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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키르히아이스 Mar 08. 2019

22. 불륜 2

불륜 2

 불륜에 관한 이야기는 소재가 많아서 분량이 다른 장보다 길어졌다. 인간의 사랑을 논하는데 불륜이 제일 분량이 많다는 것이 저자로서 씁쓸하다. 유혹에 약하고 한없이 불완전한 것이 인간인 걸 어쩌겠는가? 여기서는 불륜에 여러 가지 현상과 고찰할 점에 대해서 이야기해보겠다.


남성 불륜의 이유

 남녀가 불륜을 저지르는 이유가 다른데 결혼한 측을 기준으로 우선 남성이 불륜을 저지르는 경우를 보자. 남자가 결혼해서 가정을 이루면 안정을 얻게 된다. 하지만 그와 함께 구속도 커진다. 남자들은 이 환경에서 계속 자유를 갈구하며 유혹에 흔들린다. 이때 어떤 계기가 생겨 불륜이라는 선택지가 생기면 개인의 도덕관념과 성격등 여러 요소에 따라 거부하지 못하고 불륜의 세계로 나아가게 된다.


 남성의 불륜은 조금 다른 것이 대부분 가정을 지키면서 관계를 유지하려 한다. 이것은 통계를 낸다는 게 어차피 불가능하니 저자가 ‘대부분’이라고 말하는 것은 남성의 심리적 경향을 추정하는 것이다. 통계는 없지만 논리적이고 관찰적으로 보면 어느정도 유추가 가능하다.


 남성이 이런 성향을 가지는 이유는 뭘까? 일단 불륜에 대한 죄책감을 아직 가정을 버리지 않았다는 것으로 만회하려는 심리가 있고 불륜이란 불확실성을 택하지 않고 안정을 이어가려는 생각도 있다. 아주 비열한 행태지만 불륜하는 사람이 도덕적인 의도를 가질 리는 없지 않은가?


 불륜에 대한 죄책감을 만회한다? 이것은 아주 이중적이고 모순적인 생각인데 가끔 가정에서 문제없이 잘 하는 남자가 불륜을 할때가 있다. 그 사람은 무엇때문에 불륜을 하는 것일까? 아마도 무슨 대의명분이 있어서 그런 것은 아니고 단순히 연애감정으로 만나는 경우가 대부분일 것이다. 그러나 연애는 연애고 자기가 엄청난 노력으로 이룬 가정(결혼에 이르기까지 투자하는 비용/노력은 여성보다 남성이 더 크다는 것을 상기하라)을 깨버리는 것은 손해란 생각이 들 수 밖에 없다. 즉 불륜녀와는 결혼을 생각하고 있지 않고 평범한 일상에서의 탈출 정도로만 생각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어차피 가정으로 돌아가면 모든 것이 묻힐 것으로 생각한다. 욕먹어도 싼 생각이지만 불륜자들의 생각이 이렇게 짧다.


 차라리 이혼하고 새 가정을 찾는 것은 그나마 솔직해서 나은데 배우자를 속이면서 자신의 의무를 저버리는 이런 행태는 가족과 배우자에게 매우 큰 상처를 남긴다. 한편으로 불륜도 결국 사이가 깊어지면 책임이 필요한 또 하나의 구속이기 때문에 그저 좋은 면만 보는 상황에서 끝내고자 한다. 이러다 보니 남자들은 불륜 속에서도 가정을 유지하고자 하고 죄책감도 적은 편이다.
 

 불륜의 불확실성을 선택하지 않는다는 것은 가정이란 것도 하나의 성취로 보는 남성적 시각에 있다. 남자들끼리 만나면 결혼후 얼마나 안정적인 가정환경을 갖추었는지를 가지고 으스댄다. 집은 얼마나 좋은 지역에 얼마나 큰 걸 갖추었고 아이는 얼마나 좋은 학교를 갔고 그런 이야기이다. 여자들이 주로 육아에 초점을 맞누는 것과는 다르다.


 남성이 볼때는 가정도 하나의 프로젝트와 비슷하다. 그래서 이만큼 이뤄놓은 것을 버리고 불륜이라는 제로베이스로 돌아가는 게 반갑지는 않다. 여성의 경우는 불륜에 이런 걸 따지지 않는다. 그래서 여성이 불륜의 주인공이 되면 남성보다 더 돌이키기 힘들다.

 남성은 불확실성을 최종선택할 의사는 없고 그저 즐기는 수준에서 유지하다가 가정으로 돌아가려 한다. 매우 위선적이지만 그들이 도덕적이라면 애초에 시작할 리도 없었을 것이다.


