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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키르히아이스 Jan 29. 2019

19. 사랑하고 있을까?

사랑하고 있을까?

동서고금을 통틀어 누구나 궁금해할 만한 질문을 해보겠다. 


 “그 사람은 나를 사랑할까?”

 “나는 그 사람을 사랑하는 것일까? “


 살면서 이런 질문 한 번도 해보지 않았다면 당신은 아직 어리거나 경험이 너무 부족한 사람이다. 썸 탄다는 말이 언제부터인가 유행하다가 이제는 거의 사전에 실릴 수 있을 정도로 널리 쓰이는 단어가 되었는데 썸과 사랑의 경계는 우리가 늘 연인을 만드는 과정에서 가장 어려운 부분이다. 친하긴 한데, 인간적으로 좋아하긴 하는데 사랑하냐고 물으면 잘 모를 경우가 있다. 또한 상대방이 나에게 호감을 가진 것은 알겠는데 그 사람이 나를 사랑하고 있는지 묻는다면 쉽게 답하지 못한다. 오래된 커플도 이런 질문을 할 때가 있다. 


 사실 이 문제만 정확히 알아도 우리가 사랑에 대해 고민하는 문제의 1/3은 없어질 것이다. 상대방의 마음을 모르겠고 심지어 내 마음도 잘 모를 수 있다. 아주 오래된 사이이거나 방금 만난 사이에서 이런 경우는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설레는 감정이 아직 가슴을 지배하지 않은 상황이라서 그렇다. 가슴이 두근거리기는 한데 단순히 이성이라서 그런 건지 아니면 사랑의 감정이 있어서 그런 건지 헷갈린다.


 이 문제에 대해 우리는 너무 쉽게 답하거나 생각 없이 결론을 내려버리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그냥 지나쳐버리면 나중에 후회할 일이 생기게 된다. 심지어는 몇 년을 같이 산 부부도 이 질문을 진지하게 생각해본 적이 없는 경우가 많다. 그냥 오래 만나고 편해지고 별다른 선택도 없고 해서 자연스럽게 결혼한 사람들이 그렇다. 이렇게 결혼해서 애가 있고 현재 큰 불만도 없다면 사랑하고 있는 것으로 합리화하고 만다.


 이 책의 맨 앞장에서 사랑을 정의하려고 했던 것은 무모하고 건방진 일이란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이 책의 전반에서 마치 모든 것을 이해하고 있다는 듯이 사랑에 대해 정의를 늘어놓은 것은 사랑에 대해 고민해보자는 취지였다. 사람들은 사랑을 너무 당연하게 여기고 마치 언제나 옆에 있는 것으로 착각한다. 그런데 그렇지가 않다. 오늘 아침 당신이 어떤 주식에 투자를 할까 말까 고민했듯이, 더 높은 이자를 주는 은행이 어디인가 찾아봤듯이 사랑도 계속 고민하고 관심을 가져야 하는 분야이다. 


 “사랑하고 있습니까?”라는 질문을 던져보자. 썸 타는 관계의 사람들은 다음과 같은 대답을 할 것이다.


 1. “너무 오래 알고 지낸 사이라서 친하긴 한데 남자(여자)로서는 잘 모르겠어요.”

 2. “글쎄요. 이제 막 알게 된 사이라서 좋은 사람인 것 같긴 한데 당장은 모르겠어요.”


 1번 답은 아주 오랜 인연이 있는 고향 친구나 동창들에게서 볼 수 있는 현상이다. 서로 너무 잘 알고 오랜 인연이 있어서 장작은 많이 쌓여있지만 불쏘시개가 없는 상황이다. 부싯돌은 빠르게 부딪혀야 한다. 천천히 해서는 소용이 없다. 사랑의 3요소는 사람, 신뢰, 애정인데 오래 알고 지내면 서로 신뢰도 있고 좋은 감정도 있다. 그러나 이 정도의 감정은 동성친구나 오랜 사업 파트너에게서 느끼는 감정과 다를 게 없다. 사랑의 감정은 설렘이 동반되어야 한다. 사랑하고 있는지 아닌지 판단하는 한 가지 방법은 현상태의 그녀에게 설렘을 느끼고 있는가이다.


