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끝
모든 것이 그렇듯이 사랑에도 끝이 있다. 재밌는 것은 그 끝을 당사자인 우리가 스스로 만든다는 것이다. 저절로 다가오는 것도 갑자기 다가오는 것도 아닌 사랑의 당사자들이 끝이라고 판단할 때 진짜 끝이 온다.
책의 종반부에서 사랑의 끝에 대해 말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왜 굳이 끝에 대해 얘기하려 할까. 나는 앞에서 언급한 것들을 다 잊어도 이번 주제만큼은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상하게도 세상 일이란 게 끝이 좋으면 다 좋은 기억이 된다. 반대로 끝이 나쁘면 제아무리 좋은 일이 있었더라도 비극이 되고 만다. 사랑을 좋은 것으로 남기고 싶다면 이번 주제를 잘 읽어보기 바란다.
사랑이 끝난다면?
사랑이라는 것은 그것이 끝날때 우리에게 약간의 여지를 준다. 즉 우리가 끝을 어떻게 할 것인지 선택지를 준다는 것이다. 사랑이 끝났는데 좋을 리는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함께 했던 시간과 두 사람의 노력이 모두 부질없고 시간낭비였던 것은 아니다. 망가진 사랑에서 우리가 챙길 수 있는 것은 추억과 경험뿐이다. 사랑의 마지막을 어떻게 치루느냐에 따라 이 것들을 챙길수도 있고 이것마져 못 얻을 수도 있다. 두 가지만 준비하면 된다. 매너 그리고 배려이다.
이 두 가지는 어쩌면 같은 말일 수도 있다. 매너가 있어야 하고 그 매너로 배려를 해야 하니까 말이다. 조금 상세하게 들어가 보자. 사랑을 하다보면 어느 순간 사랑의 곡선이 더 올라가지 못하고 아래로 반전될 때가 있다. 보통 둘 중 한 사람은 이것을 느낀다. 두 사람 다 모르는 사이에 사랑이 하향곡선으로 바뀌는 경우가 있는데 그것은 뒤에서 얘기하자.
헤어지면서 겪는 갈등이야 어쩔 수 없는 것이지만 이것을 조금이라도 완화시킬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사랑의 마지막에 우리는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
사랑이 끝날 때 우리는 시작할 때와 달리 별로 고민하지 않는다. 사랑을 시작할 때는 고백하는 방법, 데이트 코스, 손잡는 시기, 말하는 방법 등 여러 가지를 고민하고 최적의 방법을 선택한다. 그런데 사랑이 끝날 때는 고작 한다는 것이 “언제 통보할까?”. “뭐라고 말을 꺼낼까?” 이정도 고민하고 만다.
이 정도도 고민 안 하는 사람이 있다. 요즘엔 문자 한 통 달랑 남기고 헤어지는 경우도 심심치 않으니까 차라리 편지라도 받았던 시절이 그나마 낭만적이었다고 해야 할것 같다. 사랑이 시작될 때보다 사랑이 끝나갈 때 우리는 더 고민해야 한다. 사랑을 시작할 때 사랑의 성공을 위해 밤새 고민했던 것처럼 사랑이 끝날 때에도 한 때 내가 사랑했던 사람이 아프지 않게 정상적으로 나에게서 벗어나 자신의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최대한 도와야한다.
사랑도 마찬가지이다. 내가 사랑했던 사람 그리고 나의 행복을 위해서 사랑의 끝에서 매너와 배려를 잊지 말아야 한다. 고민 없는 이별이 한 사람을 넘어 두 사람을 불행하게 만든다. 이별통보에 분노하고 험한 일이 벌어지는 경우도 종종있는데 이별에 대한 배려가 너무 없지 않았는지 생각해볼 일이다.
시간이 흐르고 다시 만나게 되어 또 사랑하게 되어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끝은 깔끔해야 한다. 어쨌거나 이별을 통보받는 쪽에 최대한의 배려를 해줘야하고 시기, 방법 등에 있어서 상대방의 입장을 생각해야 한다.
