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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광섭 Mar 05. 2024

좋은 유저인터뷰란 무엇일까?

당장 써먹을 수 있는 인터뷰 요령에 관하여


지금 온라인 교보문고를 켜고 ‘유저 인터뷰’라고 검색해 보세요. 


UX 분야의 큰 어른들이 수백쪽에 걸쳐 온갖 인터뷰의 역사와 사례, 기법까지 세세하게 정리해 두신 교과서가 즐비합니다. 시간이 허락된다면 한권씩 차근차근 읽고 체화하고 싶은 고전들이죠. 다만, 문제가 있다면 대부분 지식이 실무의 PM이 바로 떠먹기에는 너무 건강한 맛이라는 겁니다.


실무는 생각보다 어렵습니다. 1. 회사는 유저 인터뷰에 이틀 이상 주지 않습니다. 2. 그렇다고 시스템이 있냐하면 그것도 아닙니다. (섭외부터 정리까지 내가 다해야합니다.) 3. 인터뷰 대상자도 말을 안듣습니다. 물어본건 무시하고 다른 주제만 말씀하시죠. 4. 이제 정리를 하려했더니 동료들도 집중하지 않습니다. 시장 상황을 정리해서 귀에다 떠넣어주는데도 말이죠.


그래서 실전적인 인터뷰 요령이 간절해집니다. UX교과서에 나오는 멋진 선언문들, UX에이전시의 척척박사님들이 정제해 두신 멋진 그래픽보다 ‘진짜 날것 그대로 오늘 당장 써먹을 요령’이 필요합니다. 판교에서 밥먹고 사는 PM 실무자가 7-8년 동안 프로젝트 일정에 쫓기며 분기마다 꾸역꾸역 인터뷰하며 배운 점을 인터뷰의 1) 시작 전, 2) 진행 중, 3) 마친 후 3단계에 걸쳐 정리해보았습니다.




1. 시작 전


1. 가설부터 세웁니다.


업무가 익숙하지 않은 PM들은 인터뷰 초기, 몸부터 밖으로 들이미는 경우가 많습니다. 대개 큰 시간 낭비가 됩니다. 인터뷰의 시작은 '이 인터뷰는 대체 왜 하는건가', '이 인터뷰를 통해 나는 무엇을 알고 싶은가'처럼 약간 철학적인 내용을 글로 쓰는데서 출발합니다. 바로 가설수립이죠. 가설은 절대 어려운 개념이 아닙니다. 알고 싶은 사실을 1) 예와 2) 아니오 답할 수 있는 문장으로 쓰는 것 뿐입니다.


예시를 한번 들어보겠습니다. 제가 쿠팡이츠 배달파트너 앱의 PM라고 가정해볼까요? '비 오는 날 배달 라이더들의 출근 시간이 줄어든다’는 현상을 데이터로 확인하고 현장상황을 확인한 뒤 이 현상을 개선하고 싶습니다. 실제 현장의 라이더들을 만나기 전 어떤 가설을 세워볼 수 있을까요?



배달 라이더들은 비가 오면
(1) 쿠팡과 배민을 동시에 배달하는 경향이 강해질 것이다.
(2) 경쟁사의 프로모션으로 옮겨갈 것이다.
(3) 점심, 저녁 시간만 집중적으로 근무할 것이다.

처럼 논리적으로 충분히 추론해볼 수 있지만 네/아니오 정답은 모르는 가설을 써볼 수 있습니다.


반면 이런식은 절대 안됩니다.

(1) 비가 올 때 배달원의 업무 행태를 분석한다.
(2) 비가 올 때 배달원의 심리 상태를 확인한다

뭔가 있어보이지만 '예, 또는 아니오’로 답할 수 없는 문장입니다. 알고자 하는 바가 두루뭉술하면 상세한 질문지를 쓰기도, 결과지를 정리하기도 어렵습니다. 결론부터 명확하게 말하기 힘들기 때문입니다. 반면 제대로 된 가설이 있다면 5분만 주어도 인터뷰에서 알게 된 점을 '이건 YES고 이건 NO입니다'라며 동료들에게 명료하게 설명하는 게 가능합니다.


