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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키르히아이스 Apr 09. 2019

28. 사랑과 책임

사랑과 책임

 사랑을 분석하는 책을 쓰면서 책임이라는 말을 하는 게 옳은지 사실 잘 모르겠다. 도덕적인 개념이 포함되면 완전한 본질에 접근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랑은 자칫하면 큰 상처와 손해를 줄 수 있는 것이라 책임이라는 것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내가 좋을면 사귀고 내가 싫을 때 떠나버리면 그만이라고 생각한다면 당신은 아직 유아적 사랑에 머물러있다고 밖에 말할 수 없다.


 아이들은 지극히 이기적으로 판단한다. 책임이라는 개념이 없다. 어떤 행위에는 반드시 대가가 따른다는 자연계의 현실을 아이들은 아직 모른다. 배고프면 조르고 배부르면 입도 대지 않는다. 장난감도 가지고 놀다가 흥미를 잃으면 던져버린다. 우리는 이런 유아적 수준에 얼마나 벗어나 있을까? 과연 사랑에도 책임이 따를까?


 사랑에 책임이 필요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개인주의적 관점을 지닌다. 내가 최대한 행복하면 그만이지 다른 게 무슨 상관이냐는 것이다. 사랑에 책임이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공리주의적 관점을 가진다. 같이 행복해야 진정으로 행복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사랑은 관계이다

 이 대목에서 생텍쥐베리의 ‘어린 왕자’에서 왕자는 여우와 대화하려고 했지만 여우는 대화를 위해서는 자신을 길들여야만 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길들여짐은 관계를 맺는 것이라고 한다. 길들여지는 순간 서로에게 특별하고 필요한 존재가 된다는 것이다. 이 과정은 사랑과 매우 닮아있다. 물론 여기서는 우정을 묘사하지만 자세히 읽어보면 아무래도 우정보다는 사랑에 관해 말하고 있다고 보인다. 


 우정에 대해 우리는 그다지 목말라 하지 않지만 사랑에 관해서는 목마르다. 이 작품에서 말하는 길들인다는 것은 한 사람에게 특별한 존재가 되는 것이다. 우정과는 다소 다르다. 우정은 어떤 사람에게 특별한 존재가 되기는 하지만 그 사람만을 위한 존재는 아니다. 그 사람을 위해 내가 변화해야 할 필요도 없고 많은 노력을 기울일 필요도 없다. 사랑은 그런 것이 다 필요하다.


 어린 왕자는 자기 행성에 있는 한송이 장미를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인 것을 설명한다. 이 노력이 사랑에서 우러나온 배려이다. 그 장미가 다른 장미와 달라지는 것은 기울인 노력 때문에 특별해지는 것이다. 그렇게 사랑이 된다. 우리는 사랑하는 것에 대해 배려하고 희생한다. 그것이 대상을 더 특별하게 한다.

 여우는 이렇게 말한다. 


 “길들인 것에 대해서는 책임이 있어요.”


 여기서 책임이란 것은 익숙해지고, 노력을 쏟고, 특별해지도록 만든 책임이다. 길들이게 되면 그 사람도 나에 대한 특별한 감정을 가지게 된다. 관계가 형성된다는 것은 일방적인 것이 아니다. 상대가 내 존재를 알아야 비로소 관계가 형성된다. 상대방이 나와의 관계 형성에 동의하게 되면 나도 그 사람에게 특별해진다. 이것은 다소 독점적인 것이다. 누구에게나 똑같이 대하는 호혜주의에서는 특별한 관계가 형성되지 않는다. 특별하게 대해주면 서로 익숙해지고 나의 몸과 마음이 그 사람의 범주 안에 들어가 버린다. 이것이 ‘길들여짐’이다. 내가 항상 그(그녀)의 안에 있게 되는 것이다.


