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업작품을 보통 졸작이라고 하지요.
장수풍뎅이의 우화
플라스틱 채집통 속에서 일 년을 보낸 장수풍뎅이의 3령 애벌레들이 성충이 될 준비를 합니다. 번데기 방을 만들기 직전에, 왜인지 톱밥 밖으로 자꾸 나오던 녀석들은 다시 속으로 들어가 작업 공간을 만들고 스스로를 부어 담을 주황색 거푸집을 만듭니다. 그 안에서 어떤 뜨거움으로 자기를 녹여 거푸집에 가득 채워 굳히는지 알 수 없으나 녹았다가 굳어가는 그 분해의 상태에서도 번데기는 건드리면 꿈틀합니다. 밖에서 잘못 만지면 우화 부전으로 기형이 되거나 죽을 수도 있을 만큼 생생하게 스스로 살아 있는 장수풍뎅이의 번데기. 거기에서 전해지는 말랑말랑한 힘을 봅니다. 스스로 만든 거푸집에 자기를 녹여 붓는 애벌레의 부드러운 힘. 오롯이 스스로의 힘만으로 이루어야 하는 일을 스스로 이루는 번데기의 그 부러운 힘.
애벌레가 흙을 먹고 싼 똥은 곧 딱딱하게 굳어집니다. 장수풍뎅이의 애벌레 시절은 딱딱하게 굳히는 연습을 하는 시간일지도 모릅니다. 그 안에서 몸을 녹일 때 덩달아 녹지 않아야 하는 주황색 거푸집은 말하자면 그 연습의 끝에 제출해야 하는 졸업작품 같은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졸업작품은 보통 졸작이지요. 똥처럼 끝내 딱딱해지지 못하고 결국 벗겨지도록 만들어진 번데기집을 마지막으로 연습을 끝낸 장수풍뎅이는 어른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