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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키르히아이스 Feb 19. 2019

20. 동성애

동성애 

 사실 동성애에 대해서 언급하는 책은 많지만 찬반에 대한 얘기나 역사적인 이야기를 늘어놓지 근원적인 질문을 한 경우는 별로 없었던 것 같다. 동성애는 사랑인가? 명색이 사랑에 대해 정의하려고 도전하는 책이 동성애를 빼고 사랑의 모든 것을 얘기했다고 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이번 장에서는 동성애를 사랑의 관점에서 볼 수 있는지를 다뤄보겠다.


 종교적으로는 아직도 반대가 심하지만 미국과 유럽 선진국을 중심으로 동성애의 자리는 굳건해졌고 일부 국가에서는 결혼까지 허용하고 있다. 남의 사생활에 간섭하지 않는 개인주의가 정착될수록 이런 추세는 지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개인의 행복을 중요시하는 현대사회에서 동성애의 위상은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향상된 것이 사실이다.


 이 책에서는 동성애를 사랑으로 볼 수 있을 것인지, 동성애의 심리적 기재는 무엇인지 살펴볼 예정이다. 


동성애는 사랑일까?

 동성애는 여러 가지 성애의 일종이라고 본다. 동성애자들 역시 그것을 성적 취향이라고 말하고 있다. 인간에게 성이란 것은 감출 수 없는 본능이다. 지구 상의 거의 모든 생물이 종족 번식을 목표로 성을 추구하고 있으며 인간을 제외한 대부분의 생물에겐 생애 최대의 과제에 해당한다. 유독 인간들만 번식과 상관없는 성을 향유한다.


  심해에 사는 물고기인 초롱 아귀는 생긴 것부터 그로테스크한데 번식방법은 더 그렇다. 이 물고기의 수컷은 암컷을 발견하면 암컷의 배를 물은 뒤 얼굴 전체가 퇴화되어 암컷과 합쳐진다. 암컷은 양분을 제공하고 수컷은 정자를 제공한다. 수컷 입장에서 볼 때 자기 존재의 목적은 오로지 번식뿐이다. 어떤 야생쥐는 수명이 2주에 불과한데 2주간 오로지 짝짓기만 하다가 수명이 다하면 허망하게 죽는다. 생명체에게 종족번식이란 이토록 중요한 것인데 인간만이 그것을 뛰어넘어 성을 향유하고 있다.


  논의를 단순화하기 위해 동성애를 형식적인 면으로 보자. 우리 인간은 종족번식을 위해서만 사랑하지는 않으니까 목적이 아닌 형식으로 구분하는 것이 유용하다. 이 책에서는 사랑의 3요소를 사람, 신뢰, 애정이라고 했다. 동성애도 세 가지를 갖추고 있다면 사랑으로 보는 데 무리가 없을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동성애도 사람, 신뢰, 애정이 있다. 보통은 동성 간에 애틋한 감정이 생기지 않지만 성적 취향 때문인지 심리적 기재 때문인지 이런 감정이 생기는 사람들이 있다. 동성애를 우정과 비교해보면 좀 더 쉽게 알 수 있다. 우정은 사람과 신뢰가 있으나 애정은 없다. 애정보다 한 단계 낮은 단순 호감이 작용하다. 우리는 친구가 보고 싶어서 새벽잠을 설치지는 않는다.


 우정에는 성이라는 것도 개입되지 않는다. 만약 동성애자 중에 성관계를 하지 않는 커플이 있다면 이들을 우정과 구분 지을 수 있을까? 이것은 새로운 논의가 필요하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남성 동성애자의 경우 성적인 취향이 강하게 개입하고 여성의 경우 깊은 단계의 우정이 동성애로 연결되는 경우가 많다고 본다. 남성 동성애자 중에 성관계를 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을까? 나는 많지 않거나 거의 없다고 생각한다.

성에 따른 동성애

 여성 동성애자들의 경우 성적 취향보다는 우정이 일정 선을 넘어 사랑의 관계로 진전될 수 있다. 여성들은 친구사이에도 스킨십을 자주 한다. 물론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남성들은 기껏해야 어깨동무가 다인 반면 여성들은 팔짱을 끼고 손을 잡는 등 일반의 연인들이 하는 행위를 자연스럽게 한다. 한국만 그런지 모르겠지만 어떤 여성들은 화장실에도 같이 가고 심한 경우 화장실 칸까지 같이 쓰는 경우도 있다. 우정의 선이 남성보다 매우 높다는 걸 알 수 있다. 남성에게 우정은 협력, 동지 개념이라면 여성이 우정은 동질감에 가깝다. 


 여성의 동성애는 매우 깊은 우정이 전제되므로 우정과 구분하기 힘들다. 굳이 구분하자면 다른 남자나 여자를 그 정도로 깊게 사귀지 않는 일종의 독점성으로 구분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사랑에 독점성이 필수는 아니다. 일부다처제 사회나 원시사회에서 인간들은 서로 독점하지 않고도 사랑을 나누며 살았다. 그러나 여기서도 어느 한 대상에게 치우치는 경향은 있다. 사랑은 관심과 거의 동의어이기 때문에 분산될수록 약해진다. 따라서 독점성은 우정과 사랑을 가르는 절대적 기준은 될 수 없지만 꽤 정확한 잣대는 될 수 있다.


