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일기 #20
필기에서 논술시험을 보는 경우도 있는데 이것 역시 공부한다고 실력이 올라가는 게 아니라서 요령밖에 알려줄 수 없다. 논술시험은 해당 회사와 연관된 이슈를 주제로 다룰 때가 많으므로 이것을 미리 준비해둬야 한다. 그리고 금방 늘지는 않겠지만 단시간에 분량을 채워서 글을 쓰는 연습을 할 필요가 있다. 부분 점수라도 받기 위해서는 나름의 논리로 글을 쓰는 노력도 해야 한다. 이것조차 하지 않고 합격을 바라서는 곤란하다.
아예 모르는 논술 주제가 나올 수도 있는데 주제가 어느 범주에서, 어느 수준으로 나오는지는 전년도 시험문제 등을 통해 파악해보는 것이 좋다. 논술은 오래된 이슈에 관해 묻는 경우가 별로 없고 대부분 최근 이슈에 관해 나오므로 회사 혹은 사회, 전공과 관련하여 어떤 것이 이슈가 되고 있는지 파악하고 가면 도움이 된다. 최소한 그 주제어가 긍정적인 것인지 부정적인 것인지라도 알고 가야 한다.
마지막 관문인 '상식'은 공기업에서 주로 치르는 시험이다. 경력자 이직에서는 대부분 치르지 않는다. 상식 공부하는 방법은 어디서 뭐가 나올지 알 수 없기 때문에 참 어려운데 일단 지원하려는 기업의 문제 수준을 알아야 한다. 상식은 깊이보다는 넓이를 위주로 내는데 어려워서가 아니라 범위가 넓어서 틀리는 경우가 많다. 원하는 회사의 상식 기출문제를 보고 문제 수준, 범위를 파악한 다음 기본교재 + 추가 내용을 공부해야 한다.
기본교재는 시중에 많이 나와 있으므로 적당한 것을 고르면 되고 난이도나 범위가 기본교재 밖이라면 나름대로 자료조사를 해서 추가해야 한다. 정 자료를 못 만들겠다면 상식 준비 학원을 통해서라도 해결해야 한다. 다만 최근에는 상식 시험을 많이 보지 않는 추세인 것 같다. 따라서 필기시험 중에 상식은 가장 적은 시간을 투자하는 것이 좋다. 시간을 많이 투자해도 투자 대비 성과가 적은 편이다.
필기시험을 한번 실시하려면 많은 인력과 비용이 들어가므로 기업은 될 수 있으면 이것을 한 번에 끝내려고 한다. 작은 회사들은 외주 회사에 필기시험 출제를 맡기기도 하는데 이럴 경우 문제은행 방식이 될 가능성이 높다. 문제은행 방식에서는 같은 회사에 여러 번 지원하는 게 유리할 수 있다.
한편 필기시험에 떨어졌다고 해서 낙심할 필요는 없다. 어차피 계단식으로 발전해가는 것이다. 서류에서 계속 떨어지다가 서류가 되면 필기에서 계속 떨어지고 필기가 되면 또 면접이 벽이 된다. 그런 자연스러운 과정의 일환이므로 좌절하지 말고 계속해야 한다. 필기는 금수저, 유학파가 다 소용없으므로 마음껏 실력 발휘를 할 수 있다. 필기는 시험을 많이 볼수록 여유가 생기고 공부의 내공이 깊어진다. 따라서 떨어지는 것에 너무 연연하지 말고 계속 시험을 보고 실전 경험을 쌓아가는 것이 중요하다.
일부러 모의시험을 보기도 어려운데 공짜로 실력 테스트해준다고 하니 얼마나 좋은 일인가? 꼭 합격한다는 생각보다 내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 알아보겠다는 생각으로 시험을 보고 만약 불합격했다면 몰랐던 내용에 대해 다시 찾아보고 핵심노트를 보강해두어야 한다. 필기시험도 트렌드가 있어서 자주 보다 보면 어느 정도 경향이 보인다. 최근에는 인공지능, 전기차, 자율주행이 인기이므로 관련 문제가 나올 가능성이 크다.
필기시험은 노력이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핑계 대지 말고 나의 모든 것을 쏟아 붓는다고 생각으로 준비하면 안 될 것이 없다. 나 역시 생각도 하지 않았던 곳에 필기시험 합격이 된 적이 있다. 시험이라는 게 노력과 운이 모두 따라줘야 하므로 열심히 한다고 최종까지 합격한다는 보장은 없지만 필기에 합격할 정도의 실력이라면 혹여 면접에 떨어지더라도 고지가 멀지 않으니 실망할 필요 없다.