 요약하면 남성은 안정속에서 자유를 꿈꾸고 불륜의 하나의 자유의 통로로 이용한다. 남성에게 여성이란 어떤 이유로든 유혹일 수 밖에 없기때문에 이런 문제는 언제나 생길 수 있다. 불륜을 저지르지 않은 남성도 한번도 유혹을 느끼지 않았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우리나라 환경에서 결혼 후 부부의 관계는 애정보다는 협력자관계에 가깝기 때문에 이런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 부부보다는 아이가 중심이 되고 계속 희생만 강요당하는 결혼생활에서 탈출구를 찾고 싶은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불륜이란 자유분방한 문화에서 오는 게 아니라 오히려 폐쇄적이며 억압된 사회에서 자연스럽게 유발된다. 개인의 욕망과 행복이 무시되는 사회에서 비정상적인 관계 추구를 통해 일탈적 행복을 맞보려는 사람이 늘어나는 것은 예상할 수 있는 일이다. 그래서 자유와 욕망이 억압되면 억압될 수록 남자들의 불륜 가능성은 높아진다.


 그렇다면 남성 싱글인 경우는 어떨까? 이미 충분한 자유를 누리고 있는데 왜 불륜에 빠져들까? 남성싱글이 불륜에 빠지는 경우는 좀 드물다고 생각하는데 이유는 매우 현실적인 것이다. 유부남에 비해 유부녀는 가정에 더 매여 있다. 그리고 가정의 행복을 남성보다 더 크게 느낀다. 여성이 남성보다 안정 추구성향이 더 크기 때문이다. 주식, 복권, 도박에 남성들이 훨씬 많다는 것만봐도 알 수 있다.


 이미 안정이라는 목표를 달성한 여성이 불륜을 통해 불확실성을 키울 이유는 없다. 싱글남이 적극적으로 다가온다 해도 연애의 기본속성이 여성에게 선택권이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이 관계가 이뤄질 가능성이 매우 낮다. 여성은 왜 남성처럼 일시적 일탈을 즐기려 하지 않을까?


 여성은 안정에서 이미 기쁨과 만족을 느낀다. 싱글남과의 만남은 두근거림을 줄 수는 있지만 불안감을 더해 이미 얻은 안정감을 해친다. 자유라는 것은 이 시점의 여성이 별로 원하는 게 아니기때문에 위안이 되지 않는다. 가정의 안정감을 깨고 따로 설레임을 느낀다고 해도 그다지 만족되는 것은 없다. 이런 큰 차이가 있다.


 남성만 보면 싱글남은 유부녀를 보며 연상녀나 엄마같은 느낌을 받을 수 있고 그걸 좋아할 수 있다. 싱글녀보다 훨씬 편하고 경계심도 덜하며 남자를 이해하는 폭도 넓어서 그점도 장점이 된다. 그러나 유부녀가 이 관계를 허락할 가능성 낮고 남편의 보복도 있기때문에 위험부담이 매우 크다. 애초 관계가 진전되기 위해서는 유부녀측의 상당한 허용이 필요하다는 것도 남성 싱글의 불륜을 방해하는 요소이다. 싱글녀가 유부남에게 접근하기 위해서 넘어야할 장벽은 그 사람의 부인이 전부이다.


여성 불륜의 이유

 여성이 불륜을 하는 이유는 뭘까? 여성은 안정을 추구하는 성향이 크기때문에 결혼은 목적에 부합한 구속이다. 결혼생활이 여성에게 더 힘든 경우가 많지만 여성 자신의 목적에 부합하므로 기꺼이 희생을 마다하지 않는다. 특히 아이가 있을 경우 결혼에서 오는 모든 고통과 희생을 보상받는다고 느낀다. 


 불륜녀(상간녀)를 싱글과 유부녀로 나눠서 생각해보자. 우선 불륜녀가 싱글녀인 경우를 상정해보자. 그녀는 왜 위험한 불륜에 빠져드는 것일까? 세상에 넘치는 것이 남자들인데 하필이면 유부남을 사랑하게 되는 것일까? 남성이 자유를 찾아 불륜에 빠지는 것과 달리 여성은 무언가를 채우기 위해 남성과 만나고 그것이 불륜으로 이어진다. 어쩌면 도구적 사랑을 하는 것이라고도 볼 수 있다. 싱글녀는 싱글남을 만나는 게 자연스럽지만 그것으로 채울 수 없는 여유와 너그러움 그리고 철든 남자의 이상적인 모습이 있을 수도 있다. 어쩌면 아빠같은 남자를 찾는 성향일 수도 있다.

