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쁜 저니맵이 좋은 저니맵인가?
유저저니맵(User Journey Map)은 예쁩니다.
잘 모르는 사람들이 보면 ‘UX디자인이란 이런 것이구나’하는 생각도 들게 합니다. 의사 선생님들이 진료실에 인체 해부도 하나씩 두시는 것처럼, PM의 자리에도 저니맵 하나쯤 걸려 있어야 할 것 같습니다. 하지만 막상 "훌륭한 유저저니맵(이하 저니맵)이란 무엇입니까?"라고 물었을 때 시각적인 아름다움은 판단 기준이 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투박한 저니맵이 우수한 경우도 흔합니다.
이번 챕터에서는 좋은 저니맵이란 무엇인지 함께 고민하겠습니다. 저니맵을 1) 왜 만드는지, 2) 어떤 순서로 만드는지, 3) 만들 때 무엇을 주의하면 좋은지 살펴보겠습니다. 출장 타이어 교체 서비스의 PM이 되었다 생각하며 예시를 들어보겠습니다.
저니맵의 정의는 이렇습니다.
1. 사용자가
2. 어떤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3. 수행하는 일련의 행동에서
4. 그들이 마주하는 문제점과
5. 제품 기회를 파악하는
6. 시각적인 도구입니다.
출장으로 타이어 교체를 하는 기사앱을 예시로 하면
1. 출장 타이어 교체 기사가
2. 타이어 교체 업무를 하기 위해
3. 수행하는 일련의 업무 절차를 정리하고
4. 각 절차마다 기사가 마주하는 문제점과
5. 이에 대한 개선 사항을
6. 1장으로 정리한 그림이라 하겠습니다.
저니맵을 만드는 데는 2가지 목적이 있습니다.
첫째는 PM이 지식을 정리하기 위해 만듭니다. PM은 저니맵을 만들기 전 짧게는 며칠, 길게는 몇 달 동안 시장의 규칙을 경험하고 돌아옵니다. 새로운 장소에서 얻은 파편화된 노하우를 자기 언어로 소화하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여행 후 수기를 써두는 것과 비슷하다 하겠습니다.
둘째, 동료들에게 지식을 전달하기 위해 만듭니다. 두 번째 목적이 첫 번째 목적보다 훨씬 중요합니다. PM은 혼자 공부하기 위해 시장을 헤집고 다니지 않습니다. 동료 직군의 대표로서 "팀을 위한 지식"을 모아 온 겁니다. 동료들에게 정확히 전달하지 못한다면 개인 취미활동을 한 것이나 다름없는 일입니다.
따라서 저니맵 작성의 최우선 가치는 가독성입니다. 꼼꼼해 보이고, 화려하더라도, 핵심이 안 보인다면 날 것 그대로 말해 그 저니맵은 무가치합니다. PM이나 PD(Product Designer)가 자기만족을 위해 작성한 연습일 뿐 훌륭한 프로덕트를 만든다는 궁극적인 목표와는 멀어집니다. 때문에 저니맵 작성은 반드시 단순하고, 직설적이어야 합니다.
어떻게 해야 단순하고, 직설적일 수 있을까요? 아래 단계를 따라가 보면 도움이 됩니다.
요리에는 재료가 8할이고, 저니맵은 시장 지식이 9할입니다. PM이 시장에서 충분히 보고, 듣고, 직접 해본다면 자료 자체는 30분 슥슥 그리면 끝납니다. 흰 화면을 보면서 어디서부터 시작해야할지 감이 안 잡히거나, 중간에 덜컥 멈추게 된다면 시장 조사가 부족하지 않았는지 되돌아봐야 합니다. 다양한 인터뷰 자료, 현장 기록, 실사용 데이터를 한 군데 모아 충분히 관찰합니다.
두 번째 단계는 퍼소나 설정입니다. 퍼소나란 ‘특정 사용자 그룹을 대표하는 가상의 인물’을 말합니다. 시장에는 넓은 스펙트럼의 사용자가 있습니다. 앞서 출장 타이어 교체 기사의 예시를 들면, 1) 타이어 전문점 운영을 정비사부터, 2) 단순 기술로 알바하는 대학생까지 있을 수 있습니다. 이들 중 누구를 저니맵의 주인공으로 삼을지 정하고 해당 퍼소나의 관점을 정리합니다.