 2번 답은 소개팅이나 직장에서 처음 만나서 알게 된 사이로 서로 잘 모르고 단지 겉으로 드러나는 이미지로 파악하고 있을 뿐 상대방에 대한 감정이 미처 확립되지 못한 상태이다. 그런데 꽤 오래 만난 사이인데도 애매할 때가 있다. 내 옆자리의 여직원이 벌써 1년째 알고 지낸 상태인데 호감이 들지만 과연 고백할 정도로 사랑하는 상태인지 단순히 이성이라서 떨리는 것인지 애매할 수 있다.


 실제로 사랑하지 않아도 남성은 평균 이상의 외모를 가진 여성에게 기본적으로 끌리는 마음을 가질 수 있다. 이것은 여성도 어느 정도 비슷하다. 물론 여성은 좀 더 복잡하고 다양한 면에서 끌림을 느끼지만 결과는 같다. 단순한 호감과 사랑을 착각하는 경우도 많은 데 고백하기 전에는 좋은 감정이었다가 사귀고 나서 금방 감정이 식는 경우는 사랑이 아니라 단순 호감인 경우이다. 사랑은 설렘이 포함되기 때문에 상대방을 만날수록 그것이 확대되고 더 큰 갈증을 느끼게 된다. 이것이 없다는 건 그냥 호감이다.

 단순 호감과 사랑을 구별하는 방법은 그것이 연속적이고 점점 커지는 감정인지 여부이다. 평상시에는 별 감정이 없다가 간혹 그런 느낌이 든다면 그것은 아직 사랑이 아니다. 사랑이란 진행되면 될수록 커지고 끊임없이 이어져야 한다. 밥 먹을 때도 잘 때도 그 사람이 당신의 머릿속을 헤집어 놔야 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사랑의 감정이 커질 때 때로 고통을 느끼기도 한다. 평화롭던 일상이 흐트러지고 자기 마음대로 감정을 조절할 수  없기 때문이다. 즉 내 마음의 통제권이 나에게서 벗어난다. 평상심을 유지할 수 있고 일상생활에 지장이 없다면 사랑까지는 아닌 것으로 보는 게 맞다.



 그렇다면 단순 썸이 아니라 오랫동안 같이 살고 있는 부부에게 “당신은 당신의 파트너를 사랑하고 있느냐?”라고 물으면 뭐라고 답할까? 


1. "이제 와서 무슨 사랑은. 새삼스럽게."

2. "물론 사랑하지. 그러니까 같이 살지"

3. "솔직히 사랑은 식었지. 애들 때문에 그냥 사는 거지."

4. “사랑하지. 애들이 그 증거 아닐까.”


 뭐 이 정도의 대답에서 벗어나지 않을 것 같다. 우리 주변에서 흔히 들을 수 있는 대답들이다.


1."이제 와서 무슨 사랑은. 새삼스럽게."

 이 대답은 사랑이라는 감정이 무엇인지도 잊어버린 듯하다. 사랑이라는 말을 꺼내기도 민망한 상황이다. 그런데 의외로 이런 사람들이 우리 주변에는 많다. 자식들에게 많은 희생을 하는 개발도상국/저개발 국가들의 부모들이 이런 상황을 보여준다. 개인주의가 정착된 선진국에서는 개인감정과 행복에 대해 끊임없이 관심을 가진다. 나이가 많아서, 부모가 되어서 포기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사랑이라는 감정이 결국 소멸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이 책에서 계속 얘기해왔다. 사랑이라는 에너지는 너무 커서 영원할 수 없다. 이것도 에너지라서 손실되고 전환되어 버린다. 인간은 자극에 적응하는 동물이기 때문에 더 크고 다른 자극을 원한다. 사랑은 익숙해지면서 희미해져 간다. 그렇다면 1번 답이 가장 많은 답일 것 같다.


 과연 그럴까? 