 결혼하지 않았지만 유부남과의 만남을 통해 마치 결혼한 듯한 안정감과 신혼에서나 느낄 수 있는 남자의 사랑을 받을 수 있다. 유부남들이 싱글녀에게 주는 사랑은 풍부한 경험과 이해심이 뒷받침된 오버된 사랑일 것이다. 자기 아내에겐 주지 못하는 자기능력 이상의 사랑이다. 이것을 받는 여성에겐 매우 안정된 사랑으로 느껴질 수 있다. 불안한 싱글남들과의 사랑과는 또 다른 느낌이다. 


 가끔 무엇하나 부러울 것 없는 젊고 아름다운 여성이 별볼일 없고 늙은 아저씨와 불륜에 빠지는 경우를 보는데 쉽게 설명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중요한 것은 여성이 안정을 추구하고 나이 많은 남자들이 그것을 제공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특히나 이미 안정을 거머쥔 유부남들은 그 실물을 보여주고 있어서 불륜녀가 부인의 자리에 자신을 대입해 볼 수도 있다.


 여성이 안정을 추구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여성은 일단 본능적으로 도전보다는 생존을 추구한다. 자기 몸이 약한것 부터 임신, 출산이라는 부담을 안고 있기때문이기도 하다. 진화심리학적으로 말하자면 원시시대에 여성들은 생존을 위해 남성에게 의존해야 했다. 여자들끼리 산다면 모르겠지만 그게 아니라면 불특정 다수의 남성으로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강한 남성이 필요했다. 게다가 출산, 육아의 과정은 여성을 완전히 무방비 상태로 만드는데 이때도 강한 남성이 필요했다. 생존의 욕구가 안정의 추구로 이어졌을 가능성이 크다.


 사실 동물세계를 보면 암컷과 수컷이 이정도로 공격력에서 차이를 보이는 경우가 거의 없다. 별도의 무기와 훈련이 없을 경우 인간만이 유독 여성의 전투력이 약하다. 변화무쌍한 자연계에서 여성은 살아남기 위해 남성을 이용해야했고 남성은 도전적이고 단순해서 어쩌면 도구적 소모품으로 적당했다. 남자들은 전쟁을 통해 계속 죽으면서 교체되었지만 여성은 살아 남았다. 권력이 없다뿐이지 생존의 측면에서는 훨씬 더 현명했던 것이다.


  우리 사회를 보면 위험도가 높고 보상이 많은 곳에는 대부분 남성이 일한다. 안정성이 높고 보상의 편차가 작은 곳에는 여성들이 많이 일한다. 이것은 차별이 아니라 두 가지 성향이다. 사실 남녀 간의 갈등은 이런 성향 차를 인정하고 나면 부드럽게 이해할 수 있는데 남성이든 여성이든 이런 면에서 유연하지 않다. 


 다시 불륜 이야기로 돌아와서, 금전적 문제를 제외하면 유부남과 싱글녀가 만나면 싱글녀가 당연히 손해이다. 싱글녀는 가정파괴범으로 지탄받을 수 있고 또래 남자를 만날 기회를 박탈당하므로 논리적으로 실익이 별로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싱글녀는 철든 남자와의 이상적인 만남에 빠져들 수있다. 이것은 다분히 감성적인 영역이다. 싱글남과의 만남에서는 두 사람이 미래를 위해 동등한 역할을 하기 때문에 정성이 많이 들어가지만 유부남과 만나면 서로 필요한 것을 주기만 하면 되므로 연애가 간단해진다. 여기서 '서로 필요한 것'은 서로 남아도는 것이기 때문에 어렵지도 않다. 싱글녀의 자유와 유부남의 안정감은 서로 교환가치가 충분한 재화이다.


 반대로 싱글남이 유부녀와 불륜에 빠지는 것은 대체로 연상녀에 대한 선호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즉 싱글남에게 유부녀는 결혼한 여자가 아니라 단순히 나이가 더 위인 여자란 것이다. 생각해보면 싱글남에게 나이가 더 어린 유부녀는 불륜에 빠질 만한 요소가 별로 없다. 경험면에서도 부족하고 스릴은 좀더 있을 수 있지만 연애가 그만큼 제한되므로 재미를 느끼기도 어렵다.


 유부녀가 유부남과 불륜에 빠지는 것은 어떤가? 이것은 남편에게서 채우지 못한 것에 대한 추구 때문이라고 분석할 수 있다. 여성은 기본적으로 부족한 것을 채우기 위해 남성을 만난다. 도구적인 것이다. 유부녀든 싱글녀든 그렇다. 유부녀는 아마도 여자로서 사랑받기 위해 불륜을 택한다고 생각된다. 남편에게 더 이상 여자로 인정받지 못하는 것에 대한 반발이 가장 클 것이다. 사랑이 아니라면 남편에게서 부족한 다른 것(돈, 성격) 일 수도 있다. 