회사에 다니면서 시험을 준비하는 사람은 필기 공부에 투자할 시간이 별로 없어서 불리한데 하루 10분이라도 좋으니까 꾸준히 하는 것이 중요하다. 일단은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공부하는 습관을 다시 들이고 초반 성과는 별로 없더라도 진도를 계속해서 나아가면 부족하나마 기본기가 잡힌다. 그 다음은 실전 시험을 치르면서 몸으로 부딪쳐 깨달으면 된다. 회사에 다니면서 다른 것을 준비한다는 것이 매우 힘든 과정이지만 한편으로는 목표가 있어서 활력이 되기도 한다. 나 역시 전날 12시 넘게 야근하고 다음 날 9시에 필기시험을 치른 적도 있다.
당연히 피곤하고 힘들지만 희망조차 없던 시절보다는 뭔가를 준비하고 있다는 데서 오는 기대가 컸다. 합격/불합격은 모든 요소가 잘 따라와 줬을 때 하늘이 주는 것이고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꾸준히 준비하는 것밖에 없다. 이 책에서 계속 ‘과정’이 중요하다고 말했던 것도 이런 이유이다. 결과에 목을 매면 준비하는 것이 너무 힘들어진다. 재미도 없고 열정도 금방 사그라든다. 과정에 의의를 두고 준비한다면 오히려 회사생활에 활력이 되고 결과도 더 빨리 얻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NCS에 대해 언급하고 넘어가야 하는데 회사에 있으면서 NCS 내용 만드느라 고생하는 직원들을 보았다. NCS는 국가 직무능력표준인데 여러 단계 전형에서 해당 직무에 맞는 인재를 선발할 수 있도록 표준적인 내용을 제공한다. 주로 공공기관에서 활용하고 있지만 정부 입김이 닿는 금융권이나 대기업까지 확대될 가능성이 있다.
많은 사람이 이 제도 때문에 또 하나의 토익이냐며 불만을 터트리지만 현업에 있었던 입장에서 다른 평가 기준을 없앤다는 전제하에 좋은 제도라고 생각한다. 이 제도는 주먹구구식으로 사람을 뽑는 우리나라에서는 매우 낯설지만 이미 선진국에서는 사용되고 있는 제도이다. 정부가 얼마나 일관되게 추진할지는 모르지만 공공부문만이라도 표준적인 제도를 도입해 주관적 요소를 최대한 배제하고 객관적이고 공정하게 추진된다면 마다할 이유가 없다.
아직은 초창기이고 매뉴얼이나 표준을 만드는 데 인색한 우리 문화 때문에 자리를 못 잡고 있지만 좋은 제도라고 생각한다. 경력 채용에도 활용될지는 미지수인데 이것저것 다 준비하는 것보다 한 가지에 몰두할 수 있다면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각 회사는 고유의 업무 분야가 있는데 NCS는 이것을 현업자들이 직접 참여해서 만들어내기 때문에 내용이 업무와 관련성이 높고 합리적이다. 쓰지도 않는 지식을 대결하듯 외워야 하는 일반 필기시험은 NCS에 비하면 원시시대 수준이라고 생각한다.
예전에 구글에 입사 지원을 한 적이 있다. 그런데 모든 직무에 코드가 부여되어있고 할 일이 정의되어있어서 놀랐다. 우리나라는 무슨 일을 하는지, 어디서 일하는지도 모르고 그저 전산, 금융, 건축 같은 큰 틀만 나눠서 입사시험을 본다.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대기업 공채는 그런 면에서 얼마나 후진적인 제도인지 모르겠다.
구직하는 사람에게는 새로운 평가 기준이 생기는 게 불만이겠지만 더 좋게 발전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하고 이 부분도 다른 필기시험 준비하듯이 대비해야 한다. 다행히 NCS는 교재가 풍부하게 나와 있어 준비하는 데 어려움은 없을 것이다. 자기가 직무에 맞는지를 테스트하는 과정이므로 어찌 보면 적성이 맞는지 알아보는 효과도 있다고 생각한다. 아마도 경력자에게는 적용되지 않을 것으로 보이지만 전면 적용은 아니라도 일부 전형에서 활용될 수 있다.
이직은 준비하는 기간이 가시밭길이다. 시간도 없고 감각도 떨어졌는데 모든 것을 다시 시작해야 한다. 그래도 하겠다는 마음이 있다는 건 당신이 그만큼 인정받고자 하는 의욕이 크다고 할 수 있다. 뭔가 해내려면 시행착오와 노력은 필수이다. 평생직장도 없는 시대에 한 직장에 목을 매는 것은 어리석은 행동이다. 회사가 보장해주지 않는 고용과 승진, 연봉을 내 노력으로 쟁취하는 것도 능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