부러 그렇게 한다기보다, 각자의 위치에서 볼 수 있는 시야가 제한되기 때문입니다.


PM이 시장 조사에서 가장 경계해야 하는 점은 현장에서 우연히 찾은 정답 비슷한 생각을 맹신하는 것입니다. 내가 찾은 것이 답같다면, 1) 극히 표면적인 수준이거나, 2) 맥락을 잘못짚은 오답이라고 강하게 의심해야합니다. 크게 욕심을 부리지 않고, 1) 무엇이, 2) 얼마나, 3) 왜 불편한지 딱 3가지만 정확하게 알아낸다는 마음가짐으로만 조사에 임합니다.


현장에서는 문제를 관통하는 좋은 질문만 찾습니다. 정답은 스스로 만들어야 합니다.

고객이 공감할 수 있는 질문을 찾고 답은 스스로 제시한 쿠팡 (출처 : 쿠팡이츠)




2. 현상이 아니라 원인을 찾습니다.


현장 조사에서는 현상보다 원인을 찾습니다


현상을 바라보는 것은 쉽습니다. 하지만 원인을 찾는 것은 다릅니다. 시장에서 벌어지는 문제의 원인은 보통 2-3겹씩 보자기를 두르고 있어서 먼거리에서는 좀처럼 보이지 않습니다. 꼭 가까이 다가가 보따리를 풀고 오래도록 관찰해야 선명한 모습이 드러납니다. 집요함이 PM에게 좋은 덕목인 이유입니다.


택시 호출앱의 예를 보겠습니다. 과거 카카오T가 출시되기 전 사람들은 택시를 잡을 때 자연스럽게 대로변으로 나갔습니다. 심지어 콜택시를 부르더라도 길가의 유명한 건물 앞에서 기다리는 것이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택시 호출앱을 만드는 사람들이 ‘왜 대로변으로 나갈까?’를 고민하지 않고, ‘택시는 원래 대로변에서 부른다’고 생각했다면 문제를 완전히 잘못 해석하게 됩니다. 현장을 꾸준히 관찰하는 PM은 "위치 전달 불편"을 핵심 문제로 짚어냅니다.


고객은 할 수만 있다면 대로까지 가지 않습니다. (파란색 점은 호출 위치) (출처 : 카카오모빌리티 리포트 2020)


현상만 관찰하면 가짜문제에 속을 수도 있습니다. 2021년에 있었던 서울시 고덕동 택배 파업사태는 이러한 가짜 문제의 대표적 사례입니다. 당시 뉴스에는 연일 아파트 정문 꼭대기까지 쌓인 택배 무더기의 사진이 보도되었습니다. 주요 신문사들의 논조도 ‘이기적인 아파트 주민들이 택배차량의 지하주차장 진입을 막아 배송을 못한다’는 것이었습니다.


택배 파업을 보여주는 모습 (출처 : 연합뉴스)



하지만 이 문제의 근본 원인은 입주민들의 이기심이 아니라 이해관계 다툼이었습니다. 고덕 아파트의 주민만 특별히 나쁜 사람일수는 없습니다. 해당 아파트는 설계 단계부터 지하주차장 층고가 낮게 건설되어 이미 모든 택배 회사들이 높이가 낮은 ‘저상 택배차’로 배송하고 있었습니다. 실제 파업 당일에도 90% 이상의 택배 기사님들은 지하주차장에 들어가 아무 문제 없이 배송하고 있었고요.


다만 10%의 택배기사님, 그중에서도 노동조합에 속해계신 목소리 큰 기사님들이 ‘일반 택배차’로도 계속 배송하게 해 달라 주장하며 벌인 시위가 택배 파동이었습니다. 심지어 뉴스에 보도된 사진의 택배는 다른 단지의 택배까지 끌어모아 찍은 것이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물류 서비스 PM이 ‘택배 시장에 근본적 문제가 있군!’ 진단하고, ‘지하주차장 진입이 어려우니 아파트 공동 물류 집하장을 만들어 볼까요?’는 식으로 결론을 냈다면 아주 골치 아픈 상황이 만들어집니다. 멀쩡히 잘 배송하고 있던 기사님들과 아파트 주민 모두 불편해지는 결과를 초래합니다.


