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일기 #19
서류합격의 기쁨도 잠시이고 다시 높은 장벽이 기다리고 있는데 그것이 바로 필기전형이다. 경력직의 경우 필기전형이 없는 곳도 있는데 공공분야에서는 공정성을 위해 웬만하면 필기시험을 거친다. 필기 과목은 전공, 상식, 인·적성 정도로 나눠볼 수 있는데 우선 전공시험에 대해 알아보자.
전공시험은 내 경험으로 볼 때 최소 80점, 자신 있게 합격하려면 90점 이상의 점수를 목표로 해야 한다. 이 점수는 상대점수를 말하는 것이다. 이 정도라면 어느 회사 전공시험에 가더라도 합격권에 들 수 있다. 평소 실력이 80점대라면 필기 합격자 수가 한 자릿수일 경우 통과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시험내용은 전공에 따라서 좀 다를 수는 있겠지만 대체로 대학 4년간 배운 전공과목을 종합적으로 다루므로 범위가 매우 넓다.
회사에 따라 전공시험의 난이도와 범위가 달라지는데 메이저 금융공기업들은 대학 4학년 수준을 뛰어넘는다. 모 국책은행은 거의 석사 수준 이상의 문제를 내는 것으로 악명이 높다. 어떤 곳은 논술 형태로 내기도 하는데 종합적인 판단을 요구해서 답을 쓰기가 쉽지 않다. 그래도 합격하는 사람이 있으니 포기하지 말고 자신의 최대치를 테스트해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다만 요즘엔 빅매치 데이라고 해서 한 날짜에 각 공기업이 몰아서 시험을 치기 때문에 선택의 여지가 줄어들었다. 내가 시험을 볼 때만 해도 여러 군데 볼 수 있었는데 이런 점은 아쉽다. 그래서 전략을 짜야 하는데 어차피 여러 곳 시험을 치지 못한다면 난이도가 높은 곳의 시험을 버리는 게 가장 합리적 선택이다.
하지만 난이도가 낮은 곳도 대학 4년의 전반적인 전공지식을 묻기 때문에 녹록치 않다. 최소 몇 달 준비해야 할 분량은 된다. 회사마다 난이도 차이도 있고 문제 스타일도 틀리기 때문에 다양한 시험문제에 적응하는 시간도 필요하다.
전공시험을 준비하는 방법으로 내가 사용한 방법은 일단 핵심 요약 노트를 만드는 것이었다. 이것은 누구나 하는 기본이다. 그 많은 범위를 시험 때마다 찾아서 공부할 수는 없다. 공부할 내용을 시험 준비하기 편하게 모아놔야 한다. 핵심만 모아놓아도 양이 꽤 될 것이다. 이것을 자다 일어나도 대답할 수 있을 정도로 머릿속에 넣어야 한다. 처음에 만든 핵심노트는 핵심과 비핵심이 섞여 있고 빠진 내용도 많다. 이것을 실전 시험을 통해 보완해야 한다.
실제 시험을 치다 보면 핵심 요약 노트에서 빠진 내용을 알게 되는데 반드시 집에 와서 답을 찾아보고 노트를 보완해야 한다. 전공시험은 문제 스타일이 다소 정해져 있고 문제은행의 성격도 가지고 있어서 시험을 보다 보면 비슷한 문제를 만날 수 있다. 그래서 이번에 틀린 문제는 다음에는 꼭 맞혀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신이 못 푼 문제의 정답을 반드시 노트에 추가시켜야 한다. 합격 여부를 떠나 전공시험을 가능한 한 많이 봐야 하는 이유가 이것이다.
그렇게 해서 핵심노트를 ‘황금 노트’로 만들 수 있다. 비록 합격하지 못할 회사라도 전공시험은 보는 게 좋다. 이것은 면접에서도 마찬가지인데 경험만큼 큰 배움은 없다. 경험 부족으로 시험장에서 긴장하게 되면 실력에 마이너스가 된다. 많은 경험을 해두면 시험장에 가도 여유가 생기는데 자기 실력만 발휘하더라도 후회 없는 일전을 벌일 수 있다.
