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일기 #22
면접은 서너 명이 같이 보는 게 일반적이다. 보통은 면접관이 피면접자보다 수가 많지만 모든 면접관이 질문하지는 않고 날카로운 질문을 던지는 사람이 한두 명 있다. 불행히도 이 사람들이 합격 후 당신의 직속 상사가 될 가능성이 크다.
면접관을 외부인으로 섭외하기도 하는데 이 사람들도 좀 깐깐한 편이다. 왜냐하면 초청받아서 와서 뭔가 해야 한다는 의무감이 있기 때문이다. 다른 면접관들과 전혀 색다른 분위기의 사람이 앉아서 깐깐하게 질문하고 있다면 그 사람은 외부위원일 가능성이 높다. 대신 외부위원의 권한은 그리 세지 않으므로 면접관 중에서 누가 부서장인지를 일찌감치 파악해 강한 인상을 남기는 것이 중요하다.
면접 방식에는 토론식, 압박식, 과제식 등 여러 방식이 있는데 어떤 방식을 만나더라도 당황하지 않고 자기 실력을 발휘할 수 있어야 한다. 내가 치러본 면접 중 어떤 면접은 1박 2일 동안 진행되는 것도 있었다. 팀을 나눠서 팀 과제, 개인 과제를 주고 점수를 매기는 방식이었다. 처음 보는 사람들과 당일 팀을 짜고 여러 가지 과제를 하는 과정이 새로웠다. 시간이 많이 소요된다는 것이 단점인데 지루하지는 않았다.
토론 면접이란 것도 있는데 과제를 주고 찬반주장을 펼치는 것이다. 특이한 점은 찬반을 자기가 결정하는 게 아니라 토론 전에 회사에서 정해준다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찬성이라도 진행자가 반대로 정해주면 반대 측 패널에서 토론해야 한다. 즉 평소 생각보다 즉흥적인 논리개발이 중요하게 되는 것이다.
사람들이 궁금해 하는 것 중 하나가 면접에서 질문을 많이 받는 게 좋은 건지 적게 받는 게 좋은 건지 하는 것이다. 이것은 상황에 따라 차이는 있겠지만 면접에서 유독 한 사람에게 질문을 많이 하는 경우는 대부분 그 사람을 뽑기 위함일 가능성이 크다. 이것은 내 경험적인 판단이다.
좋은 인재라고 생각해서 이것도 시켜보고 저것도 시켜보는 것이다. 다각도로 심층 질문을 던져보고 잘 답변하면 합격시키는 것이다. 나머지 사람들도 합격하려면 면접관의 관심을 끌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자기소개는 주어진 시간에 자신을 얼마나 어필할 수 있느냐에 달려있는데 어떻게든 튀는 소개문을 준비해서 이름을 각인시켜야 한다. 어떤 사람은 삼행시를 짓기도 하고 구호를 외치기도 한다. 과하지만 않는다면 이런 방법도 나쁘지 않다. 우리나라 회사문화는 경력이든 신입이든 패기 있는 사람을 좋아한다. 그놈의 열정 페이가 그냥 나온 것이 아니다. 내가 회사 다닐 때 가장 많이 들은 단어가 '혁신' 그리고 '열정'이다. 공교롭게도 나는 회사생활 동안 혁신을 본 적 없으며 가진 열정마저 잃어버렸다.
간혹 별로 마음에 들지 않는 인재에게 떨어뜨리려고 질문하는 경우도 있는데 좀 어려운 질문을 주고 해결하지 못하면 떨어뜨리는 것이다. 면접관도 양심이 있어 떨어뜨리기로 마음먹고 있는 사람에게도 질문은 던진다. 질문에 영양가가 그다지 없다고 생각하면 떨어질 가능성이 높다. 그래도 한 번의 질문이라도 받았을 때 역전 골을 넣을 수 있어야 한다.
우문현답이라고 하지 않는가? 몹시 어렵거나 성의 없는 질문을 받았을 때도 흔들리지 말고 면접관의 마음을 붙잡을 수 있는 말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죽음을 요구하더라도 순순히 죽기보다 끝까지 살길을 모색하라. 면접은 그런 과정이다. 살아남으려면 면접관이 주는 위기를 극복해야 한다. 그래야 역전을 노려볼 수 있다.
피면접자들 자리 배치는 중간에 서는 게 제일 좋다. 부담되더라도 절대 피하지 마라. 아이돌 스타들도 팀에서 센터 자리에 서려고 엄청난 노력을 한다. 물론 부담스럽겠지만 그만한 보상이 있다. 이름과 인상을 기억에 남기지 못하면 면접에서 좋은 결과를 기대하기 힘들다.
