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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live in the kitchen Dec 02. 2023

삶의 아이러니

우리는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여 살고 싶을 뿐이다.

아침에 눈이 떠지면, 핸드폰을 좀 보다가 가방을 챙겨 수영장으로 간다. 맨날 배우다 말다 배우다 말다를 반복하다 보니, 물에 대한 공포가 가시질 않는다. 그래도 매일 가니, 가서 보면 하기 싫다고 이불에서 뭉그적 대는 것보다는 하게 된다. 다행히도 수영장물이 1.2미터밖에 되지 않아 겁이 나진 않지만, 가장 바깥쪽 라인에서 스펀지를 들고 수영을 한다. 


오늘의 목표는 물속에서 더 속력을 내 보는 방법을 이해하고 연습해 보기, 그리고 호흡조절하기와 한 레인을 끝까지 멈추지 않고 수영하기. (역시 쉽지는 않다). 한 다섯 바퀴 돌았을까.. 숨이 차 올르고 코에 물이 안 빠져서 더는 못하겠다. 게다가 우리 라인에 사람들이 하나, 둘 늘어난다.


보기만 해도 숨이 막힌다.

수영장을 나와 사우나로 들어갔다. 곧 있어 우리 라인에 있던 인도아저씨가 사우나로 들어온다. 그는 내 옆에 있던 모래시계를 만지더니, 굳이 내 뒤에 앉겠단다. 뭐, 그럼 앉으시라고 자리를 비켜 맞은편에 앉아 수영장 가방을 방수형으로 바꾸고 필요한 것들을 더 챙겨야겠다 생각하는 중에 아저씨가 묻는다.


"일본인이세요?"

"아닌데요.. 한국인이에요."


"아 네.." 말끝을 흐리는 아저씨가 민망하지 않게 말을 걸었다.


"일본말을 좀 하세요?"

"네, 일본에서 20년 살아서요 허허허" 자기가 전화로 일본말을 하면 외국인인지 모른다고 너스레를 떤다.

그러면서 그는 자기 이야기를 살짝 들려줬다.


그는 일본에서 건설업에서 일하다가 일본여성을 만났다고 했다.  아내를 어떻게 만났느냐는 나의 질문에 대답은 안 한 거 같다. 하지만 그녀는 산부인과 의사였고, 결혼한 뒤로 같이 두 개의 병원을 운영하며 열심히 살았다고 했다. 그의 부인은 병원장이 되고, 그는 보통 인도인답게 모든 병원 운영에 관련된 일들을 도맡아 했다고 했다. (보통 인도인들은 다들 자기 사업을 하려고 한다. 그리고 많은 구멍가게, 편의점들을 운영하고 많은 이들이 매니지먼트에 관여해 있다. 나의 매니저들도 다수 인도인들이었다.) 왜 뉴질랜드에서 안 살고 일본에서 살았냐고 물으니, 자기는 일본이 너무 좋았다고 한다. 깨끗하고~ 너무 편리하고~ 음식도 너무 맛있고~ ㅎㅎㅎ (생각만 해도 신이 나는 거 같았다) 난 사시미도 좋아하고 뭐뭐도 너무 좋아해서. 말은 안 했지만, 영어라는 장벽에 부딪혀 부인의 의술을 썩게 할 수 도 없었을 거 같았다. 인도인과 일본인 사이의 아이가 잘 상상이 안 가서, 아이가 있는지 물어봤는데, 그들의 병원에서 일 년에 몇백 명의 아이들이 태어난다고 했다. 하지만 그녀와 사이에 아이는 없다고.


"참 아이러니 하네요.."


자신은 사실, 그 일본여성을 만나기 전에 한번 결혼을 해서 두 아이가 있다고 했다. 다들 똑똑해서 단 한 푼도 돈들이지 않고 대학을 보냈단다. 큰딸은 대학에서 경영을 공부했고, 아들은 엔지니어링을 공부하고 있다고 자랑스레 말한다.  


그런데 그가 한마디 더 한다.


몇 달 전에 아내가 갑자기 쓰러져서 다시 일어나지 못하고 먼저 보내게 됐다고 했다.. 그리고 매일 아내를 위해 아침마다 아침상을 봐줬다는 그는 더 이상 못하게 되었다고, 그 마음을 극복하려고 노력하는 중이라고..


"어머, 너무 안타깝네요... 갑작스러웠겠어요..."


안타까운 마음을 조금 진정시키고, 그는 자신은 근처 호텔 옆에 살고 있고, 방이 세 갠데 혼자 다 쓰기 힘들어 세를 줄까 한다는 T.M.I(Too Much Information: 쓰잘 떼기 없는 정보)와 그는 마지막으로 일본에 안 가본 나에게 일본에 가게 되면, 자신에게 연락하라고, 저녁 사준다는 말을 더운 공기에 태우고, 사우나를 나왔다.  


하지만 그 짧은 시간에 아저씨와 나눈 대화에서 나는 좀 그 일본부인에 대해 깊은 생각을 하게 됐다.

그도 그랬겠지만, 분명 그녀도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살았을 거란 의심이 없다. 함께 사업을 꾸려나가고 계속 자신의 능력을 펼치며 금전적으로 시간적으로 최대한 에너지를 내며 살아냈을 것이리라.. 허나, 그녀는 갑작스럽게 어떤 준비도 없이(?) 세상을 떠났다. (돈얘기를 하자는 건 아니지만, 하자면) 모든 그녀의 재산은 당연히 그녀와 함께 열심히 일궈낸 남편의 몫이 된다. 여기까진 문제가 없다. 허나, 이제 편안하게 살아가기만 해도 되는 그에겐 많은 돈이 필요치는 않을 것이다. 그럼 결국에 모든 재산은 둘 사이에 자녀가 없기에 그의 전처와 사이에서 난 자녀에게로 돌아간다.... 여기서 띵! 하게 되었다.


물론 그 누구도 어떤 것도 계획되지도 의도하지도 원하지도 않았다는 걸 안다. 운명처럼 누군가는 득을 보고 누군가에게는 삶의 의미를 물어보게 된다. 내 앞에 있지도 않은 그녀에게 갑자기 궁금해졌다. 그토록 열심히 살아온 당신의 삶은 결국 누구를 위한 거였나요..?


물론 그 누구도 답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도 안다. 그냥 인생의 아이러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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