전공시험을 칠 때마다 핵심노트를 처음부터 끝까지 공부하는 습관을 들여놓는 것도 필요하다. 이렇게 되면 몇 달 후에는 시험에 잘 나오는 것과 아닌 것이 구분되고 핵심노트를 읽는 속도가 빨라질 것이다. 전공 서적은 대학교 교재를 공부하는 것보다 시중에 나와 있는 취업시험용 교재를 사용하는 것이 낫다. 공기업 전공시험 준비 서적들이 시중에 많이 나와 있다.
필기시험으로 영어를 따로 보지는 않지만 토익시험이 같은 역할을 한다. 토익점수 올리는 법은 시중에 많이 나와 있으므로 여기서 설명하지 않겠지만 한 가지 원칙만 얘기하면 일단 시험을 많이 보는 게 중요하다. 토익은 적당한 공부와 함께 시험을 꾸준히 보면 어느 정도까지 점수가 오르게 설계되어 있다. 다른 시험에 비해 토익이 자격시험으로 인기를 끄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것은 토익시험을 만들 때 그만큼 난이도와 범위, 문제 스타일 등을 치밀하게 설계했다는 얘기이다. 토익은 이런 면에서 어느 정도 검증된 시험이다. 시험만 꾸준히 보더라도 감각적인 부분이 살아나고 실수가 적어져 점수가 오를 수밖에 없다.
필기 과정에서 응시자를 괴롭히는 게 인·적성검사인데 민간 기업들은 각자 다른 이름으로 시험을 치른다. 삼성의 SSAT가 대표적이다. 공기업들도 외부 기관들의 도움을 얻어 인·적성 시험을 만들었고 심지어 일부 공무원 시험에도 적성시험이 들어가 있다. 인·적성 시험은 심리학에서 심리검사라고 하는 것으로 측정내용에 따라 능력검사와 성향검사로 나뉜다.
적성검사는 능력검사에 해당하고 아이큐 테스트처럼 다양한 문제가 나온다. 인성검사는 성향검사의 한 종류로 심리테스트 같은 문제가 나온다. 인성검사에 대해서 어려워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 이유는 특별한 왕도가 없기 때문이다. 인성검사는 대개 필기시험 중 가장 먼저 보는데 정답이 없고 개인의 성향을 측정하는 것이다. 여기서 무슨 기준으로 탈락을 결정하는지는 해당 기업만 알기 때문에 이유도 모르고 떨어지는 지원자에겐 답답한 노릇이다.
인성검사로 유명한 것이 다면적 인성검사(MMPI)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워낙 광범위한 검사라 기업에서는 자체 개발한 인성검사를 사용하는데 각 기업에서 중요하게 여기는 덕목을 중점적으로 테스트하도록 설계되어 있다. 예를 들어 친화력, 협업능력, 열정, 끈기, 성실성 등이 평가 대상이 될 수 있다. 과락점수를 두고 있는 경우도 있고 종합점수로 평가할 수도 있다.
인성검사는 답을 좋게 쓰려고 해도 안 되고 너무 방어적으로 써도 안 된다. 내가 해줄 수 있는 말은 솔직하게 쓰라는 것이다. 인성검사에는 타당도 척도라고 해서 검사의 유효성을 체크하는 문항들이 포함되어 있는데 여기서 이상 징후가 발견되면 검사는 무효가 된다. 절대 ‘모범답안’을 쓰려고 머리를 굴리면 안 된다. 그렇게 하면 답변의 일관성이 떨어져 거짓말을 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같은 질문인데 다르게 묻는 말들이 숨어있다. 사실상 똑같은 질문인데 다르게 답한다면 당신은 거짓말쟁이가 될 수도 있다. 무작위 답, 편향된 답, 자기 미화/비하, 모르겠다고 답한 것 등이 모두 체크될 수 있다. MMPI만큼 정교하지는 않겠지만 기업들의 인성검사도 나름대로 이런 부분을 체크할 수 있으므로 답을 꾸미면 안 된다.
