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랫―밥【명사】: 흙을 왜 밥이라고 할까?

10화. '가래'와 '밥', 그리고 '떡'.

by 제II제이

가랫―밥 [―래빱/―랟빱] 【명사】

: 가래질할 때, 가래로 떠낸 흙덩이.




떠낸 흙덩이를 왜 ‘밥’이라고 하지?

하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밥’을 찾아보았습니다.

‘밥’은 제가 생각했던 뜻 외에도

정말 많은 뜻이 있는 단어였습니다.

‘죄인에게 형벌을 가해 죄상을 밝히는 일’이라는

신기한 뜻도 있습니다.

참 낯선 의미이지요?

‘밥내다’와 같은 식으로 사용하는 말이라고 합니다.

쉽게 말하면, 누군가를 고문해서 자백을 받아내는 일인데,

요즘엔 그러면 안되잖아요.

생각하니 좀 무서운 단어네요.


각설하고,

흙덩이를 왜 ‘밥’으로 부르는가 하는

의문에 대한 답은

‘톱밥’이나 ‘대팻밥’처럼

‘어떤 도구로 깎아내거나 베어낸 부스러기’를

‘밥’이라고 한다는 점을 통해

뒤늦게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유사한 형태의 단어 중 ‘가윗밥’도 있습니다.

가위질 할 때 나오는 자투리 종이들을 부르는 말이겠지요.


그렇다면…?

‘귓밥’도 비슷한 맥락의 단어일까요?

귀이개로 귀를 팔 때 느껴지는

시원함과 나른함이 섞인 그 느낌을 다 아실 겁니다.

귀를 파고 나온 부스러기를 ‘귓밥’으로 부름직도 한데요,

사실 ‘귓밥’의 ‘밥’은 또 다른 의미의 ‘밥’입니다.

이렇게 단어들이 오해를 받을 때가 있지요.

‘귓밥’은 ‘귀의 테두리 부분’을 말하는 것이고요,

‘귀에 낀 때’는 ‘귀지’가 맞다고 합니다.

예전에 “귓밥파라~”라는 유행어가 있었는데요,

사실 정확히 말하면 “귀지파라~”가 되겠습니다.


여기에는 ‘밥’이 아닌 ‘지’가 붙었습니다.

‘지’가 붙은 단어로는, 금세 ‘코딱지’가 떠오르는데요.

‘코딱지’는 ‘코’와 ‘딱지’가 붙은 말이고,

‘딱지’는 진물 따위가 엉겨붙은 ‘껍데기’의 의미라서

‘먼지’와 더 의미적으로 가까운 ‘지’와는 좀 거리가 있습니다.

‘딱지’가 ‘딱딱해진 먼지’의 의미에서 온 말인지는

저도 모르겠습니다.

다만 ‘귀지’와 ‘코딱지’는

둘다 몸의 구멍에서 나온 것인데 촉감이 다르지요.

‘지’와 ‘딱지’도 그렇게 다른 촉감의 어감을 반영한

서로 다른 표현으로 보면 좋겠네요.

(좀 드럽네요. 죄송합니다. ㅎㅎ)


요즘은 농사가 인기가 없죠.

게다가 대부분 기계를 사용해 일을 합니다.

농기구 ‘가래’가 낯설게 느껴지는 이유입니다.

‘가래’는 흙을 떠서 넘기는 도구입니다.

흙을 파는 도구를 생각하면

그냥 삽 정도만 떠오르는데 말이지요.

사전을 읽다가 이런 단어들을 만날 때는

사전이 마치 시골집 창고 같습니다.

시간이 흘러가며 우리에게 낯설어진 말들,

과거에는 사용했지만 지금은 사용하지 않게 된 말들이

많이 담겨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가래’라는 똑같은 소리를 가진 다른 단어도 있습니다.

그 중에서 또 하나를 뽑아봅니다.


가래⁴ 【명사】

: 떡·엿 따위를 둥글고 길게 늘여 놓은 토막.

【의존명사】

: 떡이나 엿의 토막을 세는 말.



이때의 ‘가래’는 떡이나 엿의 토막을 세는 말이면서,

동시에 떡이나 엿을 길게 늘여 놓은 토막 자체를 일컫는 말입니다.

응?

그렇다면 ‘가래떡’은

자기 이름이 없는 떡이라고 볼 수도 있겠네요.

(보통, 쌀로 만든) 떡을 여러 가래 뽑아 놓은 것인데,

그 이름은 가래떡?

김춘수 시인의 말마따나

그 빛깔과 모양에 어울리는 이름을

더 잘 지어주면 더 좋지 않을까요?

아니면, 그냥 가래떡이라는 이름으로, 만족할까요?

이 떡으로 떡국도 끓여 먹지요.

떡국에 들어가는 떡은

굳힌 가래떡을 어슷하게 썰어놓은 것입니다.

저희 집에서는 그렇게 잘라 놓은 떡은

‘떡국떡’이라고 부릅니다.

음식 재료로 사용된다는 점에 초점을 맞춰

편의상 부르는 이름이지요.


생각을 좀 더 해보니

애초에 자기 이름이 없다고 볼 게 아니고,

그게 그냥 자기 이름이라고 볼 수도 있겠습니다.

붕어빵은 붕어모양 빵이라 붕어빵이 된 것이고,

팥빵은 팥 앙금이 들어가서 팥빵이 된 것이니까요.

잠시 고유한 이름(고유명사)과

일반적으로 부르는 이름(보통명사)을

제가 혼동한 것 같습니다.

가래떡 하나하나를 놓고

‘철수’, ‘민이’처럼 고유명사로 이름을 붙인다고 상상하니까

좀 엉뚱해지네요.




음식을 부르는 명칭은

기본적으로 사용되는 보통명사에

재료, 모양, 만드는 방식 등을 덧붙이는 방법을 활용하지요.


‘떡’을 왜 ‘떡’이라고 부르는지는 쉽게 말하기 힘듭니다.

‘밥’이나 ‘국’ 같은 말들도 그렇지요.

가장 기본적인 음식 명칭은

세상의 다른 모든 이름들과 마찬가지로

어떤 규칙이 있어서 붙은 이름이 아니라

기원을 알 수 없을만큼 오래전부터 불러오던

그 이름을 물려받아 쓰고 있을 뿐입니다.


여기에 ‘쌀밥, 보리밥’ 처럼 음식을 만드는 재료를 덧붙이거나,

‘붕어빵’처럼 음식의 모양을 표현하거나,

‘칼국수’처럼 만드는 방식을 활용해 이름을 붙이는 식입니다.

이런 내용을 바탕으로 ‘가래떡’을 생각해보면,

‘떡’ 중에서 그 모양을 덧붙여 이름을 만든 것이라고

볼 수도 있지 않을까 합니다.


이번엔 농기구 ‘가래’에서 ‘밥’으로,

다시 떡이름인 ‘가래떡’에서

음식에 이름을 붙이는 원리까지 멀리 돌았습니다.

사전의 단어들은

모두 무언가의 이름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그래서 사전은

사물이든, 움직임이든, 상태나 성질이든

어떤 유, 무형의 것들에 붙은 이름의 목록이라 할 수 있지요.

오늘도 사전을 보는 일이

새로운 누군가의 이름을 알게 되는 것 같아

반갑고 새롭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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