 범주라는 것은 그 사람이 인식하는 범위이다. 사랑은 그 인식 중에서도 가장 깊은 곳일 것이다. 관계를 형성한다는 것은 이런 것이다. 관계가 있다면서도 서로 다른 범주에서 있어서 인식하지 못하다면 그것은 진정한 관계가 아니다. 그가 찾을 때 내가 있어야 하고 내가 찾을 때 그가 있어야 한다. 서로 반응해야 한다. 이것을 동의할 수 없다면 관계는 형성되지 않은 것이다.


 관계가 형성되면 두 사람의 신뢰만큼 책임도 형성된다. 만약 갑자기 관계를 끊어버렸다고 하자. 그렇게 되면 그동안의 노력은 결과물 없는 허상이 된다. 특별하고 유일하다고 생각했던 존재가 사라지니까 내 마음도 한 쪽공간이 비어버린다. 만약 의지하는 관계였다면 빈공간은 더욱 크게 느껴질 것이다.


 대상을 향한 정렬도 쓸모없이 되어버린다. 특별하고 유일한 존재를 잃은 슬픔은 클 수밖에 없다. 그런 슬픔을 안겨줄 수 있기 때문에 책임이 있다는 것이다. 사랑이란 상대를 나의 범주로 끌어들이는 일이다. 그 범주로 들어가면 하나가 되고 하나가 된다는 것은 의존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 의존 대상이 사라진다면 충격이 있을 수밖에 없다. 이 세상에는 사랑에 대해 참 가볍게 말하고 가볍게 거둬들이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사람들은 대부분 사랑을 많이 해봤다는 사람들이다. 많은 사랑을 해봤기 때문에 한 개의 사랑은 별로 소중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또 다른 사랑이 올 테니까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많은 사랑을 하더라도 사랑은 저마다 다른 의미를 지닌다. 그 사람이 준 행복은 다른 사람이 줄 수 없는 유일한 것이다. 사랑하는 마음은 같지만 사랑의 얼굴은 모두 다르고 맛도 다 다르다.


 사랑의 3요소가 있다고 해서 다 같은 사랑이 아니다. 사랑은 사람 얼굴처럼 모습이 다 다르다. 심지어 같은 사람과 두 번 사랑해도 같은 모습이 아닐 수 있다. 사랑의 모습은 그 당시의 심리와 인적 관계, 주변상황이 만들어내는 하나의 우연적 산물이다. 스무살 때 만나서 사랑한 사람과 서른살이 되어 다시 사랑한다 해도 그것은 별개의 사랑이며 같은 결과가 나온다고 보장할 수 없다. 우리도 변하고 세상도 변하기 때문이다.


 사랑에 책임을 못느끼는 사람들은 사랑의 모습을 참 우습고 기괴하게 만든다. 어떤 사람은 문자 한 통으로 이별을 통보하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결혼 후 며칠 만에 이혼하기도 한다. 한꺼번에 두 사람을 만나기도 하고 사랑하는 사람을 학대하는 사람도 있다. 이런 사람들에게 사랑의 책임을 어떻게 말할 수 있을까?

 다시 어린 왕자로 돌아가서, 길들여지는 것은 관계라고 했고 관계라는 것은 서로 특별한 대상이 되는 것이라고 했다. 아무 노력 없이 특별하게 될 수는 없다. 상대방을 기쁘게 하기 위한 나 자신의 변화가 필요한 것이다. 이렇게 자발적으로 상대방의 신뢰를 얻은 다음 일방적인 통보와 결별로 관계를 정리하는 것은 책임 있는 행동이라고 할 수 없다. 


 상대방의 기분을 상하게 하고 심지어 상처 줄 수도 있다. 가끔보면 한 때는 사랑했던 사람인데 떠날 때는 어찌 그리 냉정한지 이해하기 힘든 경우가 있다. 물론 관계란 것이 언젠가는 종말을 맞겠지만 그 종말마저 상대를 생각해서 최대한 부드럽게 끝낼 수 있다면 그것이 책임 있는 행동일텐데 그러지 못한 사람들이 많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그 사람에 대해 책임을 갖는 것이다. 그 사람에 대한 독점권을 가졌으면 당연히 책임이 있는 것이다. 권리만 얻고 책임은 피하려 한다면 당신은 사랑을 시작할 자격이 없는 사람이다.