 어떤 경우든 부족한 것을 채울 수 있게되면 겉잡을 수 없이 빠져든다. 남성보다는 여성이 사랑에 더 올인한다고 생각되는데 사실 임신이라는 것 자체가 올인이 아니면 설명할 수 없는 희생이다. 유부녀는 조금 더 균형 잡힌 사랑을 남자에게 준다. 유부녀는 남자를 더 이해하고 있다.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지만 하루종일 한 남자를 지켜보고 있으면 아무래도 깨닫는 것이 있을 수 밖에 없다. 이 깨달음이 연애에 활용되면 싱글녀 시절에는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을 이해할 수 있게 되고 남자의 행동을 미리 예상할 수도 있다. 그래서 연애를 더 안정적으로 컨트롤 할 수 있게 된다. 남성 입장에서는 컨트롤 당한다고 생각하지 않겠지만 이미 그 손안에 있는 것이다.


 유부남은 유부녀의 애정을 만났을 때 가정으로부터의 자유와 같은 불륜 당사자로서 동질감을 느끼게 된다. 이것은 복잡한 심리이기도 한데 내 아내와는 다르다는 기대감 혹은 정신승리를 부여할 수도 있다. 그리고 가정의 무게와 책임에서 벗어나 편안함을 느끼고 그것이 곧 자유라고 생각하게 된다. 이 감정은 일시적일 수도 있고 지속적인 것일 수도 있다.


 불륜이 신뢰가 없다고 단정한 것은 이런 과정 때문이다. 신뢰라는 것은 서로가 필요에 의해 만났을 경우 보조수단(예:계약서)없이는 성립이 어렵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남성은 보통 불륜녀와 미래를 같이할 생각이 없다. 그래서 신뢰가 생기기 어렵다. 불륜녀는 미래까지 생각할 수도 있다. 여성의 불륜을 무시할 수 없는 것은 여성이 불륜을 생각할 때는 현재의 사랑이 이미 사멸한 상태일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결혼이라는 선택을 통해 여자로서 많은 것을 희생해서 얻은 가정인데 그것과 다른 것을 찾으려고 한다는 것은 이미 현재의 것에 대한 미련을 버렸다고 볼 수 있다.


 이렇게 신뢰가 없는 상태에서 다소간의 애정 상태를 이어간다고 해도 미래가 없는 사랑은 뿌리 없는 꽃과 같다. 곧 시들게 마련이다. 애정과 신뢰는 서로 교감하며 상승작용을 일으키는데 신뢰 없이 애정만 있다면 그저 바람 빠진 공을 차는 것과 같다. 애정은 애정으로 끝나고 신뢰는 신뢰로 끝나버린다. 얼마간의 기쁨은 있지만 발전하는 느낌이 없다.


 사랑의 퀄리티는 사랑이 어떻게 시작하느냐에 많은 부분 영향을 받는데  어떻게 시작했느냐에 따라 사랑이 가야 할 궤도가 결정되기 때문이다. 출발이 좋지 못해도 발전된 궤도로 가는 경우도 있지만 이것은 출발의 한계를 극복했다고 보는 것이 옳지 처음부터 한계가 없었다고 보는 것은 무리이다. 불륜은 그 자체로 많은 한계를 가진다. 법적, 정신적, 인간적 한계. 불륜의 출발시점에는 이런 한계를 가지고 있다.


 이런 한계에도 불구하고 유부녀와 유부남은 서로 쉽게 필요한 것을 찾고 경험도 많으므로 성립가능성이 높다. 다만 유부녀가 불륜에 나설 경우 가정의 사랑이 이미 죽어있는 경우가 많아 불륜에 쏟는 무게감은 여성쪽이 높다고 본다. 여성이 더 큰 상처와 위험에 놓이는 것도 이 때문이다.

 불륜이 사랑일 수 있을까? 

아마도 이 책을 읽는 많은 독자들이 궁금해했을 주제일 것이다. 조건이 따르긴 하지만 결론부터 말하자면 불륜도 사랑이 될 수 있다.


 예를 들어서 폭력적인 남편과 경제적인 이유로 어쩔 수 없이 결혼생활을 이어가는 여자가 있다고 해보자. 그녀에게 불륜은 한줄기 빛일 수 있다. 앞에서 나는 결혼이라는 제도와 상관없이 본질적이고 실질적인 면에서 사람과 사람의 관계가 어떤지가 중요하다고 했다.


