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륜
불륜도 사랑일까? 앞서 많은 사랑의 경우를 얘기했지만 불륜도 사랑이라 말할 수 있을까? 폭압적인 남편에게서 탈출하기 위해 불륜을 선택한 경우는 어떨까? 실질적으로는 이미 깨진 결혼 관계에서 불륜이 이뤄진 경우 이것은 사랑일까 아닐까? 문제가 단순하지 않다는 것을 눈치챘을 것이다. 크게 두 가지로 나눠서 사안을 보자.
배우자에게 별 문제가 없는 데도 불륜을 하는 경우
인간이란 끝없는 욕망에 지배당하는 생물이다. 그것은 성적인 것일 수도 있고 정신적인 것, 물질적인 것일 수도 있다. 든든한 남편, 예쁜 아내가 있고 토끼 같은 자식들이 있어 겉으로 봤을 때 누구보다 행복할 것 같은 가정에서도 불륜이 일어난다. 도대체 왜 그럴까? 그냥 나쁜 사람이라고만 하기에는 뭔가 부족하다.
부족할 것 없는 가정에서 왜 불륜이 일어날까? 원인이야 케이스별로 다르겠지만 결혼을 차선책으로 선택했을 경우 이런 상황이 발생하기 쉽다.
예를 들어 나는 다정한 남자를 좋아한다. 그런데 막상 결혼할 때는 이상형보다 현실에 맞춰서 경제적 능력이 좋은 남자를 선택했다. 이런 경우는 우리 주변에서 흔히 일어나는 삶의 형태이다. 이것을 비난할 수는 없다. 한 번뿐인 인생을 각자가 더 좋은 방향이라고 생각하는 대로 살아가는 게 당연하다.
그런데 문제는 결혼 후에도 자신 원했던 남성상에 대한 지속적인 갈증이 멈춰지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오히려 경제적으로 안정되면 다른 곳에 눈을 돌리기 쉬워진다. 이런 상태에서 외도를 하게 되면 그것은 사랑이긴 하지만 비난을 피할 수없다.
왜냐하면 피해자가 있기 때문이다. 결혼이라는 제도 속에 들어와 상대방의 의무는 그대로 지게 하고 나 혼자 몰래 그것을 탈출한다는 것은 누가 봐도 비열한 짓이다. 불륜이라서 나쁜 게 아니라 이것은 사기다.
세상에 100% 만족할 수 있는 이성은 없다. 결혼해서 연애할 때보다 더 좋아지는 경우도 드물다. 서로 알아갈수록 장점보다는 단점이 더 많이 보이고 실망하게 되는 건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단순히 이런 이유로 불륜을 감행한다면 이미 동기가 불순하고 신뢰가 무너지므로 사랑이라고 보기 힘들다. 불륜 당사자끼리는 사랑이 아니냐고 반문할지 모르지만 그렇지가 않다.
불륜의 당사자는 서로를 얼마나 신뢰할까? 이미 자신의 배우자를 속이고 있는 사람이 아닌가? 이 관계에서 상호 탄탄한 신뢰는 기대하기 힘들다. 사랑의 3요소가 사람, 신뢰, 애정인데 신뢰가 빠져버리면 사랑이 아니다. 양쪽이 모두 배우자가 있으면 더 할 것이고 한쪽만 배우자가 있을 경우 두 사람이 생각하는 상대방에 대한 신뢰 정도가 다를 가능성이 크다.
아무래도 싱글인 쪽에서는 득 보다 실이 많은 불륜에 가담한 만큼 사랑에 가까운 모습으로 임하게 된다. 그러나 배우자가 있는 사람은 들키지만 않는다면 득이 더 많기 때문에 엄격한 도덕관념이 없고서는 이런 유혹에 넘어가기 쉽다. 즉 큰 신뢰 없이도 가능하다는 얘기다. 유부남의 경우 가정을 깰 생각이 없고 언제든 다시 돌아오면 된다는 생각으로 전혀 사랑하지 않는데도 이런 관계를 지속한다.
상대방이 아무 잘못이 없어도 그럴 수 있다. 결혼 당시부터 가지고 있던 이상형 차이라든가 아니면 더 이상형에 부합하는 사람을 만났기 때문에 마음을 줄 수 있다. 이상형이 아니라도 남의 떡이 더 커 보이듯이 낯선 것에 대한 욕심이나 일탈에 대한 갈망이 이런 관계를 만들어 낼 수도 있다.
여담이지만 아이 문제는 불륜에 어떤 영향을 끼칠까? 직접적인 통계는 없지만 아이가 있는 상태에서 불륜이 더 많을 것으로 추측된다. 그 이유는 아이가 없으면 서로에 대한 관심이 더 많은 상태여서 불륜을 하기가 상황적으로도 어렵기 때문이다. 만약 아이가 없는데도 불륜을 저지른다면 그것은 애정이 식었다는 것 말고는 다른 원인이 없다. 두 사람 간의 신뢰가 아직 탄탄해도 애정이 식으면 사랑은 말라죽는다.