이별 통보 시 지켜야 할 몇 가지 원칙
첫번째, 헤어짐을 예감할 때 우리는 최대한 빨리 통보해야 한다. 내가 진심 없는 사랑으로 시간만 끌고 있을 때 상대방은 그 순간에도 나를 위해 노력을 다하고 있다. 이런 노력들은 헤어짐을 통보할 때 원망으로 다가온다.
두 번째, 이별은 상대방이 최악의 상황일 때만은 피하도록 하자. 어떤 커플의 예를 들어보겠다. 둘은 유명인이었다. 둘은 세간의 주목을 받으며 결혼했고 잘 사는 것 같았다. 하지만 몇 년 뒤 남자는 사회적인 물의를 일으켜 맘고생을 하게 되고 결국 일터에서도 쫓겨나게 되었다. 그 몇 년간 사회적 비난 속에 두 사람 간의 애정도 금이 가게 된다. 그런데 그 커플은 남자가 지탄을 받던 시기 헤어진 것이 아니라 그 시간이 다 지나고 두 사람이 다시 활동할 수 있게 된 시기에 헤어졌다.
나는 그들의 내막까지는 모르지만 이런 모습이 참 대단하게 보인다. 사랑하는 사람의 실패한 모습을 볼 때 기분 좋은 연인은 없다. 환상이 깨지고 헤어지고 싶은 마음이 불쑥 들 수도 있다. 지금 이순간 그 사람이 가장 의지할 곳은 ‘나’이다. 내가 없어지면 그 사람은 지금의 아픔을 배로 느끼게 될 것이다. 어쩌면 최후의 비수가 될 수도 있다. 그래서 상대방이 가장 힘들 때만큼은 피하자는 것이다.
비록 헤어지고 싶더라도 그 사람이 가장 힘들 때 폭탄을 던지지는 말자. 사람은 고통받을수록 더 예민해지고 약해져서 내가 던지는 작은 돌도 비수가 될 수 있다. 영원히 기다리라는 말은 아니다. 그가 조금이라도 자신을 추스를 수 있을 때까지만 기다려 주자는 것이다. 그런 노력도 하기 싫다면 당신은 사랑할 자격도 없는 사람이다. 사랑은 책임이 따른다고 했다. 그 책임은 이런 때를 두고 하는 말이다. 책임은 지기 싫고 인생의 단물만 빨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사랑을 해서는 안된다. 사랑 받아서도 안된다.
세 번째, 이별을 생각한다면 내가 점점 멀어지고 있다는 것을 그 사람에게 어느 정도 인지시켜야 한다. 가속하던 차를 급정지시키면 안에 타고 있던 사람이 많이 다치게 된다. 뒤차도 사고 위협성이 있다. 이것은 관성의 법칙 때문인데 사랑에도 관성이 있다. 내가 정지시키려고 할 때 그것을 모르는 상대방은 아직도 어제와 같은 속도로 달리고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헤어지자고 말해도 상대방은 사랑이 멈춰지지 않을 수 있다. 그렇게 되면 결국 충돌이 발생한다. 그래서 사랑의 관성을 서서히 죽이는 작업이 필요하다. 사랑은 어차피 주고받는 것이기 때문에 두 사람이 같이 하지 않으면 에너지가 줄게 마련이다. 사랑의 에너지를 점차 줄여 충격을 최소화 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사랑이 가장 정점을 치는 순간에 이별을 통보하는 것은 종합격투기의 하이킥을 맞은 것과 같다. 사랑했던 사람에게 하이킥을 날리고 이 경기를 끝내고 싶다면 그렇게 해도 좋다.
많은 사람들이 이별할 때 앞서 말한 세 가지를 잘 안지키는 것 같다. 사랑의 끝에서는 이별을 통보하는 사람에게 선택권이 있다. 배려를 할 것이냐 말 것이냐는 통보하는 사람이 선택할 수 있다. 생각보다 별로 힘도 안든다. 누굴 위해서가 아니라 나를 위해서 내가 행복하기 위해서 배려해야 한다.