 그렇지만은 않다고 생각한다. 인간은 사람의 어떤 면을 보고 사랑하게 되는데 신기하게도 사람은 여러 가지 면을 가지고 있다. 이중인격자까지는 아니지만 다면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다. 그런 것들을 하나하나 사랑해간다면 그 시간들은 그리 짧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쌓인 신뢰와 기억의 공유가 두 사람의 관계를 더욱 견고하고 풍부하게 해 준다. 나중엔 추억 얘기만 해도 하룻밤이 모자라게 된다.


 어떤 사람을 사랑하겠다고 생각하는 것은 무슨 이유에서 일까? 시작은 내면의 감정일지라도 그 사람에 대해 더 많은 것을 알게 될수록 이성적인 면이 크게 작용한다. 그래서 감정이 예전 같지 않더라도 서로가 가진 두터운 신뢰를 통해서 달콤한 열병 같은 사랑 대신 쓴 아메리카노 같은 깊은 사랑을 할 수 있게 된다.


 신뢰라는 것은 무엇인가? 세상에서 완전하게 믿을 수 있는 사람은 가족뿐이다. 그것에 그나마 근접할 수 있는 것이 사랑하는 사람이다. 혈육이 아니기에 가끔 실망도 주지만 많은 시간을 같이하면서 서로 신뢰할 수 있는 깊이가 깊어진다. 이것은 신뢰를 통해 서로 의지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인간에게 주어진 숙명적 외로움을 극복할 수 있게 한다. 인간은 혼자 있을 때 본능적으로 불안함을 느낀다. 이것은 본능이다. 이 본능의 힘을 빌려 사랑을 찾게 된다.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외로운 존재이다. 부모가 끝까지 옆에 있어줄 수 없고 부모가 아닌 누구도 당신을 먼저 배려하지 않는다.


 엄마 자궁 밖으로 나온 인간은 결국 고독할 수밖에 없는데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을 많이 가질수록 이런 고독에서 벗어날 수 있다. 신뢰에서 오는 사랑은 가슴 뛰는 사랑과 한 몸처럼 붙어있다. 신뢰가 두터워지면 감정이 생기기 시작한다. 신뢰와 감정은 상호 보완적이면서 상호 순환적이다. 신뢰가 감정이 되고 감정이 다시 신뢰가 된다.


  사랑의 3요소는 사람, 신뢰, 애정(애틋한 감정)이라고 했다. 이 세 가지가 삼발이처럼 사랑을 지탱하고 있다. 어느 한 가지라도 빠지게 되면 사랑은 무너진다. 그런데 신뢰와 애정 중에서 더 중요한 것이 신뢰이고 신뢰는 애정을 불러일으키는 요소가 되므로 사랑의 소멸하는 속성을 보완할 수 있다. 사랑이 식었다면 얼마나 신뢰하고 있는지 점검해보라. 그것이 척도가 될 것이다.

2."물론 사랑하지. 그러니까 같이 살지"

 이 대답도 재미있다. 사랑하니까 같이 산다고? 그렇게 믿는가? 이것은 현실로서 사랑을 보지 않고 마치 종교처럼 그냥 믿으려는 자세가 만든 현상이다. 같이 살고 있다는 것은 단순한 현재 상태이자 결과로 그것이 무엇도 증명하거나 보장하지 않고 있다. 같이 살면서도 완전히 다른 생각을 하고 있을 수 있고 그저 현재의 상태일 뿐이지 내일 어떻게 될 건지 답을 주는 것은 아니다. 결혼이라는 제도의 힘 때문에 사회적으로 묶여있는 상태를 사랑으로 착각하고 있을 수도 있다. 같이 살든 살지 않든 서로 원하고 채울 수 없는 내 빈 곳을 채워주는 사람이란 것을 느껴야 아직 사랑하고 있는 것이다.


3."솔직히 사랑은 식었지. 애들 때문에 그냥 사는 거지."

