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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live in New Zealand Jun 27. 2022

제임스 할아버지

정원을 돌보시는 할아버지

James Waddell 올해 90세 지구인.


나와는 아무런 상관없이 거의 평생에 가까운 시간을 지구 반대편에서 살아오신 할아버지.

나는 어떻게 그 먼 거리를 날아와, 할아버지가 젊었을 적 가족을 꾸리고 지어놓은 60년이 넘은 집에서 살고 있다.한 사람의 인생 중에 그의 막바지를 보고 있다. 사람이 어떻게 늙어 가는지.. 어떻게 사그라 가는지를 여과 없이 보고 있다. 나도 어느덧 인생의 반을 살아온 사람으로 누군가의 인생의 큰 그림이 어땠는지를 짐작해 보며 그를 보고 있다.

할아버지는 무릎이 많이 안 좋으셨다. 자주 넘어지셨고, 가끔은 쓰러지는 나무처럼 너무 심하게 넘어지셨고, 할머니의 노파심에서 나온 줄 알았던 야단법석은 마침내 할아버지를 무빙워커 위에 의지하게 하셨다. 그런 뒤로 할아버지는 정말 혼자서 걷지 못하게 되셨다.


간혹 넘어져 병원에 계신 날이면, 나는 꼭 할아버지를 안아드렸다. 그리고 두 손을 꼭 잡아드렸다. 할아버지는 그 순간을 고마워 하고 좋아하셨다. 가족들도 할아버지를 안아드리는데는 쑥쓰러워 했다. 할아버지도 누군가에게 위로받고 싶어 하셨는데... 병원에 있는 모든 사람들은 약하고 가여웠다.


할아버지는 가끔 젖은 바지를 입고 계셨다. 할아버지는 아니라고 했지만, 목욕을 도와주시는 분이 할아버지의 기저귀를 찾고 있었고, 내 말을 잘 알아듣기 힘들어하셨기에 우리의 대화도 점점 줄어들었다. 가끔 할아버지는 나에게 " 나한테 중국어로 이야기했지?"라고 농담하곤 하셨는데 할아버지는 나의 억센 외국인 발음을 알아듣기 힘든 것보다, 귀가 잘 안 들리셨고, 눈도 한쪽 잘 안 보인다고 하셨다. 하루는 불알 커밍 아웃도 하셨는데, 암을 앓으셔서 불알을 하나 제거했노라 이야기해 주셨다. 그리곤 곧이어 '할머니는 가슴이 하나 없어'라며 너무 무덤덤히 말씀하셨다. 할머니가 겪으셨을 모든 상실감과 힘든 치료과정을 건너뛰고 한 줄로 색하게 축약된 그 말은 나를  만들었다.


그의 삶을 보면서 내게 닥칠 미래를 어떻게 맞이하고 준비해야 할지 생각해 본다. 하지만, 닥치기 전까진 설명할 수도, 그 감정 이해할 수도, 준비될 수도 없을 거 같다. 마치 그 일은 나에게 안 올 거처럼 말이다.


비가 온다. 억수 같은 비가 계절의 변화를 알린다.

할아버지는 작은 화을 가꾸셨는데, 요새 최근에 심은 식물들이 영 맥을 못 차리고 있다. 젊을  적엔 꼼꼼하게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지었을 집을 보면서, 아주 까다롭기 그지없었다는 할머니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반대로 가로세로  규칙 없이 힘없이 어설프게 심어놓으신 감자가 시들어 감을 보면서 할아버지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시원한 비에 목이라도  축이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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