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ː―돌【명사】: '가능성'을 품은

13화. 서로 다른 빛깔과 무게, 감촉과 맛(?!)

by 제II제이

국어 사전을 정독합니다 매거진에서 연재 중입니다.


감ː―돌 [―똘] 【명사】

⦗광⦘ 어느 정도 이상으로 유용한 광물을 지닌 광석(鑛石). ↔ 버력².


감ː―흙 [―흑] 【명사】

사금광에서 파낸, 금이 섞인 흙.




요즘 대세 가요가 무엇인지를 알고 싶다면

초등학교 저학년 교실에 가보면 될 것 같습니다.

그 아이들이 부르는 노래들을 보면

대중성, 감동이나 공감, 교훈성 같은

특정한 좋은 요소를 하나 혹은 그 이상으로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죠.

이무진의 <신호등>, 로제의 <아파트> 같은 곡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흥얼거리며 다니는 모습을 봅니다.


얼마 전에는

“동기 부여 영상을 찾아 나중에 볼 동영상에 저장을 해둬” <미룬이>

같은 공감 가는 가사를 알게 되었고

“행복은 학교와 학원 사이
웃음은 친구와 친구 사이” <슈뻘맨과 행복 찾기>

라는 가사를 통해

아이들에 대해 한 번 더 생각할 기회를

갖기도 했습니다.


가장 최근에 듣게 된 노래는

<나는 반딧불>입니다.

“나는 내가 빛나는 별인 줄 알았어요 한 번도 의심한 적 없었죠 몰랐어요 난 내가 벌레라는 것을 그래도 괜찮아 난 눈부시니까” <나는 반딧불>

매우 공감이 가면서

위로받을 때 느끼는 따뜻함을 전해주는 가사가

약간은 거친 듯하면서도 진솔함이 묻어있는 목소리로 전달됩니다.

그리고 개인적으로는

‘벌레’라는 단어에 그간 던져진

온갖 부정적인 의미와 느낌,

안 좋은 시선들에 대해

통쾌한 반박을 하는 듯한 생각이 들어서

반가웠습니다.


말은 말대로 의미를 가지지만,

그 말을 사용하는 사람들이

어떤 방식으로 사용하느냐에 따라 그 느낌이

또 많이 달라지게 되니까요.

이참에 ‘벌레’라는 단어도

누명을 벗길 바랍니다.




별과 벌레는 서로 참 많이 다른 존재입니다.

한 사람 또 한 사람이 서로 참 많이 다르듯 말입니다.

어쩌면

별에 비해 벌레는 참 작고,

보잘것없는 존재일 수도 있습니다.

우선 그 크기부터가 그렇지요.

아무리 큰 벌레라고 하더라도

가장 작은 별의 입장에서 본다면 너무나 작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눈에 보이는 차이가

자연스럽게 ‘가치의 차이’로 이어질 때가 많다는

안타까운 현실 때문에

이것이 당연하다는 생각으로 확정될 때가 많습니다.

쉽게 말해서

(사실은 그렇지 않을 수도 있을)

별은 가치 있는 것, 벌레는 가치 없는 것이라는 생각이

당연한 것 같다는 겁니다.


<나는 반딧불>의 가사는

그렇지 않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별과 벌레는 서로 다른 존재들이고

또 벌레는 크기도 그렇고 사람들의 인식도 그렇고

보잘것없어 보이는 그런 존재인데

별과 본질적으로 같은 어떤 특징점,

즉 ‘빛난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기에

벌레도 가치 있다는 것입니다.

나 스스로가

내가 생각하는 것과 실제로는 다른 존재로 보일 수 있지만

‘눈부시다’는 특징 자체는 그대로이기 때문에

나는 괜찮다는 것이지요.


이쯤 되면, 이 글을 읽으시는 여러분이

이 글을 <나는 반딧불>에 대한 글이라고

착각을 하실 것 같은데요.

여러분은 지금 <국어사전을 정독합니다> 시리즈 중에서

‘감돌’ 편을 읽고 계십니다.

잠시 광고 듣고… 허허…




‘감돌’이라는 단어의 뜻은

‘어느 정도 이상으로 유용한 광물을 지닌 광석’입니다.

