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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II제이 Mar 20. 2023

남천, 빨간 휴식 (23년 2월 하순의 순간)

빨간 남천 알알이, 내 눈을 빼앗아갔다가 돌려줄 때.


남천


  일터가 학교라서 좋은 점이 몇 가지 있다. 그 중 하나가 교정이다. 1층으로 내려가기만 하면 바로 호젓한 산책을 할 수 있는 공간이 있다. 노트북을 계속 봐서 눈이 어른어른 할 때라거나,  오래 앉아 있어 엉덩이에 감각이 떨어지는 것 같을 때 자리에서 일어나 걸으러 간다.  운동장을 오른편에 두고 잠깐 걷다가, 학교 건물을 끼고 오른쪽으로 짠, 돌면 전경으로 멀리 공원이 있고, 좌우로 화단에 텃밭까지 있는 조용한 공간이 펼쳐진다. 거기 화단에 눈에 띄는 식물이 있는데, 화단에 우르르 몰려 서 있는 남천이다.

  더울 때는 검은색으로, 추울 때는 빨간색으로 데글데글 작고 동그란 남천 열매는 잔뜩 맺힌다.  세 갈래 정도로 갈라지는 뾰족하고 귀여운 잎들 사이로 서리태 콩 같은 열매가 달리고, 추워지면서 이게 빨갛게 차오르는데, 그 열매가 겨우내 쓸쓸해진 화단에 그나마 밝은 힘을 준다.

  눈으로 확 치고 들어오는 그 빨강에, 잠깐동안 주위의 다른 것이 밀려나면 조용히 눈과 엉덩이의 긴장이 풀리는 것이다. 그리고 다시 새 소리며, 운동장에서 아이들이 떠드는 소리, 교실에서 흘러나오는 강의 소리를 배경음 삼아 유유히 교정 뒤뜰을 통해 다시 일터로 돌아온다.

  봄이 올 때 쯤이면, 남천 열매들은 시든 잎들 사이에서 마치 그 때까지 남아있는 크리스마스 장식처럼 보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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