퍼소나 예시
1. 타이어 정비 업무를 n년 이상 해왔으며
2. 정시보 내 업무를 주 수입원(50% 이상)으로 하지만,
3. 예약 기반으로 오전/오후 시간 중 일부를 출장 업무로 하는 사장님
퍼소나가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행동을 순서대로 나열합니다. 처음에는 최대한 자세히 적습니다. 행동 개요와 상세, 시간, 장소를 적습니다. 구체적인 정보를 적다 보면 실제 장면을 상상하면서 저니맵을 작성할 수 있습니다. 만약 저니맵이 지나치게 복잡하다 싶으면, 중요도가 낮은 단계를 생략할 수도 있습니다.
각 단계별 퍼소나의 생각과 감정을 적습니다. 전통적인 저니맵을 보면 이 부분을 감성선(스트레스선)을 이어 어느 지점에서 사용자가 만족하고 있고, 어느 지점에 불만족하는지 확인할 수 있도록 합니다. 하지만 감정의 높낮이를 그린다는 것은 굉장히 자의적인 일이기 때문에, 정확할 필요도, 정확할 수도 없습니다. 중요한 점은 행동 과정 중 유저 스트레스의 핵심이라고 생각되는 지점을 두드러지게 그리는 것뿐입니다.
단계마다 문제 가설을 적어봅니다. (가설이란 네/아니오로 대답할 수 있는 추정문입니다.) 앞서 행동 단계 별로 유저의 스트레스 상황을 적었으니, 이를 가설로 표현합니다. 예를 들어, “타이어 출장 기사들은 일정을 관리할 때 예약 시간을 변경하기 어려울 것이다”도 가설로 잡을 수 있습니다. 뒤이어 데이터로 가설을 뒷받침합니다. 일정을 조회한 횟수나 변경한 로그를 확인해볼 수 있습니다.
마지막은 과제 영역을 표시합니다. 가설과 데이터를 기반으로 프로덕트팀 과제의 실마리를 제안합니다. 어느 지점이 핵심인지 큼직하게 표시해 주는 것도 좋습니다. 이렇게 하면 많은 정보가 중첩되어 복잡한 저니맵에 중심을 잡을 수 있습니다. 저니맵의 독자에게 시선의 출발점을 제공해주어야 합니다.
저니맵은 필연적으로 복잡합니다. 따라서 작성자는 의도적으로 단순함에 집착해야 합니다. 이 문서는 손 가는 대로 그리면 1) 거대하고, 2) 복잡하고, 3) 어떤 면에서는 지나치게 예쁜 그림이 탄생합니다. 하지만 이런 저니맵은 아무도 보지 않습니다. 깨알처럼 쓴 노트필기가 오히려 버려지는 것과 같습니다. PM이 쫓아다니며 설명하지 않더라도 동료들이 알아서 찾아보는 저니맵이 진실로 좋은 저니맵입니다.
초안을 다 만들면 꼭 필요한 정보만 담겨있는지 엄격하게 확인합니다. 사족은 과감하게 지웁니다. 이 과정은 혼자서 점검하는 것보다 동료 PM이나 디자이너 동료들과 적극적으로 소통하며 진행합니다. 불필요한 정보는 제3자의 시각에서 제거합니다.
잘 만든 저니맵은 한눈에 들어옵니다. 시선의 동선이 분명하다는 의미입니다. 독자의 한정된 시선이 주요 지점에 몰리도록 유도합니다. PM은 폰트, 도형, 화살표 등 다양한 도식을 활용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위 예시에서도 마지막 과제 영역에 동그라미 크게 친 것이 같은 맥락입니다.
주요 지점을 뽑는 게 어렵다면 딱 3개 포인트만 찍어보는 것이 도움이 됩니다. 동료 모두가 PM과 같은 수준의 시장 지식을 갖추는 것은 어려운 입니다. PM은 저니맵 자체가 아니라 동료들의 머릿속에 들어가야하는 지식을 선별하고 지정하는 역할도 해야합니다.
저니맵은 프로덕트팀에게 광장 같은 역할을 합니다. PM, 디자이너, 개발자들은 시장 지식이 녹아있는 저니맵 위에 모여 같이 미래를 토론하기 때문입니다. 광장이 아름답지만 지나치게 장식물이 많다면 동료들이 뿔뿔이 흩어져 각자 보고 싶은 것만 보고 자기 할 말만 하게 됩니다. 반면 깔끔하고, 위계구조가 분명한 광장에서는 고대 그리스의 아고라처럼 치열한 토론이 벌어집니다. PM은 광장의 건축가이자, 청소부로서 동료들을 저니맵으로 초대하고 토론을 주재하는 역할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