그 사람이 행복하든 말든 상관없는 게 아니다. 그 사람의 불행은 내 인생에 당장 큰 영향은 없을지라도 적절하게 마무리되지 못한 일이 된다. 내가 조금만 신경쓰면 할 수 있는데 꼭 상대방에게 큰 충격을 주면서 끝낼 이유는 없다. 이것은 언제든지 나도 같은 입장에 놓일 수 있기 때문에 더 그렇다. 최후까지 상대를 배려해 마무리하고 그럼으로써 좋았던 기억까지 망가트리지 않고 나 또한 편안한 마음으로 나의 과거를 온전하게 기억으로 접어 책장 속에 넣을 수 있다.
사랑의 끝은 너무나 슬프지만 있는 그대로 사랑의 모습을 받아들일 수 있게 상대방에게 설명해야 한다. 사랑을 하는 순간부터 그것은 당신에게 주어진 아름다운 약속이다. 그게 사랑이다. 좋아하고 고백하고 키스하는 게 사랑이 아니라 이렇게 마무리하는 모습이 사랑이다.
외부로 부터 침입당하는 사랑
어떤 경우에 사랑은 외부로부터 침입당해 끝나기도 한다. 외부로부터의 유혹은 어떻게 사랑에 영향을 미칠까? 두 사람의 관계가 전혀 문제없을 때에는 그나마 잘 견뎌내지만 서로 불만에 있는 상태라면 이별을 떠올리는 계기가 된다. 외부의 영향으로 사랑이 끝나는 경우는 외부의 다른 사람을 좋아하게 되거나 현실적인 외부의 조언이 있는 경우이다.
더 마음이 끌리는 사람, 아직 내 것이 아닌 사람을 만날 때 설레고 가슴 뛰는 것은 인간의 마음속에 있는 진심이다. 익숙한 것에는 관심이 떨어진다. 누구나 그럴 수 있다. 문제는 그것을 이성으로 제압할 수 있느냐이다. 물론 사람과 상황에 따라 다르지만 인간의 내심 속에 욕망은 언제 끓어 넘칠지 모른다. '우리는 안전해', '나는 그럴 리가 없어' 이렇게 안심하지 말자.
최고의 남성, 최고의 여자와 사귀고 있는데도 터무니없는 사람과 바람을 피우는 사람들을 종종 보게 된다. 이것은 욕심도 있지만 사랑을 하나의 습관처럼 하고 있는데 원인이 있다. 개가 전봇대를 만나면 쉬를 하듯이 어떤 사람들은 특정 상황에 놓이면 사랑을 하고 싶어 진다. 이미 사랑을 하고 있어도 마찬가지이다.
한 사람을 10년간 만난 사람이 있고 10년간 10명을 만난 사람이 있다고 하자. 이 둘의 차이는 뭘까? 10년간 10명을 만난 사람은 사랑을 자주 시작하고 자주 끝낸다. 그것은 하나의 주기가 되고 일상이 된다. 아침을 먹듯이 사랑을 시작하고 저녁을 먹듯이 이별을 한다. 처음 몇 번은 본의와 달랐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런 일이 반복될수록 특별한 이유가 없는 데도 주기가 되면 이별한다. 일정 시기가 되면 자연스럽게 사랑의 에너지가 떨어지고 의욕이 없어지는 것이다.
남성들은 보통 지난 연인도 머릿속에 담아두기 때문에 만난 사람이 많을수록 머릿속에서 한 사람이 차지하는 비중이 작아진다. 여성들은 지난 연인에 대한 기억이 별로 없다. 그래서 새로 만나는 사람에게 완전히 새로운 마음으로 전념할 수 있다.(예외는 있다.)
어차피 사람은 요령을 피우는 동물이기 때문에 사랑의 경험이 늘어날수록 더 편하고 쉬운 것을 찾는다. 10년간 한 사람을 만난 사람은 한 사람의 비중이 너무 커서 쉽게 이별하지 못할 것 같지만 신뢰는 큰 반면 애정의 강도가 약해서 상대방의 소중함을 잘 모른다. 두려움은 느끼지만 새로운 사랑에 대한 기대도 만만치 않게 크다.
결국 외부에서 온 자극에 대해 취약한 것은 마찬가지인데 사랑의 3요소중 이를 극복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은 신뢰보다는 애정이다. 10년 사귀다가 헤어지고 1년만에 다른 사람과 결혼하는 것도 종종 본다. 그만큼 애정은 타인과의 비교에서 사랑을 지켜주는 요소이다.