이런 의문이 생길 수 있습니다. '가설을 미리 정해놓고 인터뷰를 하면 미처 생각해보지 못한 부분은 전부 놓치게 되는 것 아닌가요? 라고요. 하지만 조금만 생각해봐도 기우입니다. 마치 그물도 없이 맨손으로 바다에 가는 바보가 그물을 만들어서 출항하는 어부에게 '그물을 쓰면 조그만 고기는 다 놓칠걸? 쯧쯧' 하고 훈계하는 꼴과 똑같습니다. 투박하고 거친 가설일지라도 미리 방향을 고민해 본 PM이 좋은 결과를 얻습니다.



2. 대상자 섭외하기


인터뷰 환경이 잘 갖춰진 기업은 PM이 대상자를 직접 찾지 않아도 됩니다. 가설만 생각해 두면 리서치팀에서 1) 대상자, 2) 시간, 3) 장소까지 전부 섭외해 줍니다. 하지만 우리나라 PM의 95% 이상은 이렇게 완벽한 시스템과 거리가 멉니다. 전부 직접 해야하죠. (심지어 저도 밖에서 볼때는 IT대기업 직원인데 이런 시스템은 한번도 써본 적이 없습니다...) 업무의 핵심은 일을 줄이는 것입니다. 발품 팔 일을 없애야합니다.



위처럼 섭외는 크게 3단계로 나누어 진행합니다. 첫째, 후보집단을 추립니다. 간단한 SQL을 작성하여 적게는 수십명에서 많게는 수천명까지 후보 명단을 뽑아냅니다. SQL은 내가 원하는 조건을 여러개 집어넣습니다. 예를 들어 비오는 날 배달 라이더들의 행태를 물어보고 싶다면, 최소한 우천 시 근무를 해본 사람 위주로 뽑아야 할 겁니다. 대상자가 모두 똑같은 집단이 되지 않도록 연령, 지역, 성별, 사용량 등 조건을 분화하는 것도 좋습니다. (한번만 해두면 조금씩 바꿔가며 씁니다.)


둘째, 설문을 보냅니다. 아주 쉬운 설문으로요. 인터뷰의 가설에 대해 짧은 질문만 담습니다. 앞서 쿠팡이츠 배달 라이더 사례로 생각해볼까요? 1) 쿠팡만 배달하시나요? 다른 플랫폼도 같이 이용하시나요? 2) 배민의 프로모션에 참여해본적 있으신가요? 3) 출퇴근 시간이 어떻게 되시나요? 정도만 물어봐도 충분합니다. 여기에 마지막으로 4) 추가적인 인터뷰에 동의하시나요? 하나를 물어보면 끝입니다.


셋째, 추가 인터뷰에 동의한 사람을 대상으로 섭외 전화를 돌립니다. 이미 인터뷰에 동의한 분들과 진행하기 때문에 쉽게 끝납니다. 앞선 과정이 없다면 설명에도 시간이 오래 걸리고 70% 확률로 거절당합니다. PM이 자꾸 힘든 전화를 반복하면 본능적으로 인터뷰를 싫어하게 됩니다. 인터뷰는 아침운동과 같아서 한두번 싫어지게 되면 꾸준히 안하는 악순환에 빠집니다. 일단 하고 싶은 환경이 만드는 게 중요합니다.



3. 질문지 만들기


가설이 인터뷰의 뼈대라면 질문지는 인터뷰의 살입니다. 가설만 꼼꼼하면 질문지 작성 자체는 30분 안에도 끝나는 일입니다. 크게는 2파트로 구성합니다. 1. 하나는 인적사항 (데모그라피) 2. 다른 하나는 가설 검증입니다.


1. 우선 ‘인적사항’부분부터 보겠습니다.

지금 앞에 앉아계신 인터뷰 대상자가

1) 누구신지?
2) 어디에 사시는지?
3) 언제부터 (제품을) 사용하고 계신지?
4) 얼마나 (제품을) 사용하고 계신지?

따위의 기본적인 정보를 물어볼 수 있습니다.


