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무진이 부럽다고?
리무진
아무래도 흔하지 않고,
크다보니 부의 상징으로 활용된다.
‘리무진’이라는 제목의 랩도 있다.
거기서도 성공이나 부의 의미로 활용되었다.
필요 이상으로 큰 것은
이미 ‘필요’의 범위를 넘어선 어떤 의미를 전달한다. 실용적이지 않은 것에까지
신경을 쓸 수 있다는 것은,
다른 말로 하면
실용적인 것에 얽매이지 않을 수 있는
자유가 있다는 것일 테니
그런 차를 타는 사람은
뭔가로부터 자유로운 사람들이겠지.
오늘 차를 타고 인천쪽으로 갈 일이 있어
고속도로를 탔다.
막 터널을 빠져 나와
시야가 확 밝아진 탓인지
내 옆으로 지나가는 차에까지 눈길이 갔다.
옆 차선으로 나보다 빠르게 달려가는 차들 중에
내 시선을 더 길게 붙잡은 차가 있었다.
차가 지나간다 싶었는데
그 차의 뒷부분이 나타나지 않고
마치 기차가 지나가는 것처럼
길게 뒤로 차체가 이어지는 것이 생소했다.
죽 이어지는 차체를 눈으로 따라가며
속으로 생각했다.
‘아 리무진이네,
저런 차를 타고 가는 사람은 누굴까?
여유가 있는 사람이겠지, 부럽네’
옆 차의 꽁무니가 보일 때까지
짧은 시간 동안 이런 생각을 했지만,
나는 곧 쓴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그 차의 뒷창문에 붙어있는 두 글자의 한자.
‘근조’. 운구차였다.
민망한 순간이었다.
실용적인 것에 얽매이지 않을 수 있는
자유는 언제나 올까.
"세상 걱정 없는 사람들이 모여 있는 동네가 있습니다.
그 곳은 다름 아닌 공동묘지입니다."
죽음이 자유를 준다는 이야기라기보다는,
온전히 걱정 없이 자유로운 사람은
세상에 없다는 의미일테다.
모든 리무진이 죽은 이를 태우는 것은 아닐테다.
그렇다고 리무진을 모두 부러워할 일도 아닐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