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이상 구실을 할 것 같지 않는 오래된 타운홀 건축물이 외면당한 듯 한쪽에 자리 잡고, 여기가 뉴질랜드인지, 아프리카인지, 동네 섬나라인지, 인도인지 알 수 없을 만큼 많은 가난한 이민자들이 살아가는 동네.
낡디 낡은 테이크 웨이 상점들이 즐비해 정말 나라에서 부여한 위생 점수가 사실인지 의심이 되는 동네. 집에 세탁기가 없는 걸까? 왜 이리 많은 공용 무인 세탁소가 많은지 궁금증을 내는 동네. 주민들을 위해 도서관이나 정부가 운영하는 레크리에이션이나 헬스장이 잘 갖춰져 있지만, 그래도 뭔가 부족한 동네.
그런 동네에, 주인집 아들 K군.
나는 K가 관리하는 캠브릿지에 사글세로 들어갔다. 일하는 곳과 가까운 곳에 거처를 옮기면서 한 번도 살아볼 것이라 생각지 못한 곳에 살아보게 되었다. 특정지역 이민자들이 많이 살아서 그런지, 그들의 고유문화가 있었고 90% 이상이 이민자로 이뤄진 듯했다.
그렇게 만난 K는 처음엔 좀 이상한 아이였으나, 막상 보니 생각보단 마음도 많이 여리고 괜찮았다. 하지만 계속되는 대화 속에서 그가 가진 자화상이 건강하지 않은 거 같아 마음이 안타깝기도 하고 답답하기도 했다.
내가 그에게 주로 하던 말은 "지금이 니 인생에서 가장 젊을 때이니, 연애든 일이든 여행이든, 열심을 내 봐. 더 나이 들면 하고 싶어도 할 수 없어~"
그때마다 K는 잘 듣는 듯하다 한쪽 귀로 흘려버리기 일쑤였다. 그리곤 자기 합리화를 하곤 했다. '나는 바보야, 나는 잘 못해.' 라며 동굴 속 깊은 목소리로 옅은 웃음을 짓곤 했다. 187센티미터의 큰 키의 남자가 하는 말이라곤 믿기 힘들었다. 많은 순간 그는 상처 입은 어린 소년의 시간에 머물러 있는 듯해 보였다. 그는 그의 10대 시절을 아파했다. 친구들과 잘 어울리지 못했던 십 대의 자신을 용서하지 못하는 듯 보였고, 친구들이 짓궂게 여자애들에게 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대해 물어보면, 돌아오는 부정적인 답변을 그의 자화상으로 굳혀서 아직까지도 그의 뇌리 속에 박혀 있는 듯했다. 하지만 이젠 거기서 나와야 했다. 그는 더 이상 소년의 모습이 아니었으므로.
그는 1년째 놀고먹는 남자였다. 놀고먹어도 틈틈이 청소랑 빨래를 하는 그를 보고 "전업주부 되고 싶어?"라고 놀리곤 했는데, 대다수의 시간을 컴퓨터 앞에 앉아 남들이 하는 라이브 스트림으로 세계여행을 하곤 했다. 이미 라이브 방송을 통해 한국도 수차례 다녀온 그는 한국 문화에 대해 여러 가지 늘어놓기도 했다. 가끔 쓰잘 떼기 없는 주제로 고민하고 있을 때는 따끔하게 말해줬다. "너는 당장 일을 구해야 해. 일을 안 하고 있으니까 그렇게 중요하지도 않은 일로 고민하고 있지!"
나는 내가 끓여내는 미역국이나 불고기, 김밥 같은 한국음식을 그와 나눠먹곤 했는데, 내 미역국을 두 그릇이나 먹는 그를 보자니 웃음이 났다. 그는 사실 내 음식보단 나와 함께 먹으며 이야기하는 시간을 즐기는 듯했다. 누군가가 내는 저녁냄새, 누군가와 마주한 저녁식탁.. 자기에 대해 조언해 주는 누군가가 필요했던 거 같았다.
사실 그는 일본어 전공으로 대학에 들어갔다가 낙오한 경험이 있었다. 그리고 대학을 졸업한 사람에 대한 일종에 부러움도 있었다. 그에게 단기간 일해서 모은 돈으로 아시아를 그중에서도 네가 원했던 일본에 다녀와 보라고 권한적도 있어서, 그는 일을 잡는 듯하더니, 이틀 만에 때려치우고 거실에 위치한 컴퓨터 의자로 왕의 귀환처럼 돌아왔다. 묻고 싶었다. '돌아오니 좋냐?'
이젠 네가 좀 더 당당하게 너를 드러냈으면 좋겠다. 자신에게 칼을 들이밀지 말고, 아프지 말고, 과거에 얽매이지도 말고. 다른 사람들은 다 괜찮을 거란 착각 하지 마. 크기의 정도에 차이가 있을 뿐, 우리 모두에겐 흑역사가 있고, 숨기고 싶은 과거가 있고, 안 좋았던 시간들도 분명히 있었고. 너에게만 있는 아픔이 아니라고 생각한다면, 네 마음에 위로가 되지 않을까...? 앞만 보고 좀 더 건실하고 당당하게 살아나가길, 진심 바란다.
남들이 뭐라고 했던, 그게 네가 아니란 걸 네가 온몸으로 증명해 내길 진심으로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