 이 대답은 솔직하긴 한데 서글프다. 많은 중년 부부들이 이런 상태로 시간을 보내고 있다. 제도로서의 결혼에 많이 의존한 사람일수록 이렇게 될 가능성이 높다. 결혼이라는 것은 의미 있고 강력한 전통이자 제도이지만 결국 인간이 만들어낸 하나의 형식이다. 형식이 본질을 압도할 수는 없다.  현실에 타협하여 그냥 견디고 버티는 식의 사랑은 자신에게 솔직하지 못한 것이다. 현재 상태에 압도되어 새로운 생각을 하지 못하는 무기력한 상태일 뿐이다. 던져진 야구공과 다를 바 없다. 어떤 변수도 없이 그냥 날아가는 것이다.


 유한한 삶을 어떻게 살 것인가는 각자가 선택할 일이지만 자기 자신이 행복을 느끼지 못하고 그저 지금 상태를 유지하려고만 한다면 그다지 현명한 선택이라고 말할 수 없다. 행복을 추구하는 것은 모든 동물의 존재 이유이다. 특히 인간이라면 자기만의 행복을 위해 도전하고 움직여야 한다.


4. “사랑하지. 애들이 그 증거 아닐까.”

 네 번째 대답은 참 불쌍한 대답이다. 나의 사랑, 나의 행복을 왜 타인에게서 찾는가? 아이는 사랑이 결과물이지 원인이 아니다. 아이가 사랑을 더 단단하게 해주는 효과는 있어도 이미 식어버린 사랑을 다시 살릴 수는 없다. 결혼이란 제도에 의존하는 것이나 아이에 의존하는 것 모두 사랑이라는 본질이 약해지게 만드는 원인이다. “애들 때문에 산다.” 이게 최악의 대답이다.


 아이는 나의 분신이다. 행복을 가져다주는 존재이다. 그러나 사랑은 두 사람의 문제이고 두 사람 사이에서 본질적 의미를 찾을 수 있어야 한다. 아이한테 그 의미를 찾는 것은 점점 상대방의 의미를 축소시키고 결국 육아 동업자로 가는 지름길이다. 사랑하는 사람은 무엇을 같이 하는 동업자가 아니다. 어떤 수단적 의미가 없어도 그 사람 자체로서 나에게 의미 있는 사람이어야 사랑이 될 수 있다.


 이번 장을 굳이 이 책에 끼워 넣은 것은 사랑이라는 것에 대해 우리가 너무 쉽게 생각하고 때로는 잊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사랑이 쉽게 소멸하는 것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미 소멸된 것을 모르고 그 위에 번지르하게 떠있는 형식적인 구조물만 보고 존재를 의심치 않는 것이 우리 인간이다. 어떤 사람을 만났을 때 사랑하는 감정이 있는지 애매할 때도 있다. 오래된 연인들도 이런 애매한 감정상태에 놓일 때가 있다. 


 이것과 관련하여 모든 문제의 진단과 해답은 두 사람 사이에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다른 것에 의존하지 말고 상대방을 생각해보면 답이 나온다. 그 사람의 존재 자체가 나에게 주는 행복. 아무리 힘든 상황에서도 그것이 나를 이 순간 한강으로 뛰어들지 못하게 한다면 사랑은 당신의 문 앞에서 노크할 준비가 되어있는 것이다.


 "나는 우리가 사랑하고 있다고 믿어." 

 "사랑하고 있어."


 사랑을 느끼기 전에 이런 말로 전제를 깔지 말고 사랑에서 오는 행복의 감정을 먼저 느껴라. 그것으로만 사랑은 입증될 수 있다. 오래된 부부이건 며칠 안된 커플이건 가깝건 멀건 간에 사랑이 종교가 아니고 인간의 감정이라는 것을 명심하기 바란다. 사랑은 믿는 게 아니라 존재를 눈으로 보고 느끼는 것이다. 이 책은 당신에게 사랑을 완벽하게 정의 내려줄 수는 없지만 사랑이 이만큼 생각할만한 가치가 있다는 것을 입증할 수는 있다. 그 얘기를 이렇게 책으로써 말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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