문제의 원인이 시장 구조 자체가 아니라 내부의 이해관계 충돌에 있다면, 둘을 중재하는 것이 오히려 효과적인 해법입니다. PM은 항상 표면이 아니라 내면을 볼 수 있어야합니다.




3. 적이 아니라 친구를 찾습니다.


PM은 시장에서 친구를 최대한 많이 찾아내야합니다.


여기서 친구란 제품 성장에 도움을 줄 수 있는 모든 이해관계자를 말합니다. 시장 조사는 1차적으로 제품을 잘 만들기 위해 고객의 니즈를 찾는 과정입니다. 하지만 동시에 2차적으로 시장 내 다이나믹스(역학관계)를 이해하는 과정입니다. 


PM은 이런 다이나믹스의 한복판에서 우리편을 찾는데 주력해야 합니다. 1) 제품의 극초기 고객이나 2) 제휴 관계를 맺어줄 기업, 3) 심지어는 인수합병의 대상이 될 만한 경쟁자까지 모두 만나보며 시장에 빠르게 안착할 수 있는 시나리오를 그리는 것도 PM의 역할입니다.


지금은 네이버 쇼핑이 너무나 당연한 세상이 되었지만 10년 전에는 이렇지 않았습니다. 그때의 네이버라 하면 11번가 같은 오픈마켓으로 이동하는 초록색 검색창일 뿐이었습니다. 더군다나 네이버가 이제 막 쇼핑 사업을 시작하던 2010년대 중반, 회사는 소상공인과 상생하지 못한다며 온갖 여론의 질타를 한몸에 받았습니다. 하지만 네이버는 2017년 상생기업이라는 화두를 꺼내더니, 2018년 스마트스토어를 전면 개편하고, 2020년부터 소상공인 중심으로 확장할 것을 주장합니다.


이후 ‘소상공인의 성장이 곧 네이버의 성장’이라는 방정식을 만들고, 압도적으로 낮은 쇼핑 수수료와 단순한 UX를 통해 전국 각지의 소상공인을 온라인으로 끌어 모읍니다. TV 광고도 적극적으로 집행하며 사람들의 머릿속에 ‘네이버는 소상공인과 한편이구나’라는 인식을 심는데도 힘씁니다.


소상공인 연합회처럼 대표적인 이익집단과도 손을 잡았고, 사례집도 끊임없이 발간합니다. ‘소상공인과 친구’ 전략으로 현재 네이버는 8도의 모든 네임드 소상공인의 온라인 스토어를 보유했습니다. 쿠팡과는 또 다른 맥락의 난공불락의 쇼핑 요새는 이렇게 만들졌습니다.

꾸준히 성장한 스마트스토어 (출처 : 네이버)


https://www.hankyung.com/article/2017032851981

https://economist.co.kr/article/view/ecn202306140015



우버의 이탈리아 시장 진출도 적을 친구로 바꾼 사례입니다. 기본적으로 우버(공유차량 호출)는 택시와 적입니다. 이동 시장을 나누어 먹을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처럼 택시 집단의 힘이 강한 나라들에서는 공유차량 호출이 법으로 막혀있는 경우가 흔합니다.


이탈리아의 사례 역시 택시 노동조합의 힘이 매우 강력하여 우버가 전혀 자리를 잡지 못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우버는 2022년 아예 방향을 180도 바꾸어 택시 조합을 품기로 결정합니다. 최대 택시 조합의 앱인 IT TAXI와 강결합하는 제휴를 맺고 1) 우버의 압도적인 UX, 2) 조합의 현지 장악력을 합쳐서 시장 점유율을 2위로 끌어올립니다.