외부 환경의 위기
외부로부터 시작된 위기가 사랑을 깨는 것도 얼마든지 가능한 일다. 부모님이나 친구의 조언도 영향을 준다. 어떤 사람에게는 절대적으로 영향을 주기도 한다. 이런 외부 영향 앞에서 연인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 부모님이 반대하는 사람과 사랑을 이어갈 수 있을까? 대체로 요즘 세대들은 부모의 영향력이 크지 않아서 갈등은 해도 사랑을 깨지는 않는다. 나는 사랑이란 결국 두 사람의 미래이고 주변 사람은 절대로 알 수 없는 둘만의 경험을 놓고 결정해야 하는 것이기 때문에 외부의 조언이 결정적인 영향을 미쳐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사랑이란 단순한 호감일 수도 있지만 상대방의 진가를 알아본 사람들 간의 교감이기도 하다. 누구도 보지 못한 장점을 볼 수 있는 사람이 바로 연인사이인데 그것을 보지 못하는 주변에서 결정적인 조언을 줘서는 안된다.
주변의 조언에 의해서 사랑이 끝나는 것은 단순히 조언을 들었다고 해서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조언은 사람의 무의식 속에 생각의 씨앗을 심는다. 이 씨앗은 다른 환경의 도움이 없으면 그냥 말라서 죽어버리지만 몇 가지 상황이 도와준다면 싹이 트고 큰 나무가 되어 확신으로 자랄 수도 있다.
부모의 영향력이 큰 현재의 한국에서는 때로 큰 효과를 발휘하기도 하는데 자신에게 한번 물어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나의 부모와 형제가 반대할 때 나는 내 연인과 계속 사랑할 수 있을까? 부모의 영향력을 벗어날 자신이 없다면 애초에 그것에 맞는 상대를 만나야할 것이다. 사람을 만나기 전에 미리 생각해두는 것이 좋다.
외부의 영향이 만드는 이별에 대해 알아보았다. 물론 다른 경우의 수도 있다. 경제적 어려움이라든가 한 사람의 지나친 스트레스, 건강문제, 진로문제 등이 있을 수 있다. 여기서 모든 것을 언급하기는 어려우니 일단 두 가지의 경우만 얘기하겠다.
스트레스가 사랑을 끝내는 경우
우선 한 사람의 스트레스가 이별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말해보고자 한다. 사랑이라는 감정은 스트레스를 분해하는 성질이 있다. 하지만 분명한 한계도 가지고 있다. 왜냐하면 아무리 상대를 사랑하고 있어도 타인의 고통을 정확하게 이해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상대방이 계속 부정적인 말을 하고 행동에 날이 설 때 이것을 계속 참고 받아주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어떤 부류의 인간은 외부에서 받은 스트레스를 연인에게 풀기도 한다. 의도한 것은 아니겠지만 사람에 따라서 도량이 좁은 인간은 받은 스트레스를 내부에서 중화시키지 못하고 밖으로 튕겨내 주변 사람에게 뿜어낸다. 이것은 아무래도 가장 편한 상대인 연인에게 집중되기 쉽다. 절대로 하지 말아야 할 행동이지만 인간이기 때문에 그런 경우가 많다.
해서는 안되는 행동인 걸 알지만 정말 그 상황에서 모든 것을 속으로 삭히려면 그만한 인성의 그릇이 필요하다. 종지 그릇에는 종지만큼의 물밖에 못 담는다. 사람도 마찬가지이다. 보통의 사람들은 생각만큼 그릇이 크지 않다. 화내고 후회하고 소중한 사람이 마지막 결심을 할 때까지 그것을 멈추기 힘들다. 자기가 힘든 것만 생각한다.
건강문제는 어떨까? 가끔 희귀병이나 불치병을 가지고 있는 사람과 결혼하는 커플을 보게 된다. 알고 결혼하는 경우도 있고 하고 결혼 후 알게 되는 경우도 있는데 결혼이라는 제도는 여기서 제도의 위대함을 보인다. 동거인이나 연인이 아니라 남편과 아내로서 이 상황을 맞는 것은 차원이 다르다. 그래서 건강문제를 알고서 오히려 결혼을 서두르는 경우도 있다. 이럴 때 인간은 참 기특하다. 신도 아마 이런 인간을 보고 뿌듯해하지 않을까?