그렇다고 너무 정직하게 써서도 안 된다. 거짓말을 하라는 것은 아니고 본인의 머릿속 생각뿐만 아니라 평소 자신이 노력하는 부분도 고려해서 써야 한다는 것이다. “당신은 여러 사람과 일하는 것을 좋아합니까?”라는 질문이 있다고 하자. 당신은 여러 사람과 일하는 것을 그렇게 좋아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불만을 표시하지도 않고 묵묵히 일한다고 할 때 답에는 뭐라고 써야 할까?
머릿속 생각을 적어야 할까 노력이 포함된 행동을 적어야 할까? 답은 후자이다. 모든 사람이 생각과 똑같이 행동하는 것은 아니고 상황에 맞춰 행동할 때가 많다. 그렇다면 맞춰서 행동하는 것을 답으로 적어야 한다. 생각하는 것을 그대로 답으로 적으면 거의 성격파탄자 수준의 극단적인 사람으로 결과가 나온다.
인성검사는 점수를 알 수도 없고 공부를 할 수도 없으니 참 막막한데 응시자가 할 수 있는 방법은 하나뿐이다. 솔직하게 쓰되 평범하게 쓰는 것. 내 생각에 인성검사는 플러스 점수를 받는 것은 별로 없고 문제 있는 사람을 걸러내는 용도인 것 같다. 즉 평균보다 많이 벗어나지 않으면 크게 문제 될 것이 없다. 인성검사는 비전형도(Infrequency)를 검사할 수 있어서 피검사자가 보통 사람과 얼마나 다른지 점수로 알 수 있다.
대기업은 단체에 잘 섞이는 사람을 좋아하지 개성 있는 사람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답안에 개성을 드러내는 것은 가급적 자제하는 것이 좋다. 창의력을 드러내기 위해 굉장히 특이한 선택지만 골라 체크한다면 분명히 ‘별난 사람’으로 오인당할 수 있다. 분명히 말하지만, 대기업은 ‘창의적인 인재’를 좋아하지 않는다. ‘시키는 대로 하는 인재’를 좋아한다. ‘열정적인 인재’도 좋아하지 않는다. ‘쉬지 않고 일하는 인재’를 좋아한다.
인성검사는 수험생이 컨트롤할 수 있는 부분이 적지만 적성검사는 다르다. 다소 기술적인 면이 작용하고 IQ와 관련된 것도 많이 작용한다. 적성검사는 시험방식이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하나는 토익시험처럼 정해진 시간 내에 자유롭게 문제를 푸는 시험이고 다른 하나는 섹션별로 짧게 시간을 나눠서 보는 시험이다. 전자는 역량검사라고 해서 전체 제한 시간만 있다. 이렇게 되면 어려운 문제를 두세 번 풀어볼 수 있으므로 실력 발휘할 여지가 크다. 후자는 속도검사라고 해서 영역마다 시간제한이 있으므로 문제를 분석할 시간이 없다.
속도검사는 전체 시험 시간이 50분 주어졌다면 섹션별로 시간을 10분씩 할당하고 섹션별 제한 시간이 넘으면 다음 섹션으로 넘어가야 한다. 못 푼 문제를 다시 풀 기회가 없고 이미 지나간 섹션을 풀다가 걸리면 부정행위로 간주한다. 그래서 이 방식이 더 어렵고 점수가 안 나온다고 할 수 있는데 문제를 맞힐 확률을 높일 방법은 한 가지이다. 무조건 쉬운 문제부터 풀고 한 문제에 대해 두 번 생각하면 안 된다.
쉬운 문제부터 풀면서 마지막 문제까지 간 다음, 시간이 남을 때 못 푼 문제들을 다시 봐야 한다. 그리고 일부 문제들의 경우 지문이 길어서 시간이 오래 걸릴 수도 있는데 이런 문제도 뒤로 미뤄놔야 한다. 짧고 단순한 문제들을 먼저 풀어야 한다는 것이다. 시간이 생명이다. 적성검사는 공부하면 점수가 오르긴 하지만 극적으로 오르지는 않는다. 특히 인지력 테스트 같은 것은 공부한다고 쉽게 올라가지는 않는다. 다만 문제은행식으로 나오는 경우 친숙한 문제를 만날 수도 있으므로 잘 안된다고 포기하지 말고 다양한 문제를 접해둘 필요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