인적사항 질문에는 2가지 목적이 있습니다. 첫째는 대상자의 분류입니다. 대상자가 누구냐에 따라 답변의 1) 신뢰감과 2) 무게감이 확 달라집니다. 앞에 앉은 사람의 아우라를 인터뷰 초반에 알아내야 합니다. 그래야 따라오는 질문을 유동적으로 추가, 혹은 삭제할 수 있습니다. 둘째는 친밀감(라포) 형성입니다. 아무리 사교성이 좋은 PM이라도 최초 인터뷰는 굉장히 어색합니다. 이럴 때 ‘누구세요?’보다 좋은 주제가 없죠.


인적사항 질문을 마쳤다면 2. 가설 검증 단계로 넘어갑니다.


하나의 가설을 여러 관점으로 나누어 꼼꼼히 물어봅니다. 앞선 예시로든 '쿠팡과 배민을 동시에 배달하는 경향이 강해질 것이다’ 가설을 검증하고 싶다면,

1. 평상시 배달하는 패턴이 있나요?
2. 어떤 플랫폼을 중심으로 배달하세요?
3. 왜 그렇게 행동하시나요?
4. 비가 오면 행동이 달라지나요?
5. 왜 달라지나요?

처럼 가설을 다각적으로 쪼개서 질문합니다. 가설 4-5개만 검증하려 해도 30분 질문은 충분히 나옵니다.



4. 인터뷰 전 검증하기


인터뷰 전 마지막 단계는 검증입니다.


첫 번째는 동료 검증입니다. 근처에 한가해 보이는 동료를 붙들고 커피를 마시러 가자고 꼬십니다. 그리고 1) 내가 이제 인터뷰를 할 건데, 2) 거기서 확인하려는 가설은 뭐고, 3) 검증을 위해 이런 질문을 할 거다. 4) 너라면 어떻게 대답할래? 하며 물어봅니다. 동료가 꼼꼼히 들었다면 '여기는 이상하네, 저기는 부실하네'같은 소리를 해 줄겁니다. 1시간 만에 만든 질문지에는 놓치는 부분이 반드시 있게 마련이니까요.


이때 동료의 코멘트를 종합하여 질문지를 정교하게 다듬습니다. 딱 15분 정도 대화하는 것만으로도 나중에 '아, 맞다! 이거 물어봤어야 했는데!' 하는 패착이 확연히 줄어듭니다. 동료 검증 후에는 자기 검증을 합니다. 최초 작성한 다음날 질문지를 소리 내어 읽어보며 중얼중얼 연극처럼 따라해봅니다. 이때 중요한 것은 더하기보다 빼기입니다. 너무 뻔하고 당연한 질문을 걷어내는 것이 핵심입니다.


앞서 쿠팡이츠 사례에서도 질문지를 정신없이 만들다 보면 ‘비가 오면 왜 다들 출근을 안 할까요?처럼 어처구니없이 당연한 질문도 들어갈 수 있습니다. 이런 질문은 참가자가 들으면 당황합니다. 인터뷰의 흐름을 끊고 전문성이 깎입니다. 한번 할 때 제대로 하기 위해서는 검증 과정에 조금 더 신경을 써도 됩니다.




2. 진행중



1. 소개하기, 정중하게


소개팅도 그렇지만 상대를 놀라게 하면 오히려 성공률이 떨어집니다. PM은 인터뷰에 시간을 내준 참가자를 최대한 존중해야 합니다. 인터뷰 참가자가 불안할 만한 상황은 원천적으로 차단합니다. 존중은 인터뷰 소개에서 시작됩니다. 짧게는 30분, 길게는 2시간가량의 인터뷰가 ’어떤 순서로 진행될 거라는 걸’ 참가자에게 알려주어야 합니다. 인터뷰 공간에 화이트보드를 두고 큼직큼직한 목차를 써놓습니다.


1. 인터뷰 소개 (5분)
2. 인적사항 질문 (20분)
3. 제품 사용 방식 질문 (20분)
4. 개선 방향 공유 (20분)
5. 아이디어 제안 (10분)

시간도 개략적으로 알려줍니다.