 사랑은 서로 소유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것을 되돌려 놓을 때도 책임 있게 행동해야 한다. 이제 그 사람이 없어도 아무렇지 않다고 해도 책임은 남아있다. 나는 가끔 다음과 같이 조언한다. 그 사람이 정말 사랑했는지 알기 위해서는 그 사람의 헤어질 때 모습을 보라고. 좋을 때는 누구나 자신의 생각을 감출 수 있다. 정말 힘든 상황 혹은 모든 의무가 없어진 상황에서 비로소 본모습이 나온다.


사랑의 책임이란

 사랑의 책임은 일단 사랑이 무너지지 않게 노력하고 헌신하는 자세이다. 그리고 돌이킬 수 없이 사랑이 무너졌을 때 그것을 최대한 상처입지 않게 정리하는 것도 포함된다. 집을 지었다 철거할 때 소유자가 마지막까지 책임을 진다. 사랑도 마찬가지이다. 사랑은 두 사람이 살고 있는 집이다. 그것을 정리하기 위해서는 두 사람이 안전하게 그 집에서 나와야 하며 그러기 위해서는 사랑이 끝났다는 사실을 서로 인식해야 한다.


 한쪽이 그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는 경우에도 지속적으로 인식시킬 책임이 뒤따른다. 절대로 배가 난파된 뒤에 혼자 도망치는 일은 없어야 한다. 상대방이 있는 행위는 대부분 책임이 따른다. 그중에서도 사랑은 가장 높은 수준의 책임이 요구된다. 왜냐하면 인생을 공유한 사이이기 때문이다. 


 책임이라는 것은 사랑을 시작하는 순간부터 당신에게 주어지는 의무이다. 이것은 관계가 끝나더라도 상대방을 최소한 특별한 사람으로 인정하겠다는 것이다. 전여친, 전남친이 아무리 그래도 모르는 사람과 같을 수는 없다.


 책임은 헤어진 후 상대방이 타인으로 돌아가는 과정을 도와주는 것까지 포함한다. 사랑의 경우 관계가 한번 형성되어 버리면 끝나더라도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다. 전남편, 전 여자 친구 등 '전'이라는 접두사가 붙기는 하지만 아무것도 없었던 처럼 될 수는 없다.


 사랑이 끝나면 아픔이 있고 사랑했던 만큼 증오도 생겨나므로 할리우드 배우들처럼 포커페이스로 상대방을 축복하기 어렵다. 이건 매우 인간적인 것이지 부끄러워해야 할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런 감정이 있더라도 우리는 사랑의 책임 차원에서 갈무리를 성의있게 해야한다.


 하룻밤의 즐거움을 위한 사랑이 아닌 영혼으로 교감하는 사랑이 되기 위해서는 책임이 반드시 필요하다. 이것은 서로를 길들이는 것이며 관계를 맺는 것이고 궁극적으로 두 개의 세계가 하나의 세계로 합쳐지는 것이다. 이런 면에서 사랑과 책임은 단계가 깊어질수록 떼놓을 수 없는 관계라고 할 수 있다.


 지금 우리는 이런 책임을 얼마나 다하고 있는지 한번 돌아보자. 나를 사랑해준 사람에게, 내가 사랑한 사람에게 나는 얼마나 책임을 다하고 있는가?


 어떤 것이든 책임이 있다면 당신은 행복한 사람이다. 그것은 세상과의 끈이 있다는 것이다. 책임이 없는 사람은 세상과 끈이 없다는 것이고 그런 사람은 존재의 의미가 불투명한 사람이다. 그 사람이 사라져도 빈 공간이 느껴지지 않고 있든 없든 상관없다면 이 얼마나 무의미한 삶인가? 우리에게 그 의미를 준 것이 사랑하는 사람이다. 그 의미를 책임으로써 갚는 것이 사랑할 자격이 있는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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