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끄러지는 것이 당연한 곳이 세상 어딘가에라도 있어주길. 언제까지라도.
엘리베이터를 타고 지하로 내려간다. 문이 열리자 둥둥둥둥, 귀 아닌 몸을 울리는 음악 사이로 ‘내가 제일 잘나가’라며 쏴대는 목소리가 레이져 불빛과 함께 휙휙 쏟아진다. 지금은 롤러 스케이트가 아니라 롤러 블레이드의 시대라던데, 롤러장엔 롤러 스케이트가 훨씬 많다. 왠지 롤러장은 롤러스케이트가 더 잘 어울린다. 점점 더 박하게 줄을 세워가는 시대이지만 한 줄보단 두 줄이 그나마 낫지 않겠나.
몸의 중심이 잘 안잡히는 경험을 굳이 찾는 사람들. 여기에도 있다. 놀이 공원의 회전 놀이기구들, 호프집의 소맥, 그리고 롤러장의 롤러스케이트. 간혹 이런 곳에서도 남들보다 빠르고 정확하게 앞으로 치고 나가는 이들이 있어 얄밉지만, 대부분은 너도 나도 미끄러지고 넘어질 수 있다는 걸 눈 앞에서 확인하며 단단한 세상에 부딪히며 굳어지던 마음을 풀어보는 것 아닐까.
허우적대는 팔과 엉거주춤한 다리들. 쓰러지지 않고 그저 서있는 것이라면 무엇이라도 붙잡고 의지하고 싶은 마음이 저절로 일어나게 되는 곳. 미끄러지거나 넘어져도 괜찮은 곳. 다시 일어나서 또 흔들리는 것이 당연한 곳. 모두가 흘러가고 있지만 저마다 다른 속력으로 가도 되는 곳. 나이가 어떻든 처음엔 다 서툴다는 걸 기억나게 하는 곳. 이러니 롤러장이 앞으로도 계속 세상 어딘가에 - 어디 저 먼 낡은 상가 지하에라도 - 있어주길 바라게 되는 것이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간다. 문이 열려고, 변함없는 그 세상. 바른 걸음으로 걸어 나간다. 비틀대며 넘어지는 일이 부끄럽다 여겨지는 곳이기에. 모두가 잘 서 있는 것 같지만 기댈 곳을 찾긴 어려운 곳으로 걸어가지니, 바로 바퀴가 그리워진다. 롤러가 그리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