아이가 있고 가정에 아무 문제가 없어도 불륜은 일어난다. 자기 입으로는 너무나 행복하다고 하는데 불륜을 저지르는 사람도 있다. 왜 그럴까? 사랑도 하나의 욕망으로 보면 답이 나온다. 더 많은 사랑을 거부할 사람은 없다. 특히 남성의 경우 더 그렇다. 태생적으로 더 많은 여자에 대해 관심을 가지려 하는 그들의 습성은 결혼생활에 가장 큰 위험 요소이다. 남성들의 이런 습성은 귀여운 아이도, 어여쁜 아내도 막을 수가 없다.
이 책에서 줄곧 말하고 있는 사랑의 속성을 잘 파악해 관리하는 것이 유일한 방법이다. 이 책은 사랑이 반드시 소멸한다고 말하고 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그것을 최대한 길게 끌고 가고 안정적으로 관리하는 것뿐이다.
아무튼 상대방의 잘못이 없는데도 생기는 불륜은 사랑으로 보기 어렵다. 사랑의 3요소(사람, 신뢰, 애틋한 마음)로 볼 때 신뢰가 없기 때문이다. 불륜관계에 있는 남녀 간에는 애틋한 마음은 있지만 깊은 신뢰는 찾아보기 힘들다. 둘 중 한 사람은 신뢰를 가질 수 있다. 그러나 양방향의 신뢰는 갖기 어렵다. 그것이 최대 약점이다.
반면 배우자에게 원인이 있어 불가피하게 불륜을 하게 되었다면 그것은 또 다른 사랑으로 발전할 소지가 있다. 예를 들어 폭력 남편으로부터 탈출구로 다른 남자를 만났는데 그 남자에게 애정을 느끼고 사랑하기 시작했다면 이 사랑에 흠결을 찾을 수 있는가?
배우자에게 원인이 있어 불륜이 되는 경우
사실 파렴치한 불륜을 저지른 사람들도 원인이 뭐냐고 물어보면 다 배우자 잘못이라고 한다.
"저 여자는 항상 날 무시했어."
"저 남자 때문에 난 늘 혼자였어.”
불륜을 저지른 사람들은 저마다 불륜한 이유가 있다고 주장한다. 일단 이런 이유가 정당한지 안 한 지에 대한 판단이 있어야 하고 그 이유에 맞는 대응을 했는지 그리고 불륜밖에 답이 없었는지 물어야 할 것이다.
사랑의 관점에서 볼 때 배우자에게 원인이 있고 다른 탈출구가 없었다면 불륜이라도 사랑으로 볼 수 있는 여지는 있다. 결혼이란 것도 결국 인간이 만든 제도이기 때문에 비록 제도를 어겼어도 사람이 행복한 것이 먼저이다. 과거에 이혼이 사실상 차단된 상태에서 많은 여성들이 남성에게 종속된 삶을 살았던 것이 사실이다. 제도가 정의란 생각을 가지면 위험하다. 인간이 만들고 실행하는 모든 것은 다 허점이 있고 불완전한 것이다. 그것에 따른 결과를 오로지 제도를 위반했다고 해서 비난하면 안 된다.
일단 상대방에게 정당한 원인이 있는지를 따져야 하는데 이걸 제삼자가 판단하기는 어렵다. 우리가 판단할 수 있는 것은 관계를 끝내고자 하는 강력한 의지가 있는지 여부이다. 상대방에게 원인이 없는 경우 불륜자들은 대부분 가정을 그대로 유지하려고 할 것이다. 사랑의 자유는 얻고 싶지만 안정은 깨고 싶지 않다는 이중적 태도이다. 그러나 상대방에게 원인이 있는 경우 새롭게 가정을 만들고자 할 가능성이 크다. 기존 관계를 완전히 끊고 새로운 관계에서 자신의 가치와 행복을 발견하려고 할 텐데 이것은 사랑으로 볼 여지가 크다. 사람, 신뢰, 애정이 모두 있기 때문에 사랑이 아니라고 할 근거가 없다.
이때도 유의할 것은 기존 결혼생활에서 오는 안정과 이익은 계속 유지하려고 하면서 불륜이라는 새로운 관계에서 오는 이익까지 가지려 하는 위선이 존재한다는 점이다. 둘 중 한 가지만 선택해야 사랑이 된다. 신뢰가 형성되려면 양쪽 모두 상대방에게 모든 것을 걸어야 한다. 한쪽만 양다리를 걸치고 있으면 신뢰가 형성될 수 없다.
불륜과 가정을 동시에 유지하려는 사람들이 아이를 핑계로 하는 경우도 많으나 아이에게 엄마와 다른 여자를 동시에 사랑하는 아빠는 필요 없다. 여성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때로는 일회성 만남이니까 괜찮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이것도 웃기는 얘기다. 이 사람들은 마음 깊이 사랑하거나 가정을 깰 것은 아니고 금방 돌아갈 거니까 이런 실수(?)는 괜찮다고 하는데 이거야말로 인간관계를 장난으로 아는 처사이다.