이걸 말로 해보면

선생님, 앞으로 60분 정도 인터뷰를 진행할게요.
여기 보이시는 대로
1) 선생님의 기본적인 정보 여쭙고,
2) 저희 제품 어떻게 사용하고 계신지,
3) 저희가 개선해보려는 방향은 어떠신지
4) 저희에게 제안하실 아이디어 있는지
순서대로 여쭤보겠습니다.”

하면 됩니다.


이렇게 하면 인터뷰가 옆길로 새는 것도 막을 수 있습니다. 가끔 업무적인 대화가 익숙하지 않은 분들, 혹은 본인 얘기에 심취하는 분들이 계신데요. PM이 정신줄을 놓고 있으면 인터뷰 시간이 싹 사라지고 체력만 쭉쭉 고갈되기 일수입니다. 생각보다 이런 소모적인 인터뷰는 정말 빈번합니다. 특히 연령대가 있는 분들, 혹은 직업적으로 대화가 익숙하지 않은 분들을 인터뷰하면 마음 약한 PM의 경우 굉장히 난처해합니다.


이럴 때는 “선생님 정말 죄송하지만, 아까 말씀드렸던 순서 있잖아요. 제가 다른 내용도 충분히 여쭤보고 싶어서요! (화이트보드를 가리키며) 혹시 다음 질문드려도 괜찮을까요?” 라고 하면서 슬그머니 제자리를 찾아가야 합니다. 대부분의 참가자들은 구조를 설명해주면 보통 자기 이야기를 중단하고 큰 흐름을 따라갑니다. (혹시 그렇지 않은 경우 대처법은 뒤에서 말하겠습니다.)




2. 파고들기, 더 깊이


인터뷰는 구체적이어야 합니다. 문제는 '어떻게 구체적일 거냐'는 건데요. 2가지를 기억하면 도움이 됩니다. 첫째, 추가 질문을 의식적으로 계속 해야합니다. '조금만 더 자세히 설명해주시겠어요?’ 처럼 파고드는 질문 말입니다. 인터뷰의 대상자들은 대개 본인이 사용하는 서비스를 만드는 직원들에게 짧은 말로 확실한 인사이트를 주고 싶어 합니다. 그래서 자기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만 맥락을 제외하고 반복합니다.


문제는 이런 선의 때문에 기획자가 제일 알고 싶은 진짜 현실이 뭉텅뭉텅 잘려나간다는 겁니다. 편집 현상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PM이 맥락을 억지로 끄집어 내야합니다. 인터뷰 대상자분들께 '제가 알고 싶은 것은 정말로 자세한 이야기’ 라는 걸 계속해서 강조해야 주어야 하죠. 최초에는 단답식으로만 나오던 대답이 점점 사례형으로, 감정까지 섞여가면서 나온다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겁니다.


만약 대상자가 구체적인 답을 주는 것을 계속 어려워 한다면 질문을 틀어봅니다. 1. 혹시 예시를 한번 들려주실 수 있을까요? 2. 구체적으로 %로 표현하면 어느 정도일까요? 처럼요. 인터뷰의 하이라이트 답변은 처음 던지는 질문보다, 오히려 추가 질문에서 나오는 경우가 압도적으로 많습니다. PM이 겉핥기 질문만 해놓고 답변이 겉핥기로만 나왔다고 불평하는 것만큼 답답한 일도 없습니다.


둘째, 꼭 종이와 펜을 준비합니다. 대상자의 답변을 듣다 보면 내가 그것을 머릿속으로 그리고 있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럴 때는 형상을 머릿속에 담아두지 말고 직접 종이에 그려 참가자에게 보여주어야 합니다. 그리고 대상자에게도 선생님이 생각하시는 바를 직접 그려달라고 부탁합니다. 예를 들어 배달파트너가 배달 동선을 이야기한다면 지도 모양을 슥 그려 놓고, '이렇게 동그랗게 배달하신다는 말이죠?', ’이런 경우는 동선을 어떻게 짜세요?' 와 같이 종이로 소통합니다.

 

이런 종이랑 펜하나 준비해두면됩니다.


이렇게 하면

1. 시각적으로 정확한 정보를 얻고
2. 오해의 여지를 원천 차단하며
3. 인터뷰에 구성에 활기를 부여하고,
4. 정리 시 참조하기도 좋습니다.