이탈리아 택시조합과 협약을 맺은 우버 (출처 : 로이터)


제품을 시장에 선보일 때, 제품 자체를 잘 만드는 것이 기본입니다. 하지만 필요한 것을 만들었다고 그 제품이 꼭 성공하지는 않습니다. 좋은 제품을 만들더라도 순식간에 적을 너무 많이 만들거나, 동료를 전혀 구하지 못해서 사라진 서비스는 이미 너무 많습니다. PM은 제품이 빠르게 안착할 수 있도록 다양한 시나리오를 생각해야 합니다. 시장의 다이나믹스를 이해하고 손을 잡는 자세가 꼭 필요합니다.




4. 고객 이전에 동료를 설득합니다.


PM은 고객 및 시장조사를 통해 동료들을 감동시킬 수 있어야 합니다.


PM이 현장에서 발굴한 지식과 그가 보여주는 집요함은 동료들을 감화시킬 수 있습니다. PM의 리더십은 전문성이나 친화력 이전에 집요함에서 나옵니다. 우리 PM이 정말 지독한 사람이고, 저 사람이 말하는게 정답일 것 같다는 공감대는 프로덕트 조직 전체를 일치단결하게 합니다.


현장에 대한 지식은 PM에게 카리스마를 만들어줍니다.  때때로 주니어 PM분들을 보면 ‘개발조직이 제 의견을 존중해주지 않아요’하고 걱정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럴 때는 일단 스스로 동료들을 압도할 만한 시장 지식이 있고 그것을 정확히 전달하고 있는지부터 생각해봐야 합니다. 동료들이 놀랄 정도의 시장 지식을 가진 PM이 말이 무시당할 수는 없습니다.


분야별 전문성이 강한 사람들을 이어주는 행태가 가능하려면 모두가 모일 수 있는 지식의 광장을 제공해야 해야 합니다. PM이 조직 내에 깔아주는 밑바탕이 넓으면 넓을수록 더 많은 동료가 좋은 아이디어를 쏟아낼 수 있습니다. 이런 결집 현상이 구글 강조했던 가교(bridge) 역할이고, 마이크로소프트가 언급한 합의(consensus)와 같은 개념입니다.


동료를 감동시키겠다는 마음가짐은 현장 조사를 진행하는데 도움이 됩니다. 현장조사는 매우 고된 일입니다. 생소한 시장 한복판에 들어가 들쑤시고, 모르는 사람들과 몇 시간씩 대화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이럴 때는 지금 사람들 앞에 서있는 게 ‘나 하나가 아니라 조직 전체’라는 생각으로 뻔뻔해질 수 있어야합니다. ‘당장 부끄럽다고 쭈뼛대느라 눈앞의 소중한 정보를 놓친다면 우리 팀원 30-40명 모두가 언젠가 이 정보 때문에 고생하겠지’하고 생각해 보면 좋습니다.





결국 PM에게 시장 조사란   

1) 답보다는 질문을 찾고,
2) 현상보다는 원인을 탐색하며,
3) 적보다는 친구를 찾아내
4) 동료들을 감동시키는 지식을 전달하는 일입니다.


주니어 PM들이 가장 자주 범하는 실수의 하나가 고객을 알겠다며 무작정 밖으로 뛰쳐 나가고 보는 것입니다. 사실 시간이 많다면, 이렇게 일하며 스스로 답을 찾아나가는 것도 도움이 됩니다. 하지만 현장으로 들어가기 전, 현장을 어떤 태도로 마주해야 할지 깊게 고민해 보는 것은 분명 많은 시행착오가 줄여줍니다.


위 4가지 원칙 외에도 PM마다 경험에 비추어 더 좋은 원칙을 뽑아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적어도 앞서 언급했던 문장들을 생각하고 작업을 시작한다면, 시장의 한복판에서 여기저기 부딪힐 지언정 적어도 동료들 앞에 빈손으로 돌아오지는 않을 수 있습니다.


이렇게 현장의 에센스를 찾아낸 PM은 그제야 제품의 중심으로 당당하게 회의를 주도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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