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 좋은 것들만 끼기를...
끼ː다² 【자동사】
① 안개나 연기 따위가 퍼져서 가리다.
┈┈• 구름이 ∼.
② 때나 먼지 따위가 엉겨 붙다.
┈┈• 옷에 때가 ∼
┈┈• 눈곱이 ∼.
③ 이끼·녹 등이 생겨서 엉기다.
┈┈• 곰팡이가 ∼.
④ 어떤 표정이나 기미가 어리어 돌다.
┈┈• 수심 낀 얼굴.
‘끼다’의 ‘끼-’는
일상생활에서 흔히 쓰이는 말입니다.
그런데 낯이 설지요?
이번에 주목한 부분은
‘끼다’가 가지고 있는 뜻 중
‘퍼지다, 엉기다, 어리다’와
관련된 부분입니다.
이 의미들은
‘어떤 것들 사이에 들어가다’라는
‘끼다’의 더 근원적인 의미에서
확장된 의미라고
전 생각합니다.
‘마가 낀다’
‘액운이 끼었다’와 같은 식으로
자주 쓰이는 단어입니다.
그런데,
뭔가 좋은 게 ‘끼는’
그런 경우는 없을까요?
여전히 별로 좋은지 모르겠지만
‘(산이나 건물 사이로) 안개가 끼다’,
‘(눈꺼풀 사이로) 눈곱이 끼다’처럼도 씁니다.
‘끼다’라는 말이
뭔가 어떤 것 딱 하나가
어디 사이에 들어간다는 의미에서
더 나아가
하나가 여럿으로 나눠져
군데군데 사이사이
들어가게 된 상황을 표현하는 단어로
쓰이는 것일 텐데요.
국어사전을 조금 더 읽다 보면
이런 상황과 관련하여
능동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단어가
등장합니다.
바로 ‘끼뜨리다’입니다.
‘끼뜨리다’는
‘흩어지게 내던져 버리다.’라는 뜻입니다.
누군가가 직접 행동하는 의미
즉, 능동적인 의미를 가진 단어입니다.
‘끼다’의 주어들을 보면
‘안개, 먼지, 이끼, 표정’ 등
직접 행동할 수 있지 않은
사물 주어들입니다.
그래서 ‘끼다’는
주로 수동적인 의미를 가진 단어로
보이는데요,
'끼뜨리다'는 이것과 상반됩니다.
여전히 ‘끼-’가 낯설다면
다음 단어는 어떠신가요?
‘끼-’와 관련하여
우리가 일상에서 가장 흔히 사용하는 단어는
사전에서 조금 지난 목록에 등장하는데요,
평소 아무 생각도 없이 쓰는 단어였는데,
앞에 두 단어의 뜻을 생각하면서 보니
‘아 이게 이런 뜻으로 쓰이는 말이구나’ 하며
그 말뜻이 좀 더 확실히 잡히게 되었습니다.
그 단어는 바로
‘끼얹다’입니다.
‘어떤 것의 위로 흩어지게 뿌리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지요.
‘얹다’의 의미는 '올려놓다' 정도이지요.
‘끼-’와 결합하면서
덮밥을 만들기 위해
밥그릇에 밥을 넣고
그 위에 제육이나 카레를 ‘끼얹는’
바로 그 의미가 완성되었습니다.
쓰다 보니
단어 ‘깨다’도 떠오릅니다.
‘깨뜨리다’와 ‘끼뜨리다’는
거의 발음이 유사하니까요.
둘은 어떤 차이가 있을까 생각해 봅니다.
‘깨다’는 ‘단단한 것을 조각내다’라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깨뜨리는’ 일은
한 덩어리로 단단한 것을 조각내는 것입니다.
한편, ‘끼뜨리는’ 일은
원래 여럿으로 나누어져 있는 것이 모여 있을 때,
그것을 다시 흩어지게 하는 것.
혹은 단단하지 않고 부드러운 어떤 것을
흩어지게 하는 것으로 뜻의 차이가 납니다.
흩어질 수 있는 것은 끼뜨리고,
흩어질 수 없는 것은 깨뜨려야 하는 것이지요.
‘끼다’는
역시 부정적인 것이 낄 때만
쓰는 것일까요?
그래도 ‘끼얹는’ 것들을 떠올릴 때
따끈따끈하고 맛있는 음식이
떠오르는 걸 보면,
꼭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습니다.
수동적인 의미로 ‘끼는’ 어떤 것들까지
우리가 어찌할 수 없다고 하더라도
능동적인 의미가 더해진,
우리가 ‘끼얹는’ 것들은
좋은 것들만으로 채워지기를 바라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