이 뜻을 보며 저는

‘우리들 모두가 마치 감돌 같은 존재들이지 않을까?’하는 생각을

했었더랬습니다.

우리 모두는

서로 빛깔과 무게, 감촉과 가진 맛(?!)이 다르지만

각자가 나름대로의 장점과 가치를 지닌

아름다운 존재들이지 않겠느냐는 말입니다.

‘감돌’에 포함돼 있을 광석은

그 자체로 가치가 있겠지만

실제로는 뜨거운 불에 녹여지거나,

강한 마찰로 깎이거나 하는 식으로

인고의 과정을 거치며 가공되어

각자가 지난 광물의 특성을 잘 살린

가치 있는 존재로 거듭나게 됩니다.


그러니까 이 ‘감돌’이라는 단어는

그 자체로 어떤 ‘가능성’을 품고 있는 단어라는 생각이 듭니다.

혹시 자신이 ‘감돌’이 아니라

‘버력’ 같은 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누군가가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자신이 어떤 좋은 것을 품고 있지 못한

쓸모없는 사람이라는 생각을

가끔 하게 될 때도 있지요.

하지만, 그렇지 않을 겁니다.

‘버력’ 조차도 쓰임이 있습니다.

‘버력’을 사전에서 찾아보면

‘감돌’의 반대의미도 있지만

‘물속 밑바닥에 기초를 만들거나

수중 구조물의 밑 부분을 보호하기 위해

물속에 집어넣는 돌.’이라는 뜻이 있거든요.

‘감돌’의 반대어로서 ‘버력’의 정확한 의미는 아니지만

‘버력’도 쓸모가 있다는 말입니다.

세상에 불필요한 존재는 없잖아요.


이 글을 쓰고 있는 저와,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을 포함해서

우리 모두는 ‘감돌’입니다.

설령 아직 드러나지는 않았을지 모르지만

누구나 가능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내가 ‘감돌’인지 ‘버력’인지 고민하기보다는

‘감돌’로서 앞으로 어떻게 다듬어나갈지를

생각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요?




모두가 ‘감돌’로 살고 있는 세상이지만

눈을 돌려 주위를 보면

찬란한 광석들과 버력으로

나뉜 것처럼 보입니다.

‘반딧불이’ 비유를 다시 빌려오자면,

반딧불이가 살아갈 수 없는 세상이

되어가고 있는 것이지요.


과거에는 반딧불이를

어디서나 흔히 볼 수 있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개똥벌레’라는 이름으로 불렸다고도 합니다.

이런 반딧불이가

요즘 다 사라져 버린 것처럼 보이는 이유는

주변에 너무나도 크고 밝은 빛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반딧불이들이 서로 짝짓기를 하기 위해서는

자신들의 빛을 서로 알아볼 수 있어야 하는데,

서로의 빛이 아닌

주변에 다른 인간이 쓰는 거대한 빛들에

혼란을 겪는 것이지요.


나 자신의 빛을 유지하기보다는

나보다 앞서 조금 큰 빛을 만든 사람들을 보며

내 빛은 쓸데없다고 생각하여

그들에게 각자의 빛을 몰아주고 있는

그런 세상이 되어가고 있기 때문에

작은 빛을 가진 벌레도

세상을 밝히는 존재가 될 수 있다는 점을,

그리고 각자가 자신의 빛(즉, 가치)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잊고 있지는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여기서는 박민규 작가의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라는 작품도 떠오르네요.

그 작품을 읽으면서 이런 아이디어를 처음 접할 수 있었거든요.




오늘은

우리의 시선을 잡아끌어가고 있는

주변의 밝고 커다란 빛들을 바라보는 일을

잠시 멈춰보는 건 어떨까요?


‘감돌’인 내 안에 있을,

아직 찬란하게 빛나지 않을지는 몰라도,

눈에 뚜렷이 보이지 않을지는 몰라도,

반드시 내 안에 자리 잡고 있을,

그래서 언젠가는 주변 누군가에게

따스하고 유용하게 다가갈 수 있을,

그 내 속에 있는 광물의 빛을

미리 감상해 보는 시간을 가져보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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