3. 정돈하기, 중간중간


인터뷰 중간 사용하면 정말 좋은 말이 하나 있습니다. ‘그럼 제가 정리해볼 테니 아니면 아니라고 말해주세요.’ 우리는 준비된 인터뷰어입니다. 하지만 대상자는 그렇지 않습니다. 질문은 논리적이더라도 대답이 파편적으로 나오는 것이 당연합니다. 인터뷰가 모두 종료된 뒤, 1시간 넘게 쏟아진 답변을 부스러기부터 줍자면 뉘앙스나, 맥락은 날아가 버리기 일쑤입니다. 이럴 때 도움이 되는 것이 '중간 정리'입니다.


인터뷰 대상자의 답변을 들은 후, 내용을 즉석에서 정리하여 내가 이해한 것이 맞는지 되물어보아야 합니다. 재미있는 것은 PM의 중간 정리가 생각보다 높은 확률로 대상자의 의도와 다르다는 것입니다. 대개 대상자는 ‘아뇨, 그게 아니라요..’ 혹은 ’아 그것도 맞는데요.'라는 문장으로 새로운 내용을 부연합니다. 1. 기획자는 정신을 바짝 차릴 수 있고, 2. 즉석에서 인사이트를 뽑아낼 수 있으며 3. 인터뷰를 잘못 해석하는 오류에서도 벗어납니다.


요리를 잘하는 사람은 요리 중간에도 설거지를 틈틈이 합니다. 좋은 인터뷰도 똑같다는 것을 기억해주세요.




4. 포기하기, 아니다 싶으면


세상 일은 늘 계획대로 흘러가지는 않습니다. 분명히 똑같은 인터뷰를 진행하는데, 질문마다 삐그덕대는 분들이 있습니다. 이런 인터뷰는 시간을 쓸수록 손해입니다. 인터뷰에 적합하지 않은 대상자는 첫 5분만 지나도 알 수 있습니다. 1. 대개 너무 피곤해하시거나, 2. 방어적인 태도를 고집하고 3. 평범한 질문에서도 이상한 의도를 캐내려 하십니다. 이런 분과 인터뷰를 끝까지 진행하면 PM의 체력과 정신력이 남아나지 않습니다.


PM은 한 명만 상대하지 않습니다. 정신력의 한계도 정해져있습니다. '아니다' 싶으면 빨리 끝내는 게 양쪽 모두에게 좋은 일입니다. 중간에 인터뷰를 끊을 때는 '답변을 깔끔하게 해 주셔서 인터뷰가 빨리 끝날것 같다'라던지 '이미 여러가지 말씀 잘해주셔서 뒤에 질문들은 필요 없을 것 같다'는 식으로 차근차근 종료해 나가면 됩니다. 특히 시니어 PM이 이 일을 잘 해주어야 주니어들의 시간이 절약됩니다.


아무리 대상자를 잘 추렸다고 하더라도 경험 상 5명 중에 1명은 깊은 얘기를 나누기 힘든분입니다. 아예 인터뷰 인원을 넉넉하게 잡고 곤란한 대상자분들은 서둘러 마무리하세요. PM의 한정된 시간은 꼭 써야하는 분들에게 가야합니다. 눈앞에서 장황하게 말하는 대상자의 말을 끊는 것은 생각보다 매우 어려운 일지만 PM은 제품을 만드는 사람이지 심리상담사가 아니라는 점을 냉정하게 다짐해야합니다.




3. 진행 후


1. 필요한 사람에게 필요한 정리를


이제 정리시간입니다. 가장 먼저 '이걸 왜 정리하는가'를 기억합니다. 가끔 인터뷰 '정리'에만 2-3일씩 열정을 쏟아가면서 걸작을 만드는 꼼꼼러 분들이 있습니다. 물론, 1) 프로젝트 기간이 넉넉하거나 2) UX 리서치가 본업이라면 멋진 문서를 작업할 수도 있겠죠. 그러나 상용 서비스를 맡아서 매일 아침 지표까지 챙겨야 하는 PM이 시간을 이렇게 허투루 쓸 여유는 없습니다.


