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N잡러다!
종종 엄마가 전화를 걸어 뭐 해?라고 물어보시면,
대부분 “응, 작업실이야!” 혹은 “그림 그려!”라고 이야기한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시다가 “그럼, 재밌게 놀아!”라고 마무리 인사를 하신다.
“네” 하고 맑고 곱게 끊은 뒤,
‘작업실이라고! 노는 것 아니라고!’ 말하고 싶었던 나를 우쭈쭈 달래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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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매번 베레모를 쓰시고 그림 수업에 오셨던 할아버지가 생각난다.
내 그림을 보더니
“진짜 잘 그리네... 나도 어릴 때부터 그림 참 좋아했는데...” 하며 말끝을 흐리시길래
맞장구쳐드리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할아버지는 아쉬운 눈빛으로
그림으로 생계를 이을 수 없어서 그림을 그리지 않았다고 하셨다.
우리 엄마의 생각도 다르지 않다. 내가 하는 모든 그림 관련 활동들은 단순히 취미일 뿐인 거다.
구글 사전에 보면 취미는 “인간이 금전이 아닌 기쁨을 얻기 위해 하는 활동“이라고 쓰여있다.
반대로 직업은 “생계를 유지하기 위하여 자신의 적성과 능력에 따라 일정한 기간 동안 계속하여 종사하는 일”이라고 쓰여있다. 그 일로 생계를 유지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생계를 유지할 정도면 어느 정도의 액수일까?
2023년 기준으로 최저임금은 월 200만 원 정도인데, 그 정도를 벌면 업이라고 할 수 있는 걸까?
황현산 선생님의 산문 “밤이 선생이다”에 보면 30만 원으로 사는 시인에 대한 글이 있다.
시를 쓰는 일로 30만 원을 벌고 그것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시인에 대해 그 누구도 취미라고 이야기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업이라는 건 돈의 액수와는 상관이 없는 게 아닐까...
이건 조금은 다른 이야기인데, 최혜진 작가님(한국의 그림책 작가들에게 묻다)의 인터뷰에서 인상 깊은 글이 있어 소개해 본다. 19년 차 잡지 에디터이자 작가, 번역가, 브랜드 컨설턴트인 그녀에게 시간관리에 대해 물어보는 질문이었다. 그녀는 구글 캘린더에 에디터, 브랜딩 디렉터로서의 업무뿐만 아니라 작가, 강연자, 번역가의 일도 모두 정리한다는 대답을 하였다. 인터뷰는 ‘작가로서의 삶만큼이나 생계를 유지하는 노동자로서의 자아도 정확한 편이다’라는 글로 마무리되었다.
‘어느 한쪽으로 치우지지 말고 생계와 꿈 사이에서 균형을 잡아야 하는 거구나.’
나의 생계를 책임져주는 것은 남편의 월급이다.
인터넷사전정의에 의하면 나는 집에서 아이를 돌보고 집안일을 하는, 직업은 ‘주부’ 요 취미는 ‘그림’이 맞다.
하지만 나의 스케줄 노트에는 주부 그리고 그림 관련 스케줄, 가끔 있는 강사 일이 듬성듬성 정리되어 있다. 제일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 것은 그림과 글쓰기이다..
주부의 일은 돈으로 환산할 수 없고, 강의 일은 그림 그리는 일과 딱 붙어있다. 업이라는 건 돈의 액수와는 상관이 없고 그 일을 대하는 나의 태도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