영어면접을 하는 곳도 있는데 보통 한국 사람이 면접관인 경우가 많아서 복잡한 질문을 하지는 않는다. 사실 외국 사람이 면접관인 경우가 나한테는 더 편했는데 그런 경우는 없었다. 원어민들과 대화하는 게 더 어렵겠다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다. 원어민들은 일단 우리가 자기들 언어를 못 한다는 것을 전제한다. 자기만큼 잘하느냐를 보는 게 아니라 의사소통이 되느냐를 보고 대체로 선입견 없이 동등한 위치에서 대화하려고 한다.
그런데 한국인 면접관은 내려다보는 입장에서 뭔가 실수를 찾으려고 한다. 그리고 자기 영어 수준과 비교하려고 한다. 이렇게 되면 아무래도 어려운 면접이 될 수밖에 없다. 물론 이것은 전적으로 면접장에서 받은 나의 개인적 느낌이다.
영어면접이라고 해도 질문은 대부분 일상적인 수준이다. 정치, 경제학에 대한 것은 안 나오니까 그렇게 걱정할 필요는 없다. 여행을 좋아하느냐? 휴가 때는 뭘 하느냐? 여기 올 때 어떻게 왔느냐? 이런 질문들이 나온다.
경력직에는 평판도 조사라는 게 있는데 우리나라에서 널리 사용되지는 않지만 일부 대기업 경력직에 활용되고 있다. 나는 지인의 평판도 조사에 응해준 적이 있었는데 무려 50분 넘게 면접을 봤다. 아마도 지원 당사자보다 내가 더 오래 면접을 보지 않았을까 한다.
그 사람이 전 회사에서 왜 퇴사했는지, 근무할 때 스타일은 어떤지, 동료들과는 잘 지냈는지를 물어보는데 날카로운 질문은 아니고 주로 인성에 관한 것이 많아서 답변이 어렵지는 않았다. 지인들이 이런 면접에 응해준다는 것은 고마운 일이고 당신이 인덕을 잘 쌓았다는 증거일 것이다. 퇴사 후 시간이 오래 지나면 협조를 받기 힘드니 퇴사 후 짧은 기간 내에 평판 조사가 이뤄지도록 해야 한다. 아니면 퇴사 후에도 동료들과 정성스럽게 연락을 이어가야 한다.
퇴사하면 친하던 동료들도 관계가 소원해질 수밖에 없다. 이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서로 관심사가 달라지고 공통 화제가 줄어드니 만나도 할 이야기가 없게 된다. 직장 상사를 안주로 삼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즐겁게 술을 마셨던 것이 어제 같아도 퇴사 후에는 각자 다른 세계에 살게 되므로 그것이 잘 안 된다. 공통의 경험이 대화의 가장 좋은 소재인데 그게 없다.
이제 면접으로 회사 상태를 판단하는 방법을 알아보겠다. 회사에 대해 공개된 정보로 알 수 없는 것을 면접을 통해 알 수 있는 방법이 있다. 우선 면접 장소. 면접은 거의 본사에서 치르게 되는데 처음으로 그 회사 본사에 가보는 것이다. 본사 건물을 보면 그 회사의 위상이 어느 정도 보인다. 대부분 회사가 무리해서라도 본사를 화려하게 짓는 것은 이것이 회사의 신인도, 위상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강남에 회사들이 많이 있는 것도 다 그런 이유이다. 소재지가 강남이라는 것은 회사가 그만큼 금전적으로 여유가 있고 잘 나가는 회사라는 선입견을 심어준다.
이것은 어느 정도 사실이다. 본사만 봐도 그 회사 재무 상태와 근무 여건이 어느 정도 나온다. 여기서 따져 볼 것은 그것이 100% 회사 소유 건물인지, 향후 이전 계획은 없는지이다. 나 같은 경우 회사가 소유한 빌딩에서만 근무해보았지만 사무실을 임대해서 쓰는 회사들은 건물이 자기 것이 아니라서 불편한 점이 일부 있다. 예를 들면 회사 행사할 때 장소를 통째로 빌린다든지, 편의시설을 만든다든지 하는 것은 건물주가 아니면 쉽지 않다. 직원 입장에서는 건물에 편의시설이 많으면 그만큼 근무 여건이 좋아지므로 회사가 자기 건물을 가지고 있는 것이 유리하다.