 따라서 여성 동성애는 우정과 구분이 쉽지 않고 독점성으로 어느 정도 구분할 수 있다. 사랑의 특징인 사람, 신뢰, 애정도 모두 가지고 있다.


 남성 동성애는 성적 취향이 강하게 작용하는데 수십 가지 성애 중에 하나라고 볼 수도 있다. 인간들은 여러 가지 성애를 가지고 있는데 나이 많은 사람을 좋아하거나 어린 사람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고 사디스트, 마조히스트도 있다. 다소 도착적인 것 까지 포함하면 수십 가지가 된다고 한다. 인간의 상상력만큼 성적 취향도 다양하다고 보면 된다. 


 남성의 동성애는 지극히 성적 욕구 기반의 것이며 우정이 발달했다기보다 성애적 성격이 크다. 성적 관계가 수반되지 않는 남성 동성애는 우정과 구분할 방법이 없고 그런 경우도 드물다. 여성과 다소 차이는 있지만 결론적으로 남성 동성애도 사랑의 3요소를 모두 포함하므로 사랑이라고 하는 데 무리는 없다. 


 지금까지 논의한 것으로만 볼 때 동성애는 사랑의 범주에 넣어도 이상할 것이 없다. 많은 성적 취향 중에 동성애는 현재 가장 많은 지지를 받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세계적으로 다양한 소수자 성애 중에 그나마 수용되고 있는 추세이다. 


 동물세계에서는 현재까지 약 1000종이 넘는 종에서 동성애, 양성애가 관찰되었다고 한다. 생각보다 많은 수인데 도덕관념이 없는 동물세계에서 동성애는 친교의 수단으로 활용될 수 있다고 한다. 일부 동성애 반대자들의 말처럼 자연의 법칙을 거스른다고 말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다만 동물들의 동성애는 하나의 현상으로 관찰할 필요는 있지만 필요 이상으로 확대 해석하는 것도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 동물들이 광범위한 동성애를 하는 것은 단지 그것이 성행위로 보일 뿐이지 성적 의미는 상실된 행동일 가능성이 크다. 그들이 그것을 유희로써 즐기는지 조차도 알 수 없다. 그들은 관습적으로 그 행위를 할 뿐이고 인간들이 그것을 성적으로 바라볼 뿐이다.


 사람들은 동성애자가 나와는 다른 세계에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로 생각하지만 동성애가 시작되는 경계는 그리 명확하지 않다. 우정에서 한 발만 더 디디면 동성애가 될 수 있다. 이성 간의 사랑도 사랑과 썸의 구분은 항상 모호하다. 


 혹자는 동성애가 호르몬 이상이나 정신적 억압에서 온 결과라고 말한다. 이 주장은 일부 그런 경우가 있을지 모르지만 일반적으로 적용하기엔 무리가 있다고 본다. 마치 동성애를 일종의 환자로 보는 관점인데 이런 관점으로 보면 소수집단을 모두 생물학적 이상 집단으로 규정할 수 있다. 따라서 굉장히 위험한 발상이라고 생각한다. 

 동성애를 설명했으니 양성애도 잠시 살펴보자. 만약 동성애의 동기가 성적 취향에 있다고 할 경우 굳이 동성에만 국한될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사람들의 취향은 변한다. 성이라고 다를 것이 없다. 그리고 아무리 남성이 성적 취향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고 해도 다른 심리적인 부분이 존재한다. 이를테면 남성도 여성보다 남성이 더 편하고 잘 맞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 여성의 복잡다단한 사고, 그리고 남성으로서 해야 하는 역할 등이 받아들이기 힘들어서 동성애로 갈 수도 있는 일이다. 그런데 이것은 전적으로 취향이므로 살면서 생각이 변해 다시 이성애로 갈 수도 있다.


 여성의 양성애는 깊은 우정에서 출발한 동성애와 사랑에서 출발한 이성애의 차이 때문에 발생한다고 생각한다. 이성 간의 사랑을 하면서도 깊은 정신적 교감을 나눌 수 있는 동성애도 별 거부감 없이 받아들일 수 있다. 이때의 성이란 것은 상대방이 가지고 있는 육체적 모양일 뿐 개체 간의 교감을 나누는 데 고려할 요소가 아닌 것이다. 여성은 교감을 중요하게 여기기 때문에 동성애에서도 얼마든지 사랑으로서 만족감을 느낄 수 있다.


결론

 결론적으로 동성애는 하나의 사랑으로 취급할 수 있다. 그러나 사랑의 형태는 이성애와는 좀 다르다. 앞서 말했듯이 하나의 취향으로 보는 것이 옳다고 생각하고 이것에 대한 호불호는 각자에게 달려있다. 이 책에서는 동성애가 옳으냐 그르냐의 문제보다 사랑으로 볼 수 있느냐만 다뤘다. 오해가 없길 바란다. 두 사람 중에 피해를 입는 사람이 없고 서로 동의하는 가운데 행복할 수 있다면 사랑의 요소가 갖춰진 이상 사랑이 아니라고 할 이유가 없다. 


 동성애보다 더 위험한 이성애도 많이 있다. 무엇보다 개인의 행복에 초점을 맞춘다면 동성애가 사랑이냐고 물어야 할 이유도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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