‘빠른 시간에 핵심만’ 짚어내어 2시간이면 정리까지 마쳐야 합니다. 인터뷰의 목적은 인사이트의 발굴이지만 '인터뷰 정리'의 목적은 조금 다릅니다. 함께 프로덕트를 만드는 사람들이 현장에서 나오는 말과 행동을 PM만큼 이해하도록 돕는 것 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불특정 다수가 대상이 아니라 함께 일하는 다른 직군의 사람들, 개발, 디자인, 마케팅에서 보도록 정리하세요. 예쁘게 정리할 필요도 없습니다 예쁜건 사용자만 보면 됩니다.


인터뷰 정리는 5단계로 나눕니다.


1단계 : 인터뷰 개요를 설명합니다.


1) 누구와 (who)
2) 언제 (when)
3) 어디서 (where)
4) 무슨 목적에서 (why)
5) 무엇에 관하여 (what)
6) 어떤 순서로 (how)

진행했는지 1줄로 씁니다.


예를 들어

1. 배달원 6인과
2. 2022년 4월 1일 - 5일
3.  본사 건물 20층 인터뷰실에서
4. 우천 시 기능 기획 목적으로
5. 우천 시 배달원 업무 행태에 관하여
6. 인적사항, 가설 검증, 시안 테스트 순으로 진행함

이라고 하면 쉽죠?


2단계 : 공유의 목적을 설명합니다.


인터뷰의 기본은 프로덕트를 만드는 사람들의 현장 이해도를 올리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 공유를 듣고 나면 내 동료들이 어떤 명제에 답을 알게 되는지 명확하게 짚어주어야 합니다. 앞서 설명했던 쿠팡이츠 예로 들면

'오늘 공유를 들으시는 분들은
1) 비가 올 때 배달원의 교차 사용성,
2) 비가 올 때 배달원의 프로모션 반응도
3) 비가 올 때 배달원의 출퇴근 패턴을
정확히 알고 설명하실 수 있습니다’

하면서 공유를 시작합니다.


그리고 목적은 적게는 2번, 많으면 3번까지도 말해도 됩니다. 이런 과정이 있어야 공유를 듣는 사람들이 '아 오늘 저거만 알면되는구나'하고 인터뷰 내용을 꼼꼼히 듣습니다.


3단계 : 질문과 답변을 공유합니다.


각 인터뷰 대상자 별로 남긴 답변과 답변을 종합한 한 줄 요약을 순서대로 전달합니다. 1. 답변은 최대한 있는 그대로, 2. 종합은 최대한 간결하게 씁니다. 대개 인터뷰 질문은 적게는 20개에서 많게는 50개까지 있기 때문에 이 내용만 잘 정리해도 충분히 알찬 공유가 됩니다. 하나의 질문에 대해 대부분의 응답자가 말한 공통 답변, 인사이트가 있는 특이 답변을 순서대로 정리합니다.


4단계 : 여정을 그립니다.


수집한 정보를 메타(meta)화 합니다. 인터뷰 참가자들의 답변을 종합하여 '일반화'된 그림을 그리는 겁니다. 이때 시간이 허락한다면 유저 저니 맵(Journey Map) 같은 시각적인 도구를 쓰는 것도 좋습니다. 사람은 글보다 그림을 잘 기억합니다. 우리가 얻어낸 정보를 글에서 그림으로 바꾸고 공유받는 사람들이 '한 개의 형상'으로 간직할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5단계 : 공유의 목적에 답합니다.


마지막 단계는 수미상관입니다. 앞서 2단계에서 공유의 목적을 '설명'했죠. 이제 그 목적에 하나씩 답을 해주면 됩니다. 마지막이니만큼 2번, 3번 강조해도 아무 문제없습니다.




2. 여담도 놓치지 않을거에요.


중심 내용 정리가 끝나면 여담은 따로 적어둡니다. 여담은 말 그대로 ‘남은 대화’입니다. 꼭 필요한 말은 아닌 지나가며 나왔던 얘기죠. 보통 10 문장 정도를 적습니다. 여담은 1. 라포 형성 단계에서 떠들던 잡담, 2. 인터뷰 대상자가 회사에 물어본 질문, 3. 인터뷰 대상자의 복장, 모습, 방문 시각 처럼 언어적, 비언어적 정보를 모두 포함합니다. 생각나는 대로 10분 정도만 적으면 됩니다.


