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담 [―땀] 【명사】: 불필요한 것에도 이름이...

8화. 불필요한 것을 골라내는 일은 꼭 필요한 일이지요.

by 제II제이

각담 [―땀] 【명사】


논밭의 돌·풀을 추려 한편에 나직이 쌓아 놓은 무더기.




추운 겨울이 지나가고 올

따뜻한 봄을 떠올려 봅니다.

봄이 되면

겨우내 묵었던 논밭을 갈아 엎으며

농사 준비를 합니다.

땅을 갈면 돌들이 걸려 나옵니다.

논밭은 이미 예전부터 해마다 돌을 골라내 왔을 텐데도,

갈면 그예 또 돌이 나옵니다.


땅을 갈고 나면 두둑을 쌓아

밭에 이랑과 고랑을 만드는데요.

그럴 때 뭉쳐있는 큰 흙덩이는

끙게 같은 것으로 부숴가며 부슬부슬하게 만들지만

돌멩이 들은 어쩔 수 없이 골라

밖으로 빼내야 합니다.

묵은 밭을 정리하며 골라낸 돌과 풀들은

결국 주변에 쌓아 두는데요,

그렇게 한참 일을 하고 나면

밭 주변으로 ‘각담’들이 생기게 됩니다.




사전을 계속 읽어가며 이어지는 한자어들 사이에서

간만에 우리말 단어를 만나 반갑습니다.

또, 이 단어는 앞으로 비유적 표현으로 활용해

살려 쓸 값어치도 있는 단어 같습니다.

‘각담’. 이 단어는

어떤 일을 하기 위한 준비 작업에서

덜어내고 제거해나가는 불필요한 것들 정도의 의미로

확장해서 사용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불필요해서 골라내 그저 곧 버려질 대상에도

사람들이 나름의 이름이 붙여 사용해 왔다는 사실이 신기합니다.

혹은 내가 모르는 ‘각담’의 다른 용도나 쓰임이 있는 것일까요?




‘네 각담이 아니면 내 소뿔이 부러지랴?’라는

속담이 있다고 합니다.

옆 밭에서 골라난 돌로 만들어진 각담에

내 밭을 가는 소가 걸려 넘어지게 한다는 의미이겠지요.

‘각담’의 의미를 잘 모른다면

(당연하게도) 이해할 수 없는 속담입니다.

지금은 잘 쓰이지 않는 속담이겠네요.

그렇지만 기껏 돌, 풀을 나직이 쌓아 놓은 무더기 때문에

소의 ‘뿔’이 부러진다는 건 억지입니다.

속담의 뜻풀이도

자신의 잘못으로 인한 손해를

남에게 억지로 넘겨 씌우려 트집잡는 말을 나타낸 것이라 합니다.


또, ‘각담 밑에 구렝이 있고 북데기 속에 알이 있다’라는

속담도 있습니다.

평범하여 신경도 쓰지 않는 곳에

값진 물건이나 인재가 있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입니다.

그런데 이 속담은

‘각담’이 만들어지는 과정에 초점이 있다기보다는

만들어진 각담을 어디서든 흔히 볼 수 있는

상황에서 나온 속담인듯 합니다.

‘각담’은 이미 논밭의 돌, 풀을 추린 것이니까

거기에서 대단한 것이 나오긴 힘들지 않을까요?

그렇지만 동시에 그렇게 만들어진 무더기에

뱀이 숨어들 수는 있을 것 같습니다.

무심코 각담을 발로 건드리다 뱀을 만나게 되는 상황이란?

깜짝 놀라겠지요.

주변의 평범한 것도

다시 한번 보라는 의미로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요즘은 ‘각담’이라는 말 보다는

‘돌각담’이라는 말이 그나마 쓰이고 있는 모양입니다.

돌로 쌓아 담을 만들어낸 형태를 의미하는 말로요.


‘각담’에 ‘담’이라는 말이 들어 있습니다.

‘담’은 ‘덤, 두엄’과도 소리가 비슷한 단어이지요.

그렇지만 ‘담’이라는 단어의 본질적 의미는

‘둘러 막음’에 있습니다.

어떤 공간을 빙 둘러서 막아야 ‘담’인 것이지요.

‘각담’은 한편에 그냥 쌓아 둔 흙과 풀의 무더기입니다.

‘각담’은 ‘담’과는 분명 다른 단어이지요.

‘담’이 어떤 목적, 어떤 결과물에 가깝다면,

‘각담’은 어떤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과정에서 생겨난 부산물에 가깝습니다.

‘담’은 경계를 짓는다는 목적을 위해 쌓아 놓은 것이지만,

‘각담’은 ‘논밭’을 정리할 때 골라낸 돌이 쌓인 것이니까요.




밭일을 해보면,

가장 품이 많이 들어가는 일이 아마도

밭매기가 아닌가 싶습니다.

특히 여름에 하루만 지나도 또 올라오는 잡풀들과

더위 속에서 싸우는 일이 참 고됩니다.

밭을 매다보면 또 작은 돌들도 나오지요.

이렇게 계속 밭 주변에 ‘각담’은 생기지만

또 시간이 흐르면서 어느새 흩어지게 됩니다.


우리가 하는 일들도 대부분 그렇지 않을까요?

무슨 일을 하든지

끊임없이 좋은 것을 살리고

불필요한 것을 골라내는 일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그러러면 지금 내가 해가고 있는 일에서

‘각담’을 꾸준히 볼 수 있도록

애써보는 것이 필요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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