일회성이든 아니든 불륜으로 가족이 받는 충격은 크다. 만약 들키지 않아서 괜찮다고 변명한다면 상대방을 잘 속여 넘겼다는 얘기인데 신뢰를 깨트린 것으로 이미 사랑이라고 하기 어렵다.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서로 선의로써 정직해야 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예를 들어 한쪽이 다른 한쪽을 속여서 사랑이 성립되었다고 할 때 그것이 탄로 나지 않았다고 해서 사랑이라고 할 수 있는가? 그렇지 않다.
사랑의 3요소에서 말하는 신뢰는 실제 진실을 바탕으로 한 신뢰를 말하는 것이다. 허위를 진실로 믿고 신뢰하는 것은 해당하지 않는다. 사랑이라는 것도 인간관계인데 한쪽을 속여야만 유지되는 관계라면 이것이 얼마나 껍질뿐인 관계인가.
양쪽 모두 원인이 아닌 불륜
마지막으로 배우자 간 잘못은 없지만 새로운 이성에 대해 진실로 사랑하는 마음이 생겨서 이별하고자 할 때 이것은 사랑으로 볼 수 있을지 생각해보자. 이것은 아주 예민한 문제인데 단지 새로운 사람이 좋아져서 배우자를 버리는 것인지 정말 순수하게 사랑으로 발전해서 인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여기서 얘기하는 것은 후자이다. 부부가 서로 크게 불만이 있거나 악의를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지만 새로운 사람에 대해 순수한 사랑의 마음이 생겼다는 것이다. 드물지만 이런 케이스도 있다고 본다. 나는 어차피 이런 상태에서 결혼 관계는 이미 파탄이 났다고 생각한다. 결혼이라는 제도로 두 사람의 관계를 유지해봐야 행복해지기는 어렵다.
이런 경우 불륜을 저지른 사람이 악한 사람은 아니지만 사려 깊지 못한 사람인 것은 맞다. 결혼이라는 제도는 싫으면 안 지키면 되는 그런 제도가 아니다. 가정의 제도적 안정성을 뒷받침해 주는 제도가 결혼이다. 그걸 알면서도 마치 결혼하지 않은 사람처럼 행동한다는 것 자체가 매우 사려 깊지 못하다.
이 상황은 불륜 관계인 두 사람만 보면 사랑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의 희생을 밟고 이루는 사랑이라서 비난의 소지가 다분하다. 사랑이 도덕은 아니다. 그래서 불륜이라 할 지라도 두 사람이 진실로 서로를 신뢰하고 사랑하는 마음이 있다면 사랑으로는 볼 수 있다. 그것이 옳으냐 그르냐 하는 것은 다른 문제이다.
그런데 하나 알아둘 것이 앞에서도 분석한 적이 있는데 이런 식으로 이뤄진 사랑은 출발 자체가 깨끗하지 못해서 안정적인 사랑을 이루기 매우 어렵다. 두 사람 모두 죄책감을 가지고 시작하므로 당당하지 못하고 이런 성향의 사람은 또다시 그런 유혹에 빠져들기 쉽다. 그래서 서로 양방향의 균형 있는 신뢰를 이루기 어렵고 신뢰의 깊이가 얇을 수밖에 없다. 모든 것은 얻는 게 있으면 잃는 게 있다.
불륜으로 시작했는데 어마어마하게 행복하게 잘 사는 경우는 보지 못했다. 결국 또 다른 불륜으로 헤어지거나 각자의 삶을 갈게 될 가능성이 크다. 모든 일이 시작이 중요한데 사랑 또한 어디 내놓아도 부끄럽지 않게 당당하게 시작하는 것이 좋고 그것이 오래갈 수 있는 비결이기도 하다. 사랑이긴 하지만 매우 찝찝하며 불안정한 사랑이다. 마치 컵라면이 다 익기 전에 뚜껑을 열은 듯한 이도 저도 아닌 상황인 것이다.
이런 사랑은 하지 말자. 만약에 하게 되더라도 깨끗하게 정리하고 시작하자. 모든 일이 그렇듯 사랑도 시작과 끝이 중요하다. 특히 끝이 중요한데 한 개의 사랑을 엉망으로 끝내고 다른 사랑을 성공적으로 시작한다고 해도 출발부터 흙탕물이 튄 사랑은 그 흔적을 계속 가지고 갈 것이며 매우 낮은 신뢰를 가지고 출발하게 된다.
사랑에 빠진 상태에서 서로의 신뢰가 낮다는 것을 인지하지 못할 수도 있지만 배신을 저지른 사람은 남을 신뢰하기 어렵다. 뻔뻔하게 모른 척할 수도 있지만 이런 낮은 수준의 정직성으로 택할 수 있는 사랑은 그렇게 높이 갈 수가 없다. 사랑의 3요소 중 신뢰가 낮은 상황에서 낮은 하늘만 날아다니는 새가 될 것이다. 언제까지 날아갈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2부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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