면접관으로 나온 사람들 면면을 봐도 회사를 알 수 있다. 특히 임원들을 봐야 하는데 임원들이 동네 아저씨, 삼촌 같다면 아무래도 회사가 경쟁이 없고 정체된 곳이라고 봐야 한다. 대기업은 진급할수록 일이 많아지는데 임원 정도 수준이면 스마트함이 입증된 사람이다. 반면 공기업이나 경쟁이 없는 기업은 임원이 될수록 일이 없다. 그래서 동네 아저씨 같은 느낌을 준다. 질문의 내용도 영양가가 없다. 연공서열에 의해 진급되는 회사는 임원들의 수준이 낮을 수밖에 없다.
면접비도 관심사인데 지역을 구분해서 짜게 주는 데도 있고 통 크게 일정액으로 주는 곳도 있다. 면접비가 많은 곳일수록 복리후생이 좋다고 봐야 한다. 이걸 선입견이라고 할 사람도 있겠지만 면접비는 일회성 비용이므로 여유가 없는 회사는 적게 잡는다. 공기업들도 많이 잡기 힘들다. 감사에서 항상 금전적인 것을 중점적으로 보기 때문이다. 면접비를 많이 준다는 것은 그만큼 자금을 집행할 때 자율성이 있고 씀씀이에 여유가 있다는 증거이다. 면접비도 이렇게 많이 주는데 자기 회사 직원들에게 푼돈만 주지는 않는다.
이렇게 어려운 면접시험을 치르고 나면 결과 통보가 온다. 합격자만 통보하는 것이 보통이다. 면접에서 합격하면 이제 신체검사만 거치면 정식 채용되므로 9부 능선까지 넘었다고 보면 된다. 나는 개인적으로 면접은 하루에 끝내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특히 회사에 다니고 있는 사람은 시간을 내기 힘든데 필기, 면접 등으로 계속 회사를 벗어나게 만드는 것은 경력자를 뽑겠다는 취지와는 맞지 않는다.
신체검사는 규모가 큰 회사의 경우 병원과 계약하여 한 번에 하지만 작은 회사는 개인이 알아서 병원 가서 검사받고 결과를 갖다 줘야 한다. 별도로 신원보증까지 요구하는 곳도 있는데 번거로운 일이다. 신원보증은 보증보험으로 하는 회사도 있고 지인의 보증을 받아오라는 곳도 있다. 좀 이해가 안되는 것은 면접 결과 발표도 전에 신원보증, 신체검사를 요구하는 곳이 있다는 것이다. 합격자만 하면 될 걸 불합격자도 해야 하니 답답한 노릇이다. 신원보증은 내가 면접 보는 것을 남에게 알려야 하고 그 사람 주민등록번호까지 받아서 보증을 세워야 하니 여간 불편하지 않고 그나마 합격하면 좋지만 불합격하면 허탈감이 더 크다.
세월이 어느 세월인데 아직도 보증인을 세워야 회사에 들어간다니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그리고 그 보증이 무엇을 보증해줄 수 있는지도 의문이다. 우리나라 회사 문화는 아직도 누가, 왜 하는지도 모르는 관습들이 쌓여있다. 이런 것이 없어져야 진짜 혁신이 되는 것인데 아쉬운 일이다. 고아라서 보증 서줄 사람이 없으면 회사도 못 들어가는 것인가?
신체검사도 마찬가지이다. 면접에 합격하지 않은 사람은 신체검사를 볼 필요가 없는데 면접 결과 나오기도 전에 신체검사하는 곳이 있어 각각 다른 회사의 신체검사에 응하느라 한 달에 두 번 피를 뽑았던 적도 있다. 정말 구직자들의 입장은 전혀 생각하지 않는 갑질 중의 갑질이라고 생각한다.
면접과 관련해서 기업들에 해주고 싶은 충고가 있다. 면접이 특이하거나 복잡하다고 좋은 인재가 들어오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취업준비생은 피면접자이기 전에 고객이다. 면접관들의 어이없는 태도(외모, 사생활 지적)와 배려 없는 면접 절차(면접 결과 발표 전 신체검사, 보증인 요구) 등은 장기적으로 회사 이미지를 상하게 하는 것이다.
회사는 잠재적 고객에게 최선의 회사 이미지를 보여준다는 자세를 가지고 면접에 임해야 한다. 면접이란 채용을 위해 대상자를 시험 보는 일인 동시에 불특정 다수의 고객이 회사의 내부로 들어와 회사와 직접 접촉하는 유일한 기회란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면접에서 합격하든 불합격하든 그들이 돌아가서 회사의 적이 되지 않도록 하는 것도 회사가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