 폭력 남편과의 사랑은 처음부터 없었거나 아니면 있었지만 소멸된 것일 수 있다. 어쨌든 현재는 없는 것이다. 사랑의 3요소인 사람, 신뢰, 애정 중에 신뢰와 애정이 없다. 결혼을 했건 안 했건 이 상황은 사랑이라고 말할 수 없는 상태이다. 그녀가 어떤 누구를 사랑하든 그것은 불륜이라기보다 그냥 새로운 사랑이다. 사랑의 관점으로만 보면 사랑하고 있는 상태가 아니었고 혼자인 상태에서 새로운 사랑을 찾은 것이다.


 그렇다고 속이고 불륜하는 게 당연하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남편에게 원인제공이 있고 남편 역시 사랑이 아닌 경제적인 것을 무기로 아내를 속박하고 있을 뿐이다. 양쪽의 사랑이 이미 죽어버린 상태에서 누가 사랑을 시작해도 이상하지 않다.


 그렇다면 폭력남편 따위가 아니라 처음엔 사랑했지만 애정이 소멸한 상태에서 다른 사랑을 찾는 것은 어떨까? 대부분의 불륜은 이 상황에 더 가깝다고 보이는데 이것도 기존에 하고 있던 사랑이 정상적인 사랑이라고 보기 어렵다. 그저 신뢰가 있어서 둘 간의 관계를 유지시켜 줄 뿐이다.


 이것은 비즈니스 파트너와 비슷한 것이다. 인생이란 혼자 살아가기 어렵고 믿을 수 있는 사람이 드물다. 신뢰할 수만 있어도 그것은 관계를 이어갈 만한 이유가 된다. 만약 이런 사랑을 두고 다른 사랑을 찾는다면 이런 경우 사랑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생활은 남편(아내)과 하고 사랑은 다른 남자(여자)와 한다면?


 현재 사랑하는 상태가 아니라는 측면에서 불륜이 아니라고 할 수 있지만 신뢰를 깬다는 측면에서 비난받을 여지는 있다. 만약 불륜녀와 애정과 신뢰가 모두 있는 상태라면 이 경우에는 비난받아도 또 하나의 사랑으로 발전할 여지는 있다. 


 사실 중년 이후의 부부는 애정이 소멸하고 신뢰로서 이어가는 경우가 많다. 드러나지는 않지만 이런 관계 속에서 수면 밑으로 불륜들이 많이 일어날 것이다. 매우 이중적이지만 현재의 사회적 구성을 깨지 않으면서 애정이 소멸한 상대의 불륜을 눈감아 주는 것이다. 아니면 아예 관심이 없을 수도 있고. 


 요즘엔 졸혼이라고 해서 비슷한 형태가 나오는데 우리나라에만 있는 매우 기형적 행태이다. 나이들어 이혼하고 새로운 사랑을 하는게 부끄럽고 비난받을 까봐 이혼은 못하고 졸혼이라는 어중간한 형태로 별거하며 껍데기만 남은 결혼생활을 이어간다. 자기 자신의 행복, 개인의 행복을 최우선으로 하지 않고 관계속에서 행복을 찾는 중진국적인 타협인 것이다. 개인주의가 발달한 선진국에서는 도저히 있을 수 없는 형태이다. 


 나이 들어 이혼하면 주변 사람에게 망신살이 뻗치고 자식들에게도 영향이 가므로 도저히 못하는 것이다. 이혼을 더 원하는 쪽에서 더 많은 재산을 양보한다는 전제 아래서 개인만 봐서는 졸혼 따위를 할 이유가 전혀 없다.


 아무튼 이런 죽은 결혼의 상태에서 불륜은 사랑이 될 소지가 충분한다. 사회적 계약을 깨끗이 정리하지 않은 문제는 지적할 수 있지만 개인이 사회를 바꿀 수는 없는 것이니 사회적 상황에 따라 이런 일도 가능하다. 다만 서로가 동의하는 전제에서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일방적으로 사랑을 죽여놓고 이미 죽은 결혼이니 나의 행복을 찾아서 가겠다는 것은 결혼이란 제도를 떠나 인간을 우습게 아는 행동이다. 많은 여성들이 이런 일방적 졸혼에 당할 우려가 있다. 결혼했다면 평생 책임지기로 한 것이다. 상대방의 동의가 있어야 이것이 해지될 수 있다. 형식적으로만 남기고 싶은 것도 상대방의 동의 아래서 가능하다. 그렇지 않으면 그냥 ‘바람’일 뿐이다.


 3부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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