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이 우리를 위로할 수 있을까?
AI기술이 활용된 두 편의 예능을 보았다. 하나는 TVN의 ‘회장님네 사람들’에 등장한, AI 기술을 활용해 구성된 고 박OO 씨의 모습. 다른 하나는 MBC의 ‘놀면 뭐하니’에 등장한, 30여 년 전에 사망한 남편의 목소리가 녹음된 낡은 음성 테이프를 AI 기술을 활용해 복원하여 아내와 딸들에게 들려준 그의 목소리. 두 프로그램의 공통점은 이미 고인이 된 사람이 AI 기술로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말 혹은 행동을 하며 등장했다는 것이다.
‘화장님네 사람들’의 경우, AI 기술을 통해 마치 온라인 화상 회의를 하는 것처럼 화면을 사이에 두고 고 박OO 씨와 출연자들이 서로 대화를 하는 놀라운 모습을 보였다. 기존의 딥페이크 기술에서 진일보한 AI 영상 기술에 한 출연자가 ‘무섭다’는 반응까지 보인다. 그러나 점차 상황에 적응이 되자 고인과 오랜 인연이 있는 출연자들은 죽음 너머에 있는 고 박OO 씨를 실제로 만나는 듯한 몰입감을 보인다. 가장 극적인 순간은 고 박OO 씨의 실제 딸이 출연하여 그와 대화를 나누는 부분이다.
‘놀면 뭐하니’의 경우는 30여 년 전 돌아가신 남편이자 아버지인 한 남성의 목소리가 녹음되어 있지만 낡아서 잘 듣지 못하게 된 오래된 녹음테이프를 복원한다. 복원된 테이프에서 튀어나오는, 자신의 30년 전 울음소리를 듣는 딸의 모습, 많은 시간이 흘러 함께 노래를 불렀다는 사실과 남편의 목소리조차 가물가물해졌던 아내가 30년 전의 추억을 떠올리며 감격해하는 장면은 감동적이었다. 이 에피소드에서도 가장 극적인 순간은, AI 기술을 활용해 재구성된 남편의 목소리가 딸들에게 직접 말을 건네는 장면이다.
두 프로그램 모두 죽은 이가 등장한다. 죽음은 되돌릴 수 없는 현상이다. 인간은 죽음과 늘 함께였고, 이를 막거나 되돌려보려는 노력도 늘 있어왔다. 그러나 그것이 불가능하다는 것도 변하지 않았다. 그래서 죽음을 대하는 방식이나 이미 죽은 이들을 기억하는 방법에 관한 노력으로 관심의 초점이 이동되었다. 우리는 죽은 이의 목소리를 듣는 일이 낯설지 않다. 자신의 죽음을 앞두고 다른 사람들에게 남기는 편지, 음성, 영상들이 흔하다. 또 죽은 이의 혼이나 영을 불러서 대화를 나누는 굿 등도 그런 사례에 포함할 수 있다. 묘지로 대표되는 추모 공간을 만드는 일이나 유품을 간직하는 행위 등 살아있는 이들이 죽은 이를 생각하며 남은 삶을 꾸려나가는 방식은 여러 모양으로 있어 왔다. 때로 우리는 만약 그가 살아있다면 지금 어떤 생각, 말, 행동을 할까 생각하며 자신의 삶에 반영한다. 추모는 우리 삶의 일부이다. 되돌릴 수 없는 죽음은 이렇게 극복된다.
그러나 이제 AI 기술은 죽음에 대한 전혀 다른 제안을 하고 있음을 본다. 지금까지는 죽은 이가 우리 내면으로 들어와 나에게 속하며 추모되어 왔다면, 앞으로는 죽은 이가 우리 밖의 어떤 곳에 존재하게 될 수도 있다. AI 기술은 고 박OO 씨나 30여 년 전에 죽은 남편이자 아버지인 한 경찰관을 가족의 눈과 귀 앞에 나타날 수 있게 했다. 이들은 기술을 통해 그들의 말과 행동이 구현됨으로써 한 순간 ‘산다’. 단순히 과거의 말과 행동을 복원하는 것에 그친 것이 아니다. 지금, 여기에서 자신은 잘 있으니 걱정 말라며 남아있는 가족을 위로하고 자녀들에게 잘 커줘서 고맙다고 인사를 한다. 죽음 이후에, 새로운 삶의 흔적을 남기는 듯하다.
엄밀하게 말하면 그들은 죽은 이와 ‘다른’ 누군가이다. 그러나, 그 구분은 잘 되지 않는다. 살아있는 듯한 그들의 말은 남은 이들에게 위로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AI가 죽음을 건너 그들과 면담을 하고 온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AI는 그들의 말과 행동 밑바탕에 있는 그들의 생각과 느낌을 알지 못한 채 그들의 말과 행동을 ‘만들어 낸다’. 그럴듯한 가짜다. 최첨단 기술이지만, 죽음을 다루는 방식으로서는 죽은 이의 혼을 불러내 그 목소리를 들려주는 무당보다 못한 것이다. 죽은 이의 생각과 느낌은 그들의 고유한 것이다. 그들은 죽었으므로, 더 이상 말하지 않는다. AI 기술을 통해 표현된 지금의 그들의 말과 행동은 정확한 것이 아니다. 이 방식은 죽은 이에 관해, 정확하지 않은 어떤 것을 우리의 앞에 세우고 그것이 스스로, 따로 살아가게 만들어 이미 죽은 이와 아직 죽지 않은 이 모두를 왜곡하는 방식이다. 이런 방식으로는 죽음은 극복되지 못할 것이다. 그저 외면되도록 부추길 것이다.
죽은 자들은 산 사람들의 가슴속에서만 살아 있어야 한다. 죽은 자들은 산 사람 각각에게 모두 고유한 존재로 그 안에서 기억된다. 이들이 AI기술로 살려낸 것처럼 보이는 허상과 다른 점은 죽음 이후의 그들의 삶에 대한 우리의 태도 문제다. 기억을 떠오르게 하고, 오래 더 오래 남도록 하기 위해 기술을 사용하는 것은 좋다. 그러나, 가짜로 하여금 진짜 삶의 기록에 무단으로 무언가를 더 추가하도록 해서는 안될 것이다. 설령 가짜가 남은 자들을 진짜로 위로한다고 할지라도. 나는 기술이 우리를 위로하는 미래보다는 기술이 위로에 도움이 되는 미래를 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