동료들을 웃길 수 있는 애드립을 친다고 생각하고 위트 있게 적는 것도 아주 좋습니다. 예를 들어 1) 오토바이 헬맷을 쓰고 오신 분 있었음 2) 최근 변경한 배정방식 좋아하는 분 많았음 3) 대부분 인터뷰에 적극적인 태도를 보였음 4) 선물로 드린 기념품 정말 좋아하셨음 5) 마지막에 오신 분은 CTO랑 말투 똑같음 같은 내용도 될 수 있습니다. 여담은 단순한 흥미의 목적도 있지만 ‘인터뷰의 감'을 전달하기 위해 쓰는 겁니다.


참가자를 직접 만난 PM은 인터뷰 맥락에 대해 다양한 정보를 가지고 있습니다. 반면 전달만 받는 타직군은 현장의 냄새를 모르죠. 짧은 문장이라도 이렇게 정리해서 말해주면 현장에 있지 않았던 사람도 이 인터뷰가 어떤 분위기에서 진행되었는지 코드를 맞춰볼 수 있습니다. 더불어 잘된 인터뷰일수록 여담이 많습니다. 사용자의 진솔한 목소리를 많이 들었기 때문에 가설에서 생각지 못한 것을 여담을 통해 알게 되기도 합니다.



3. 인사이트 반영 계획 세우기


이제 마지막 단계입니다. 정리된 내용을 바탕으로 프로덕트 반영 계획까지 세웁니다. '인터뷰는 일이지만 일은 아니다’ 라는 알쏭달쏭한 말도 있습니다. 인터뷰에서 얻는 내용을 실제 활용할 때 '일'이 된다는 뜻입니다. PM은 정리 자료를 바탕으로 앞으로 프로덕트를 어떻게 개선할지 개략적인 방향성을 제시합니다.


예를 들어 앞서 쿠팡이츠 사례로 생각해 보면 '우천 시 배달원의 근무 행동'을 파악한 후 현장의 목소리를 잘 녹여 앞으로, 1) 가격 상향 로직 개선 2) 경쟁 플랫폼 대비 배정 방식 변경 3) 출퇴근 푸시 정책 변화 처럼 현실적인 업무까지 제안해야 합니다. 내용을 공유한 뒤 모든 구성원들이 논리적으로 '시장이 원하는 방향은 이쪽이구나’ '우리가 나아갈 목표가 저기구나!'를 납득할 수 있다면 성공적인 인터뷰 공유입니다.






마치며


프로덕트를 만들 때 적절한 수준의 인터뷰는 음식에서 기본 육수를 내는 과정과 같습니다. 1) 초기 단계에서 작은 실천이 결과물에서 큰 차이를 만든다는 점, 2) 해두면 두고두고 도움이 된다는 점, 3) 전체 재료(업무)를 어우러지게 한다는 점 이 특히 그렇습니다. PM이 잡무에 파묻히다 보면 인터뷰에서 차차 멀어지지만 완전히 등을 돌려서는 절대 안 됩니다.


개발자, 디자이너, 마케터처럼 함께 일하는 다른 직군의 전문가들은 우리팀 PM이 1) 시장과 2) 참여자를 세상 제일 잘 아는 사람이길 기대하기 때문입니다. 무엇을 질문하더라도 나무위키처럼 술술 대답해주리라 생각합니다. 설령 빈틈없는 모습을 보이지는 못하더라도 최선을 다하는 자세를 보이는 것만으로도 다른 직군은 PM이 제시하는 방향에 훨씬 믿음을 가지고 일할 수 있습니다.


PM은 동료들에게 좋은 등대가 될 수 있도록 인터뷰의 바다에 자주 나가야합니다. 큰 고깃배를 몰고 대대적으로 나가려 하지 말고 손그물이라도 잽싸게 챙겨서 그때그때 시장에 푹 젖어 돌아오면 됩니다. 고객과 자주 만나 훌륭한 인사이트를 낚아올수록 같은 프로덕트에 묶인 동료들과 깔깔거리면서 행복한 팀을 만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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