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래다【타동사】: 너보다는 나에게...

11화. 하루 한 번 '가래는' 것, 어떠신가요?

by 제II제이

가래다 【타동사】

① 맞서서 옳고 그름을 따지다.

② 남의 일을 방해하다.




좀 거창한 이야기가 될 수 있겠지만,

역사는 ‘가래는’ 사람들에 의해

발전해 올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곤충이 우화하는 과정에서

엄청난 에너지를 사용하듯,

변화는 고통을, 적어도 상당한 노력을

필요로 합니다.

그래서 아마도

주어진 상황을 그대로 받아서

이어 살아가는 것이

저와 같은 보통 사람의 인생이지 않을까요?

역사책을 보다보면 등장하는

위대한 인물들은 다들 본능적으로

이 ‘가래는’ 일에 끌리는 인물이 아닌가 합니다.

어떤 변화와 발전의 시작에

이 ‘가래는’ 것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 그래서 ‘가래는’ 것이 무슨 뜻이냐고요?




‘가래다’라는 말도

요즘 사람들이 잘 쓰지 않는 표현이긴 합니다.

(옳고 그름을) ‘가리다’가 더 익숙하지요.

그런데 ‘가리다’는

이중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지요. (따지다 / 숨기다)

이런 점을 생각하면 (옳고 그름을) ‘가리다’라는 표현은

완전히 상반된 의미로 이해될 수도 있는

그런 단점을 지니고 있지 않은가 합니다.

그래서 ‘가래다’를 살려서 쓸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여 사전에서 골라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아, 그래서 도대체 ‘가래다’가 무슨 뜻이냐고요?




가래다 【타동사】

① 맞서서 옳고 그름을 따지다.

② 남의 일을 방해하다.


‘가래다’는 두가지 뜻이

사전에 등재되어 있습니다.

굳이 살펴본다면,

‘옳고 그름을 가리다’ 정도로 사용하는 것이

지금은 더 일반적일 것 같습니다.


그런데 ①번 뜻과 ②번 뜻의 관계가

흥미로워 보입니다.

서로 어떤 관계가 있는지

언뜻 이해가 안되는군요.

아마도 ①번 뜻이 먼저 있었다가

②번 뜻으로 확장된 것이 아닐까 합니다.

‘옳고 그름을 따지는’ 일 자체가

어떤 좋고 나쁨이나 옳고 그름 같은 가치를

그 의미 안에 이미 가지고 있지는 않았을 것 같습니다.

예를 들어, ‘방해하다’라는 단어는

그 의미에 부정적인 뉘앙스를 가지고 있지요.


‘가래는’ 일이 정말 안좋기만 한 일일까요?




‘맞서서 옳고 그름을 따지’는 일은

조금만 생각해보면,

어디서나 필요하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사람이 혼자 살지 않고 모여사니까요.

또 시간이 흐르면서

사람들의 가치나 의식은

계속해서 변해가니까요.

그동안 쭉 당연하게 여겨지던 것도

어느 순간 따져봐야 하는 대상이 되는 일도

흔합니다.

이 변화가 거대한 경우

'역사'가 되는 것이지요.

그래서 이런 ‘가래는’ 일의

필요성 자체에 대해서

반대할 사람은 아마 없을 겁니다.


그런데, 또 다른 한편으로는

그렇게 옳고 그름을 따지는 일,

심지어 무언가에 ‘맞서서’ 그런 것을 따지는 일을

좋아하십니까라는 질문을 받는다면,

어떤 답이 떠오르시나요?

막상 옳고 그른지를 따져야 한다고 생각하면

그건 또 그것대로 피곤하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을 것 같습니다.

‘좋은 게 좋은 거지’ 하며

적당히 넘어가는 태도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면서도,

많은 경우 (특히 일터에서) 우리는 그렇게 살고 있지요.

‘우리’라고 이 글을 읽고 계신 독자를 싸잡아서 말한다는

생각이 드셨다면 죄송합니다.

최소한 저와 제 주변의 몇몇은 그런 것 같습니다.


안타깝게도 우리는

무언가를 따져보는 행동이나

그런 일을 하는 사람을

곱지 않게 보는 시선을 많이 경험합니다.

그냥 ‘좀 유별나네’ 정도의 평가면

차라리 준수합니다.

‘지는 얼마나 잘났게?’라는 핀잔이 보통이지요.

게다가 점점 더 ‘따지는’ 일을

‘방해하는’ 일로 생각을 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특히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에 대해서는

무언가 그들이 가래는 일을

말 그대로 ‘방해하는’ 일로 받아들이고

싸우려고 드는 것이 흔해진 세상입니다.


의견의 차이가

존재의 차이로,

다시 공존할 수 없는 극단의 다름으로

쉽게 전이되고,

그렇게 갈라져서

서로가 서로의 존재를 없애지 않고는

앞으로 가려 하지 않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안타깝습니다.




‘가래다’

이 단어의 뜻이

다시 첫번째 의미로 돌아가고,

옳고 그름을 따지는 일이,

방해가 아닌 발전을 위한 일로

서로가 잘 받아들이는

그런 세상이 오면 좋겠습니다.


상대방의 그름이

곧 나의 옳음이 되는 것은 아닌데,

그렇게 쉽게 가려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것 같다는 생각은

저만의 생각일까요?


덧붙여,

다른 사람보다는

나 스스로의 말과 행동에 대해서 ‘가래는’ 일이

먼저 더 잘 이루어지면 좋겠습니다.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는 것까지는 못할지라도,

적어도 다른 사람에 대해서 판단하려는 만큼만이라도

나에 대해서도 판단을 해보려는 노력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매번 번데기가 성충이 되는 위대한 변혁을 이루는 것은

불가능하겠지요.

하지만 나를 돌아보며

작은 한 마디씩이라도

성장해가는 일은 가능할 것 같습니다.

가끔식 나와 주변을 돌아보며 ‘가래는’ 것,

어떠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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