끼야기 「명사」: 국어사전엔 은어도 있다.

9화. ‘끼야기’: 웃다가 곰곰해진 단어.

by 제II제이

끼야기 「명사」

심마니들의 은어로, ‘닭’을 이르는 말.




“끼야기? 끼야기라니?”

소리도 모양도 낯선 그런 단어입니다.

게다가 명사입니다.

사전을 보다가 도대체 이 단어는

무슨 뜻인지 궁금해서 눈여겨 보게 되었습니다.

뜻을 보니 ‘아…?’ 하게 됩니다.


“닭? 닭이라니?”




‘끼야기’는 ‘닭’을 뜻하는 심마니의 은어였습니다.

‘닭’을 뜻하는 말이라는 점에서

소리를 흉내내서 만든 말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긴 합니다.

‘끼야기’, ‘끼애기’로 사용 했다고 합니다.

닭소리 ‘꼬끼오’를 떠올려보면

‘꼬끼오 꼬끼오 하는 이’를 줄여서

‘끼야기’로 부를 법합네요.


한편,

움직이는 모양을 흉내내는 방식으로 만들어졌을 것으로 보이는

‘너플개’라는 말도

심마니 은어로 역시 ‘닭’을 의미한다고 합니다.

날개를 푸드득 너플거리는(?) 모양을 딴 말일 것입니다.

닭과 ‘끼야기’를 연결해보니 왠지 귀엽습니다.

소리를 직접 내 보면 압니다. ‘끼야기 ㅎ’




그런데, 국어사전에서

은어가 등장한다는 점 또한 신기합니다.


은어는 어떤 집단에서

자기들끼리만 비밀처럼 사용하는 단어들을 말합니다.

표준국어대사전에는

600개가 넘는 은어가 수록되어 있다고 합니다.

(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201812090986322059 참조)

왜 국어사전에 은어가 수록되어 있을까요?

비밀 누설이라도 하려는 것일까요?

뜻이 알려지게 된다면 이 단어들은 이미 은어가 아니게 될텐데요.

무언가 공식적이고 정상적인(?) 단어들만

들어있을 것 같은 국어사전에

은어를 뭐하러 넣었나 하는 생각도 듭니다.

엄근진 이미지인 국어사전에 왠 은어?


그러나 표준국어대사전이

곧 ‘표준어 사전’인 것은 아니겠지요.

표준어만 우리말인 것도 아니고요.

국어사전이

우리 말글살이에 대한 안내서들 중 하나이니만큼

이 사전에 은어들도 소개가 되는 것이 마땅하겠지요?

은어도 우리 말글에 속하니까요.

‘국어’라는 것의 모습을 잘 보여주려면

은어도 보여주면 좋겠지요.

비유컨데, 국어사전은

뽀샵된 증명사진이라기보다는

극사실주의 증명사진에 더 가깝겠습니다.

마치 얼굴에 난 점들까지도

잘 보여주고자 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다시 돌아와서.

낱말 ‘끼야기’는 심마니들의 은어입니다.

‘심마니’는

깊은 산을 돌아다니면서 산삼을 캐는 사람들입니다.

TV 드라마나 영화에서

혹시 심마니를 간접적으로 본 적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허름한 차림새의 두세 사람이

산을 헤매다가 갑자기 “심봤다~”라고 외치면서

산신령에게 절하고 산삼을 캐오는 이미지 정도가 아닐까 하는데요.


그런데, 실제로는 이 심마니들이

일종의 군대나 종교 집단처럼

강력한 내부 결속력과 위계질서를 가지고

조직적으로 움직이며,

비밀스러움도 가지고 있는

그런 모임이었다고 합니다.

<심마니 습속의 변화 양상>(우승하, 2014) 논문에 따르면

심마니들은 산에 들기 전부터

까다로운 절차와 각종 금기 사항을

철저히 지키며 움직였다고 합니다.

예를 들어, 산에 드는 날이 정해지면

일주일 전부터 부정하다고 여겨지는 것을 멀리하여

부부관계도 하지 않고

상가, 결혼, 백일, 돌집도 가지 않고,

심지어 살생도 하지 않아

고기도 먹지 않는다고 합니다.

만약 금기를 어기면 다음 달까지 기다렸다

다시 준비를 했다고 합니다.

이외에도 수많은 제한 사항이 있고

지킬 것들이 있습니다.


즉, 심마니들은 자신들의 일을

단순한 노동 이상의 의미로, 그러니까 좀 특별한 것,

신성한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다는 말입니다.




자신들의 업을 신성하고 소중하게 여긴 그들은

그들 자신의 언어도 그렇게 소중하게 다루었던 것 같습니다.

소중한 산삼과

그 산삼을 품고 있는 신령한 산에 대한

숭배에 가까운 의식에서,

그들은 사용하는 낱말까지

세속적인 말과는 구분하여

때가 타지 않은 폐쇄적이고 은밀한

그들만의 단어를 사용한 것으로 해석을 할 수 있습니다.

간절할 때 우리는 조심하게 되지요.

말하자면,

때가 타지 않은 거룩한 말로써

집단과 언어를 보호했다고 해야할까요.


이것은 심마니들의 은어가

다른 은어와 성격이 다름을 보여줍니다.


모임의 보존과 친밀감 자체가 목적이 되어

그들만의 결속력을 다지기 위한

특정 세대의 은어,


다른 집단에게

자신들의 특별함을 간접적으로 드러내며

집단의 수준을 유지하기 위한

전문가 집단의 은어,


혹은 범죄에 사용하기 위해

다른 사람들이 모르는 말로

몰래 의사소통하기 위해 사용하는

범죄자 집단의 은어 등과는 결이 다르지요.




‘신성하다’ 혹은 ‘거룩하다’라는 말의 뜻은

바로 ‘구별되다’인데요,

이러한 구별, 즉 신성하다고 여겨질만큼 소중한 일에 대한 관념이

언어라는 도구에까지 영향을 미친 것으로

심마니들의 은어를 이해해 보면 어떨까요?

(물론, 산삼이 매우 비싸게 취급되는 상품이라는 점에서,

비밀 유지도 영향이 있겠고요.

폐쇄적인 집단을 유지해야 한다는 점도

은어 사용의 이유로 전혀 무관하진 않을 것 같지만 말입니다.)


신성한 것들이 점점 사라져가는 지금 이 시대.

말조차 함부로 하지 않았던

‘낭만이 살아 있는’, 그런 삶과 업을 대하는 태도도

사라지고 있다는 점에서 아쉽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기에 가끔씩이라도

한번쯤 말에 대한 낭만적인(!) 태도를 생각해 볼 수 있다는 의미에서

‘끼야기’는 은어이지만,

사전에 등재될 법한 말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소리도 모양도 낯선 말이지만,

삶과 업을 대하는 태도를 생각하게 하는 단어로

‘끼야기’라고 한 번 일부러 읊조려 봅시다.

아까보다는 조금 진지하게

“끼야기…” 하게 되지 않으신가요?


아침을 깨워주는 닭소리처럼,

잊고 살던 어떤 신성함을 희미하게 느끼게 되는듯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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