내가 본 커플은 그런 질병 속에서도 사랑을 이어갔다. 건강문제를 알고도 결혼한 커플이 있었는데 결혼이 두 집안의 만남인 한국에서는 매우 어려운 선택이었을 것이다. 이런 용감한 사람들이 있다는 것은 사랑이 그만큼 강력한 에너지라는 뜻이다.
이런 상황에 놓여있는 커플에게 특별히 조언할 수 있는 말은 없다. 누구도 그 사람의 인생을 대신 살아줄 수 없는데 무엇이 중요한지 섣불리 얘기할 수 없는 것이다.
진로 때문에 사랑을 끝내는 경우
고정관념일 수도 있는데 남자들은 사회적 위치와 자신을 동일시하기 때문에 사랑보다는 진로를 택하는 경우가 많다고 생각한다. 성공하면 사랑이 따라온다고 생각하는 남성이 많고 실제로도 그런 편이다. 그래서 사랑보다 사회적 성공을 먼저 쫓는 남자들이 많다.
여성은 사회적 위치보다는 개인적 행복을 중요시한다. 사장, 일확천금보다도 사랑하는 아이가 더 중요하다. 성공적인 진로를 포기하고 결혼하는 경우를 주변에서 심심치 않게 본다. 남자에겐 너무 어려운 일들을 여성들은 곧잘 해낸다. 물론 그들이 전적으로 좋아서 하는 게 아니라 사회적 강요가 있다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이런 선택을 할 수 있는 것은 여성의 모성애와 개인주의적 성향이 아니면 강요만으로 할 수 없는 일이다.
남성은 상상하고 꿈꾸는 동물이다 보니 현재의 사랑보다도 미래의 진로를 더 중요하게 여기는 경우가 많다. 미래를 상상하면서 즐거워 하는 것이다. 유혹을 많이 느끼는 게 남성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회적 성공에 올인하는 것은 이런 성향을 반영한다. 지금 행복보다 미래의 더 큰 행복을 상상하며 욕망을 참는다.
나의 경우에 살면서 느끼는 것은 성공과 꿈은 현재 나이와 환경에서 거창하게 보일 수 있는 것이지 미래에도 그러할 것이라고 단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내가 미래에 얻고자 하는 것의 가치가 나이먹은 다음에도 그만큼의 가치를 가질지는 의문이다. 젊어서는 돈, 성공이 먼저지만 나이를 먹을 수록 가정에 마음이 끌리기도 한다.
그래서 진로가 아무리 중요해도 지금의 사랑을 소홀히 하지 말라는 것이다. 사랑은 성공하면 따라오는 것도 아니고 언제나 얻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앞에서 얘기했듯이 사랑이 이뤄질 확률은 광활한 우주에서 인간과 같은 생명체를 만날 확률과 같은 것이다.
정말 좋은 사랑이라면 당신의 성공을 위해 뒷받침이 될 것이다. 사랑은 두 사람을 발전시켜 나가는 것이지 퇴보시키는 게 아니다. 사랑에 구속되어 두 사람이 퇴보하고 있다면 그 사랑은 뭔가 잘못된 것이다. 사랑에서 나오는 긍정적 에너지로 더 높은 곳을 향해 나아가거나 더 강해져야 정상이다.
사랑의 마지막을 이야기하는 본 주제에서는 할 얘기가 참 많았다. 인간의 참모습, 날것의 인간성을 볼 수 있는 기회이기 때문이다. 사랑의 마지막에서 당신은 어떤 모습인가?
나는 모든 것이 무너진 인간이었고 모든 것을 수용하는 인간이었고 찌질했다. 하지만 수없이 많은 되새김과 반성 고민 끝에 부끄럽지 않게 사랑에 대해 말할 수 있는 인간이 되었다. 그리고 이렇게 말하고 있다.
“사랑은 해볼 만하다. 그 모든 아픔과 위험, 그리고 방해, 그 어떤 격렬한 불안에도 불구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